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사는 킬러 네오픽션 ON시리즈 7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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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글로리》를 재미있게 봤다. 극 중 동은이의 대사처럼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 지금 되게 신'났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신나면 안 되는데, 신났다. 학교 폭력을 당한 동은이 10대, 20대, 30대를 다 걸고 연진이와 그 무리들을 복수하는 내용 때문에. 현실에서는 절대 동은이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복수는 통쾌했고 짜릿한 쾌감마저 일었다. 세상에 복수 자금을 모으기 위해 김밥 집과 목욕탕에서 일하고 과외까지 하다니. 이런 복수극이 그전에 있었나. 


동은은 차곡차곡 돈을 모아 최저시급과 비용 처리 비용은 따로 챙겨주면서 일을 해줄 이모님을 고용한다. 신마저 동은을 도와 연진은 천벌을 받는다. 드라마는 실화에 기반했다. 곱슬머리를 펴거나 웨이브를 하라고 있는 고데기를 몸에다 지지는 악행이 실제로 있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대신 서로에게 칼을 쥐여 주면서 동은의 복수는 마무리된다. 


강지영의 소설  『심여사는 킬러』는 동은이와는 다르게 직접 칼을 들고 복수를 대행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심은옥. 나이는 쉰한 살. 마트 정육점에서 일하다 주인이 도박을 하다가 쇠고랑을 차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다. 남편은 남의 가게를 들이 박고 죽었고 딸과 아들이 있다. 쉬지 않고 바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심여사다. 생활정보지에서 '40세 이상 주부사원 모집, 월 300 보장, 비밀유지 상여금 500% 지급, 스마일'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전화를 거는 실행력까지 갖춘 심여사. 


급여가 높은 게 수상쩍지만 심여사는 스마일에 문을 두드린다. 그곳에서 심여사는 전직 정육점 사장과 근무자 경력을 살려서 일을 시작한다. 전직 킬러 박태상에게 칼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말이다. 제목처럼 심여사는 스마일에서 킬러로 일을 한다. 누구도 심여사를 킬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심여사의 직업적 능력이다. 아 그리고 스마일은 짐작대로 흥신소다. 박태상은 심여사에게서 킬러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킬러로서의 조건을 딱 갖추고 있다고. 


망설이는 심여사에게 박태상은 금궤 하나를 건넨다. 현금으로 바꾸면 삼천만 원이라는 말에 심여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과금, 월세, 등록금, 생활비 때문에 킬러, 즉 살인자가 된다. 『심여사는 킬러』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이 킬러인데 현실적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현실 밀착형 소설이라는걸. 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박태상의 말처럼 스마일에는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죽이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다. 소설은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서사를 속도감 있게 풀어 놓는다. 그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이유를 알 때마다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일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거나. 동은이는 머리가 좋고 끈기가 있다. 치밀함과 실행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심여사는? 특유의 수더분한 외모와 친화력 있는 성격으로 복수 대상자들과 유대 관계를 쌓는다. 안다. 복수를 하려고 누군가를 죽이는 건 범죄라는걸.


소설이니까. 드라마니까. 그게 허구니까. 현실에서 못 하는 일을 상상으로는 할 수 있다. 그것마저 없다면 진짜 이곳은 지옥이 되니까. 마음속에 쉴 곳 하나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상상으로는 백만 번도 더 했던 그 일을 소설과 드라마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주인공들이 결국은 해내는 걸 보는 후련함이라도 있어야 한다. 『심여사는 킬러』에서 활약하는 심은옥 씨를 보면서 소심한 응원을 보낸다.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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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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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건 숫자이고 빈번하게 하는 말은 종합소득세니 월 마감이니 정산이니 하는 숫자와 관련한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어찌나 숫자에 밝으신지 돈이 하루라도 늦게 들어가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 쪽은 이 날짜에 들어간다고 해도 자기들 쪽에 맞춰달라고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으니 거래를 하지 말자고 내 쪽에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문과생은 하루 종일 숫자만 보고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있단다. 일억 이상 되는 금액을 헤아릴 수 없어 엑셀에 쳐보고 셀 서식에 들어가 숫자(한글)로 변환한다. 그렇다는 이야기. 돈이란 누구에게든 너무나 중요한 화제이고 생계여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틀리면 절대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확신으로 가득 차서 숫자를 보았지만 잘못 보고 쳤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도시 괴담 혹은 오피스 스릴러. 


