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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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작가 데뷔가 어느덧 30주년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30주년 기념으로 펴낸 에세이도 읽었었고, 그의 작품은 최신작부터 역으로 읽어가던 중 아직 접하지 못했던 전작들...

그러다 이번에 한국어판 출간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판형과 장정으로 단장한 그의 작품들이 속속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그의 매력에 빠져든 저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기에!

차근히 그의 작품 하나하나 격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을 나누다 사망한 체스 챔피언

그가 밝히지 않았던 <은밀한 동기>란 무엇인가

뇌 1



1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대모갑테 안경을 쓴 이 남자.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디프 블루 Ⅳ>라는 컴퓨터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체스보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그 눈 뒤에는 시각신경, 후두엽의 시각 영역, 대뇌 피질이 있다.

뇌의 회색질 속에서 전투 준비와도 같은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수백만 개의 뉴런이 활성화한다. 이 뉴런들은 미세한 전기 충격에 차례차례 반응하면서 저희의 축삭 말단으로 신경 전달 물질을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신속하고 강렬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진다. 생각들이 뇌 속에서 질주한다.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거대한 곳간에서 생쥐 수백 마리가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과거에 이기거나 졌던 판들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고, 갖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이제 전기 충격이 반대 방향으로 전달된다.

대뇌 피질. 척수. 손가락 근육 신경. 나무 체스보드. - page 16

모두가 숨죽인 듯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마침내...

「체크메이트! 」

사뮈엘 핀처가 디프 블루 Ⅳ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의 두뇌 대결에서 다시 인간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두 기사가 패배한 뒤로, 체스에서는 기계가 갈수록 인간보다 영리해질 거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저 역시 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까 봐 두려워했으니까요. 하지만 강한 동기를 지닌 사람은 한계를 모릅니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위험과 맞서며 지중해를 건넜던 것은 그에게 강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했던 것도 암스트롱이 우주 공간을 비행하여 달에 갔던 것도 그들에게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침마다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나는 어떤 일에 힘을 들이고 애를 쓰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일까?>하고 말입니다.」 - page 21 ~ 22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사뮈엘 핀처 박사는 아티브곶의 자기 빌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게 됩니다.

톱모델인 약혼녀 나타샤 아네르센과 사랑을 나누던 도중 황홀경에 이른 표정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한, 경찰의 수사 결과로는 그가 복상사를 한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기자 출신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직감적으로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고 『르 게퇴르 모데른』 지의 기자인 '뤼크레스 넴로드'에게 함께 수사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뭘 기대하는 거죠, 이지도르?」

「우리가 다시 한 팀을 이루어서 일하면 좋겠다 싶어요. 사뮈엘 핀처 박사 피살 사건에 관해 함께 조사를 해보자는 거죠...... 내 직감으로는 뇌를 주제로 한 탐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

「뇌라고요?」

되묻는 그녀의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이 어린다.

「그래요, 뇌. 그게 이 조사의 열쇠예요. 피살자가 누굽니까? 바로 <세계 최고의 두뇌>가 아닙니까? 게다가 이게 있습니다. 보세요.」 - page 33

핀처가 체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동기>라는 말을 할 때 무언가를 밝히려는 듯한 눈빛이 보였다는 점을 들면서 '뇌'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 말하는 이지도르.

그리하여 이지도르와 뤼크레스는 삶을 이끄는 주된 동기들을 찾아 핀처의 진짜 사망 원인을 추적하면서, 그 동기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최후 비밀>이라는 무언가를 알게 되는데...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성애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술이나 마약 같은 거 말인가요?」

「넴로드 씨,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죠? 한때 술주정뱅이였다고 또 술독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에겐 알코올 의존보다 더 강력한 동기가 있어요. 마약으로 말하자면, 나는 환각을 일으키는 풀을 맛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주사를 맞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뭐죠? 무엇 때문에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거죠?」

「<최후 비밀> 때문입니다.」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신종 마약인가요?」

그는 파이프를 잡더니 그걸 가지고 손장난을 친다.

