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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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여름이 찾아오겠지. 매미, 울고. 모기, 도 울고. 더워하는 나, 도 조금씩 우는. 여름이 찾아오겠지. 그런 여름이 찾아와 주면 좋겠지. 여름에는 생일도 있어서 맛있는 거 먹고 선물을 받아야 하니까. 휴가라고 며칠 쉬기도 하겠지만 의미 없겠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집에만 누워 있을 테니까. 그런 여름이.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을 읽을 때는 휴대전화를 만지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조금 읽다가 휴대전화를 보다가. 그러다 다시 책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 짧은 동영상의 세계여. 너는 개미지옥이구나.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너무 많은 세상의 알림들. 내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는 듯이 오는 알림들. 할인쿠폰 한 번 받아서 싸게 사겠다고 채널 추가. 차단하는 법 몰라서 계속 알림을 받고 있네. 


다시 여름 이야기. 올해에도 여름을 보내면 좋겠다. 수박이 있으니까. 커다란 수박을 잘라서 김치통에 넣어 놓고 조금씩 꺼내 먹는 시원의 시간을 다시 보내면 좋겠다. 김금희의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를 읽고 들으며 보내는 여름을 기획한다. 소설을 틀어 놓고 열매와 양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 그래, 그런 슬픈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말자."

(김금희, 『첫 여름, 완주』中에서)


라는 문장을 입으로 되뇌면서 여름 한 계절을 지내보는 것.


듣는 소설이라는 기획으로 처음 나온 『첫 여름, 완주』는 읽는 동안 인물들을 상상하는 재미를 준다. 종이책의 활자로 내가 그들을 읽어 내지만 소리로 녹음된 그들의 이야기는 다를 테니까. 글자를 읽고 눈을 감고 그들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함께 살던 수미 언니가 돈을 빌려서 잠적했을 때 열매는 '위생 상태 등은 양호' 하지만으로 시작되는 검사 결과지를 받게 된다. 


우울증의 신체화가 일어나 성우임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정신과를 찾아가자 담당자가 묻는다.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있냐고. 있는데 최근에 돈을 빌려 가서 증발했다고 하니 담당자는 간단하게 사연을 정리한다. '금전 사기'.


'금전 사기'라고 하자 사기의 의도성은 없었다고 수미를 변호하는 열매. 보증금으로 월세를 다 까먹은 열매는 짐을 싸서 수미의 고향으로 향한다. 대책 없는 방문이었지만 열매의 여름은 수미의 고향 완주에서 무르익어간다. 시들시들한 열매는 완주의 희한한 기운을 받아 이름처럼 열매를 맺기 직전까지 소생한다. 완주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니 이상해 보이지만 성실하고 슬픈 사람들이. 


매년 찾아오는 여름은 그 해의 첫 여름이다. 첫 여름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런 슬픈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의 씩씩한 아이유의 노래 가사처럼 슬픈데도 웃어 보이는 사람들이 『첫 여름, 완주』에 있다. 열매의 여름에 찾아온 사람들로 나의 여름까지 환해질 예정이다. 


만나고 이별하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는 여름 안에서 다시 만나면 즐거운 이야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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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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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은 태풍이 오는 날 동명이를 잃는다. 죽은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절규한다. 그 이후 상심에 젖어 있던 애순은 둘째 아들 은명이의 말로 다시 살 힘을 찾는다. 도통 애순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은명이. 엄마가 애기 안 데리고 와서 화났어. 묻는다. 은명은 자신 때문에 동명이가 죽었다고 말을 꺼낸다. 


유독 그 대사가 사무쳤다. 엄마가 애기 안 데리고 와서. 애기. 애기. 드라마는 제주도에 사는 요망진 반항아 애순과 무쇠 관식의 삶을 사계절의 아름다움으로 풀어낸다. 좋은 날도 슬픈 날도 있다. 막내 동명이가 갑자기 떠나고 애순과 관식은 실의에 잠기지만 남은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는다. 다시 살아가야 한다.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와 인선의 목소리로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한다. 광주의 그날들을 소설로 쓰고 나서 헐어버린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하와 만주와 베트남을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제주도에서 목수 일을 하는 인선. 두 여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주의 고통을 지금 여기로 펼쳐 놓는다.


