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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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혁명 중이다. 바다 건너 홍콩. 내게 그곳은 어렸을 때 좋아한 코미디 영화의 시리즈 제목에 등장했고(영구와 홍콩 할매 귀신, 좀 무서웠다) 쇼핑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쇼핑의 천국인데 학생과 시민한테 그렇게 무자비하게 굴어도 되나) 이었다. 장담할 순 없지만 홍콩에 갈 일은 없을 듯한데 요즘의 나는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주 목이 멘다. 혁명 때문이다. 2014년에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여기에서는 배가 가라앉았고 그곳에서는 우산을 들어 혁명을 시작했, 지만 실패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실패의 기억을 2014년에 가지고 있었다.

2016년 겨울,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구질구질 해지니 국가적인 사건만 말하겠다. 남을 해치기는커녕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겨우 밝히는 미약한 세기의 불빛을 가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혁명이었다. 2014년의 실패는 2016년의 희망을 불러왔다. 지금 홍콩에서는 송환법으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노래가 있었다. 우리의 상처와 고난, 피 흘림, 눈물, 한숨, 거대한 슬픔을 이기기 위한 노래가. 문학박사 출신의 사회운동가 검검은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1절은 광둥어로 2절은 한국어로 불렀다. 아시아에서도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나라들 그러니까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홍콩 등 1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는 노래는 한국의 노래였다. 누구는 부르지 말자고 했던 노래인데 타국에서는 번역까지 해서 시위 현장에서 부르고 있었다. 『디디의 우산』에서 나오는 혁명 때문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일찍 죽어버린 dd와 그를 잊지 못하는 d 때문에 마음이 마구 헝클어졌다. 2014년에 시작한 홍콩의 우산 혁명이 떠오르고(『디디의 우산』이라는 제목 때문에, 경찰이 쏘는 최루액을 피하고 어떤 이는 경찰에게 씌워주기까지 하는 우산 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었던 촛불 혁명이 생각나는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두 편의 연작소설을 담고 있다. 어떤 소설은 쓰고 나면 끝이라는 말보다는 시작을 붙이고 싶게 만드는가 보다. 황정은은 자신이 썼던 소설을 부셔서 다른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혁명이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황정은의 문장은 난해하지 않다.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끝까지 독자를 납득 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문장에 녹아 있다. 소설가 자신이 문장을 쓰면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다는 소설을 쓰고 싶은 화자의 이야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황정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어떤 때는 마음이 좋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시간을 겪는다. 어떻게 사람들은 견딜까를 궁금해하는 것도 지겨워 소설을 읽는다.

책을 숨겨 두었다. 책이 쌓여 있는 꼴을 이제는 보지 못해서. 문을 열고 책을 꺼내든다.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고 첫 장을 넘긴다. 작가의 이력도 한 번 훑어본다. 빨간색 표지에 우산 하나가 접혀 있고 한글로 쓰인 황정은과 그 밑에 한자로 덧붙인 이름 밖에는 없는 단순한 약력. 『디디의 우산』을 읽으며 가라앉은 마음을 더 가라앉혔다. 내게는 이제 기쁨도 환희도 환호도 없다는 듯이. 음악 한 곡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d. 매일 죽음을 이기고 돌아오는 서수경과 나. 두 편의 이야기를 나눠 읽으며 나를 스치고 떠나고 다가올 감정을 생각한다. 어느 문장을 읽으면서는 계속 눈을 고정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황정은의 소설.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어도 나는 아직 소리로 꽉 찬 온기로 가득한 세계에 살아남았으니까. 황정은은 죽음과 혁명과 고통의 기억을 늘어놓고 있다. 혁명은 실패에서 온다,는 가식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법안 보류가 아닌 법안 폐기를 바라고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국민이 주인인데. 소수의 나라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거쳐 왔으니까. 분열과 무시와 냉대, 부패, 비리, 검은 세력에 얼룩진 시간을 살아왔고 어쩌면 혁명의 성공이라는 기쁨에 취해 그것들이 사라졌다고 믿으며 부동산과 갭투자와 시세 차익과 아파트 피를 붙여 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그들의 실패를 미화하고 싶지 않다.

