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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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보다 여행기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짐을 싸는 일부터 예산을 짜고 여행 경로를 탐색하는 그 모든 일이 내겐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거기보다 여기에 머무르는 것에는 게으름이 한몫한다. 그곳만의 공기와 바람의 질감을 오로지 상상으로만 느낀다. 그래도 떠나보라고. 분명 다른 감성이 있다고 적힌 여행기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떠나는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가 보다. 10년짜리 여권을 만들어 놓고 스탬프를 한 번도 찍어 보지 못하고 유효 기간이 만료되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면 나는 그것밖에는 할 말이 없다. 유효 기간이 지난 여권의 빈 페이지에 대한.

이다혜의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는 인상적인 여행기로 남았다. 여행 경로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행을 떠나고 준비하는 자의 설렘과 여행지로 떠날 때의 요령 사항이 감각적으로 적혀 있다. 월급 생활자로서 길게는 떠나지 못하지만 금요일 연차를 써서 떠나는 짧은 여행에서 삶의 고단함과 피로감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몸의 신호에 맞춰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방법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 가족 여행 시 주의 사항을 알려주기도 한다.

대부분 혼자 여행을 떠나지만 어떤 해에는 아는 이들과 떠나기도 했단다. 혼자여서 혼자가 아니어서 얻게 되는 여행의 낭만을 읽는 게 좋았다. 자유여행이냐 패키지여행이냐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각자 장점이 있으니 알아서 잘 골라가면 된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마음 밖에는 없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당장 떠나지 못하더라도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자기의 내면 안으로 끌고 들어온 자의 기록은 여기가 아닌 그곳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비상 약품으로 읽을 수 있는 책.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에서 솔직하고 자유로운 여행 낭만자의 지나온 시간을 만난다. 혼자 떠나면 무섭지 않냐고 하지만 이다혜는 혼자 떠날 수 있어서 당황했던 경험의 순간도 '여행의 재미'라고 말한다. 같은 도시를 반복해서 가지만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여행의 풍경. 매일 마주쳐야 하는 일상이 지겹다고 느껴져서 떠났지만 놔두고 온 그곳의 시간이란 소중한 것임을 여행은 깨닫게 해준다.

오늘은 청소를 하고 커튼을 걷어 놓았다. 노을이 지는 걸 보기 위해서. 파란 하늘은 아니었지만 해가 얼굴을 비쳤고 공기는 시원했다. 내일이 월요일라고 믿기 싫지만 남은 일요일 오후가 조금씩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하게 비행기를 타고 기차에 몸을 싣는 자의 기록이 있어 여기가 아닌 낯선 장소를 동경해 볼 수 있었다. 여행기를 읽으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다. 팡팡 터지는 순간 떠나는 거다.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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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곽재식 지음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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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막막히 혼자 남겨졌다면. 인류는 멸망하고 외계인조차 나타나지 않는다면. 빛의 속도를 뚫고 날아간 우주 한복판에서 외롭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을 당신을 위한 소설. 곽재식의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을 보낸다. 200억 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가 흔적조차 없다고 해도 나는 외롭게 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이 책을 우주선 안에 넣어 발사 시키겠다. 나도 그 안에 타고서 말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에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자, 뇌이식법으로 과거의 기억을 불충분하게 가지고 있는 자, '지리산 계곡의 맑은 물' 색깔을 구현해야 하는 자, 로봇 반란을 눈치챈 자, 열어 보지 말라는 서류를 가지고 고민하는 자, 우주란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자, 월요일이 오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꿈꾸는 자가 등장한다. 한 편 한 편 이야기 안에는 일견 소소해 보이는 인물들의 고민이 등장하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절대로 소소하지 않는 전인류적이고 우주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한 우주 한복판에서 홀로 떠 있는 '나'의 이야기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이다. 소설 속 상상이 아니라도 우리는 홀로 버려진 기분을 매 순간 느낀다.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로서 그걸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지하철에서 누가 먼저 일어날지를 간파해야 하는 피곤한 출근을 해야 하고 일요일 오후를 보내며 절대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일상적인 소망을 곽재식은 소설로 풀어 낸다. 지하철이라는 섬에 갇히고 월요일이라는 출근 지옥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소설이 있다.

