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세상 문학동네 청소년 43
최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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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봄이 왔다는 걸 실감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상을 잠깐 바깥에 두고 책을 읽는다. 죽은 아들을 저승 문턱까지 데려다주는 이야기. 몸이 분리되어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 이야기. 붉은 손등을 가진 아이가 자신의 방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이야기. 다른 행성으로 공부하러 가다가 도중에 시험을 보는 이야기. 최상희의 소설 『 B의 세상』에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겨 있었다. 나는 『 B의 세상』이 장편 소설인 줄 알고 읽어 가기 시작했다. 「고스트 투어」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유나의 유나」로. 읽다가 조금 이상했다. 앞 이야기는 죽은 아들을 데리고 떠나는 서사였다. 뒤 이야기는 몸이 분리되어 주인공이 하기 싫은 일을 하러 다니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바로 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죽은 아들의 과거나 미래의 이야기로 읽었다.

왜 이렇게 황당한 오독을 했던 걸까. 『 B의 세상』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혼재되어 나타난다. 배경은 지구였다가 다른 행성이고 우리나라였다가 외국이기도 한.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든다. 육체는 존재하지만 영혼이 희미해진 채 그걸 견디는 아이들이 나온다. 표제작 「B의 세상」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고발문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다.

학교에서 당한 폭력과 성추행의 내용이 담긴 고발문을 읽고 모두가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쓴 글은 아닐까 하는. 선생 A를 B가 고발한 내용은 모두가 숨겨 놓은 일이었다. 어른들은 A를 감싸준다. 그러한 일로 B들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서글프고 아픈 소설이었다. 외계인이 우리 집에 방문한다면? 이런 상상으로 쓰인 소설 「방문」을 읽고 나면 가슴이 아린다. 모두가 추억하는 얼굴로 외계인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것이다.

다른 내용과 다른 제목으로 묶인 여덟 편의 소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게 된 착각에는 『 B의 세상』이 가지고 있는 환상성 때문이었다. 현실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 B의 세상』에서는 슬프게 보였다. 환상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게도 이곳의 현실은 무참했다. 꿈보다는 좌절을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알아버린 고독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

나의 세상을 잠시 바깥에 놓아두고 있다. 때론 환상이 현실을 압도하면서 격려를 하기도 하니까. 도피는 아니다. 두고 온 세상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환상 속에서 빌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희미해진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희미하게 버텨 본다. 나의 세상이 완전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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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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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 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육 개월 만에 죽었다. 그로부터 삼 년 뒤 징의 아버지도 죽었다. 간암이었다. 암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고, 오수 삼촌은 언젠가 곱창을 씹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듣고 피식 웃자 오수 삼촌은 불판 위를 서성이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반듯이 내려놓은 뒤 정색한 채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농담에는 소질이 없다.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이기에 가급적 웃기만 한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하다가 종종 나 자신이 우스워진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는 소리도 지껄이기도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입을 다문다. 좌중을 휘어잡고 중심에 서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음식만 축내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여정의 데뷔 장편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사소한 농담 하나로 생긴 일을 그린다. 기분이 좋아져서. 술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 하나가 점점 커지고 부풀려진다. 사실을 그리다 보니 허구가 필요했다. 그럴듯한 허구. 네 명의 친구는 연극 대사를 맞춰가며 희곡을 쓴다. 1980년도에 금기시되었던 마르크스의 일화를 빌려온다. 자신들이 희곡을 창작해 놓고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쓴 희곡으로 몰아가자, 이상한 농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혁명과 변혁을 꾀했지만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했고 무기력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농담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희곡을 만들어 내어 웃어 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럴듯한 허구를 갖다 붙이자 진실이 되어 버렸다. 『알제리의 유령들』에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이 등장한다. 연극을 사랑한 네 명의 젊은이가 각자의 언어로 만들어낸 희곡.

그렇지만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에는 그들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붙는다. 마르크스가 쓴 유일한 희곡이라는 이야기로 주변 지인들에게 퍼져 나간다. 네 명 중에 두 명이 속한 독서회 모임이 발각되면서 『알제리의 유령들』은 문제가 되었다. 그 희곡은 마르크스가 쓴 게 아니라고 말해도 수사관은 믿지 않았다. 고문을 당했고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은 무죄가 되었지만 네 젊은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엄혹한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이후를 그린다. 책을 읽고 연극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꿈은 좌절되었고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부모 세대의 아픔과 그것을 목격한 자식의 현재를 네 개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농담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종이를 모두 불태운다. 그들은 몰랐다. 웃자고 꾸민 농담이 인생을 절벽 아래로 밀어 넣을 줄은.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웃고 떠들 수 없었던 시절. 어디로 가야 하고 왜 이곳에 모였는지 끊임없이 의문해야 하는 시절. 황여정은 이상하고 낯선 방식으로 가장 진부한 주제를 소설로서 펼쳐 놓는다.

소설 속 오수는 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절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죽는다.' 어떤 시절이라고 한정했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는 안다. 어떤 시절은 모든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걸 알고도 살아간다. 떠난 이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도망친다. 『알제리의 유령들』은 삶에 존재하는 거짓과 진실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황여정의 여정이 시작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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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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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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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라지지 않는 여름 1~2 - 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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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 속 주인공 캐머런은 일단 인형의 집을 꾸미는 것으로 상실의 상처를 달랜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는 순간 캐머런은 여자 친구인 아이린과 키스를 하고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 자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책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형의 집을 꾸미고 영화 보기에 빠진다. 후에 '하나님의 약속'에서 만난 선생 리디아는 그런 중독이 캐머런 자신을 동성매력장애로 이끌고 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 말은 리디아가 되지도 않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캐머런은 나중에야 깨닫는다.

