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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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라고 쓰고 한 문단을 과감하게 띄운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박상영의 산문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산문'이라고 해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설렜다. 제목도 완전 심쿵 하지 않은가. 매일 밤 허기와 싸우는 나를 달래기 위한 주문 같은 말 아닌가. '오늘 밤은'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어제는 먹고 잤다는 말인데. 분명 그럴 것이다.

심리적 허기라고 누군가는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실체와 느낌이 팍팍 있는 허기이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잠도 오지 않은데. 그게 가짜 허기란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배달 책자를 넘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배달 앱을 깔지 않았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칼을 들고 찾아와도 넘겨줄 수 없는 남도의 곡창지대를 지키는 이순신의 마음으로서 살아가는 다이어터의 발악이다.

당장 전화기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어버릴 것이다. 저 말고 닭을 구워 주시면 안 될까요. 몇 번 배달 앱을 깔긴 했다. 첫 주문 시 쿠폰을 준다기에 그것만 홀랑 쓰고 지워버렸다. 이런 나는 현명한 소비자이며 얌체. 지웠다. 배달 앱. 없다. 대신 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달 책자와 전단지가 가득 꽂혀 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박상영의 빈번한 행동. 배달 앱을 누를지 말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며 애가 닳고 짠하고 어서 바삭한 순살 치킨을 먹고 족발을 시켜서 나 대신 먹으란 말이다, 응원한다.

매 산문의 끝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기승전굶고자야지의 반복이다. 이야기가 어디로 갔든 굶고 자겠다는 다짐을 한다. 몸무게 세 자릿수를 찍고 박상영은 회사에서 주변에서 몸에 대한 오지라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심지어 최 팀장은 그에게 다이어트 차를 내밀기도 한다. 그걸 먹으면서 박상영은 퇴사에 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은 별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로 날아가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다이어트, 문학을 하게 된 계기, 최저 시급에 대한 기록, 꿈과 목표 사이의 간극, 내 몸을 사랑할까 말까의 갈등이 웃긴데 짠하고 그래서 울고 싶게 그려진다. 비만한 남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낸 사실적인 이야기. 온몸이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바지 하나를 사는데도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현실. 산문이어도 허구 한 방울씩 들어갈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100퍼센트 리얼 박상영의 일상 체험담이라는 슬픈 예감이 맞을 것이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두 권의 소설집을 냈다. 정확히 9시에 출근해서 정확히 6시에 퇴근하는 마이클(미국인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는 뜻에서 회사 사람들이 박상영에게 붙여준 별명. 참으로 못난 인간들.)은 가방이 무거워서 어쩐지 몸이 뻐근해서 헬스장에 가는 것을 미루지만 집에 가서도 바로 소설을 쓰진 않는다. 그대로 누워 있다가 고민한다. 무엇에 대해? 소설을 어떻게 쓸까? 노노노. 배달 앱을 켜서 음식을 시킬지 말지에 대해.

소설을 쓰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갔지만 졸업을 하고도 남는 건 등단이 아닌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뿐. 그래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고 점쟁이의 예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해에 등단을 했다. 이후로는 치열하게 소설을 썼다. 오전 다섯시에 일어나서 썼단다. 대단. 박수. 짝짝짝. 회사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소설가임을 비밀에 부쳤지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야간 식이 증후군' 때문에 운동을 하는 몸인데도 투잡을 뛰는 사람인데도(대체 누가 운동을 하고 바쁘게 살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 건가. 그건 그냥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 나오는 대로 유전자가 이미 내 몸의 체형을 결정해 놓은 거 아닐까. 비만을 게으름과 자기 관리의 실패한 사람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는 냉혹한 시선이여, 물러가라.) 박상영의 몸무게는 여전히 세 자리를 유지한다.