이야기 끝마다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사연이 들어 있다. 주로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라서 이렇게도 소설을 창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왜 아웅다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게 되지는 않는 행위이다. 지구에서 쏘아 올리는 신호를 외계인들은 결코 보지 못할 것이고 가을인데도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 미세먼지의 힘은 강력해서 마음이 내내 가라앉는 것이다.

허무에 빠져서 허우적허우적. 그럼에도 끝이 행복한 소설이 있다면 결말이 사랑스러운 소설이 있다면 피식하고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최후에 남겨질 사람이 나라고 해도 기다림을 이기지 못하고 우주선을 타고 달려온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을 꿈꾸어 보는 것이다.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을 읽으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는데 애매한 대답을 들어도 로봇들이 반란을 시작하는 세계라도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내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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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작가특보
곽재식 지음 / 북스피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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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간다. 지치지 않고 버티면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구나라는 마음을 기억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화를 내지 말고 기분이 가라 않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 하나쯤은 가슴속에 고이 품고 산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살아가야 한다. 요즘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는 것의 의미이다. 아프지 않아서 내 몸 하나 누일 방 한 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

주문처럼 삶의 이유를 나열해 본다. 걱정은 사소한 것으로 넘기고 불안은 마치 느껴본 적 없는 것처럼 무시한다. 혼자만의 시간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책을 읽으면 할 수 있다. 친구가 없어도 쓸쓸하지 않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로 아침을 맞이하고 일 끝나고 빨리 가서 읽다만 책을 읽어야지로 심야의 허전함을 달랜다. 당신의 삶이 의미 없음으로 느껴질 때 곽재식의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곽재식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작가이다. 곧바로 흥미로운 이야기로 진입한다. 결말은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은 곽재식이 오랫동안 소설을 쓰면서 생각하고 겪었던 작가 생활의 내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곽재식은 소위 말하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인터넷 웹진 <거울>을 발견하고 그곳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다. 얼마 되지 않는 댓글이 달렸다. 꾸준함에 반해 필진으로 합류했고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있다. 그가 쓴 소설 중 한 편인 「토끼의 아리아」가 드라마 극본으로 쓰이면서 아주 조금 이름을 알렸다.

책에는 그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솔직하게 실려 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 돈을 모아 단편집을 만들어 주었던 사연부터 단편 소설 한 편당 얼마씩 받는지까지 어디서도 알 수 없는 출판계의 사정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그의 표현대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자신이 꾸준히 소설을 쓰고 책을 낸 비결도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인생을 바꿀만한 대역전극이란 오늘 밤부터 글을 써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돈 안 드는 취미 생활로서 완벽하다. 돈이 없어서 책을 사보지 못한다면 도서관에 가면 되고 종이와 펜은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망하는 건 나의 정신 상태뿐이다. 글을 너무 못 쓰고 못 쓴 글이라도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의 정신을 망하게 하지만 쓰다 보면 글은 는다. 진짜. 나의 기준에서 곽재식은 이미 유명 작가인데 그는 한사코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상을 받지 않아도 그는 꾸준함으로 '곽재식 속도'를 유지하며 소설을 쓰고 괴물을 연구하고 기이한 사건을 수집한다.

체제 밖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속도를 가지며 글을 쓰는 곽재식을 응원한다.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적이고도 인간적인 곽재식. 그가 쓰는 소설은 더 인간적이다. 행복한 결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소설가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판타스틱 한가. 살기 싫어서 사는 것에 굳이 의미와 이유를 부여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실은. 책이 있어서.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곽재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은.

'1곽재식 속도'로 글을 쓰는 삶이란 근사한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이라면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며 무한한 긍정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대작을 쓰려고 하지 말 것. 작가가 되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 것. 소설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어떻게 돈을 벌지도 생각해야 할 것.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침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도 나도 작가가 되어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안 된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다. 작가가 아니어도 자신만의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취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너는 어떤 취미가 있니 물어 오면 응, 나는 글을 쓰는 게 취미야. 뜨악하게 쳐다보곤 돌아선다. 다시 혼자가 된다. 그래도 계속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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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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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았던 마지막 집 뒤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갔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 기차는 지나갔다. 잠깐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은 세계가 일시 정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드문드문 불빛을 안고 종착역인 이곳으로 달려왔다. 철제 대문을 밀면 왼쪽으로는 주인이 사는 커다란 기와집이 있고 오른쪽은 다른 세입자가 사는 집이 있었다. 중앙으로 걸어가면 작고 단단한 양옥집이 우리 집이었다. 아직 연탄을 넣어서 쓰는 그 집에서 우리는 일 년도 채 못 살았다.

