늑대 인간과 마녀가 숲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갔을까?
빨간 머리 앤이 금발이었어도 길버트와 싸웠을까?
늙은 왕비가 항상 젊은 공주에게 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루마니아의 민족 영웅 드라큘라는 어떻게 섹시한 흡혈귀가 되었나?
카렌이 몰래 빨간 구두를 산 것은 어째서 죽을죄인가?
레 미제라블은 파리의 하수도 고증 자료로 쓰인다?
신데렐라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진 적이 없다?
왕자와 거지는 왜 똑같이 생겼을까?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읽었던 동화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도발적인 질문들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백설 공주』, 『빨간 모자』 와 같은 고전 동화에서부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레 미제라블』, 『해리 포터』처럼 비교적 최근에 씌어진 명작 소설에 이르기까지 총 27편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세계사의 숨은 뒷얘기를 발굴해 내고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더없이 친근하고 합리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당대의 인물들을 되살려
내었습니다.
이야기가 이리도 풍성할 줄이야!
명작동화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파헤치며 마주한 기가 막힌 반전의 세계사.
'동화'로 시작하였지만 '세계사'가 되었던 이 책.
'아,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 거구나!'
책장에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선!
왜 왕자들은 그렇게도 떠돌아다닌 것일까?
그 많은 싸돌아다니는 왕자들은 "네 운을 시험해 보라"며 고국에서 등 떠밀려 쫓겨난 젊은 기사들이었다. 물려받을 유산도 거의 없고 장차 실업자 신세인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웃 나라 외동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처가의 왕국을 물려받아 공동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자들은 공주가 한눈에 반할 수 있도록 현란한 말솜씨와 에티켓, 기사도를 몸에 배도록 수련해야 했다. 유리관 속의 백설 공주가 자기 스타일의 여성이 아니어도, 심지어 100살쯤 연상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100년 동안 이를 닦지 않아 입 냄새가 진동해도 꾹 참고 키스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아아, 슬프지만 이것이 바로 소녀들이 한 번쯤 꿈꾸던 백마 탄 왕자, 프린스 차밍의 정체인 것이다. - page 20
환상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
환상이 깨지는 소리... 들리시나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
앤은 자신의 빨간색 머리카락을 놀린 길버트를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며 몇 년 동안 어떤 식의 사과도 받아 주지 않았었는데...
또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으로 염색을 시도했다가 초록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을 몽땅 자르는 소동을 벌이기까지 했는데...
왜 앤은 이토록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혐오했을까?
게르만족의 후예인 서북부 유럽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인 앵글로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은 다수의 게르만족이 가진 금발 머리를 아름답고 정상인 것으로 본 반면, 자신들이 몰아낸 켈트족에게 흔한 빨간 머리는 추하고 비정상인 것으로 본 것이다. 즉, 빨간 머리 혐오에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박해가 깔려 있다. 금발에 푸른 눈이 다수인 서북부 유럽에서는 빨간 머리가 마녀로 여겨지지만 흑발에 갈색 눈이 다수인 남부 유럽에서는 오히려 푸른 눈이 마녀로 몰렸다는 사실이 이런 소수에 대한 박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page 47 ~ 48
빨간 머리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세계를 지배하는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다수가 소수에게 가하는 억압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학과 역사 속 빨간 머리의 여성들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매력적이고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현재까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음에!
어디선가 빨간 머리 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아이에게 권하면서 동시에 저도 다시 읽어야 할 책이 생겼습니다.
프랜시스 버넷의 『소공녀』.
이 소설은 역사책 읽기가 사람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 page 198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공주 같은 대우를 받던 세라가 지붕 밑 다락방으로 쫓겨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 때, 추위보다 더 차가운 멸시를 받을 때,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읽은 역사책 속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 힘든 상황을 이겨 나가기 때문이다. - page 198
교장인 민친 선생이 죄 없는 자신을 다락방에서 살게 하며 월급 없는 하녀로 굶기면서 부리는 것에 매우 부당함을 느끼며 자신이 바스티유 감옥의 죄수라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꿋꿋한 정신을 지켜 나가려 합니다.
더불어 왕과 귀족의 부당한 억압에 저항했던 혁명의 역사를 읽으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반항심을 혼자 몰래 분출했을지도 모르는...!
이렇게 쫓겨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자신에 빗대어 생각하는 세라를 보면 세라의 공주병이 참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공주병이라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라의 공주병은 자신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부리려고만 하거나, 멋 내기에만 신경 쓰는 그런 안하무인의 공주병이 아니니까 말이다. 세라는 가난한 하녀의 처지가 되었어도 늘 자기보다 가난하고 배고픈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고 자신의 빵을 양보하는 진정한 공주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런 세라의 긍정적인 공주병은 역사책 읽기를 통해 성립되었기에, 동화책 읽기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려는 내게 『소공녀』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 page 203
근데...
이 사실을 모르고 다시 『소공녀』를 읽더라도 그저 재밌게만 볼 듯한...
하하핫;;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었으니...
원래 하나의 공통된 모티프를 가진 구전 설화는 시대와 지역의 차이를 두고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의 어린 친구들이 읽는 신데렐라는 오직 하나, 페로 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만화뿐이다. 이런 현상은 맥도날드가 전 세계를 지배하며 아이들의 입맛과 사고를 획일화시키고 비만을 유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다양한 옛이야기 해석과 성숙의 권리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나는 요구하고 싶다. 우리는 여러 판본으로 여러 민족 간에 다양하게 계승되어 온 신데렐라 이야기들을 돌려받아야 한다. 당시 역사와 사회 현실을 반영하여 형성된 이야기는 다시 그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획일화된, 그것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교훈을 강조하는 한 가지 신데렐라 이야기만을 접하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신데렐라를 만날 권리,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세계를 해석하고 성숙할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 page 310 ~ 311
그럼 우리의 신데렐라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고전을 읽다 보면 <작품 해설>이 있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고전을 배경지식을 전해주면서 해설을 해 줌으로써 비로소 이해가 되었는데...
역시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음에.
그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 나는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고전을, 동화를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지만...
아직은 손보다 눈길만 좇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