레귤러 핏의 바지를 입었는데 스키니 진으로 보여 친구를 웃게 만들고 유명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서 갔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매니저가 맞는 사이즈가 없을 것 같다는 팩트에 왜 기분이 나쁠까 기분이 나쁘면 안 되는데 자신을 달래는 박상영.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에 웃음과 유머를 쥐어 짜내면서 근근이 버티는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눈물과 손수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대단한 깨달음과 성찰을 얻어서 자신의 몸을 긍정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라고 나와 있을 뿐이다. 퇴사 후 한동안 무기력에 빠져서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넷플릭스와 배달 앱으로 한동안 연명했다고. 통증 때문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매일 자신을 다그치며 소설을 쓰고 회사를 다녔던 박상영은 이제 소설만을 쓴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나에게는 엘리베이터가 최대의 난관이다. 특히 금요일 밤. 자석으로 된 전단지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치킨 냄새가 좁은 그곳을 떠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바로 시킬까. 씻기 전에 시켜 놓으면 씻고 나서 바로 먹을 수 있겠지. 근데 먹고 나면 내일 아침에 폭발해 있을 몸무게와 부은 얼굴은 어떻게 하나. 안 먹으면 미칠듯한 허기와 어지럼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깟 몸무게라고 하지만 한동안 뚱뚱이로 살아봐서 안다. 그깟 몸무게가 아니다. 옷을 사러 가서 날씬이 동생과 비교 당하는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게으름과 나태로 이루어진 나는 다이어트를 식단 조절로만 하고 있지만 매일 밤 찾아오는 심리적 허기가 아닌 진짜 몸의 허기를 달래고 어루만지고 쓰다듬다가 폭발해 버린다. 먹고 죽자. 오늘 밤은 먹고 내일부터는 굶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스무 편의 이야기는 매번 오늘 밤은 굶고 자는 것의 실패를 보여준다. 오늘 밤이 안 되면 내일 밤으로. 다시 오늘 밤이 되었고 무언갈 먹으며 내일은 꼭 굶고 자야지, 결심한다. 안다. 이런 결심을 해도 실패쟁이인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를 열어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음식물을 탐지하고 있을 것임을.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지키지 못할 결심과 계획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성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에스엔에스 프사로 찍어 올리기에 좋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바로 찍어서 올렸다. 그래서 어젯밤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이러다 죽겠지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나에게는 매일의 밤이 존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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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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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이 돌아왔다. 서른네 살의 수짱은 마흔이 되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 카페 매니저에서 어린이집 조리사로 직업을 바꿨다.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는 마흔이 된 수짱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안심하는 수짱. 함께 일하는 친절한 분이 수짱에게 마흔 살 생일 기념으로 젓가락을 선물한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수짱.

『수짱의 연애』이후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여전히 혼자인 삶일까. 일이 끝나고 돌아가서 집을 청소하고 자신만의 식탁을 차릴까.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에 담겨 있다. 변하지 않았다. 수짱은.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고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간다. 마흔의 수짱과 마흔다섯의 사와코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나의 오늘을 위로한다.

