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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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리고고기다리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기쁘다. 기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최근 들어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잔여 백신이 있을까 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숫자 0이 뜰 때마다 나중에 차례가 되면 맞지 뭐 애써 아쉬움을 기대로 돌려놓았는데. 순서가 돼서 예약을 하고 친절하게 맞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병원에 가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얌전히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1차와 2차까지 접종을 끝마쳤다.


1차 때보다 2차가 더 아팠다.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근육통이 오고 어지러웠다. 진통제 세 알을 먹고서야 괜찮아졌다. 3일 째인 오늘, 팔만 욱신거리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헛소리를 섞은 개소리를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할란다. 나는야 백신 접종자니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일상생활이 일상생활이 아니게 됐을 때 오늘을 희망할 수 있었나. 아무래도 그건 먼 미래의 일쯤으로 여겨 우선 나부터 조심하면서 지내야지 했다.


원래도 잘 안 돌아다니지만 더 집에만 있는 사람이 됐다. 내가 움직이면 내가 움직여서 혹시나 병을 옮길까 봐 또는 병에 옮을까봐 두려움이 가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보내오던 안전 문자에서 확진자 동선을 보며 긴장했고 마음을 졸였다. 슈퍼, 미용실, 학원, 택시, 버스, 회사. 그곳은 늘 내가 우리가 다니던 곳이었고 다녀야만 했던 곳이다. 일상을 격리 당했고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까지 지냈다.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확진자가 다녀갔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를 받고(동선이 겹치지는 않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횟수를 늘렸다.


황정은의 산문집 『일기日記』는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소설가의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황정은의 문체를 좋아한다. 생략과 생략으로 이어진 문장.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으로 소설 읽기를 마칠 수 있는 소설을 쓰는 황정은. 2004년 1월 1일,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버스터미널에서 샀다. 그리고 발견한 황정은의 소설, 황정은. 누런색의 공책에 데뷔작 「마더」의 감상을 썼다. 앞으로 응원해야지. 소설집이 나오면 사야지.


『일기日記』를 읽다가 끝부분을 읽어가다가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내가 아는 황정은이 맞나 싶어서. 이 말은 잘못됐다는 걸 안다. 나는 인간 황정은을 모른다. 다만 그가 쓰는 소설을 읽고 어떤 부분을 짐작하는 정도이다. 이 책은 표지에 '황정은 에세이'라고 적혀 있는데. 소설이 아닌데. 왜 나는 『일기日記』를 소설로 읽고 싶을까. 차라리 소설로서 허구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호를 해주고 싶은 걸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아픈 책이었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황정은의 대답은 허리와 척추 건강이다. 의자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의자에 앉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면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내내 그래야 한다면 힘들고 막막한 일이 될 수 있다. 뭣 모르던 시절, 사무직이나 할까 그랬다. 역지사지를 모르고서.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이는 같잖은 생각으로. 세상에는 내가 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이 고되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모든 이들이여, 힘을 내시길.