그 섬에는 바람이 나무가 새가 숲이 사람이 있었다. 서로를 사랑하고 애틋해 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애기를 예뻐하면서 막내를 귀여워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애기를. 친척 집에 간 언니를 기다리는 막내를.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도 살아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했다. 


살아남는 게 중요한가. 


살아가는 게 중요한가. 


애순이 죽은 동명이를 끌어안고 오열할 때 그 섬의 바다도 함께 울었다. 바다가 애기를 데려갔는데도 바다에 기대어 살아갔다. 인선의 부모님이 겪어야 했던 죽음에 애기와 막내가 있었다. 애기라는 말에 내내 마음이 아렸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동안과 읽고 나서 한참이나 가슴을 쓰다듬어야 했다. 고통을 느껴야 살 수 있다는 인선의 오늘.


왜 이렇게 슬픈 일들만 일어날까. 슬픔 또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아프고 슬퍼야 살 수 있다는 건데.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을 때 나의 힘만으로는 오늘을 버텨낼 수 없을 때 미안한데 죽은 자들을 떠올린다. 견딜 수 없음에 내가 서 있을 때 나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음으로 데리고 와준다. 


내내 작별하지 않은 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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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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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예소연의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의 등장인물 동이와 란 그리고 석이는 지난 시간을 두고 그렇게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과거는 오해투성이였다. 서로를 미워하다가 오해하고 끝내 멀어지고야 말았다. 가난한 말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 또한 남는다. 


동이는 혜란과 석이를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다. 4개월간 봉사 활동을 하면 평균 학점을 이수하게 해주며 체류비까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 팀이 된 그들은 캄보디아로 떠난다. 바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시간은 흘러간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다가도 조금씩 어긋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해에서 오해를 하기까지. 반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오해를 하다가 이해를 하는 것으로. 이제 안다. 이해나 오해의 절차도 없이 서로를 미워하는 힘으로 살아간다는걸. 


바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행사를 치르며 셋은 바다 위에서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그 무력한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원 구조라는 오보 뒤에 피맺힌 절규의 모습을 봐야 했다. 아직도 배가 침몰한 원인과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11년의 시간이. 


그리고 또 죽음이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즐기러 간 것뿐이었다. 더위는 사라지고 가을의 서늘함 속에서 내일이 아닌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혼잡할 것이라는 상황 예측이 가능했고 신고는 잦았는데 출동은 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영원에 빚을 져서』는 세 사람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죽음을 어떻게 오해하지 않을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서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어야 했다. 바울 학교에서 만난 학생 삐썻은 캄보디아 프놈펜 물 축제에서 일어난 죽음을 들려준다.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기 위해서 다리 위로 몰려들었다. 그 죽음과 이 죽음은 다른가. 


어떻게든 죽을 수 있다. 동이는 죽은 엄마를 위해 꺼삑섬의 위령탑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엄마의 평안을 위해. 그러다 되묻는다. 엄마의 평안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나. 우리는 영원할 수 없는 나약한 삶에게 빚을 지고 산다. 대출이자와 원금은 일해서 조금씩 갚으면 되는데 오해해서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와 죽은 사람들과 나에게 진 빚은 어떻게 갚아 나가나. 


오늘 내가 괜찮고 무사한 것으로 갚아 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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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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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서른 일곱해나 같이 사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라니. 스무 살이 넘어서도 엄마와 함께 살다니. 박선우의 장편소설 『어둠 뚫기』를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열 살이 되던 해 강제로 엄마와 헤어지고 내내 단 한 달도 같이 살지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냈다. 그토록 함께 살고 싶었는데 막상 같이 살려고 했다가 우리의 너무 다름에 도망을 쳐 버렸다. 


『어둠 뚫기』를 다 읽었더니 꿈에 엄마가 나왔다. 살아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 치우지도 않은 집에서 나에게 자신의 옷을 주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이었지만 유행이 지난 옷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그랬는데 꿈에서도 그러네. 엄마. 엄마가 준 옷은 몇 벌 남지 않았어. 꿈에서라도 그렇게 나를 챙겨줘서 고마워. 