엄마가 떠나고 연탄을 갈지 못해 냉방이 된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부엌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 도마에 칼질을 하는 소리들이 그리웠다. 그런 소리들이 들리고 나면 엄마가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바닥의 온기와 소리가 없는 아침은 서러웠다. 늦게까지 골목에서 놀고 있어도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외침이 없는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그 집의 보증금이 600만 원이었단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주인집에 가서 월세로 돌리겠다면서 그 돈을 빼서 전부 써 버렸단다. 잠깐 화해를 했던 건가 엄마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다시 떠나버렸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라는 망각의 힘을 빌려 추억이 된다고도 하는데 내겐 그 집에 살았던 기억은 결코 추억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조차도.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똑같은 옷만 입고 온다며 놀리고 엄마 없는 애라고 애들이 놀아주지 않던 기억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수학여행비가 없다고 하자 아빠는 자신의 친구 집에 가보라고 했다. 밤이 되도록 기다렸는데 결국은 받지 못했다. 유년을 지배했던 기억의 배경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이라는 아이와 함께였다. 동생이 간식을 받았다고 빵을 주었는데 좀 더 달라고 하자 자신도 배가 고프다고 했던 찰나의 기억.

한지혜의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기찻길과 연탄, 보증금 600만 원, 동생의 울먹거림, 엄마가 떠올랐다. 시간이라는 힘에 밀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또다시 가을이고 나는 지나간 것들을 환기해 보는 것으로 책장을 넘긴다. 집이 아닌 방에서 방으로 이동한 아이는 책을 읽으며 문학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소설가 한지혜는 자신의 유년을 꺼내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섯 식구가 살던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곳이었다. 이사를 가자고 해서 가보면 그곳은 대문이 없는 비탈 위에 간신히 세워진 방이었다. 그 방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다.

아이어도 안다. 아이니까 더 잘 민감하게 느낀다. 자신의 집이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없으며 무언갈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걸. 「숨어 있기 좋은 책」으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시작한다. 현실과 동화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책으로써 자신만의 환상을 부풀린다. 책 많이 읽는 아이라는 뿌듯함을 가난한 부모는 대견해했다. 없는 형편에도 아빠는 책을 한 권씩 사 오고 동네 아주머니들 있는대서 보란 듯이 월부 책 장사한테 책을 주문해주는 엄마. 그들이 있어서 아이는 낭만을 꿈꾼다. 동화의 세계는 이곳과 다른 것을 꿈꾸게 했다. 『못나도 울 엄마』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 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中에서)

꿈을 꾸고 싶어서 책을 읽었지만 그 안에서 마주한 건 허구 역시 현실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날카로운 진실이었다. 아이는 이제 다른 의미로 책을 읽고 세상의 비의를 알아간다. 자신이 상상한 다락방이 아닌 곳으로의 이사. 대문이 없는 집에 사는 것이 부끄러워 선생님이 데려다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 신춘문예에 당선이 돼 놓고도 상금을 혼자 쓰고 싶어서 가족을 시상식에 초대하지 않은 놀랍고도 솔직한 일화. 기혼 여성 소설가로서 '아이는 어쩌고?'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구하기. 아빠가 쓰러지고 이 년 동안 병간호를 하며 경험해야 했던 절망의 시간.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는 꺼내 보이고 싶지 않던 순간을 기꺼이 내 보이며 삶이 주는 고통에 당신이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 글이라는 게 참 좋은 게 부끄럽고 한심했던 과거의 이야기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는 순간을 거치면 그럼에도 빛나는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어제를 지운 듯이 살아갔다. 세련되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허세를 부리며 내가 아닌 척 꾸며 보았지만 과거는 악착같이 나를 따라왔다. 한지혜는 자신이 살았던 골목의 기억을 들려주는 것으로 과거를 부정하며 살아간 나의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고 과거를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너를 이해한다는 충고가 아닌 네가 살아온 과거는 절대 부끄럽고 나약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주는 포옹을 선물 받았다. 이리 와, 힘껏 껴안아 주는 것으로 생이 가져다준 불안과 미움, 어리석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었다. 한지혜는 엄마가 미웠다고 썼다. '너무 미워해서 후회할 염치도 없을 만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그다음 문장은 이것이다. '그랬더니 남는 게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나와 동생을 두고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엄마. 다시 돌아왔지만 끝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다시 떠난 엄마. 이제는 돌아올 수도 없이 떠난 엄마.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서 내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문장인 엄마가 미웠다를 읽으며 오늘은 '엄마 그때 화내고 성질내서 미안해요'를 연필로 꾹꾹 눌러 써본다. 미움의 다른 이름은 미안해라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 눈이 드문 남쪽 나라에 사는 나는 습관처럼 찾아온 아침을 맞이한다. 창가에 비스듬히 꽂힌 햇빛 한 줌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웃어 본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삶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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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살이의 기술 - 일잘과 일못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로스 맥커먼 지음, 김현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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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격이나 성향은 한 번 형성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터득했다.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은 이유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자기를 계발하거나 없던 자기가 생기거나 늦잠 자는 습관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만 널리고 널렸겠지. 물건을 버리지 못해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읽고 집안에 있던 쓰레기를(그야말로 쓰레기였다. 쓰레기. 나는 쓰레기를 몇십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았던 것이다) 버리고 정리를 한 적은 있다. 정말 중요한 인생의 순간이었다.