장강명의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대체 출판업계는 어떤 집단이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단 말인가. 일부만 이럴 테지.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책에 나온 사례의 출판사들은 유명한 곳이었다. 책에서는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기사에 이미 나온 곳들이라 실망이 한가득이었다. 작가들이 책을 쓴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다. 작가는 궁금하다.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그에 맞춰 들어온 돈은 제대로 정산이 된 금액인지. 당연한 궁금중 아닌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출판사는 거래의 기본적인 조건을 지키지 않는 집단이라는 게 밝혀진다. 책의 판매량을 집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작가에게는 제대로 된 정산서를 보내주지 않는다. 어느 날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내 책이 이 정도 팔렸구나 짐작할 수 있단다. 출판사마다 다른 정산 방식이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한 출판사에서 같은 작가의 책을 정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분명 출판사도 회사니까 회계담당자가 있을 텐데. 


나야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 문학상을 수상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인생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알고 싶다.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 상금을 준다. 상금이 곧 선인세라고 한다. 수상작은 상금을 초과할 정도로 팔리지 않는 이상 인세가 들어오지 않는 방식이라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말해준다. 급여생활자들은 매달 급여명세서를 받는다. 당신의 월급에서 4대보험료와 소득세, 지방 소득세 얼마를 뗀다는. 기본적인 일이다. 작가들의 경우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창작물을 판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책의 판매량과 그에 따른 정산 내역서를 받아보아야 한다. 통장에 얼렁뚱땅 같이 들어온 돈으로 판매량과 정산내역을 짐작해 보는 게 아닌. 책의 판매량 집계가 문제라고 하는데 책에서 지적한 대로 편의점에만 가도 포스기에는 하루 동안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기초적인 시스템이 출판업에서는 통용되지 않을까.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출판사의 정산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과 돈 이야기 말고도(「입금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은 왜 이렇게 슬플까.) 한 작품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소설가와 생활인으로서 균형을 맞춰 살아가기 위한 분투가 담겨 있다. 소설가가 읽은 책과 추천하는 책(그래서 심재천, 정아은, 임성순의 책들을 잔뜩 샀다.)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까지. 그러나 나는 유독 소설가가 제때 받지 못한 돈과 인세 보고서도 보내지 않는 출판사의 허술한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작가들이라 하면 배울 만큼 배우고 배울 만큼 배워도 더 배우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지 하는 안타까움에 더해서 말이다. 하긴 나조차도 받아야 할 돈이 있음에도 그저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 작가들만 이럴까.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는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소위 문화 산업 종사자들인데. 작가들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체계로 일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소설이 어떻고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리뷰를 쓸 줄 알았는데. 돈 이야기만 했다. 그런 책이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이상한 판이구나 그곳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기를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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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희정 지음 / 갈라파고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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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괜히 직장인가. 그곳에서 일할 이유가 있으니 직장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일지라도,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것을 바랐을 뿐인데, 우리는 야금야금 미쳐갔다.

(희정, 『일할 자격』中에서)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요? 했을 때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OO 님 야근하시면 추가 수당 받나요? 고작 그런 질문이라니. 괜히 긴장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업무 시간에 일을 다 못해 남아서 하는걸요. 일을 못 해서 매일 이러고 있습니다. 자기 비하가 뒤섞인 횡설수설을 하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이 쌓였다. 사무실에 CCTV가 있고 이걸 사장이 매일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녹음까지 될까. 되면 어때? 이판사판 공사판이지. 함부로 생각하다가도 말을 조심하게 되는 나날이었다.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번 듣는 말은 이런 식이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라고 하면서 고성 폭격을 시작했다. 나의 경우 일을 열심히 해서 많이 해서 문제였고 그래서 욕을 먹었다. 영화 《오피스》는 정규직을 앞둔 인턴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처지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지방 출신이면서 경기도에 사는 미례와 유학파이고 회사 주변에 원룸을 얻어 사는 다미.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일을 하는 미례는 열심히는 하는데 센스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다미는 일도 잘하며 센스가 있고 여유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장르는 스릴러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더 소름이 돋았다. 미례에게 나를 이입하니 신파로 장르가 바꼈다. 열심히도 하면서 잘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희정의 『일할 자격』을 읽으면서 답을 구하고 싶었다. 아니  『일할 자격』을 읽으며 일하지 않을 자격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잘하면서 욕 먹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일이란 걸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을 책이니까 들을 수는 없고 읽고 싶었다. 지금 네가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니야. 그 일하지 않아도 넌 살아갈 수 있어 하는 말. 