산보, 파주, 동거인, 세월호, 일기, 작약, 종이책, 전자책, 문장이라는 단어를 『일기日記』를 읽으면 만날 수 있다. 하루 종일 숫자를 들여다보고 숫자를 생각하는 내가 혹은 당신이 『일기日記』를 펼치게 되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쓰는 사람도 이해했을까 싶은 문장이 아닌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문장으로 담담한 어조로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어려운 시절을 들려준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마스크를 쓴 채로 수업을 하면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의아해하던 시간을 지나 마스크가 한 몸이 된 듯 살아가는 지금까지 힘든 티를 조금만 내면서 잘 버티고 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만큼 힘든 티를 내는 것. 많이 힘든 건 일기에 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아닌 곳에 일기를 쓴다. 연필을 눌러 공책에 쓰거나 비공개로 쓰면서 혼자만 들여다본다. 안 힘들다고 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이 들어 하루를 포기할까도 마음먹은 우리, 나였다. 소설가 황정은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조카를 자주 보는 대신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고 좋은 책상을 사서 보내준다. 2014년 4월 16일이 흐르고 매해 4월이 되면 목포로 떠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나의 안녕은 곧 당신과 우리의 안녕이라는 걸 배웠다. 전 국민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었다는 뉴스를 보며 벅차하면서 아프다고 징징대는 나를 위해 비싼 샤인 머스캣을 사서 안겨주는 아름다운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일기를 쓰는 오늘이 있다는 것에 행복과 안도를 느낀다. 무사한 오늘을 기록으로 남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지랄맞은 일에 화를 내지 않고 심호흡을 하고 참아내면서. 좋게 말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짜증이나 내지 말아라. 네가 하기 싫은 걸 왜 나에게 시키는 건데. 이럴 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썩은 내 표정을 반은 가릴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나의 본성(일희일비하고 짜증쟁이에 소심하고 불안한)을 드러내지 않고 바닥에 겨우 남은 사회성을 긁어모아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잠깐 웃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황정은이 친필로 쓴 '평안하시기를'이라는 문구를 들여다본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 닥쳐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일상인인 황정은이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한다. 내일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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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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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난주였다. 그러니까 지난주라고 쓸 수 있는 건 지난주를 지나서 이번 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다행. 다행이야. 못 버티는 건 없지. 버틸 수 없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인 거지. 쉴 때도 일 걱정을 한다고 하면 유난 떤다고 할 건가. 그건 아니고. 원래 나는 불안에 걱정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고 쓰면 다 인가.


오늘 글은 대체 왜 이럴까.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 요즘에 드는 생각이란 카프카가 대단하다는 것.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어떻게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쓴 걸까. 매일 꾸준히 꼬박. 그렇게 대작을 써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집에 오면 겨우 씻고 눕는다. 브이로그에 나오는 사람처럼 저녁 시간에 밥해 먹고 공부하고 책도 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의 일상만 들여다본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싶다. 책을 사놓고 펼쳐 보지도 않고 머리맡에 놓아 둔 채 누워 있다. 내일 업무에 대한 걱정이나 하면서.


특별한 일처럼 굴지 말고 일상의 일처럼 여기라는 조언을 듣고서야 마음이 풀어졌다. 손원평의 소설집 『타인의 집』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문했던 시간들이 그려진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현실을 살아가는 영감을 받는다. 나약하고 불안해서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일단 부딪혀 봐야지 하면서도 집으로 분홍색 이불이 깔려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옆으로 누워 색온도를 조절해서 전자책을 읽는다.


작고 네모난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타인의 집』에는 관계가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혼 직전에 있는 부부. 아버지가 미운 쌍둥이들. 엄마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운 엄마. 관계가 어그러진 노년의 부부. 1인 가구로 사는 노인. 전세 아파트에서 남과 같이 사는 여성. 아픈 형을 간호하는 택배 기사. 문학을 꿈꾸는 여학생. 책방 주인과 손님. 주위를 둘러보면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집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사람. 쉽게 집을 나서지 않아 책에서 만난다. 나는.

표제작 「타인의 집」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서울에서 월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을까. 질문은 바보 같다. 절대 없다는 답이 분명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방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치른다. 쾌조 씨라는 아이디를 가진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1차 면접에 통과해야 집을 볼 수 있단다. 애인과는 깨지고 회사에서 잘리고 살던 집에서는 월세 인상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런 서사 흔한가. 지겨운가. 쾌조 씨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전세에 사는데 남는 방을 주인 몰래 빌려주는 거였다.


