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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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 유튜브 채널에서 웃기고 귀엽게 소개하길래(실제 책도 귀엽다. 주머니에 쏘옥 들어가는.) 최진영의 산문집의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을 샀다. 배우이자 출판사 대표 박정민은 책 영업도 잘한다. 아직 그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산 책들을 자랑하는 영상을 다 보지는 못했다. 그거 다 보면 책을 또 잔뜩 살 거 같아서.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인데. 몇 백만 원어치를 사면 어떤가. 출판계의 빛과 소금으로 남겠지.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을 천천히 읽었다. 책이 작고 아담해서 앉은 혹은 누운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주로 오후에 읽었는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땀이 난 상태로 조금씩 읽다가 이러다 더위 먹겠지 싶어 에어컨을 조금씩 틀고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잔말 말고 파워 냉방으로 틀어! 이러다 다 죽어. 


박 사장님의 책 소개대로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은 창작 노트인척하는 창작 기원 내지는 창작 요망 노트이다. 매일 글을 쓴다는 사명하에 매일 글을 써보지만 장편 소설을 써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도 언제 장편 소설을 쓸지 알 수 없는 소설가의 자기 희망고문기이다. 나는 장편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희망 고문한다. 한화 이글스의 1승을 염원하는 마음은 덤이다. 


나도 한때 야구에 미쳐 있었는데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서 멀리했다. 승리와 패배에 따라서 밤의 기분이 달라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그야말로 진정한 팬이 될 기회를 걷어찼다. 제주로 이사해놓고 글만 쓰다 보니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구름과 하늘의 풍경이 전부인 소설가. 부지런히 글을 쓰고 북토크를 하며 해야한다와 한다 사이를 요리조리 잘 왔다 갔다 하는 소설가. 


주머니 속 창작 노트에는 그날의 날씨가 담겨 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맑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는 강풍이 불어온다. 주머니 속에서 기분들이 맑았다가 흐렸다가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러다 화해를 해서 장편 소설을 쓴다. 매일의 글쓰기와 매일의 야구.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에는 자주 살아보자와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 빈번하게 나온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일.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란을 꺼냈다가 생각난 김에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밀었다가 책의 위치를 바꾸고. 그런 나의 모습이었는데 소설가도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요즘 들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에 빠져 있었는데 아직은 괜찮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일기를 쓰진 않지만 책상에 앉으면 기분, 상태, 사고 싶은 것, 해야 할 일 정도를 적는다. 매일 쓴다고는 안 했다. 책상에 앉으면이라고 했다. 토일월화수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목요일 정도 되면 활력 지수가 5 정도로 올라온다. (10까지 올라올 일이 있을까.) 5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다짐을 하고 미래의 일을 계획한다. 그러다 다시 점점점.


진짜로 매일 글을 쓴다고 외치는 소설가의 산문집에 밑줄을 긋고 나는 진짜로 매일 살고 있다고 옆에 적는다. 더위를 잊고 도서관에 가볼까 생각만 한지 며칠째. 필요 없는 물건을 매일 하나씩 버리려고 하고 청소는 매일 한다.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이제부터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써보자 마음먹는다. 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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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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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의 한낮을 정신없이 보낼 수 있는 소설 한 권을 추천한다.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이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정오에 읽기 시작하여 지표면이 데워지는 데 두 시간이 걸려 제일 더운 오후 두시를 지나 새벽인지 밤인지 모를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마지막 장을 덮는다. 충격을 안고서. 인간의 추악함에 질려 하면서. 


책날개에 정해연을 '놀라운 페이지 터너'라고 소개해 놓았는데 『홍학의 자리』만 읽었을 때는 그 소개가 맞지 싶다. 잘 골랐어. 여름의 장르. 추리 소설. 나를 또 칭찬해 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다년간의 추리소설을 읽은 덕분인지 사건의 실체를 미리 짐작했으면서도 결말이 궁금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다시 앞으로 가서 읽게 만들기도 한다. 


계속되는 반전 때문에 스포일러는 금지. 극장 화장실에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고 적힌 낙서 때문에 좌절한 적 있으니까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다 읽고 나서 나는 슬픈 사람이 나오는 슬픈 소설을 읽었구나 생각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와 밝히는 자의 서사이지만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애처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립학교 교사 김준후는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학생이 죽은 현장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이 밝혀질까 봐 사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누가 죽였을까를 의문으로 삼으면서. 『홍학의 자리』는 챕터가 끝날 때마다 사건의 새로운 반전을 들려준다. 아무리 더워도 책을 덮을 수 없는 이유다. 여기까지만 읽고 유튜브 볼까가 되지 않는다. 


『홍학의 자리』는 잘못을 저지른 자가 끝에 가서는 반성을 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 나를 비웃는 결말을 선사한다. 사건의 진상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결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소설이 있었던가. 