「그보다 훨씬 대단한 거죠. 모두가 말은 안 해도 다 그것을 갈망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가장 경이롭고, 가장 위대한 것이니까요. 돈이나 섹스나 마약보다 대단한 것이죠.」 - page 285

<최후 비밀>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권에서 이어지는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작품 중에 이보다 더 몰입감 있게 읽었던 건...

(그동안 읽었던 건 고양이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미래였고...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였고...

아무튼 인류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서 빨리 그의 사망 원인을, 무궁무진한 '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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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한 기록
임진아 지음 / 뉘앙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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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맑고 섬세한 눈으로 포착하여 찬찬하게 담아 온 저자 '임진아'.

그래서 그녀의 에세이집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작고 귀여운 삽화와 함께하기에 일상에서 작교 귀여운 행복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고 할까...

읽고 나면 덕분에 세상이 다정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져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책을 꺼내 읽곤 합니다.

이번엔 그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숲으로 눈을 돌리며 한층 넓고 깊어진 시선을 보여 준다고 하였습니다.

숲에서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그리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비롯하여 나와 세상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 두루 돌아보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편린들...

또다시 그녀의 말에 마음을 기대어봅니다.

보다 많은 예의가 스며든 관계를 그리며

세상이라는 큰 숲에서 작은 걸음으로 나아가는 이의 이야기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첫 이야기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다른 차의 부주의로 경미한 접촉 사고가 났는데 당황한 상대 운전자를 향해 건넨

"우리 그냥 가요. 우리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

라며 서로를 '우리'라 칭하며 우리의 하루를 바라보자고 말한 엄마의 에피소드.

그녀로부터 누군가의 하루를 단번에 꼿꼿하게 세워 줄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이 문장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일을 선택할 때, 관계 문제에 휘둘릴 때,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을 때, 괜히 마음이 내려앉을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잘 사용했던, 이제는 바꿔야 했던 말이 등장하였습니다.

"별 거 아니에요."

"에휴.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칭찬에 유독 약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겸손 커튼이 쳐지는 순간.

타인에 더해 심지어 나 또한 존중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는 태도.

겸허와 겸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그녀는 이를 '그늘진 겸손'이라 하였습니다.

이 그늘진 겸손은 못생긴 그림자를 만들고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들은 사람의 자리에 의외로 꽤 오래 따라다닌다고 하였습니다.

뱉어진 말은 들은 사람에게 남아 각인이 된다. 이미 생긴 자국에는 속마음 문장이 들어갈 틈이 없다. 속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그늘진 겸손과 견줄 정도로 못생긴 것은 매한가지다.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내세우고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은 전해질 준비를 마치고 오래도록 닿는다. - page 30 ~ 31



울림을 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알림창으로, 핸드폰 속 뉴스로, 밥을 먹으며 본 텔레비전에서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저마다의 괄호.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어 놓고 그런 줄도 모른 채 웃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괄호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가끔 떠올리며 살고 싶다. 사람을 잃은 사람의 일상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복잡한 슬픔이 꾸준히 더해지고 섞인다. 마주해야 하는 슬픔이 있고, 가려져야 덜어지는 슬픔이 있다.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마음은 더욱이 보여야 하고, 이제는 그만할 때 됐잖아 하는 식의 태도는 드러나지 않아야 마땅하다. - page 109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보이는 애도와 숨기는 애도. 어디까지나 이어져야 하는 우리의 단단한 캠페인. 나는 되도록 많은 우리의 괄호를 챙기고 싶다. 그렇게 우리의 애도는 이어지고 이어진다. 나의 날을 살면서도 또 다시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 삶은 계속되겠지만, 비어지는 괄호와 채워지는 괄호로, 남아 있는 사람의 하루는 내일로 이어진다. - page 110

각자가 품고 있을 괄호 안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리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서로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만들어갈 것을.

묵직이도 다가왔었습니다.

세상의 타인들,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보다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나을 것을.