소설의 결말은 짐작할 수 있었다. 꽉꽉 닫힌 결말. 발랄한 소설이 될 줄 알았는데 『타인의 집』에 실린 소설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발랄한 소설을 기대한 건 생활이 그렇지 못해서 소설에서나마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다. 걱정을 걱정한다. 내내 걱정만 하다 지낸 휴일의 결론이다. 걱정을 해서 해결을 하는 게 아니라 걱정이 걱정을 낳는 꼴이다. 지금을 잘 보내서 저녁 6시 이후에 기운을 내서 누구라도 읽으면 흔한 이야기네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외계라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오늘의 내가 두려워하는 일을 보면 뭐야, 먼지 같은 일에 연연하고 있네 하겠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별 일 아니라는 주문을 건다. 오늘 아침에는 머리를 말리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 창작론 시간에 소설가 교수가 했던 말. 대학교 2학년 학생 치고 문장을 잘 쓴다. 어떻게든 그동안 들었던 칭찬의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출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갈 힘을 마련하기 위해 몸이 반사 신경처럼 칭찬을 찾아내고 있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이 가진 불온함을 담아낸다. 간절히 문학을 원하지만 문학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생활을 포기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손원평이 그리는 내일에는 어떠한 희망이나 위로가 없다. 오늘에서 내일은 이어지지 않고 단절된다. 오늘로서 끝을 말한다, 『타인의 집』은. 그러니까 올지 안 올지 모를 내일은 기대하지 말라고. 걱정을 하는 이유는 내일이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서였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오늘의 너. 그것만 머릿속에 새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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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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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바뀌었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 실린 소설 중 웃기고 기막히고 서글프게 다가온 소설은 「미스 김은 알고 있다」였다. 예전 같았으면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지 의심스러웠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소설 속 상황은 약하고 순화된 것임을 알아채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새삼 감탄했다. 어찌어찌 죽지 않고 버티며 살아나가는 나 자신과 모든 이들의 시간을.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현실을 조망하는 조남주의 소설을 누가 뭐라든 굽히지 않는 문학적 소신을 가진 자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따라 읽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는 말이 있고 나서야 나의 이야기는 부끄러운 게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조남주가 그리는 여성의 이야기는 과장 혹은 지나침이 아니라는 것 또한. 누굴 욕보이거나 추궁하거나 비난하는 의도에서 쓴 것이 아님에도 소설은 문제가 되었다. 문제가 아님에도 문제로 만들어 문제를 낳게 하는 악순환.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여성 화자가 중심이다.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을 읽는 누구라도 감정과 상황을 이입해서 읽을 수 있다. 누구라도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처지가 되어 볼 수 있다는 장점. 어찌어찌 한 달 업무를 마무리했다. 가장 중요한 급여 정산을 하고 명단을 이메일로 보냈다. 확인하시고 각각의 계좌로 급여를 보내달라고 하는.


바로 몇 초 만에 반송 메일이 왔다. 인수인계 자료에 적힌 메일 주소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확인도 안 하고 급하게 보낸 게 아닌데. 몇 번이고 숫자와 알파벳을 확인했는데. 왜 돌아온 건지. 이럴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메일을 보냈는데 반송이 됐다. 주소가 맞냐. 물었다. 적힌 게 틀렸다. 소문자 i이 아니라 숫자 1 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잘못 적어 줄 수도 있지. 그러나 메일 주소는 여러 곳에 틀리게 적혀 있었다. 거래처 목록과 인수인계 자료에도.


또 어떤 날에는 분명히 입력해 놓은 자료인데 전산에는 사라져 있었다. 내가 입력해 놓고 삭제를 눌렀을까. 그러기에 나는 끙끙대며 입력해 놓은 기억이 있는데. 알 수 없다고 넘어갔지만 찜찜했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를 읽고서야 그간의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일은 가장 많이 하는데 직급은 없고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회사 내의 전설 같은 인물 미스 김의 서사는 나에게 황당함이 아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속 시원한 납득을 선사했다.


병원 홍보대행사에서 온갖 일을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잘리는 미스 김의 퇴사 이후 회사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공유 폴더에 있는 파일들의 상태가 이상해지고 국어사전이 사라지고 리모컨을 감싸고 있던 랩이 벗겨져 있고 음식점에서 받은 쿠폰도 사라져 있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한 분실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다. 모두들 미스 김이 CCTV를 피해 들어와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말하진 않는다.


