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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사실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제목과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하고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존재를 알기 직전 신문에서 노인복지 특히 (정말 신기하게도)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모시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묘하게 시기가 겹치면서 관심은 더욱 크게 동하였고 결국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다쿠로쇼 요리아이(다쿠로쇼는 자택처럼 편안한 노인 요양시설, 요리아이는 모임, 집회, 회합이라는 뜻)’라는 1992년 시작된 노인 요양 ‘공간’에 대해 프리랜서 편집자인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책에서도 공간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고 ‘시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비록 나 혼자뿐일지라도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아져서 공간이라고 써 보았다.
이곳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모무라’라는 한 여성이 ‘오바 노부요’라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여성은 지금의 ‘요리아이’가 있기까지 20여 년 동안 정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한 ‘3인방’ 중 한 명이다. 3인방은 그녀 외에도 ‘무라세’라는, 간병인 겸 활동가라고 해야 할까, 남자와 책의 저자를 모두 합하여 일컫는 내가 부여한 호칭이다.
다시 얘기 할머니 이야기로 돌아오면, 오바 할머니는 비록 치매라는 큰 시련에 직면하지만, 치매가 그런 것(큰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들뿐이라는 듯, 의연하고 강인하게 끝까지 살았던 분이다.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 할머니의 그 ‘객사도 불사할 각오’에 크게 감명 받은 시모무라 씨는 할머니의 생활을 지원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이 후 ‘덴쇼지’라는 절의 다실(찻방)에서 ‘데이 서비스’라는 일본의 노인복지 대책사업의 형태로 ‘요리아이’는 출발하게 된다. 잠시 데이 서비스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는 ‘재가’노인 복지정책으로써 질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 혹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정신과 육체가 연약해진 고령의 노인들에 대한 서비스를 노인복지시설이 아닌 노인들이 실제 거주하는 주택을 장소로 삼아 제공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렇게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어 온 수많은 시련과 사건들을 저자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풀어놓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어차피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고 저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관심도 열정도 전혀 없는 단순한 방관자였지만, 저자의 이런저런 이유로 ‘요리아이’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지게 되면서 결국 지금의 ‘요리아이’가 있기까지의 많은 일을 한 헌신적인 인물, 그리고 수 주 동안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가진 ‘요리아이’의 잡지 <요레요레(힘이 없는 상태로 비틀비틀한다는 뜻)>의 유일무이한 편집자이자 집필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관계자가 된다.
이렇게 자신의 상황이 변해 감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내 맘대로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말투도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심한 제 3의 인물에서 돌보미로 편집자로 기록담당자로 점점 깊게 ‘요리아이’와 관계를 맺어갈수록 열변을 토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저자는 또 초반부터 틈나는 대로 스스로를 아주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처럼 이야기하지만, ‘요리아이’에서 그의 역할이 점점 커질수록 매우 유능하고 가슴이 뜨거운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회 현상적으로 일본을 뒤따르고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라 순간순간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는 저자가 일본정부를 비판했던 것처럼 문제가 닥쳐오고 있는걸 알면서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들을 내놓고 많은 국가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마치고자 한다. 특별 노인 요양시설을 세우기로 마음먹고 부족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영업을 시작한 카페(‘요리아이의 숲’)에서 주변 지역 주민들과 치매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유롭게 어울리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다. 물론 ‘요리아이’의 경우 여러 사람들의 오랜 인내와 노력의 결과로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리아이’에서의 사람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무조건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배척하거나 심지어 무시하고 공격하는 행동은 그만두고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그러한 모습이 결코 특별하지 않은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