'좋은 어른'이 되는 길...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말만 내뱉지 않아도

우리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듣기 좋았던 말을 선명히 기억하며 내일을 쳐다보고 하기 싫은 말을 삼키며 나를 지키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더 나은 어른이 된다는 거...

그 중심엔 '말'이 자리하고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스스로 점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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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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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에서 괴담이나 전설이 현실에서 유사한 사건처럼 벌어지면 그 파급력이란...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설이 허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 된다...!

그 결말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극적인 거짓말에 혹하는 법이거든."

거짓말만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모두를 다 속인 거짓말이 당신을 놀라게 한다.

마지막 거짓말



시작은 이렇다. - page 7

여기는 '나이팅게일 캠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하게 고요한 이곳.

당신은 생각한다. 제발 안전하게 거기에 있어 줘. 제발 내가 너희들을 찾아낼 수 있게 해줘.

아이들이 거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마치 악몽을 꾸는 느낌이다. 밤마다 당신이 눈 감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꿈. 하지만 꿈은 현실이 되었다. - page 11

떠오르는 신예 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에미 데이비스'.

"긴장할 필요 없어. 당신은 충분히 노력했고, 자랑스러워해도 돼. 화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영감을 얻잖아. 창작이란 원래 경험에다가 상상력을 덧붙인 결과물이야." - page 19

그녀는 원래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미술대학 시절 지도교수가 그녀에게 아는 사람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지 않은 인물을 그려오라는 과제물을 내주어 처음으로 인물이 있는 그림 '사라진 소녀들'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5년 전 부촌의 아이들이 모이는 나이팅게일 여름캠프에 참여했다가 함께 방을 같이 쓰던 아이들의 실종사건...

아직도 잊지 못하는 세 소녀...

가장 먼저 비비언, 그다음은 내털리, 마지막은 앨리슨 순으로 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게 그린 뒤 캔버스에 여백이 남지 않을 때까지, 소녀들의 모습이 숲에 완전히 뒤덮일 때까지, 그들이 풀과 나뭇잎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물감을 칠합니다.

그렇게 그림이 완성되면 캔버스 아래에 이름을 적고...

사라진 소녀들을 주제로 연작 그림을 그려 크게 주목을 받게 된 에마는 이를 가지고 첫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15년 전, 캠프 사람들이 다들 '프래니'라 부르던 그녀를 만나게 되고 프래니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15년은 제법 긴 시간이지만 나이팅게일 캠프에는 아직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캠프를 다시 열어야만 과거의 망령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대신 이번에는 캠프 참가 비용을 전혀 받지 않을 생각이야. 다만 캠프가 위치한 주변 세 개 주 여학생들에게만 캠프 참가 자격을 주려고 해."

"매우 파격적인 계획이네요."

"난 사실 돈보다는 나이팅게일 캠프와 미드나이트 호수가 있는 대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맘껏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래서 말인데 너도 이번 캠프에 참여해 주었으면 해." - page 34

15년 전 실종 사건으로 폐쇄되었던 나이팅게일 여름캠프 재개장에 미술교사로 참석해달라는 프래니.

에마는 과거의 기억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15년 만에 열린 나이팅게일 여름캠프.

에마는 실종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층층나무 오두막'에 다시 배정을 받게 되었고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에 시달리다 캠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는 등 석연치 않은 일을 겪게 되는데...

'이건 현실이 아니야. 15년 전과 똑같은 일이 반복될 리 없잖아.'

과연 에마는 15년 전 실종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5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15년 시차를 두고 전개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보시는 건 어떨지요...!

'이건 현실이 아니야. 난 절대로 미치지 않을 거야.'

소설은 아이들의 실종사건으로부터 시작해 여자애들 사이에서의 기싸움과 우정 그리고 사랑으로 흐르다가 정신병원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묘한 분위기의 미스터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개인의 복수심으로 인한 살인사건으로 쉼 없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사건보다 '전설'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했던 '두 진실, 한 거짓말'이라는 게임.