『디디의 우산』의 빨간색 표지를 넘기면 검은 사인펜으로 적인 황정은의 사인이 있다. 인쇄를 한 건지 직접 한 권 한 권 사인을 한 건지 궁금해 소설 보다 더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건강하시기를. 정은. 2018. 12' 인쇄인지 직접 쓴 건지 모를 한 줄의 문장을 읽다가 어느새 출근이라는 혁명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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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전력 OL 살인사건 걸작 논픽션 14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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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19일 허름한 맨션에서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 되었다. 그녀는 3월 8일 밤 이후를 기점으로 사라졌었다. 발견 당시 그녀가 있던 곳은 빈 집이었고 평소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의 끈은 끊어져 있었다. 게이오 대학교 출신의 도쿄 전력의 간부였던 그녀가 왜 그곳에 죽어 있었던 것일까. 사건 이후에 하나씩 밝혀지는 실체는 해결 보다는 미스터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발견된 장소는 미루야마초의 러브호텔 골목과 인접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낮에는 도쿄전력에서 엘리트의 모습으로 밤에는 미루야마초 거리를 중심으로 매춘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일본 사회는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왜?라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한 논픽션 작가의 집요한 탐색의 기록이 담긴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수사 초기 사항부터 재판의 과정까지를 다룬다. 명문 집안의 출신인 와타나베 야스코라는 여성의 사건을 쫓는 사노 신이치의 기록을 따라가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는 황색 언론의 잣대가 아닌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본 최대의 전기와 가스 공급 업체인 도쿄전력의 임원으로 경제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누가 봐도 선망의 대상인 야스코는 밤이 되면 다른 얼굴의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호스티스로 일했고 나이가 들자 거리로 나가 매춘을 시작한 것이다. 평소 꼼꼼한 성격대로 그녀는 수첩에 상대 손님의 수와 가격을 적었는데 죽기 전 최근에 적힌 금액은 2000엔에 불과했다. 사노 신이치는 범인으로 몰린 네팔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네팔에 날아가 증인 정취를 하는 등 이 사건에 3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는다.

억울하게 타향에서 감옥에 갇힌 이의 무죄 증명과 맞물려 그는 와타나베 야스코의 내면세계를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고 한다. 야스코의 아버지 역시 도쿄전력에서 간부로 일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존경했고 그처럼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의 정신을 이루는 한 부분을 파괴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선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그녀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려는 수단으로 매춘이라는 기괴한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실제 사건을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때때로 와타나베 야스코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도 숨기지 않으면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한다. 돈과 성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응축된 환락의 거리에서 한 여자가 죽었다. 그녀는 3월 8일에 죽었으며 10일이 지난 시점에 발견되었다. 그동안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모른 채 살아간 것이다. 언론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녀의 사생활을 캐며 자극적이고 추측성 기사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흥미 위주로 다가가려 했다.

일본 경찰은 증거 보다는 용의자를 끼워 맞추어 사건을 처리하려는 안일함을 보였다. 그 결과 한 사람의 꿈과 희망이 좌절되어 타국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갇혀 살아야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연봉이 꽤 높았을 텐데도 야스코는 돈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어묵탕을 사서 어묵은 먼저 먹고 국물은 나중에 먹으려고 봉지에 가지고 다녔다. 공병이 있으면 주워서 돈으로 바꿨다.

자기파괴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생전의 모습에서 사노 신이치는 그녀가 가진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발견한다. 혼자 외롭게 죽어간 야스코의 그날 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왜 그녀는 이중 생활을 하며 하루를 버티듯 살아갈 수 밖에 없었는가.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을 읽으며 와타나베 야스코의 마음을 각자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온갖 정신과적인 용어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어쩌면 야스코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타인이 보기에 야스코의 이중 생활은 기괴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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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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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지하철 안에 펭귄이 돌아다닌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뚱뚱한 몸에 짧은 팔을 펄럭거리고 있는데. 앗, 귀엽다. 가서 만져보면 안 될까.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곤에 지친 사람들의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진짜 펭귄이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고 환승이라는 어려운 일도 척척해낸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는 펭귄 철도라는 이름이 붙인 그곳에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물건을 잃어버려 임해 공업 단지 끝에 있는 야마토기타 여객 철도 나미하마선이라는 이름도 긴 유실물 센터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빨간 머리로 염색한 잘생긴 청년과 믿기 힘들겠지만 지하철 안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펭귄이 있다. 모리야스 쇼헤이라는 역무원은 펭귄에게 먹이를 주며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의 유골을 잃어버린 여자,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거짓말을 자주 하는 주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유실물 보관소로 모인다. 네 편의 이야기는 따로인 듯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뭉친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왔다가 마음까지도 치유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바다가 보이는 분실물 센터로 가고 싶어진다.