이른바 미스터리 서스펜스 회사물인 것이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는. 누구의 악의인지 알지만 함부로 악의에 접근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조남주는 이 소설을 수정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밝힌다. 매일 출퇴근하던 시절의 분노와 의문을 담았다고.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거 알고 있지만 매일 나는 평일 9시에서 6시까지의 일을 떨치지 못하고 집까지 가져와 스스로를 괴롭힌다. 벗어나고 싶다. 『우리가 쓴 것』은 네가 느꼈던 감정은 망상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소설집에는 지금의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담아낸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까지 이어지는 생존에의 공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조남주는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간 지 이 년째.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마지막 단편 「첫사랑 2020」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지금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지금은 과거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지를 말하지 못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를 힘없이 말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아이들은 마스크 안에 감춰진 웃음을 찾아내고 헤어지는 마당에 그때 준 마스크를 돌려달라고 찡찡대고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은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나는 좀 무섭다. 아니 많이 무섭다. 내가 하는 일이 틀리고 실수가 되고 잘못으로 확인될까 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질까 봐. 하루에도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열두 번도 넘게 든다. 이제는 안다. 포기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걸.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멈추는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일단은 계속한다. 내가 멈추지 않아도 상황이 강제 종료를 알릴 수도 있기에. 그때가 되면 멈춘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의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포기와 계속 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되었다. 내 곁에 소설 속 인물들 같은(할머니, 엄마) 사람은 없지만 어찌어찌 자라서 살아가고 있다. 어찌어찌의 시간에는 소설이 존재한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카드 사용 내역이 간간이 날아오는 것으로 생사를 확인하며 서로의 안녕과 다정을 빌어주는 소설 속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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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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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는 확신의 문장을 쓰고 싶지만 이렇게 되는 게 어떤 건데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 수정한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지금의 나의 상황이다. 이렇게 가 대체 뭐냐. 그건 나 자신도 예측하기 힘든 이상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일보다 내일과 모레의 닥치지도 않을 미지의 미래를 두려워하기에 급급했다.


현재의 나는 그저 오늘은 무사히, 별일 없이 지나간 것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된 멋지고 근사한 나를 상상하기에 바빴을 터이다. 어른이 된 현재의 우리들은 멋지고 근사한 건 빼고 멀쩡한 나이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되지 못함에 자책하지 않기를, 모두들. 그럴듯한 인생의 정의를 내리고 싶지만 알 수 없다는 모호한 말 밖에는 인생을 설명하지 못한다. 절망과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애써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있기를.


말도 안 되는-적어도 내 기준에서는-직업을 선택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지내고 있을 때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를 읽었다. 미조가 겪는 불합리함과 막막함에 나를 투영했다. 소설을 읽는, 읽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작품이었다. 그래, 나만 힘든 건 아니고 나만 바보 같은 건 아니고 나만 부조리에 빠진 건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희망을 건져내고 기쁨을 구해내고 있잖아.


『당신의 4분 33초』를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줄 알았다. 잘하는 게 그닥 없는 나는 그나마 할 줄 아는 거라곤 한자리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거의 누워서 읽지만) 책을 빨리 읽어낸다는 것이다. 지친 몸을(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싶었는데. 진짜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몸은 지쳐 있다. 그 좋아하는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눈이 감겨서) 눕히고 『당신의 4분 33초』를 펼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역시. 나의 안목은 최고야.


곧바로 이야기로 직진하고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중간중간 유머러스함을 퍼트려 놓았다. 인물이 겪는 상황은 딱 봐도 절망스러움인데 어찌 된 게 고통을 호소하거나 죽겠다고 징징대지 않는다. 파괴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건 커트 보네거트 식으로 말하자면 유머와 농담밖에는 없다는 걸 아는 듯한 말과 행동을 이어간다. 소설을 읽어가다가 우리의 주인공 이기동은 소설가 이서수구나 유레카. 김밥 집을 하는 엄마는 아들 이기동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다.