"이제부터 게임을 하려고. '두 진실, 한 거짓말'이라는 게임이야.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는 거야. 세 가지 말 중에서 둘은 반드시 진실이어야 해. 하나는 거짓말이어야 하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이 거짓인지 맞히는 거야." - page 114

상대의 비밀을 폭로하고, 치부를 드러내고, 복수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 게임.

이 게임을 하던 그들의 모습에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런 사회를 비추고 있어서 씁쓸하였었습니다.

순수하고 선한 아이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둡고 음습한 욕망...

그리고

"팔찌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제 이 팔찌를 차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 팔찌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요." - page 443

그럼에도 나아가는 에마를 통해 수많은 난관과 고통을 극복하고 나야만 비로소 가야 할 길이 보인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극복해 내야 한다는 점.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되새기며 짜릿했던 『마지막 거짓말』 대미를 장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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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
벤 펜턴 지음, 박정은 옮김 / 아이콤마(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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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공정한 경기를 원한다."

"결과와 과정 모두 공정해야 한다."

공정, 공정, 공정...

하지만 정작 '공정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쓰는 걸까?

혹은 막연히 드는 '불쾌한 감정'을 불공정이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막연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쳐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공정'이란 무엇일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써 보고 싶었습니다.

'공정'이 사라진 시대

오늘날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서로를 비난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쓰는가?

왜 우리는 불공정을 그토록 강하게 느끼는가?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적인 관계부터 사적인 관계까지

읽기만 해도 공정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확실하고도 궁극적인 해답

공정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거대한 인간 마을의 지혜로부터 이득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신 군중 심리를 제공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은 파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상호 적대감을 가지고 흥분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라는 부채질 기능 덕분에 상호 적대감이 마치 관중이 지켜보는 스포츠처럼 되어 버렸다. 깨끗하고 좋은 물이 흐를 때는 더러운 찌꺼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쉽게 격해지는 분위기를 이용해 목적을 이룬다. 지금 인터넷은 엄청난 소동들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공정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 page 37 ~ 38

SNS가 다양해지고 전파 속도가 빨라진 요즘.

여기에 '공정성'이 엮이고, 일부 불순한 의도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인과 기업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또 스포츠 영웅과 악당,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 가장 경멸하는 유튜버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들은 우리의 먼 조상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소수의 사람들 (친밀하고 사적인 접촉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말, 행동, 창작물을 우리가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보도하고 요약해야 한다. 중개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이 그들의 유권자, 고객, 팬에게 하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그들이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지, 진짜 의도와 행동을 공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을까? - page 281 ~ 282

그렇기에 '공정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해야 함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1부에서는 공정성이 어디에서 나왔고,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지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였고

2부에서는 스포츠, 전쟁,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 세금,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공정성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은 공정하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거나 대처할 수 없는 단어이자 개념인 '공정한(fair)' '공정성(fairness)'.

공정은 오로지 공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다는 것의 의미는 상호 간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그리고 같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다른 집단에 그들이 틀렸다고(또는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공정성을 고취하는 방법은 불공정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달라지게 하는 행동은 언쟁 대신 이념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page 345

공정성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행위인 이타주의, 관대함, 친절함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우리가 타고난 감각인 '공정성'을 이용하여 무엇이 공정하고 공정하지 않은지, 더 나은 사회를 찾기 위한 균형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 보며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읽고 나서 혼돈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딱 떨어진 정의를 원했기에...

하지만 단순히 정의로 학습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을.

옳기만을 위한 것보단 공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을.

우선 나의 공정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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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 영국의 책사랑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나
권신영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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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부터 해리포터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시리즈는 '영국'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 T.S 엘리엇으로 이어지는 고전 문학 전통도 탄탄하기까지 한데...

영국의 책 문화 관찰기.

너무 기대되었습니다.

"광속 문화의 시대, 책은 여전히 문화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이야기의 나라 영국을 무대로 탐색하는 책과 책 읽기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

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영국'이라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산업혁명을 일으킨 자본주의의 나라, 프랑스 같은 대형 유혈 없이 의회 민주주의를 수립한 나라, 대영 제국을 뜻했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처럼 굵직굵직한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축구, 골프, 테니스, 그리고 럭비 종주국이라는 역동성을 느끼게도 됩니다.