물건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쇼헤이의 행동에서 일상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찾아간다. 펭귄의 뚱뚱하고 귀여운 날갯짓에 쉽게 반하며 귀엽다고 말해주는 그들은 무엇을 찾고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걸까. 쇼헤이는 물건을 찾으러 온 그들에게 가지고 갈 것인지 이곳에 맡아달라고 할 것인지 묻는다. 물건을ㄹ 찾아가기도 하고 내일의 인연을 위해 맡기기도 한다. 웬만해선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지갑과 휴대전화와 책은 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무언갈 잃어버리고 나면 드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나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주 잃어버린다. 일상에 필요한 감각. 감정의 기복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힘. 상황에 맞는 센스 있는 말 하기.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 반복되는 하루이기에 감사한 마음 갖는 것. 나의 세계에 필요한 마음을 잃어버리면 어디로 가야 할까. 눈앞에 펭귄이 나타난다면 펭귄을 따라가도 좋다. 능숙하게 환승해서 종점역으로 가는 펭귄에게 박수를 보내며 가보는 것이다. 그곳에는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모든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펭귄이 사는 초대형 냉동고가 있다. 무엇이든 찾아줄 것 같은 빨간 머리 역무원도.

잃어버린 물건과 마음을 가지고 나오면 바다가 보이는 공원과 벚꽃 나무가 심어진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갈등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갈등은 일어날 뿐이다. 우리의 삶은 소설의 구성 방식 같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는 걱정뿐인 나의 하루가 걱정 없는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 펭귄을 만나도 당황하지 말고 그로 인해 물건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라. 바다 여행을 하는 셈 치고 공업 단지 끝에 있는 그곳으로 가보시길. 다정한 사람과 귀여운 펭귄을 만나는 행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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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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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포기했다. 과장된 웃음과 크게 떠들며 대화를 하는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었다. 타고난 유머감각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애들은 내 꾸며낸 이야기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거짓말쟁이라는 소문이 안 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수다쟁이 역할에서 빠져나왔다. 중심에서 주변부로 겉돌면서 좋게 말해서 침울한 아이가 된 것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못생기고 눈치 없고 인기 없는 흔한 캐릭터로 교실의 정물이 되었다. 그런 애들이 그렇듯 책으로 나약한 정신세계를 의탁했다.

아닌가. 좀 더 활발하고 의욕적인 취미 생활을 가지게 되는가. 모르겠다. 돈과 의지할 어른이 없는 내가 도피처로 삼을만한 것은 책이었다. 소설가 김영하가 방송에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으면 그 안에는 나보다 더 심한 아이들이 나온다고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 것이라고. 맞다. 내가 펼쳐든 이야기 세계에서 아이들은 자주 가출을 하고 학대를 받고 그럼에도 자아의 넓이를 확장했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보다는 환경을 극복하며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

꾸깃꾸깃해진 정신을 허구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할 수 있었다. 기초적인 사회화 기관은 가정이라고 하지만 내겐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내게 있어 낡고 허름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들이 모인 헌책방이 사회화 기관이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나는 불안과 강박증, 결벽증, 조울증, 피해 망상의 크기를 작게 만들거나 감출 수 있었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 『아일린』의 주인공 아일린처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책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독서라는 돈 안 들고 혼자만 할 수 있는 생활에 몰입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일린』을 읽으며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수 문제와 방정식을 풀 수는 없어도 과거 분사와 현재 분사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없어도 나는 타인의 감정에 동요하고 연민할 수 있는 심약한 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 있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을 과거라는 형식에 묶어 두고 싶어 X 빌이라고 지칭하는 아일린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애틋해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봐야 했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야 했던 아일린. 그녀가 살아온 시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아일린 도망쳐, 힘없는 응원을 했다.

스물네 살의 젊은 아가씨 아일린이 상처와 고통, 소외 속에서 살아야 했던 건 그녀 자신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냉혹한 환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 아버지, 언니 그리고 그녀 아일린. 네 가족은 화목과는 거리가 멀고 연출된 평화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 어머니가 내온 음식이란 인스턴트뿐이었고 그걸 먹으면서도 싸우는 부모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영악한 언니 조우니는 아일린과는 단호하게 선을 그은 채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내쳐진 아일린은 데스마스크로 감정을 감춘 채 살아간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핑계로 아일린을 불러들인 아버지는 아내가 죽고 나서도 그녀를 옆에 두고 학대한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주선으로 소년 교도소에서 사무 업무를 보는 아일린. 그곳에서도 그녀는 냉대를 감당해야 했다. 함께 일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인 동료들은 아일린에 대해 대체로 무심했다. 아일린은 랜디라는 남자를 맘에 들어 하는데 그는 아일린의 이름조차도 모른다. 술에 취해 아일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아버지를 피해 랜디의 집 앞에 가서 상상 연애를 펼치고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는 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는 첫 소설 『아일린』을 통해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온갖 폭력을 보여줌으로써 그럼에도 인간은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아일린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미모, 근사한 남자와의 데이트, 다정한 부모, 패션 센스가 아니었다. 업무가 끝나고 만나자는 약속을 건네는 한 명의 친구였다. 아일린이라고 먼저 이름을 불러주고 시간이 괜찮냐고 묻고 이따 보자는 일상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것을 바란다는 것을 드러내면 쉽게 상처받을까 봐 아일린은 X 빌에 살 때까지 어둡고 습한 얼굴을 유지해야 했다. 나는 아일린에게서 지나온 시절의 한 얼굴과 만난다. 호의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친절함에 간절히 굶주린 얼굴을. 내내 바랐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아일린』은 노인이 된 한 인간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지나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정이 과잉되기도 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투입해 긴장감을 불러와 읽는 재미까지도 선사한다. 과거는 참혹이었지만 그때를 회상할 수 있는 오늘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할 수 있다. 오테사 모시페그는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인생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이 담긴 문장으로 소설 『아일린』을 끌고 나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치지 않는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패기로 소설을 완성한다. 약간의 반전으로 독자의 심장을 쿵쾅거리게도 만든다.