이기동의 성적은 평균 60점대를 맴돌고 있었는데도. 그걸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는지 엄마는 기동을 놓지 않았다. 결국 재수를 시키기로 하고 아들을 노량진 학원으로 보낸다. 거기서 기동은 서울대를 목표로 했지만 수능 중간에 위경련을 일으켜 시험에 망한 일등과 재수 학원 지박령 최장기수 누나를 만난다. 겨우 대학에 들어가 무논리를 앞세워 남과 대화만 하면 싸우는 선배와 썸을 타다가 군대에 간다.


무얼 하려다 실패만 맛보는 이기동과 소설가가 되려 했지만 음악가가 된 존 케이지의 삶을 나란히 두고 『당신의 4분 33초』는 흘러간다. 소설을 다 읽고서야 제목의 근사함을 확인했다. 음악의 혁명을 꿈꾸는 존 케이지는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라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4분 33초 동안 앉아만 있다. 관객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연주장의 모든 소음은 소리가 된다. 그리고 연주된다.


소설 읽기가 금지된 세상의 이야기는 어떨까. 저 중학생이 주인공이고, 뭐 어때. 재미로 쓰는 거지. 아무도 내가 뭘 쓰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까 아무거나 써도 돼. 심지어 재미를 느껴도 돼. 촌스러운 문장이나 지루한 문장을 지울 필요도 없고 손 가는 대로.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제 해방시켜줄 때도 되었지. 5년씩이나 가둬뒀으니.

내친김에 그는 매점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연습장과 볼펜을 사 왔다. 그리고 열람실 의자에 앉아 첫 번째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아무런 심사 없이. 볼펜이 저 혼자 미끄러져 달려갔다. 그는 받아 적기만 하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더 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딴 건 상관도 없었다. 오로지 다음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고민뿐.

(이서수, 당신의 4분 33초 中에서)


이기동은 죽은 아버지가 남긴 노트를 읽는다. 앞 장을 뜯어서 신춘문예에 응모한다. 탈락. 이야기를 다시 배열해서 응모한다. 탈락. 이번에는 반은 자신이 쓰고 반은 아버지가 쓴 내용을 보낸다. 합격.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다, 기동은.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그것만 빼고 다른 게 된다. 이 나이 정도 됐으면 책 한 권은 냈을 줄 알았는데. 책만 읽고 있다. 책 쓰는 거 빼곤 뭐든지 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 모두가 책을 쓰기 위한 여정이라고 한없이 너그럽게 생각하려다가도 자괴감에 빠진다.


최장기수 누나와 결혼을 하고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청탁은 오지 않는다. 엄마와 김밥 집에서 일하는 기동은 도서관에서 존 케이지가 쓴 책을 읽는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세계에서 기동과 존 케이지는 만난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온갖 소리를 듣는 것으로 연주되는 〈4분 33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그건 실패가 아닌 훌륭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책을 내지 못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게 조롱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싶지도 않지만 졸업한 학과를 들먹이면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수시로 듣지만 나는 내가 읽어 가는 책으로써 주눅 들지 않는다. 네가 보기에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괜찮다. 『당신의 4분 33초』가 말해주었거든. 당신의 연주는 훌륭하다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연주를 누군가는 듣고 있다고.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나 자신이 위로를 받기 때문에 쓴다. 이기동의 깨달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쓰고 싶은 대로 쓴다는 거. 희망적이게도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당신의 4분 33초』는 부디 당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책이다. 당신이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누가 관심과 성원을 보일 것인가 진지하게 묻는다. 타인과 나에 대한 쓸데없는 비교는 넣어두고 나와 세계에 관한 사투를 이어가기를 이기동과 이서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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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세상의 기쁜 말 -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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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말자고 매일 다짐 해놓고. 실체가 없는 남을 신경 쓰는 나.) 일하는 게 힘들다.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건지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내 일은 물론 잘해야 하고 남의 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한다. 남의 돈 벌어먹고사는 건 쉽지 않다는 진리를 매일 절감한다. 쉬는 날 저녁에 전화해서 나를 남과 비교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 업무 시작하려고 했다가 육탄전에 끼기도 하는. 영화로 따지면 액션, 서스펜스 장르를 찍었다고 할까. 종일 땀이 흘러서 전에 했던 업무인데도 까먹어서 헤맸다. 오랜만에 식은땀을 흘렸다. 어떤 말들은 아프다. 그리고 슬프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말들이 더 많은 세계에서 간간이 버티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가지 통찰한 건 필요없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말이 필요하지 않다.