이제 여름 시작이니 다른 정해연의 소설도 읽으면서 이 여름을 데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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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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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인지 이슬아의 신작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읽고 싶어졌다. 처음 신간이 나왔을 때 제목에 들어간 단어들 (인생, 바꾸는, 쓰기) 때문에 뭐지 했더랬다. 이메일로 인생이 바뀐다고? 이제 이슬아가 자기 계발서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구나. 


도서관에 가서 책만 반납하고(도서관까지 갔는데 책을 빌리지 않았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다. 책을 한가득 빌려 오고 싶었지만 뙤약볕에 책을 이고지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뭔가 아쉬워서 서점에 갔다. 요즘엔 기억력이 떨어져서 책 검색대에서 냅다 이슬아를 쳤다. 이슬아 수필집만 잔뜩 나와서 다시 기억을 떠올려 이메일을 쳤다. 


무려 베스트셀러 매대에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렇구나. 이슬아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였구나. 신나게 책을 빌리지는 못 했지만 신나게 책을 사서 돌아왔다. 하루에 10만 원에서 20만 원만 써도 도파민이 최대치로 나와 나 지금 행복하네 착각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도 덤으로 안고서. 거 행복 별거 아니네. 내가 돈으로 사겠어. 


무더운 여름 에어컨을 틀고 싶지만 참기로 하고 이 더위를 잊을만한 책이 무엇이 있나(어제 그렇게 책을 사놓고도 읽을 책이 없나 고르고 있다니.) 둘러보다가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들었다. 책표지를 들춰보니 책상에 공구를 잔뜩 늘어놓고 고글을 쓰고 진지하게 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슬아가 있었다. 


문장을 갈고 조립하고 끼우고 썬다는 은유겠지. 한여름의 더위를 이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여름의 더위를 받아들일 만큼 책은 술술술 잘 읽힌다. (진짜로 술이 들어가면 더 잘 읽히겠지. 지난날의 나의 이메일 흑역사가 떠오르면서.)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읽으면서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겠더라. 


자세한 내용은 나만 알겠다. 책을 읽으면 모두들 자신이 쓴 이메일이 떠오르면서 술을 찾고 싶어질 거다. 제목을 바꾸고 내용은 핵심을 정확히 전달하되 인간미를 느끼게. 앞으로 그렇게 해봐야겠다. 얼마 전에 거절의 메일을 받았거든. 또 거절의 메일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 나오는 비기를 적극 활용해야겠다. 


진짜 이슬아는 이메일로 인생을 바꾼 작가다. 일간 이슬아를 이메일로 연재했고 결혼도 이메일 쓰기로 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메일 쓰기의 중요성과 팁을 알려주는 책이니 참고 정도를 하면 좋겠다. 꽈배기가 될 필요는 없다. 좋았던 걸 기억하면 된다. 더웠지만 바람이 잠깐씩 불어왔고 맛있는 편의점 커피를 발견해 사다 먹으며 책을 읽었던 기억. 


인생이 바뀔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었고 내가 취할 수 있는 걸 취하면 된다. 술에 취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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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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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하나 키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감히 언감생심.


자꾸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할 일도 할 말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은. 영혼 없이 웃고 영혼 없이 말한다. 크게 웃을 일이 아닌데 크게 웃다 보니 크게 웃어도 되는 것 같아 크게 웃는다. 한심한데 한심하면 또 어떤가.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노력이라는 말이 제일 뭣 같아서 아무것도 안 한다. 


이기호의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 나오는 주인공 강아지 이시봉의 성품은 '명랑'이란다. 성별은 수컷이고 예방접종은 했다. 견종은 비숑 프리제. 이것만 가지고 이시봉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좀 더 자세히 이시봉의 생애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시봉의 성품이 '명랑'이라서 인간사와 관계없이 명랑함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졌다. 


무엇이 괜찮아졌냐고 하면. 지금의 상황이. 이시봉의 주인 이시습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 이시봉과 산에 올라 술을 마시는 것도 전화벨이 울리면 극도로 예민해져 순간 아무것도 못하는 나의 상황도. 소설 속에는 이시습 옆에 명랑한 강아지 이시봉이 있고 소설 밖에서는 명랑한 이시봉을 소설로 만날 수 있어서. 괜히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 잘못 넣어둔 게 아닐까 싶은 이시봉의 포카를 계속 들여다봤다. 


이시봉 없는 삶.


이시봉 대신 다른 명사를 넣어도 된다. 이시습에게 이시봉 없는 삶은.