성공을 향한 지름길을 알려주거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책은 알아서 패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른다. 책이란 읽다 보면 다른 종류의 책을 연결해주는 중매자 같은 것이어서 자기 계발서라고 불리는 책을 읽기도 한다. 읽고 있는 책에서 그 책이 좋았다는 부분을 잊지 않고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고 읽어보는 것. 로스 맥커먼의 『직장살이의 기술』은 이다혜의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간략하게 소개해 놓은 책의 내용이 흥미로웠다.

원래 이렇게 무슨 무슨 기술이라고 붙은 책은 읽어보면 그다지 배워서 써먹을만한 기술은 없게 마련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비유가 적당하려나. 그래도 당신이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졌을 때 첫 입사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어찌어찌해서 면접에 합격해서 일을 하게 되어 첫 출근을 했을 때 옆에 있는 동료가 왕재수라는 사실을 터득했을 때 『직장살이의 기술』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로스 맥커먼은 항공사 잡지계의 에스콰이어라고 불리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기내 잡지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책상에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붙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고 자신을 허스트 매거진의 채용 담당자라고 소개하는 사람과 연결되었다. 그가 평소에 선망하던 에스콰이어 잡지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면접을 보러 뉴욕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로스는 날아간다. 단숨에. 재킷 없이 면접을 치른 경험으로 시작한 그의 회사 생활이 『직장살이의 기술』에 재미있게 담겨 있다. 실제 그가 한 바보 같은 일들이 있고 그 일에 대한 깨달음으로 형성된 조언이 재미있게 쓰였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이 책이 별로라고 생각이 된다면 『직장살이의 기술』의 목차만이라도 읽어보시라. '직장에서 옷 잘 입는 법, 회사에서 웃는 법, 신입 때 실수에 대처하는 법, 왕재수와 일하는 법' 같은 온갖 법들이 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메이저 잡지에서 일하며 겪었던 실수담이 섞이면서 이 책은 틈틈이 웃게 만든다. 그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한다.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 그가 직장에서 유능해지기까지의 과정과 나름의 방법이 있다.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읽으면 무수한 공감의 하트를 누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자고로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끼리 통하는 법이다.

직장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은 아니다. 동네 꼬마와 마주칠 때도 그 애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며 가던 길을 가지 않고 멈춰 서서 웃고 있을 때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직장살이의 기술』의 어느 한 부분을 가져와 적용 할 수도 있다. 가장 웃겼던 부분은 로스 맥커먼이 만든 테스트 문항이었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고 점수를 구하며 내가 진정 이상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결론은 우린 모두 이상한 사람인데 월급 주는 그곳에서는 대체로 이상함을 잘 감추고 있다가 진짜로 왕재수를 어쩌다 운도 없이 만날 때 숨겨뒀던 이상함을 드러내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기술이라고 이래라저래라 알려주고 있지만 바보 같은 웃음을 잃지만 않으면 직장살이를 계속할 수 있다. 그게 행운이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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