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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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을 기억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고 해도 곧 뇌리에서 사라지겠지만. 기억하고 싶었다는 걸 기억할 수만 있더라도 괜찮으니까. 쉬는 날이었는데 잠깐 사무실에 가서 일을 했고(생각해 보니 다 해낸 건 아니었다. 빠뜨린 게 있었다. 이건 2025년 1월 2일의 나에게 맡기자.) 책을 한 권 읽었고(예소연의 『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추천) 씻고 외출까지 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해가 저물자 찬바람이 불었고 커피를 마시면서 카톡 방에 올라온 새해 인사에 답을 했다. 그렇게 다들 잘 지내자고. 서운하고 밉고 힘들었던 일은 2024년을 보내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2025년이 되자고. 올 한 해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걸 나눠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슬픈 사람들을 남겨 둘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팠다. 설거지를 하면서 먹먹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사랑이 있으면 될까.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사랑만 있으면 될까. 서로의 잠바 주머니에 가냘픈 손을 넣어주고 걸으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있었으나 없는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고 오지 않을 미래에 목을 매지 않으며 지금만을 위해 살면 되지 않을까. 정대건의 소설 『급류』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 또한 나를 사랑하는 기적 안에서 말이다. 


여름이면 물놀이 관광객이 몰려드는 도시 진평에서 도담과 해솔은 만난다. 소방관인 아버지 창석에게 수영을 배우는 도담 앞에 물에 빠진 해솔이 나타난다. 그 순간 도담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해솔을 구하러 뛰어든다. 『급류』의 시작인 두 사람 아니 네 사람의 익사 사건은 사랑에 관한 은유이다. 사랑은 이것저것 앞뒤 가릴 것 없이 빠져드는 것. 빠져들어 죽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 


서로를 안고 죽어도 괜찮을 것으로 『급류』는 사랑을 정의한다. 진평강 하류에서 서로를 안은 채 떠오른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윽고 비슷한 장면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네 사람. 도담의 아버지 창석. 해솔의 어머니 미영. 그리고 도담과 해솔. 네 사람은 이상한 형태의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들을 끌고 간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의 사랑은 괜찮고 괜찮아졌으면 한다. 


사랑은 풍덩 혹은 서서히 빠진다. 빠져드는 모습만 다를 뿐 결국 우리는 사랑 안으로 가라앉는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건 무의미하다. 부정하고 빠져나오려 할수록 가라앉을 뿐이다. 애초에 뛰어들지 말지 빠지지 말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랑에 빠진 서로를 안고서 숨을 참고 서서히 떠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면 위로 다다랐을 때 숨을 내쉬고 나온다. 그리고 살아가면 된다. 사랑을 안은 채. 사랑에 빠진 나로. 


도담과 해솔이 가진 사랑의 빛깔에 대해 생각한다. 각자의 상처가 크다고 여기는 그들의 사랑은 어느 날은 회색이었다가 어느 날은 분홍이었다가 수시로 변모한다. 다채로운 빛깔을 나눠 가지면서 그들은 사랑하고 살아간다. 그거면 된다. 아픈 서로였다가 행복한 서로였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각자를 숨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면 된다. 


아주 짧은 사랑 노래


너의 손을 잡고 

너의 등을 토닥이며

걸어가고 싶어


바람이 지나가면

햇살이 내리쬐면

더욱 좋을 거야


우리는 아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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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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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다. 내가 불운한 사람이라는 것을. 술을 마셔도 취하게 마시지 않는 건 과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흔히들 하는 실수. 과거의 불행에 떠들기. 불행 배틀에 참여하기. 어느 순간 아무도 듣지 않는데 나의 고난을 주절주절 이야기해버리는 것. 그런 장면에 나를 넣고 싶지 않아서 취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 내가 슬픈 사람이라는 것을. 슬프지 않은 척 일부러 과장되게 웃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웃음은 자연스러워졌다. 즐거운 사람의 역할을 꽤나 잘 해내고 있다. 웃다 보니 웃겼다. 웃다 보니 웃지 않을 일이란 게 없었다. 아무 말 대잔치에도 가벼운 말장난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 올해의 연기대상은 당연히 나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알게 해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감사를 표한다. 습관적으로 들어간 알라딘에서 2024 올해의 책 1위라고 해서 그렇다면 꼭 읽어야지 하면서 구매한 소설. 딱딱한 하드커버이지만 그 안에 든 부드럽고 섬세하고 슬픈 이야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어서 고맙고 기쁘다.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 석탄상 빌 펄롱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자아내는 슬픔과 경건의 분위기는 독자를 압도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자란 펄롱의 현재는 그럭저럭 삶을 유지할 만한 동력이 되어주는 것들 때문에 괜찮다. 결혼을 했고 자식이 다섯이고 배달 주문이 끊이지 않으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펄롱이다. 