또 버킹엄 궁전, 빅 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성당, 스톤헨지, 런던 타워 브리지, 런던 시내를 오가는 2층 버스, 영국 박물관, 국립 미술관 등 장소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자는 영국을 '이야기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아서 코난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J.R.R. 톨킨, 러디어드 키플링,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J.K. 롤링 등 저명 작가군도 있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이야기 능력을 국제적을 발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올림픽처럼 자국 문화를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산업 혁명, 자본주의와 이로 인한 그림자, 노동자 파업, 민주주의가 점차 확대되는 과정의 하나였던 여성 참정권 운동, 복지 국가의 상징인 국가 의료 보험 제도 등 영국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우르는 소재를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짙고 다소 무겁게 비칠 만한 주제를 소개할 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 《메리 포핀스》 《해리포터》 등 영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을 깨알같이 집어넣는 등 재치 넘치는 유머를 선보였습니다.

'달콤한 이야기' 전략은 성공이었고 이를 통해 이야기가 갖는 힘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상시 영국의 이야기 능력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일단은 ''이었습니다.

금속활자가 발명된 뒤에도 영국의 책 문화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뒤처져 있었지만 뒤늦게나마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돌려 읽는 등 열정을 불태우면서 독자적인 영문학 탄생과 함께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이 문화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주고받는 것과 같은 사회적 관습은 물론 전통 있는 출판사와 서점을 유지하고, 도서관을 정착시키고, 북클럽을 만들고, 학교 교육에 독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즉 영국의 이야기 문화는 작가, 출판사, 서점,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책과 연관된 제도 및 다양한 존재들을 통해 형성되었고 오늘날 영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야기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책과 독서의 본질 및 그 영향력에 대한 탐색뿐 아니라 저작권의 탄생,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 서점과 도서관의 역사와 변화 등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들을 함께 탐구하였습니다.

'책이 한 사회의 근간이 되어가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적 모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실제로 개척해나가는 책과 출판의 역할, 또 그 결실이 어떻게 영국의 일상생활 속에 정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책사랑을 바라보며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책이란 물건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으로 공간을 채워야 하는가...?!'

'책'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텍스트나 이미지가 인쇄된 것이 아닌 자신과 외부를 어느 정도 차단하여 개인 공간을 확보해 주는 동시에,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 사회적 연대감을 쌓는 수단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니?"

하며 초등학생에게 묻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게 현실성 있는 질문인가?'

'아이들은 단순히 내용만 보고 책을 고르지 않나?'

라 생각되지만 현실적인 질문이 되려면 우선 아이들이 책을 잡았을 때 책 제목을 먼저 보고 시선을 곧장 바로 밑이나 표지 맨 아래까지 내려가 제목보다 작은 글자로 적힌 작가 이름에 주목하는 습관을 길러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하간 스토리 타임처럼 이야기를 듣는 단계부터 제목과 글그림 작가를 함께 들었다면 어린아이라도 자기가 좋아서 여러 번 본 책의 작가 한두 명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스티커는 지금부터 작가를 주목하며 읽으라는 무언의 가르침일 수도 있었다. 기억 못하더라도 또 좋아하지 않더라도, 창작물을 대하는 기본자세를 익히라는 뜻에서.

개인적 습관과 태도를 넘어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니?"라는 질문이 가능하려면 사회·경제적 조건도 갖추어져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수의 유명한 작가 외에도 글을 꾸준히 발표하는 아동 문학 작가군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낟. 아동 문학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출판 시장과 궁긍적으로 이를 소비할 아동 독자층이 탄탄해야 가능한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니?"라는 물음은 '작가-어린이 독자-출판 시장'을 잇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한 영국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 page 160

정말 영국으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되었습니다.

읽고 '생각'하기보다 영상을 보고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

그래서 책이 사라질 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책은 퇴물보다는 보물이 될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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