'혼자 사는 삶.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건 뭘까?'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를 소개하는 문구다. 수짱과 사와코는 혼자 살아간다. 종종 혼자인 삶에 불안을 느낀다. 사와코는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고 정년까지 근무할 예정이다. 그 후의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자식과 손자가 없는 노후의 삶이 불안하긴 하다. 사와코는 아픈 엄마를 돌본다. 문득 자신의 곁에는 누가 있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수짱은 우연한 밤 산책길에 예전에 좋아했던 쓰치다 씨를 만난다. 결혼 여부는 묻지 않은 채 그간의 안부와 신상 이야기를 건넸다. 다시 만날 것을 예고한 쓰치다 씨. 수짱과 쓰치다 씨는 어떻게 될까. 대단한 사건도 깜짝 놀랄만한 반전도 없는 만화,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조금씩 아껴 읽으며 펼쳐본 이야기에서는 묵직한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사와코가 느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 수짱이 생각하는 오늘의 나의 모습. 쓰치다 씨, 그러면 안 돼요 하고 말해주고 싶은 밤. 각자의 자리에서 불안하지만 현재를 긍정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주변의 시선에서 의미 없이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고 싶구나, 머릿속이 아닌 입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걱정이 사라진다는 듯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곤경에 처해 있으면 있는 힘껏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면 괜찮다. 수짱과 사와코가 느끼는 나이를 먹는다는 불안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워지자. 스무 살에는 마흔이 멀어 보이고 그 나이가 되면 늙어버렸다는 것에 우울해질 것 같았지만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나이를 의식하고 지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신분을 증명할 때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일 때, 약봉지에 쓰인 만 나이를 볼 때나 와, 나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는 정도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동지애를 느낀다, 수짱과 이곳의 나는. 그녀와 내가 할머니가 되는 꿈을 이룰 때까지 서로의 오늘을 응원해 줄 것이다. 대단한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평범한 시간을 가졌음에 감사해 하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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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지 않을 자유 - 행복한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본격 싱글학
이진송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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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의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넘기기 전 영롱한 책 표지를 보라. 거기에는 '니 연애 니나 재밌지'라는 말이 쓰여 있다. 이 문구를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있었다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읽을 자격이 충분히 되니 얼른 책을 넘겨 보시라. 지금 사랑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이진송은 자신을 비연애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여기를 봐도 연애. 저기를 봐도 연애. 모두 연애에 환장한 것 같은 세상의 풍토에서 연애를 하지 않을 자유를 외친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연애주의자들을 한 방에 쓰러뜨릴만한 펀치를 날리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나 소나 고양이나 연애를 외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연애로 묶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소비의 시대가 열린다.

왜 그달의 14일은 무슨 데이로 지정되어 있을까. 상술이라고 하지만 나만 초콜릿, 사탕, 빼빼로를 못 받으면 바보 같다. 그래서 누가 준척 홀로 부스럭 초콜릿 봉지를 까야 할 것 같은. 심지어 연인에게 충치를 유발하는 달다구리를 못 받으면 홀로 짜장면이라도 먹으라고 부추긴다. 상술의 끝판왕이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말한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연애를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를 알아달라고.

안 하는 걸 못하는 것으로 간주해 끊임없이 연애지상주의를 외치지 말아 달라고.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연애에 대한 환상에 자리 잡은 폭력성을 알려준다. 물론 재치와 풍자와 유머는 필수로 장착해서. 남녀가 좋아해서 만나는 관계 안에서조차 사랑은 권력으로 구애라는 이름은 스토킹으로도 바뀔 수 있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로 금방 탈바꿈해서 약자를 생산한다.

연애만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가치의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한줄기 등불 같은 책이다. 영화, 책, 예능, 드라마, 웹툰을 예시로 연애가 가진 환상과 문제점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즐기던 나를 한 대 때려줘야 할 것 같다. 여자들이 가지는 우정을 폄하 당하는 점과 나쁜 남자 콘셉트가 가지는 이중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삼포 세대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이름 지어 부르기 전 왜 그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는지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포기하게 만들어 놓고 왜 연애, 결혼, 출산을 안 하냐고 눈알을 부라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가만히 냅두자. 안 하겠다는데 자꾸 하라고 그래야 너도 이 사회에 어울리는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이런 말의 저의는 돈을 쓰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로 '홀로'를 괴롭히지 말자.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는 연애를 부추기는 사회에 날리는 일침, 이침, 삼침, 똥침이…여기저기에 있다. 읽다가 윽 하고 내 엉덩이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알 건 알아야 한다. 각 잡고 드라마 좀 보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연애 끼얹기가 나와서 매번 시청을 중단해야 했다. 서사 구조에도 안 맞는 연애가 난무했는지 이제 조금 알겠다. 연애를 하라고 그래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라고 하는 요구에는 저열한 자본주의의 소비 조장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해야 할 자유보다 하지 않을 자유를 이야기하기에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최적의 맞춤 끝판왕 웃음 첨가물(읽다가 나자빠져도 난 몰라)의 책이다. 기승전연애주의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데 그런 사람들은 책을 안 읽을 테고 오늘도 너는 왜 애인이 없니 소리를 듣다가 미치지 않기 위해서 책의 제목인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발견해 어지러운 마음을 치유하려는 이들이 읽으며 소리 내어 울다가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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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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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가 있다. 부림 지구는 그런 곳이다. 제철소가 없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부림 지구에는 제철소가 있을 줄 알았다. 쇠락과 몰락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강영숙의 소설 『부림지구 벙커X』에서 배경은 중요한 비율로 차지한다. 주인공 유진이 끝끝내 떠나지 않은 부림 지구로 들어가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림지구 벙커X』는 지진이 찾아온 이후를 그린다. 건물이 흔들리고 땅이 꺼졌다. 사람들은 일상을 빼앗겼다. '나는 벙커에서 살고 있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부림 지구 숲속 안에는 벙커가 있었다. 누가 만들었을까. 재난이 찾아올 줄 누군가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지진이 일어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벙커에 모여 살게 된다. 유진은 가족이 없다. 대신 지진 이전에 함께 살았던 친구 수진을 애타게 찾는다. 가족이 아니면 실종자 명단을 확인해 줄 수 없음에 절망한다.