현재를 불안해하지 않으며 안도한 채 살아갈 수 있는데 왜 펄롱은 슬프고 불안할까. 이 행복이 내일도 모레도 유지될 수 있을까. 펄롱은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슬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지고 싶었던 걸 받지 못한 기억.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펄롱의 현재는 그러지 않아도 됨에도 서글프다. 과거를 잊지 못해서?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바보라서?


과거 없이 현재를 살 수는 없다. 오래되어 낡고 슬프고 헤진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겪은 슬픔과 비애와 분노의 조각을 손에 들고서 현재의 불의와 마주해야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이처럼 소중하고 거대한 것들이 숨어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내가 간직하고 소중하게 품어야 할 중요한 가치가 들어 있다. 


과장된 웃음을 짓고 행복을 연기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다. 나는 안다. 내가 행운아이고 기쁜 사람이라는 것을. 소중하고 매일 웃겨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 나를 걱정해 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 잘못된 일에는 화를 내고 옳지 않다는 말을 함께해 준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따뜻한 전등 불빛 아래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게 되어 빌 펄롱의 고뇌의 순간에 곁에 있을 수 있어서 2024년의 마지막이 괜찮고 좋았다. 한 인간이 손을 내미는 용기를 목도할 수 있어서 말이다. 그가 내민 손의 온기는 2025년으로 이어질 것이다. 손을 잡고 오늘에 이어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펄롱이 건네준 외투를 입고 비록 맨발로 걸어가지만 그의 집에 가면 따뜻한 차를 마시고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예감으로 행운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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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금지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4
박상률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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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의 밤에 나는 바보였다. 그 밤에 누군가는 국회에 진입하는 군용차를 맨몸으로 막아서고 월담하는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도왔으며 밤새 추위에 떨며 계엄 해제를 부르짖었는데. 사람들의 사소하고 거친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척했고 이내 피곤해져 쓰러져 잤다. 뉴스도 기사도 보지 못했다. 내가 세상을 외면한 사이에 용기가 있든 없든 깨어 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달려나갔다. 


세상에. 말도 안 돼. 2024년에 계엄령이라니. 계엄의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 시절이 얼마나 무섭고 엄혹했는지 책과 영화, 드라마, 영상에서 추체험을 했다. 서울역에서 대학생들이 회군을 한 다음날 광주에서만이 비폭력 시위가 있었다. 광주를 진압하러 공수부대가 들어왔고 그들은 작전명을 '화려한 휴가'라고 이름 짓고 얼마 전에는 충정 훈련을 했다. 


같은 나라 국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고 대검을 찌르고 총을 발사했다. 앉아쏴 자세. 조준사격. 헬기 사격. 광주는 고립되었고 그 와중에도 강도나 폭행 사건이 없었다. 다친 사람들을 위해 헌혈을 했고 밥을 나누며 고립의 시간을 견뎠다.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 날에도 어린 소년은 집에 가지 않았다. 엄마가 난중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할 때 알겠다고 어여 가라고 한 소년이 거기 아직 있다. 소년은 오고 있는 중이다. 그 밤과 낮의 시간이 다시 찾아오는 것일까.


박상률의 청소년 소설 『통행금지』는 우리의 2024년 12월 3일을 지켜냈던 1980년 5월 18일을 다룬다. 현재가 과거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바꿔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그렇다고 단박에 말할 수 있었던 건 1980년 5월의 광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광주를 혼자 두었다. 광주를 오해했다. 광주를 감췄다. 문학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외친다. 광주를 환한 빛으로 꽃 핀 쪽으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통행금지』는 광주 외곽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광민이네 가족의 봄을 그린다. 쥐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진돗개 찐돌이와 광민이네 가족의 봄의 이야기. 창고에 쌓인 곡식을 쥐로부터 지키기 위한 찐돌이의 아침마다의 사투를 시작으로 소박하지만 화목한 광민이네 가족은 1980년 5월의 봄에도 그렇게 내내 살수 있을 줄 알았다. 광민이는 중학생이고 농구공을 갖고 싶어 한다. 아버지는 광민이의 그런 마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딸기를 수확한다. 