『일할 자격』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성실, 근면, 생산적인 조건이 온당한지 묻는다. 그만하면 할만한 거 아니야?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칼날 같은 질문에 맞서 왜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지 답해준다. 힘든 일을 하게 된 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형편없는 말에 맞서기 위해 『일할 자격』은 쓰였다. 


책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었던 경험담은 다향하게 이상하고 미쳐있었다. 근속 기간이 2개월인 청년, 그가 일하지 않은 이유는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집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여주기 식으로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였다. 그는 정규직 사원이었는데도 일을 그만뒀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유부남들이 수시로 껄떡댔다. 그래도 일을 그만두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걸 숨기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것만 빼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과체중이지만 나이와 외모 비하를 들지 않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문제라고 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더는 하지 못하는 일이란 게 있다는 걸 안 뒤로 마음이 다치게 된다면 그만하자 싶었다. 『일할 자격』은 몸보다는 마음을 다친 사람들의 슬픔이 묻어 있는 책이다.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을 다치게 된다면 나에게 일할 자격을 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돈을 버는 건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책도 사 보고 커피와 빵도 사 먹고 키압 낮은 키보드도 몇 번 고민 끝에 사서 쓰지 않겠는가. 그래서 중요한데 나를 다치게 하면서 까지는 벌고 싶지 않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 이제는 안다.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을 자격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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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 같은 소리 - 투명한 노동자들의 노필터 일 이야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 동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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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동절에는 쉬었다. 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쉬게 되어 정말 좋았다. 쓰고 보니 초등학생이 쓴 일기의 마지막 문장 같다. 쉬어서 좋았다는 문장이면 다 일 것 같다. 다른 이유가 무엇 있을까 싶다. 직장인 열 명 중에 세 명은 노동절에도 일을 한다는 통계를 알려주는 뉴스를 보았다. 쉬는 7인에 속하는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운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일 년에 넉 달은 제외하고(왜 넉 달이냐면 중간/기말고사가 있는 달) 주말과 공휴일에는 쉬었다. 추석이나 설에도 쉴 수 있었다. 이건 운 좋은 일.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당연히 4대보험도 들지 않았다. 2년 후에는 월급을 올려줄 거라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초과근무수당은 받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면서도 임금 계산법을 몰라 그러려니 했다. 정말 바보같이 일했다. 이건 운 나쁜 일. 포악하게 굴지도 정색하지도 않기에 계속 다녔다. 나중에야 알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이 모든 일이 포악하게 군 것이라는걸.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 바닥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44인이 지은 『일복 같은 소리』는 프리랜서, 무기계약직, 기간제, 촉탁직, 파트 타이머라고 불리는 이름만 다르게 불리는 비정규직인들의 현장 노동 기록을 담은 책이다. 알라딘 독자 북펀드에 참여한 계기는 책의 목차 때문이었다. 목차는 일하는 공간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가로수길, 가습기 공장, 고용센터' 등으로 말이다. 내가 일했던 곳도 있었고 일하진 않았지만 현장이 궁금한 곳도 있었다. 놀라운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느 공간에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놀라운 일이 아닌 건가.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에도 비정규직이 있었다. 내일배움채움카드를 신청하고 일자리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상담사는 자꾸 교육 신청을 하지 말라는 쪽으로 유도했다. 왜 그랬는지 『일복 같은 소리』를 읽으니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차도 없고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지라 지금 일하는 곳에서 그만두면 나 역시도 비정규직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자명한 일이다. 최대한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데 그런 곳은 거의 파트 직원을 뽑는다. 


평화시장의 전태일 열사는 분신하기 전 일기장에 자신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근로기준법에는 한문이 많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8시간 근무에는 한 시간의 휴게 시간이 법적으로 주어지고 휴일에 일을 시킬 시 초과 수당을 줘야 하며 노동자는 단체행동권, 교섭권,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공부를 많이 한 대학생 친구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전태일 열사의 소망이었다. 그 대학생 친구들은 이제 법을 알면서도 법에 이용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학을 나온 게 오히려 죄가 되는 세상이다. 