10대 소녀의 이야기. 덧붙이면 레즈비언 10대 소녀의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아이의 내면을 조명하고 이후의 시간을 희망했다면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10대 소녀가 알을 깨고 자신이 정립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캐머런은 루스 이모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캐머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동성애에 눈을 뜬다. 아이린, 린지, 콜리에 이르기까지. 캐머런은 이끌리고 따라갈 뿐이었다. 불안하고 취약한 내면을 가진 캐머런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 담겨 있다. 캐머런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른들과 분위기에 의해서 캐머런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를 사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캐머런은 깊은 고독과 불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캐머런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너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들어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캐머런 주변의 어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학대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캐머런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게 한다. 콜리와의 일이 발각되고 캐머런은 목사와 루스 이모에 의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간다. 캐머런은 저항하지 않는다. 짐을 싸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헐어서 학비를 낸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에 들어가 자신을 부정하고 지식을 넓히는 게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씩씩한 척 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없고 정직한 시선으로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린다. 제인, 애덤과 대마초를 피우고 사소한 규율을 어기면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세션'은 나의 과거가 올바른 과거가 아니며, 만약 내가 과거가 달랐다면 애초 하나님의 약속에 올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그런 면담이 되풀이되었다.

"방금 다 말했잖아요. 이곳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어서 변하게 만들려는 거라고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한단 말이에요."
(에밀리 M. 댄포스, 『사라지지 않는 여름』中에서)

캐머런은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자신을 이곳에 보냈을까 의문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는 일이란 온통 캐머런의 과거를 부정하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서 더 좋은 나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세계 라면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원인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가 나를 부정하고 버리기라고 한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화된 가치와 논리가 있다. 단지 나이를 더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았다는 이유로 어른이 아이에게 주입하는 규율과 규칙을 깨기 위한 시도로써 에밀리 M. 댄포스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존재한다. 원래 이 소설의 원제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었다. 캐머런에게 가해지는 '잘못된 교육'은 캐머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정적인 언어로 난폭한 캐머런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독자를 봉인해 두었던 10대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 무얼 모르지도 않지만 무얼 알지도 못했던 시간 속으로. 소설의 결말은 뜨겁고 아름답다. 결말에서 행해지는 캐머런의 행동은 자신에게 가해졌던 잘못된 교육을 비웃고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에서 불행하고 답답한 오늘을 돌파할 용기를 얻는다. 넘어지지 않고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캐머런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다.

애도의 의식을 행함으로써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자책에 빠지지 않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 세상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써도 가능하다는 것. 캐머런이 나아갈 세상에는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어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은 캐머런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기억의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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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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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재미있다. 재미있으니까 자꾸 읽고 싶다. 읽다 보니 책이 끝났네. 정세랑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정세랑이 쓴 SF 소설 여덟 편을 모은 이 책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물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정세랑 월드의 사람들은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는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종종 이건 현실의 소설가가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 썼구나 라고 추측을 해본다.

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얼른 읽어보시길. 『목소리를 드릴게요』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시간 여행을 하고 모조 지구에서 탈출하는 다이내믹한 모험을 펼치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이다, 오직. 그와 그녀들이 시간을 뛰어넘고 죽어가는 연인을 위해 다니던 직장에 휴가를 내는 이유는. 지렁이가 지구를 정복하더라도 좀비떼가 창궐하더라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나만 아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정세랑은. 어느덧 유명해져서 너도 나도 정세랑을 읽고 있다. 괜찮아. 망해가는 지구에서 부자가 되어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안전 가옥을 구매할 재력을 가지고서 통신사 하나쯤을 사들여 정세랑이 쏘는 와이파이존에서 배달되는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면.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모든 소설이 흥미진진하고 가독성이 높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인 나는 막연하고 우주적인 상상력이 없어 SF 소설로 쉽게 빠지지 못하는데.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그렇지 않다. 지구적이고 우주적이면서도 생활밀착 SF 소설이다. 한 발은 지구에 두고 한 발은 우주에 두면서 읽을 수 있다. 「11분의 1」에서 우리의 다혈질 주인공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를 사랑해서 우주 밖으로 떠난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아, 사랑이여.) 세 시간 동안 기억력을 증폭 시켜주는 알약이 개발되고 원래 일이라는 게 전부 계획대로 되지 않지 않아 알약이 이상한 곳에 쓰이는 역사를 다룬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그런 약이 있다면 나는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표제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목소리만으로도 살인 충돌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힌 학교 선생 여상균씨의 모험을 날렵하게 그린다. 여상균 씨 또한 마지막에는 인어공주의 길을 따른다. 사랑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파괴와 혐오, 무질서로 인한 혼돈으로 지구가 망해가도 사랑은 있다고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이야기한다. 짧았던 데이트의 추억을 가지고 좀비로 변해버린 애인의 방문을 받는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의 나. 애인을 깔끔하게 보내주기 위해 한 발의 화살을 남겨 두는 사랑을 가진 나.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는 일이 지구에서 해야 할 마지막 임무라면 기꺼이 사랑을 하겠다. 정세랑은 소설을 통해 그렇게 말한다. 부디 사랑을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인물의 삶에 행복이라는 희귀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정세랑 월드의 문을 닫고 나온다.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 헬리콥터가 와서 참치캔만 주고 가더라도 그게 어딘가. 다양한 맛으로 부탁해요. 고추 참치 꼭 챙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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