늦은 봄에 귀하게 나온 딸기는 시장에서 다 팔리고 아버지는 광민이를 위해 농구공을 사서 돌아간다. 광민이는 아버지와 농구공을 반가워하고 찐돌이와 농구를 한다. 딸기가 짓무르기 전에 따서 서둘러 팔아야 한다. 아버지는 광주 시내에서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그저 봄이니까 잠깐 시끄럽겠지 하면서 딸기를 팔러 광주로 들어간다. 그 밤 광주 밖으로는 모든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다시 광주 시내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스포일러이기에 『통행금지』를 읽어갈수록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아버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총을 쏜 사람들은 있는데 총을 쏘라고 지시한 자는 없다니.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전시 상황도 아닌데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해놓고 뻔뻔하게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다니. 


세상이 너무 어두워 집에서 가장 밝은 걸 들고나왔다는 말에 울컥했다. 어려운 시절에 우리는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는 민족이므로 깃발에 적힌 재미있는 문구와 함께 1980년 5월 광주의 어둠과 빛으로 지금을 이겨낸다. 문학은 그래서 힘이 있다. 『통행금지』는 그래서 소중한 빛이다. 걱정은 조금만 하고 검소하게 살아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 이제는 산자가 산자를 위해 그 밤에 달려 나갔다. 두려움 없이 차를 막아 서고 '전국누워있기연합-"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서 일어나야겠냐"'라는 구호를 적어 깃발을 만들어 집회에 참석했다. 유머가 세상을 구한다. 귀여움과 다정함 더해서. 그 어떤 시각에도 우리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광민이 아버지가 농사지은 딸기를 사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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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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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크게 아팠을 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에야 차라리. 단순 감기 몸살인 줄 알았는데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감기약만 먹고 버틴 내가 바보 같았습니다. 그렇게 크게 아픈 적이 없었기에 나의 몸 상태에 무지했습니다. 고열이 나야 하는 게 맞는데 감기약을 많이 먹어 열은 나지 않고 통증만 심했습니다. 의사도 의아해하면서 어떻게 참았는지 내처 물었습니다.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주사와 항생제를 번갈아 맞으며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인실의 밤은 불편했습니다. 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할 만큼 조용했고 어떤 이는 코를 골면서도 잘 잤습니다. 그 밤에 나는 죽은 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죽음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릅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아픈 소년 스코르판이 자신의 형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칼이라는 이름이 있는 데도 형 요나탄은 자신의 동생을 '딱딱하게 구운 과자'라는 뜻의 스코르판으로 부릅니다. 그만큼 요나탄은 칼을 귀여워해하지요. 칼은 아파서 매일 부엌의 낡은 침대 의자에 누워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도 밖으로도 나가지 못한 채로요. 다정한 형 요나탄은 그런 동생을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죽음이 두려운 칼에게 요나탄은 죽으면 땅속에 묻히는 게 아닌 이 우주 어딘가에 있는 낭기열라로 떠나게 된다고 말해줍니다. 그곳에 가면 모닥불을 피우고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살수 있다고 칼을 달래줍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시작하자마자 죽음에 대해 들려줍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 다들 한 번씩은 아픈 적이 있었지요.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방에 누워서 앓았던 적이요. 그때 병원에 가도 특별한 병명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지요. 


지금도 그렇게 아팠지만 어른이 되었기에 정확한 병명이 있고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여전합니다. 대체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가 있는 걸까. 고통 속에서 벗어났으니 그걸로 만족한 걸까. 아니야. 지구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아팠으니 다른 세계로 가서 행복하게 지내면 어떨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그런 바람을 실현해 주는 책입니다. 