내 이야기는 이쯤하고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둠 뚫기』는 이상하고 슬펐다.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엄마를 주제로 한 소설이 그렇듯 사랑하고 증오하는 감정이 흐르면서도 이해와 포용의 정서를 느끼는 게 맞나 싶은데 또 그게 맞는 것 같아 이상하고 슬프고 낯설고 친숙했다는 뜻이다. 아마 주인공의 성별이 여자였으면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겠지. 


군 복무 중 2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나'는 엄마와 살았다. 형이 있지만 결혼을 하고 엄마와는 소원하다. 현실적인 문제 즉 대한민국의 청년들 모두에게 처해진 주거 문제 때문에 '나'는 독립을 하지 못한다. 감당하지 못할 월세와 대출금과 생활비를 생각하면 매일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는 엄마의 잔소리는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엄마와 살면서 엄마와 다투고 화해도 아닌 어정쩡한 평화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하면서. 한동안 '나'는 주말에 잠만 잔다. 도저히 이해받지 못할(그런데 그런 걸 왜 이해받아야 하는지. 하긴 이해만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도 없다.) '나'의 상황을 '체념 증후군'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둠 뚫기』라는 소설을 나는 이해했다. 


분노→포기→체념의 감정으로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엷어진다. 게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은 잠을 자는 행위로 주인공을 살린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엄마 없는 자식은 없다. 엄마가 언제 있느냐의 문제. 엄마가 있었으면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대신 남과 비교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매일 꿈속에 엄마가 나오면 좋겠다. 매일 속상해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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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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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하얀색 표지의 『모순』을 읽은 게 엊그제 같은 데는 아니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 정말 『모순』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 『모순』을 다시 읽은 이유는 내 알고리즘에 계속 뜨니까 그래 내가 졌다 하면서 새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호구 이야기. 책 영업 많이 당하는 호구는 괜찮군. 이렇게 또 호구 인증. 


『모순』을 읽자마자 놀란 건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라는 거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는데 1998년에 스물다섯은 결혼 적령기였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부터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의 모습이었다는 건데 그래서 갑자기 IMF가 터져 자주 사보던 만화 잡지 가격이 올라서 우울했던 나는 『모순』을 읽으면서도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거니와 결혼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하면 없애버릴 수 있을까 했으니까. 왜 결혼을 해가지고 불행을 대물림해 주는 건지. 만화책과 소설에 탐닉한 학생은 초코우유를 마시면서 슬픔을 이겨보고자 했다. 


스물다섯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재산은 사십이만 팔천 원의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현타를 맞이한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는 각성을 한다. 시시때때로 집을 나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한심해 하지만 어쩐지 불행 앞에서는 힘을 내는 어머니. 겉멋만 잔뜩 든 남동생. 안진진의 가족 구성이다. 


어머니와 똑 닮은 쌍둥이 이모가 있어 두 자매의 인생사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생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 고민인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 만나는 남자는 두 명이다. 곧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 스물다섯에. 1998년에 출간한 『모순』을 2025년에 읽어도 무리 없는 게 주인공의 나이만 빼면 그때의 청년들의 고민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는 거다. 


문장은 또 얼마나 쉽고 간결하면서 세련되었는지. 쉽지 않은 인생사를 겪어 내면서 내 마음을 내 비통한 심정을 내 개떡같은 오늘을  『모순』이 찰떡같은 비유와(이런 걸 아포리즘이라고 한다지) 철학적인 문장으로 표현해 준다. 내 말이 하는 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뭐든지 뚫을 수 있는 창과 뭐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 인생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덩어리 상태로 흘러간다. 그리하여 결말의 안진진의 선택에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험이나 안정이냐. 선택의 상황에서 2025년에 안진진들이여 어떻게 할 것인가. 시대의 부름을 받고 다시 호출되어 역주행하고 있는 『모순』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너의 몫이니 감당도 네가 해야 할 거다 쿨한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후회는 하지도 말고 후회라는 어리석은 감정을 마음속에 쌓아놓지도 말아야 한다고 충고도 한다.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잔소리, 조언, 충고) 중 두 가지를 『모순』은 안진진의 스물다섯 인생을 빌려 해준다. 책은 그렇게 훌륭하고도 엄격한 가르침을 바보 같기만 한 우리에게 선사한다. 걱정해도 바뀌는 건 없단다. 생각한 대로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해도 인생은 어찌저찌 흘러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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