나는 나였고 아일린은 아일린이었다. 각자의 인생이 한 권의 책에서 동일 선상에 놓였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시대와 언어,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물넷의 아일린에게 내내 했던 말, 도망쳐는 내게 해주고 싶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도망쳐야 했지만 버티기로 했던 나에게 위로처럼 찾아온 『아일린』의 이야기를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나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만큼 어둡지도 음울하지도 않다. 다만 그러한 감정에 대해 유난히 잘 알고 있을 뿐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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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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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사카에 다녀왔다. 진짜? 아니, 책으로. 마스다 미리의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을 읽음으로써 방구석 여행지 한 군데가 추가되었다. 검색해보니 도쿄와 더불어 일본의 2대 교통 중심지란다.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고향 오사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그리운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다. 그림과 에세이가 반반씩 섞여 있다. 책이 오자마자 바로 읽어버렸다. 스물여섯에 꿈을 품고 마스다 미리는 고향인 오사카를 떠나 도쿄로 갔다. 사투리 대신 표준어를 쓰면서 도쿄 생활에 적응해 갔다.

낯선 곳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기억과 향기, 사람들의 정겨운 말투였으리라. 특별하게 다를 것이 없어도 고향은 고향. 엄마가 즐겨보는 희극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다코야키 기계가 집에 한 대씩 있는 오사카만의 정취를 불러낸다. 말투와 생활 습관의 차이를 아기자기하게 책에 담아냈다.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는 도쿄에서 산 시간이 많은 사람의 눈으로 고향의 풍경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가위바위보를 부르는 명칭과 편 가를 때 부르는 노래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느낀 문화 충격까지, 소소한 발견의 기쁨이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에 들어 있다.

편안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쓰인 글은 오사카 사람들의 푸근함이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도 전해지는 것이다. 상점의 주인들은 환대로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에게도 다정한 말이 일상이 되는 곳. 이상하고 다르다는 시선이 아닌 고향 오사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마스다 미리는 기쁘게 내어 놓는다. 수도로 올라가면 받게 되는 낯선 시선 중에 하나는 말이다. 억양과 쓰는 어휘가 조금씩 다른 것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주눅이 들어 어색한 표준어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사투리부터 고친다. 사투리는 병이 아닌데 고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고향의 말을 기억에서 잃어간다.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은 오사카에 살았던 시절에 쓴 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요즘은 이런 말을 안 쓰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오사카 말의 높낮이를 음계로 표현해 보기도 한다. 음식의 맛이 그저 그래도 점원이 붙임성 있게 굴면 일단 합격이라는 오사카만의 기준도 정답기만 하다. 방송을 보다 살고 있는 지역의 말이 들리면 반갑다. 다른 지역의 말도 나오면 귀를 쫑긋한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사투리로 말하면 현장감이 더해져 실감 나는 것이다.

말투에 대한 기억 하나. 대학 졸업하고 처음 일하던 곳의 사람은 내가 말할 때마다 인상을 썼다.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는 이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떠들어 댔다. 별 걸 다 트집을 잡네 하고 생각하면 괜찮아지는 것이었다. 엄마, 여탕, 오사카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마스다 미리의 바람은 전부 이루어졌다.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국내에 전부 번역되어 있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엄마라는 여자』, 『여탕 이야기』,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인 전부 이응인 제목의 이야기. 쓰고 싶은 걸 쓴다는 건 행복한 내일로 가는 버스 같은 것이라고 도톤보리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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