『일복 같은 소리』에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단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 5일이라고 했지만 가게 스케줄 때문에 근무 시간은 불규칙하고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며 초단기 계약으로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서 일을 한다.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 일 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해서 자격증을 따며 근무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정규직 티오가 없다는 말이었다. 좌절의 언어가 『일복 같은 소리』에 산재해있다.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다는 건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한탄이 깃든 소망의 말이다. 어른들은 말했다. 지 먹을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무수저들은 지 일할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로. 먹을 복 대신에 일복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일복이 주어지기를. 다치지 않고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고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똑같이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는 그나마의 정상의 일복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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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난의 시대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김지선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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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이런 짓을 했다.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을 보면서 이것 빼고 다 주세요 하는 중국 부호들이나 한다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진열장에 들어 있는 디저트 하나를 빼고 전부 산 건 아니고 첫 번째 줄에 있는 디저트 한정이었다. 진열장이 컸냐 그건 아니고 가정용 광파 오븐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날 왜 그랬을까 잠시 이성을 차리고 생각해 보았다. 연차를 냈고 나흘이나 쉬는 날의 시작일이었다. 들떠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디저트의 가격은 20,400원.


인터넷 게시물에 이런 글이 있어서 누워 있다가 격한 공감을 했다. '일 안 해도 재산이 늘어나면 부자, 일 안 해도 재산이 그대로면 중산층, 일 안 해서 재산이 줄어들면 서민, 일해도 재산이 줄어들면 빈곤층.' 바야흐로 고물가 시대, 절약방에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소비를 제재해 주는 시절에 계층을 이렇게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서민. 아. 그래서 내가 혼자 사는구나.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결혼을 한다지 않는가. 


우아와 가난은 서로 어울리는 단어인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국어 교과서에 역설법의 새로운 예시로 실어도 될 정도로 '우아한 가난'은 시대적 사명을 띠고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의 언어이다. 김지선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빈곤 속의 풍요를 이야기한다. 집은 사지 못하지만 브랜드 지갑은 살 수 있다. 미술품은 모을 수 없지만 책은 모을 수 있다. 티파니 귀걸이는 못 사지만 샤인 머스캣은 살 수 있다. 


가성비, 가심비를 따지며 대체재로 가난한 오늘을 위로하며 사는 우리들.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소비, 가난, 청춘, 미래라는 주제로 우리를 걱정하는 책이다. 작가의 경험담을 곁들여 가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증여, 상속이 아닌 이상 집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의 소비 패턴은 왜 그럴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고민한다. 


소확행을 하다가 소확횡을 한다. 내가 이것도 못 사겠어 혹은 이것도 못 먹겠어 폭발하면서 돈을 쓴다. 그러곤 후회한다. 잘 참다가 이번 달 예산 설정을 하고 여기까지 써야 생각했다가 충동적으로 외식을 하고 물건을 사들인다. 우아해지려다 가난해지는 슬픈 하루의 끝이다. 가난이라는 단어 앞에 긍정의 단어를 붙여서 지금의 가난을 위로하려는 시도이다. 그렇게밖에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가난은 그냥 가난인 것을. 가난은 우아해질 수 없고 그저 누군가는 이 가난을 훔쳐서라도 자신의 성공 서사에 한 줄을 보태고 싶어 하는데. 


물건 살 때 가격표를 보지 않는 것을 죽기 전까지 할 수 있을까. 햄 한 봉지를 사더라도 그램 수를 비교하느라 냉장 매대를 떠날 줄 모르는 뒷모습인데. 『우아한 가난의 시대』에는 나와 너를 합친 우리들의 서성이는 뒷모습이 있다. 책에 나온 주제 중 하나에 나도 답을 해보련다.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월급 받기 전 주의 나의 통장 잔고이다. 삼 주 차까지는 잘 참았다가 막판에 닦아 쓴다. 하나 더 엄마와의 기억. 


환승하면 되는데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엄마는 비가 와도 버스를 타고 오지 않고 걸어서 집으로 걸어왔다. 돈을 쓰고 나면 죄책감과 우울해지는 이유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추천한다. 나의 비정상성은 그래도 괜찮다고 어루만져 준다. 가난의 시대에도 일상은 우아해야 함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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