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스무 번 넘게 이사를 다녔다.
경의선숲길은 용산구 원효로부터 마포구 연남동까지 6.3킬로미터에 이르는 기다란 공원이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렇게 긴 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원래 철길이었기 때문이다.
경의선숲길의 시작점에는 현재 용산 e편한세상 아파트가 있다. 나는 이 아파트의 정문을 바라보면 그 아래 있던 자그마한텐트가 생각난다. 텐트의 주인은 강정희, 1988년부터 20년 넘게 용산구 신계동과 도원동을 오가며 살았던 그는 2004년 수립된 ‘신계 구역 주택 재개발정비사업‘ (이하 신계동 정비 사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어느 순간 용역 깡패들을 몇십 명씩 풀어서 밤낮으로 활보하고 다니게 하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빨간 락카로 막 험악한 말을 써놓고, 집이 비면 바로 부숴 버리고…. 한 집이 견디다 못해 떠나면서 그때부터 공포가 시작됐어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지."
사실 상가 세입자들은 칼끝을 잡고 있는 셈이에요. 칼자루는건설 시행사나 건설 투기꾼들이 잡고 있는 거고요.
홍대 인근의 건물값이 수직 상승하고, 세입자들의 권리금을 떼어먹으려는 건물주와 기획 부동산이 횡행할 때 세입자들은 "혹시 제대 앞둔 건물주 아들 없냐"는 안부를 나누곤 했다.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쫓을 때 가장 흔히 들이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녀가 그곳에 가게를 연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되면 안되는대로, 잘되면 잘되는대로 걱정이 많다. 장사가 너무 잘되면 월세를 올려 달라 하거나 이런 갖가지 빌미로 쫓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경의선슾길을 통해 보았듯이 공원과 역사 등은 공공자금을 투입해 개발된 공간임에도 그 가치 상승에 따른 이득은 땅과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이독점한다. 이를 버티지 못한 세입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빈집과 인형뽑기방만 남아 동네가황폐해져도 건물값은 계속 오른다. 이익은 소수의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그것을 위해 대다수세입자들의 삶은 희생되고 불평등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남는다.
용산구청에서는 "이주 대책에 대한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기 때문에 구청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하고, 조합에서는 법대로 하겠다면서 "감정평가를 했으므로 그 자료를 근거로 명도 소송을 해서 세입자들을 강제로쫓아내겠다" 했어요.
과연 세상은 변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바꾸지 않으면서 변화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닐것이다. 장례식장을 채웠던 의원들이 부동산세 인하에 찬성표를 던지고 공공임대주택 설립을 반대하는 오늘은 더욱 그렇다. 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지금도 단단하다.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반지하 방과 돼지슈퍼가 위치한 아현동은 서로의 대문을 사이에 둔 좁고 가파른 골목에서열무를 다듬고 수다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다정한 동네였다.
용산 참사 이후 서울시는 1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3개월간은 강제 철거를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최소한 동절기에 사람을 내쫓는 후안무치만은 거두자는 취지였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11월 30일의 폭력을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후암동,대방동,흑석동·신풍동의 판잣집들은 영등포구 목동 안양천변으로, 한남동의 판잣집 주민들은 성북구 상계동으로 각각 옮겨 갔다. 목동의 경우 한 가구당 평씩을 분배받았다. 철거민들은 움막을 짓고 엄동을 지낼 셈들이다. 그것보다도 생활의 본거지이던 도심을 벗어났기 때문에 막연하다. 해진 생계는 이들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
1980년대적인 철거민 운동의 전형을 만들어 낸 사례다. 주민들이 초기에는 막연히 ‘적정 보상‘을 요구했으나, 반대운동이 지속되어 가면서 아파트 입주권이나 대토, 임대 아파트 등 그 요구가 구체화, 다양화되었다. 또목동에서는 최초로 세입자 대책 문제가 등장했으며 세입자에게도 보상하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김수현외, 『철거민이 본 철거 : 서울시 철거민 운동, 한국도
양동은 현재 남대문로5가 542-626번지 일대를 말하며, 도동은 현재 남대문로5가와 동자동과 후암동에걸쳐 있는 곳을 말한다.
(잠실포차는 사실 고립무원이잖아. 밖에서 입구를 막아 버리면 딱 갇히게 되는 거야. 그러면 안에서 어떻게 되겠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야 되니까 폐타이어라도 (불을)지르고 해야 밖에서 보일 거 아냐. 우리도 처음에는 몰랐어. 폐타이어 딱 한 장만 질렀는데 낮인데도 시커먼 연기가 확오르니까 이런 게 위력이구나 싶었지.
송파구청하고 롯데하고 합동으로 단속을 해서 송파 전역에전지 작업을 했던 가로수를 전부 잠실역에 가져와서 우리(포장마차) 입구를 막은 거야. 근데 손님들이 밖에서 그걸 다치우고 들어오고 ・・・ 대단한 광경이었지. 우리가 고립된 싸움을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저 자식들이요, 지금 우리를 바보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생계를 뺏긴 주민이 여기서 외치는 말을 바보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놈들과 상대할 수 있습니까! 이대로 협상 진행 못합니다! 모두 서초구청으로 쳐들어갑시다!
온전한 내 공간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우리는 대부분집한 채 사는 것을 평생숙제로 안고 산다. 한국 사회에서 집의규칙은 확실하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사는 것이 좋다. 대출금을갚다 보면 집값은 반드시 오를 것이다. 새로 산 집에 전세 세입자를 들이고, 그렇게 얻은 전세금으로 또 다른 집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채 한 채 늘려 가는 게 순리다. 청계천 힐스테이트 분양 사무소 상담 직원의 말대로, 사지 않을 이유가없다. 서울의 집은 특히 그렇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도 작은 골목과 상점들, 그리고 거기 살던사람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 시선이 책으로 나왔다. 앞만 보고달려가기보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담았던 기억들, 사람들과 눈을마주치며 들었던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과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쌓아 올린 이 기록을 통해 이 도시에서 당신의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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