유진이 벙커X에 살게 되기까지 소설은 안타까운 상황 묘사를 아끼지 않는다. 『부림지구 벙커X』는 다른 지점의 재난 소설이다. 재난 이후를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이 서로를 위하는 연대는 찾아볼 수 없다. 대장을 중심으로 벙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벙커에서의 삶은 최악이다. 정부 방역 요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바깥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부림 지구에 남은 이재민들에게 몸속에 칩을 심으라고 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오염이 되지 않은 N 시로 데려다주겠다는 선전도 한다. 모든 것이 파괴된 부림 지구에 희망은 없다. 『부림지구 벙커X』는 어설픈 희망의 불씨를 남기지 않는다. 벙커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실종이 되기도 한다. 나이 마흔여섯의 독신 여성인 유진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이후의 삶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여성으로서 재난의 상황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건조하게 나열한다. 소설 속 재난의 모습은 사실 놀랍지는 않다. 강영숙도 그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재난과 파괴라는 설정은 이제 현실의 사실성 때문에 미약하다. 『부림지구 벙커X』에서 지진은 상징으로 쓰인다. 우리는 오늘 이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매일 확인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시간에서 유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이란 것이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강영숙은 유진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으로 이상한 희망의 형태를 보여준다.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를 애착하는 유진. 유진의 선택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이 없다는 은유를 보여주는 『부림지구 벙커X』. 어쭙잖은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지 않는다. 모두를 깊은 우울에 빠지게 하면서 누구도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게 만드는 역설을 소설은 보여준다. 『부림지구 벙커X』를 읽고 짜고 매운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내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남아 있는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소설에서 보여주는 상황은 멀리 있지 않다.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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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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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일주일에 만 원을 주고 행복을 느껴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만 원을 알뜰살뜰하게 썼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물은 정수기 물로 마시고. 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얼마간의 돈을 받았다. 지금은 그런 예능이 힘들겠지. 겨우 국밥 한 그릇 먹고 편의점 가서 커피 우유를 사 마시는 정도. 시집 한 권을 사면 시집 한 권만 손에 남는 정도.

내 지갑 속 만 원이 누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보았던 구절. 현자가 문제를 낸다. 이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물건을 사가지고 오너라. 천 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서. 뭐야, 치사하게. 천 원이 다 뭐냐. 십만 원은 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라. 나는 현자의 질문을 비웃으며 답을 알고 싶어 서둘러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초를 사 오면 된단다. 초에 불을 붙이면 그 불빛으로 방을 밝히고도 창문 너머까지 밝게 할 수 있단다.

지금은? 내가 했던 사치 중에 하나는 양키 캔들을 산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얼마 안 썼다. 기분 탓인지 그걸 쓰고 나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좋은 냄새가 나긴 나는데 하루 종일 지속되지는 않고 초는 금방금방 닳아 버리고. 무언갈 태우는데 돈을 쓴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다. 소심한 꼼쟁이에게 양키 캔들은 쓰임이 없었다. 자꾸 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없다. 아니 구체적이고 신파적인 이유가 있는데 솔직하지 못한 나는 그걸 글로 쓸 자신이 없다. 아마 이슬아라면 썼겠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뒤늦게 읽었다.

