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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단편 「빗방울처럼」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전세 사기를 당하고 남편을 잃고 안방 천장에 누수까지 생겨 새로 도배를 해야 하는 지수가 받은 질문이었다. 전세 보증금이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이었다. 집주인은 그들이 이사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은 날 고액의 대출을 받고 잠적을 했다.
남은 날들은 어떡해야 할까.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를 포기하고 경매에 참여했다. 빚을 갚기 위해 일을 늘리고 몸이 힘들기에 마음도 지쳐 서로에게 화를 냈다. 모든 걸 잃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지수는 남은 날들을 책임지지 않기로 했다. 천장에 누수가 생겨 얼룩이 진 벽지를 그대로 남기고 갈 수 없기에 도배사를 불렀다.
도배사로 여자가, 외국인이 왔기에 당황했다. 집 안을 살펴보더니 그녀는 지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지수는 그 물음에 답을 하고 싶었다. 그간에 일어난 일들을. 나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고 무너지고 있는지를. 나중에야 깨닫는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그 질문은. 답 또한 듣고 싶었다고.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소설은 집과 관련한 상실과 관계에서 오는 환멸을 다룬다. 매일 편의점에 가던 청년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집을 사야 하는 현실에 처한다. 그 사이 함께 밤을 나눌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숙제와 의무처럼 감당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인데 불행해졌다.
잘못을 찾으라고 하면 열심히 산 것뿐인 인물들이 마주하는 불행을 읽어내야 한다. 노래를 듣다가 우리말로 안녕이라고 그랬다고 했지만 그날 걸려온 전화를 받고 삶은 사나운 얼굴을 한 채권자로 돌변한다. 불행보다는 불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며 계속 나의 시간이 어둡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프고 잃어버리고 자꾸만 불어가는 빚을 갚아나가는 삶이어도.
안녕은 아임 영을 잘못 들은 거였다. 안녕과 나는 어리다의 사이. 지금 가장 어린 상태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으로 불운을 건너가면 어떨까. 집을 치우고 묵은 짐을 버린다. 지수는 남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다짐의 말을 한다. 오늘을 살자.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미지는 힘든 순간마다 할머니가 했던 말을 되뇐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알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들에게 김애란은 오늘의 안녕을 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