중학교 때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만들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막연히 동경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글과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의 바람. 출판사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이건 정말 안 좋은 생각인데. 대학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갔으면 저 정도의 직급이 됐을 텐데, 미련이 철철 넘치는 생각을 한다. 인생 쉽지 않고 죽음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에 후회나 자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으며 고통은 지나갈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고통이 온다 해도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는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했다. 책의 제목을 잘 지었다고 감탄한다. 세상은 슬픈데 말은 기쁘다. 제목을 보고 어찌 사서 읽지 않을 수 있을까.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껴안고 사는 우리의 마음을 저격한다. 어디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은 어떤 게 있을까 탐험해 볼까. 관계를 맺는 건 귀찮지만 사람들이 어떤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한 이중적인 나에게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탁월한 책이다.


자신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단어 하나를 빼고 자신을 이야기해보자고 책은 시작한다. 라디오 PD인 정혜윤에게는 라디오를 말하지 못하게 하고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책 역시 말하지 못하게 한다. 중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을 가지고 와야 한다. 설명은 길어진다. 듣는 이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잘 듣는 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삶의 중요 단어를 맞힌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는 정혜윤이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부, 낚시꾼, 시장 상인, 세월호 유가족, 뒤늦게 글을 배운 할머니, 콜럼바인 총기 사건의 생존자. 세상사를 책으로 배운 나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허튼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사람과는 가급적이면 대화를 나누지 말 것. 방어벽을 친다고 열린 마음으로 살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한 번뿐인 삶에서 소중한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인 걸. 이미 너무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어 왔기에. 현실에서 만난 이들에게 자주 이토록 실망하지만 나는 책에서 그토록 깊은 내면을 가진 그들을 만나 환호한다.


헤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 중에 "우리가 가진 것은 목소리뿐(All I have is a voice)"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내게 중요해요. 나는 사회의 통념대로라면 전문가가 아니지만 아까 말한 대로 내 인생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예요. 우리는 알아야 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를 문제로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中에서)


콜럼바인 총기 사건의 생존자 헤더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을 자신의 인생으로 끌고 온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을 때 헤더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의 전문가는 타인이 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언어가 없는 이들은 얼마나 슬프고 초라한가.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인상적인 사람은 야채장수 언니였다. 그이를 만나기 전 정혜윤은 떡집 주인을 만난다. 주인은 엄마의 떡집 좌판을 물려받았다. 시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잘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잘 듣기만 했는데 시장 사람들은 떡집 주인을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였다. 그이가 소개해 준 야채장수 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다 우울증 탈출법을 찾았다. 일기 쓰기, 동화책 읽기, 천 원짜리 플라스틱 컵에 커피나 차 마시기. 세 가지 방법으로 우울증을 이겨냈다.


쓰기, 읽기, 마시기. 한 사람의 인생을 절망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잘 자기. 잠이 오지 않아도 일단은 눈을 감고 있기. 머릿속에서 자라는 불안과 상념을, 그건 그것대로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당신의 고통을 위로하고 싶지 않다.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그런 말을 해주는 책이다. 당신의 삶에 어떤 말을 놓아 둘 것인가. 그 말을 가지기까지의 서사를 정혜윤은 귀가 배지근해지도록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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