에스엔에스를 안 하는 나로서는 이슬아가 직접 독자를 구하고 자신의 글을 메일로 쏴주는 그런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공짜는 아니고 만 원을 받는단다. 그래서 글 앞에 만 원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쓴 것이다. 나에게 만 원이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돈은 아니고 좋아하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푸짐하게는 아니고 고르고 골라서 사는 정도의 돈. 관리비, 인터넷비, 휴대전화비, 각종 보험료를 내는데 보태는 돈. 만 원의 가치는 지금에서야 아주 미약해서 그걸로는 무얼 다 낼 수는 없고 그저 보태는 정도.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사람은 부지런하고 생각이 많고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구나였다. 2018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만 원을 입금한 이에게 보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때론 힘에 부쳐서 제시간에 보내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는 빠짐없이 글을 써서 보냈다. 아마 그 원동력이란 만 원의 힘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글을 쓸 수 있게 만든 힘은 돈이었을 거라도. 돈은 그런 힘이 있다. 나를 주눅 들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다그친다. 내일 내야 할 돈을 생각하면 오늘의 나는 글이란 걸 쓸 수밖에 없거나 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를 기르고 화분 열 개를 책임지는 사람. 엄마, 아빠,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가 벌어서 교정도 하고 그게 좋음을 알고 동생도 시켜주는 사람. 유럽 여행에 가서 외국인들에게 당했던 추행과 기행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람. 여행의 낭만을 포장하기 보다 자신이 겪은 그 일이 두려움으로 남았더라도 글로 써서 누군가에 들려주는 사람. 자기보다 잘 쓰는 친구의 글을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서 돈을 주고 사서 독자에게 보내는 사람. 그 돈이 친구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서 행복한 사람.

나는 왜 이슬아가 돈에 대해 쓴 부분이 유독 좋을까.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는 그가 돈 때문에 겪은 일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돈이 너무 좋다고도 쓴다. 돈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 올 한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 쪽으로. 담백하게 말하고 싶다. 사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었다. 내게는 그럴 시간이 요즘에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내내 균형이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없거나. 시간이 많거나. 돈이 없거나. 돈이 있거나, 이건 아니네. 늘 돈은 부족한 쪽으로만 있었네.

적당하게 재화와 서비스가 내 삶에는 분포되어 있지 않다. 이슬아 역시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친구를 사귄다.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일들은 무엇이 많다고 해서 알맞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대단하다고 추켜 세울 수밖에. 그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꿈을 꾸고 꿈을 팔면서도 서로가 가진 생활의 안녕을 기원한다. 무언갈 쓸 수 있어서 좋다고. 친구와 자신은 쓸 줄 아는 사람이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두껍다. 6개월치의 글이 묶여 있어서. 나는 책을 캐릭터 인형 위에 올려놓고 누워서 읽었다.

어떤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의 시력이 0.1111…이 좋아지곤 한다.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은 비비 꼬여 있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하는데 그걸 눌러주는 게 책이다. 책을 읽으면 나보다 잘났는데 꼬여 있지도 않고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을 가진 타인들이 세계를 정의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현상을 이야기해 준다. 난 그걸 읽으며 착하게 살고 돈에 대해서는 관대해지자면서 약간의 소비를 즐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으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나 대신 솔직해줘서 고맙기까지 한다.

내 지갑 속 만 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돈으로 누군가가 아닌 이슬아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괴한 확신이 들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통해서. 한 달에 만 원을 내면 내 메일함으로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직조한 이슬아의 일상이 꽂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힘을 내거나 힘을 잃거나 하면서 하루를 살 수 있다. 되도록이면 힘을 낼 수 있는 쪽으로 버텨보는 것은 수신인인 나의 몫이겠지만. 초를 사서 방안을 밝히는 대신 글을 사서 마음과 오늘을 밝히며 내일을 기대해보는 21세기적 고통 치유제로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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