아파서 내내 누워 있는 동생에게 형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잊게 해줍니다. 우주 어딘가에 있는 낭기열라로 가서 만나자고.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왜 이제야 읽게 된 것일까요. 건강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는 제게 낭기열라라든지 낭길리마, 텡일, 소피아 아주머니, 마티아스 할아버지 그리고 칼과 요나탄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죽음의 악몽을 꾸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특별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형제애로 가득한 이야기이면서 죽음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계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모험은 아이도 어른에게도 필요합니다. 상실을 경험한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항상 곁에 있었기에 고마움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커다란 공백이 생겨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채울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세계관이라면 그들은 우리만 남겨둔 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낭기열라라는 우주 어딘가의 평화롭고 고요한 그러나 악당이 있는 그곳에서 다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들도 나도 언젠가 낭기열라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요. 죽으면 끝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사자왕 형제의 모험』입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웠던 지구에서의 삶은 놓아두고 모험과 재미와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낭기열라에서 만나요. 낭기열라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가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잠시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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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3 - 언제나 그 자리에 오늘의 인생 3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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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는 사 먹지 않을 딸기 두 개(두 다라이? 두 대야?)를 사주었다. 커피도 두 번씩이나 그리고 아이스크림케이크까지. 오래 만나지 않았고 당분간은 만날 기약이 없으므로. 그런 인생. 나의 먹거리에는 돈을 아끼면서 누군가에게는 호기롭게 사주는 어느 하루. 대신 나는 사과를 샀다지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 페이지에 한 컷의 그림과 문장이 있는 동화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름을 알고 싶어』)


시간을 되돌려 어제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누워서 마스다 미리의 신작 만화 『오늘의 인생 3』을 읽었다. 책을 펼치니 귀여운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책이 잘못 온 건가. 나한테만 준 건가. 착각했지만 초판 한정 부록이란다. 아아 신나게 가져야지.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면서 겪는 일상의 불편함과 소중함 그리고 다정함이 『오늘의 인생 3』에 있다. 


붉은 전등 아래에서 『오늘의 인생 3』을 읽는 금요일 밤이란 이불을 덮지 않는 어깨는 시려웠지만 전기장판 위의 등은 따뜻해서 적정의 온도가 유지된다. 곧 다가올 성탄절에는 아이스크림케이크를 사서 파먹을 것이고 일출 보러 가는 건 혼잡할 것 때문에 빠른 포기를 하고 대신 일몰을 보러 가볼까 계획하는 금요일 오늘의 인생. 


고민하지 않고 트레이에 빵을 담고 잘 샀다는 소비에 대한 칭찬을 받아서 이 기분은 무얼일까 잠시 고민한 목요일 오늘의 인생도 있었다. 하루하루는 소중해. 오늘은 어제 죽어간 자가 그토록 바라던 인생이다. 그러니 살아 있음에 감사해. 라고 들어서 의무처럼 하루를 소중하고 감사히 여겨야 하지만 슬픔과 절망이 간헐적으로 몰려올 때면 그마저도 잊어버린다. 그저 오늘을 지금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지. 


『오늘의 인생 3』 속 오늘의 인생의 한 컷들, 카페에 앉아 음료를 먹고 지나가는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저녁에 먹을 디저트를 사러 가는 오늘의 인생을 보고 있으면 하루치의 고단함이 문을 열고 떠난다. 충전하느라 핸드폰을 옆에 두지 않은 채 『오늘의 인생 3』을 읽었는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반가웠다. 핸드폰이 없는 단 몇 시간이어도 불안하지 않은 오늘의 인생이 되면 좋겠다. 


다양한 양말을 신자라고 결심하고 앉아서 양말을 접고 무겁거나 불편한 옷을 정리하고 냄새나는 반찬통 역시 비웠다. 『오늘의 인생 3』을 읽고 나서. 옷과 옷 사이에 틈이 있는 걸 보는 즐거움을 같이 얻고 싶었다. 아직도 욕심과 미련이 많아서 모으고 쌓아 놓는다. 바깥은 춥지만 햇빛이 들어와 집을 데워주는 아침이 있어서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들었다. 일어났는데 몸이 쑤신 오늘의 인생. 


점심 지출을 줄이고 싶어 실리콘 도시락을 사서 밥과 고기, 만두를 꽉꽉 채워 놓은 어제의 인생. 기대도 절망도 없이 살면서 복권 당첨금으로 바나나 케이크를 먹는 누군가의 오늘의 인생에서 힌트를 얻는다. 지키고 가꾸어야 할 나만의 오늘의 인생. 성과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쉬는 날에는 청소기를 두 번 돌리고 맘에 드는 겨울 바지를 사서 좋아하면 되는 하루를 가진다. 


실수해도 나를 위한 약간의 욕심을 부려도 괜찮은 오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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