소설은 새벽 산책만을 기다리면서 집에서 시습과 함께 살아가는(시현과 엄마도 있지만 주로 시봉을 돌보는 건 시습이다.) 이시봉의 생각지도 못한 과거가 소환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우울한 명랑함으로 그려낸다. 그렇다. 우울한데도 명랑할 수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매 맞지만 명랑한 년 이모님 강현남처럼. 이 공식에 모든 걸 대입할 수 있다. 사기 당했지만 명랑한. 아픈데 명랑한. 슬픔을 명랑으로 덮으려는 것 같은 수작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기 당하고 아프고 슬퍼도 모름지기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 시습이 브리딩 업체로부터 반려견 분양 계약서를 받으며 시현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부분에서 나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동물 복지에 관한 심오한. 인간의 우매함. 자본주의의 천박함.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조용히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내밀겠다. 책이 많이 두꺼워서 당황하셨죠? 그 안에 웬 강아지 포카가 들어 있어서 더 황당하셨죠? 책을 열면 작가의 사인 옆에 강아지 발 도장도 있어서 더 그러셨죠? 그러지 말고 읽어봐여.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어여. 


어떻게 그저 열심히 산 것뿐인데 희망보다는 절망이 낙관보다는 비관이 더 자주 찾아오죠. 남한테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와도 그저 꾹 참는데) 세금 체납 없이 살았는데 왜 이런 불행들이 닥쳐 오는지 실의에 빠져 누워만 있었는데 명랑하다 못해 순수한 귀요미 이시봉과 그런 이시봉을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하는 시습의 무해한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하나 정도는 괜찮아진다. 


매일 술을 먹는 건 이러한 시간들을 버티기 위함이었다는 것. 그런 시습의 곁에 명랑한 이시봉이 있는 것처럼 나의 곁에도 명랑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사랑은 명랑이라는 걸 알고 나면 씻고 버스를 타고 다이소에 가서 장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게 사랑. 알면서도 당해주는 게 사랑. 알면 알수록 나의 모든 걸 전부 다 주고 싶은 게 사랑. 


이시봉과 이시습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군가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건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나의 염원이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속에 나오는 모두가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속에 나오지 않는 나 또한 마찬가지로 하루에 한 번씩은 큰소리로 웃었으면 좋겠다. 왠지 그렇게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명랑한 시봉과 함께라면. 명랑한 ♡♡과 함께라면. 


하트에 각자 좋아하는 걸 넣으면 된다. 시봉 없는 삶이 아닌 시봉과 함께 하는 삶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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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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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라는 광고 카피가 유명한 다시다의 효과는 대단했다. 김치찌개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셨다. 앞다리살과 두부와 파와 청양고추를 넣었지만 약간 밍밍한 맛이었다. 냉장고에 하나 남은 다시다 한 포를 넣었다. 지금까지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 중 최고의 맛이었다. MSG 만세! 깊은 밤이었지만 이대로 자야 하지만 두부와 밥과 김치를 얹어서 먹었다.


강화길의 소설 『치유의 빛』을 읽었기에 먹었다는 것에 죄책감도 후회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다. 배달 앱만 켜도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하다. 여름 바다의 빛을 닮은 표지 색깔의 『치유의 빛』이 다루고 있는 묵직한 주제는 고통으로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결말에 다가가면 삶은 모종의 기쁨을 숨겨 놨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주인공 박지수는 우리에게 자신의 교복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고 한다. 열다섯 가을부터 키가 20센티 넘게 크고 살이 쪘다. 초등학교 동창의 언니에게 물려받은 교복이 맞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부모는 딸의 갑작스러운 성장의 기쁨보다 돈이 나간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부모의 불화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짐작이 가기에 지수의 교복을 대신 사주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없던 지수는 키가 크고 살이 찌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노력했지만 노력일 뿐이었다. 체육복을 사지 못해서 체육 교사에게 남는 체육복이 있는지를 물어야 했고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어려웠다. 살이 찌기 전 부모는 지수의 성장판이 열릴 수 있도록 수영 강습에 보냈다. 그때 배운 수영이 지수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거대한 몸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지수에게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애 해리아가 말을 건다. 열정 과다의 체육 교사 김이영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시험을 봐야 했기에 해리아는 지수에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에게 수영을 가르쳐 달라는. 지수는 해리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고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에 황홀해한다. 인기 많은 애 옆에 인기 많고 싶은 애가 있다. 해리아 옆에 신아.


셋은 방과 후 수영 연습을 하며 아슬아슬한 친분 관계를 유지한다. 『치유의 빛』은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고통 없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쳐 준다. 날씬하지 않은 몸, 식탐이 가득한 나, 예쁘지 않은 얼굴의 나. 능력, 내면, 성실함, 성격의 안정성이 아닌 외모로써 평가하며 나다움을 강탈 당하는 현실을 밀도 있는 문장과 서사로 꼬집는다.


예쁘지 않은 몸의 자각이 아닌 아프지 않은 몸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강렬한 응원이 『치유의 빛』에 있다. 배가 고프다. 그리고 먹는다의 행위는 정상이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참는다의 행위가 잘못이다. 전부를 잃었다고 했을 때 아프지 않은 내가 남아 있음을 그것만은 지켜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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