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정복하고 싶다." _세잔
모든 사물을 원통, 구, 원뿔로 단순화한 형태와 면으로 축소시키면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내재성(본질)이 드러난다고 믿었던 '세잔'.
그런 생각이 잘 표현된 대표적인 소재가 '사과'였고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에서도 사과가 있어야 가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는 새로운 미술을 여는 예술가"라던 말이 예언처럼 들어맞게 됩니다.
_미술사적 가치
죽고 나서야 유명해진 화가를 말할 때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달리, 고흐는 살아생전 동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는데...
반면 사는 동안 완전히 무명이었다가 사후 200여년이 흐른 후 갑자기 스타가 된 화가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베르메르'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가 유명해진 이유...
1848년 2월 혁명.
전제 왕정의 잔재를 털어낸 혁명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공화정을 지지한 미술 평론가 테오필 토레.
그는 과격한 시위 주도자로 정부에 쫓기자 파리를 떠나 벨기에의 브뤼셀로 도피, 가명으로 살면서 원래 직업인 미술사 연구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전기도 없고 작품은 희귀하기만 한 위대한 한 화가"를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직관적인 분석과 상상으로 채워 한 가지 묘수를 찾아내는데...
"그는 렘브란트처럼 물감을 다루고, 피터르 더 호흐처럼 빛의 효과를 즐긴다."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채로 소개된 페르메이르.
이즈음 프랑스인들의 그림 취향이 달라지면서 페이메이르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게 되며 마침내 20세기 초 인상주의가 미술사의 주류로 자리 잡자, 페르메이르는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선배 화가로 평가됩니다.
200여 년간 무명의 화가에서 단 4년 만에 루브르 미술관에 작품이 걸린 화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에 경매에 나올 때마다 컬렉터들은
'이번이 페르메이르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사야 해!'
라는 절박한 심정이라는데...
그렇다면 페르메이르의 개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버지널 앞에 앉은 소녀>는 얼마에 팔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