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지붕과 벽이 있는 공간안에서만 유효한 용기. 내가 하는 동성애가 더는 사생활이아니게 되는 순간, 단체에서 벌이는 거리 캠페인이나 시위

나는 광호 씨가 주제넘는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뭘그리 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 건지 의아했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게 거슬렸다. 내 안의

광호 씨는 장애인 등급제 폐지 시위와 세월호 촛불 집회처럼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한 현장마다 찾아가 무지개깃발을 들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어요. 도움을 갚아야

김병운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있는 성소수자가 과연 이 땅에 존재할까 싶어요. 물론 불일치감

자살이 성소수자에게 주어진 생의 각본 같다는 생각

김병운 
정체화의 과정이 유난히 길고 혹독했던 사람들이 이후에 정체성에 대한 애착도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게 자신의 삶에 직결된 문제이니 더욱더 엄정하고 방어적인태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애착이 당사자

아버지가 돌아간 후 나는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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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망각의 과정이라고도 하듯이

이미 알고 있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가 ‘거시기‘ 이고 언어로는 줄 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횡단하는 행위의 술어가 ‘머시기‘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사지선다의 덫에 걸린 진달래꽃>

공장이라고 불렀던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하자면 학교는 ‘교육 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과는 달리 시스템화한 공장 노동 작업 방식에서 가장중요한 것은 공원들이 같은 시간에 작업 라인에 모이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함께 모이는 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여라,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라는 동요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대학교에 이르는 그 단계별 교육과정은 컨베이어 시스템 공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의 의미를 단순화하여 사지선다식으로 풀어가는 한국의 교육 풍토에 분노를 느끼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 대학과 내 강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책은 자연적 사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호記號의 총체, 그 결정체인 까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은 그내용물과 관계없이 항상 ‘자연주의‘에 대한 ‘문화주의‘의 축으로 기울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달은 하나지만 천의 강물 위에 똑같이 비칩니다. 부처님도하나지만 달처럼 만물 속에 똑같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것이바로 ‘월인천강月印千江‘ 이요, 불서를 인쇄하여 공양하는 정신입니다.

"종이의 발상은 지지자의 뜻이요, 지성의 길이에요. 지지자는 기록을 위한 종이, 즉 종이의 기록성을 봅니다."

"얼굴을 가릴 수도 있고, 말 수도 있고, 멜 수도 있는 보자기를 보세요. 자유자재예요. 뭐든지 래핑할 수 있어요. 종이에 자유롭게 인쇄할 수 있게되면서 호지자는 뭐든지 할 수 있게되었어요. 접고 찢고 별짓 다 할 수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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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가령 ‘도서관 가서 책 읽을까?‘라는 말은 ‘모텔에 가서콘돔을 끼고 성행위를 즐기자‘라는 뜻이었다.

책갈피라고 하자. 앞으로 그거 말할 땐 책갈피라고 해.

- 이건 좀… 
- 별로야?
- 너무 노골적이잖아.
- 난 노골적이야.

 - 점으로 이름을 지어서 그런가, 점점 점이 되어가는 것 같아.

베트남산 오징어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면 아, 이런 게 사는 거구나, 이 밥을 위해, 이 식탁을 위해, 더 참고 견딜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배부르고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눈점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눈과 함께 먹는 게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 편

운명의 날은 이른봄의 폭우와 함께 찾아왔다. 한창 작물이 자라날 초봄에 연일 퍼부은 비로 채소와 과일 값이 치솟았다. 아무리 비싸도 삼천원을 넘지 않던 대파 한 단 값이 육천칠백원까지오르고, 조류독감으로 인한 산란계 살처분의 여파로 한 판에 사천원 하던 달걀값이 두 배로 뛰었다. 마트와 E마트, H마트의 온라인 페이지를 띄워놓고 동네 슈퍼 전단지까지 훑으며 장을 보던눈점은 한숨을 쉬었다.

-집에 대파 키울 데가 어디 있어. 텃밭에서 키워야 하는 게아냐?
- 생수통 잘라서 물만 넣고 키워도 된대.

- 이름을 붙여서 그런가봐. 그냥 파라고 할 걸 그랬어.
눈점은 도저히 파파야를 자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디에도 쓰일 수 없어야 진정으로 아름답다. 쓸모 있는 모든 것은 욕망의 표현이라 추하며, 인간의 욕망은 그 비루하고 나약한 본성처럼 비열하고 역겹다.

함께 사는 커플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고, 다 먹은 다음 나란히 기대어 앉아 내일은뭐 먹을까?‘ 메뉴를 궁리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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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시선 472
최지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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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요즘 청년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나의 청년시절을 떠오르면서 청춘은 다 어떤 계기를 잘 버텨야만 한다는 나만의 생각정리도 해보게 하는 시집이다....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보다 청춘이라 이겨낼 수 있다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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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명분 아래 뭔가를 시도

일견, 문제는 우리다. 단순해 보이는 이 명제는 실상 꽤 어지럽다. 문제‘는 답을 요구하는 물음‘이기도 하지만, 어떤 행동이나상태 등에 대한 가치판단의 결과로서 ‘잘못‘을 뜻할 수도 있다. 한

동기와 의도 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한다는 이른바 ‘묻지마 폭력‘ 이 기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민 등과 같은 약자를 겨냥하며 일어나는 ‘혐오 범죄‘와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자일 경우 선량함과 무결함과 같은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에 합치하지 않는 것은 치명적이다. 여성의 옷차림과 태도를 지적하며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교묘히 돌린 후 사생활까지 함부로 파헤치고 나면 사태는이윽고 피해자의 행실을 기준으로 필연성을 갖추게 된다. 나가폭행 당시의 상황을 복기할 때 몇몇 구체적 사안들을 발설하는일을 망설이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폭력의 경험을 기존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함을 느꼈을대 터져나온 ‘나‘의 비명은 오래된 것이었다. 

그저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여자를 무참하게 폭행하는 포악한 범죄자뿐 아니라 맞고 있는 사람을 멀찍이서 구경하는 목격자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동선을 수색하는 경찰, 그저 조심할 것을 강조하는 애인, 피해자의 사생활을 들추고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는익명의 사람들까지

현관 앞에서부터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가 아이들과 뒤섞여

알아볼 때마다 조금씩 바뀌고, 한 번 들어서는 제대로 이해할수도 없는 아동수당과 자립수당, 주거급여와 행복주택, 뉴딜 일자리와 공공 근로 같은 여러 정책의 세부를 두루 알고 있는 선우부부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선우와 이야기를 나눌 때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욕망조차 하나의 자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 희망을 가져라. 그렇게 말할 때의 확고하고 단호한 표정이 아니라,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어쨌든 한 걸음을 내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희망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일단 가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의변화, 그 변화가 불러오는 찰나의 활력과 활기를 붙잡고 싶었던것 같다.

나는 이 땅에서 여유를 허가받지 못한다.

그래서 종족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
지독해져야 한다.

온 세상이 어두워진 까닭.
까치집.
까치는 흉조였다.

대화는 함바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시작된다

"헛소리 좀 작작."
사이비지, 사이비. 사이비 종교의 계략입니다."
"세상 말세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언론 플레이를 멈춰라!"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조류 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변이 바이러스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올 것이다. 나는 변이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감염이 되면 새로 변해버린다는 괴담은 믿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 괴담의 출처였다.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이렇게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데,
다들 집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데,
여전히 아파트는 계속 지어지고,
집값은 계속 오르고,
거기에 누군가 산다는 게.

새집,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같은.
이성으로 가득찬 
인간 머리통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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