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나라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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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나라』는 끝을 위한 소설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이 만날 때 작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사는 건 고통이자 축복임을 이제는 안다. 내내 고통도 내내 축복도 아닌 게 삶이다. 어떤 날은 슬프고 다른 날은 기쁘다. 살아가는 일은 변덕스러운 한여름 오후의 날씨와 닮아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들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어서. 맛있는 걸 먹이고 질이 좋은 옷을 사주고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동아시아 한국으로 그들은 온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서. 결코 육로로는 올 수 없는 곳. 빨리빨리와 때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먼저 배우는 곳. 한국에서 일을 한다. 


소설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이 임시로 머무는 보호소의 풍경을 그린다. 구조조정으로 은행에서 일을 그만둔 주인공 나는 우연한 계기로 외국인 보호소를 방문한다. 동행자 혹은 방문자의 신분으로 비행깃값을 구할 때까지 갇혀 있는 외국인들을 만난다. 그들이 보호소로 오기까지의 사연과 마주한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그저 바크라 불리는 활동가를 따라가 곁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파란은 일이 끝나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경찰이 다가왔다. 여권을 보여주자 보호소로 오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뿐인데 4년이 넘게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보호소에서 최장기간 머물러 있는 파란. 고국의 누구에게도 연락할 길이 없다. 『당신들의 나라』는 이방인을 외면하는 당신들과 나들이 살고 있는 현재 여기를 조명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외국인 보호소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 맞다. 출생신고를 했고 주민등록번호를 받았고 주민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기에. 관공서, 은행에서 거부당한 일이 없기에. 책을 읽는다는 건 그래서 부끄러운 나를 만나게 하는 일이다. 주인공 나는 보호소에서 외국인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당신에게 그곳의 풍경을 말한다. 


당신은 이해 가능한 선에서 이해를 한다. 이해 가능하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해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해를 해보려는 노력의 수고를 하지 않는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해서 한참이나 뜻을 헤아리게 만든 말, 희망을 당신들에게 꼭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삶의 희망과 가능성을 건네주어야 한다고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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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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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소설 『초급 한국어』의 주인공은 문지혁이다. 그는 외고를 나와 대학을 갔고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을 했다. 하다가 원래 자신이 꾸던 꿈을 현실로 이루고 싶다는 결심을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예술 학교에 들어가 소설을 공부한다. 투고를 했지만 당선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3학기 만에 졸업 논문이 통과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한다. 


지혁은 미국에 자리를 잡아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었을까. 그럴 수 없었기에 미국으로 왔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면 가능할까. 모국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소설은 쓰일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따르지만 일단 지혁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최근에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있다. 그냥 하면 될 텐데 둘러보고 알아보는 시간에.


『초급 한국어』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잘하겠다는 결심 대신해본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배우고 나를 소개하고 길을 묻는다.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사를 표하는 정도의 실력을 갖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강의를 준비하는 지혁은 외국인들에게 안녕하세요를 먼저 가르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의 말도. 우리말이 어려운 게 높임말,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를 같이 알아야 한다. 안녕에서 파생되는 말도 여럿이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지혁은 안녕하세요를 영어로 Are you in peace라고 직역해 준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웃는다. 당신은 평안하냐가 보통의 인사로 한국에서는 쓰이냐면서. 


누군가를 만나면 쓰라고 배운 말 안녕하세요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말이라는 걸 안다. 당신은 안녕하냐고. 처음 만나거나 다시 만날 때 꼭 물어야 할 말이다. 『초급 한국어』는 우리에게 당신은 평안한지 혹은 평화 속에 있는지 묻는 소설이다. 당신의 안녕이 궁금해서 쓰인 소설이다.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말 엄마, 아빠, 밥에 이은 안녕하세요의 쓰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새삼 어떤 단어들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일상적으로 썼던 말인데 갑자기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무슨 뜻이었지. 사전을 찾아본다. 언어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화를 하다가도 특정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한다. 인생의 사건 때문에 어떤 언어는 일부러 쓰고 있지 않기도 한다. 대체어를 찾지 못해 입을 다무는 식이다. 지혁과 내가 앞으로 쓰지 못하는 그 말 뒤에 안녕을 덧붙일 수 있는 후일의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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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의 공장 일지
김경민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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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을 구할 때의 국룰일까. 괜찮은 조건의 직장은 집에서 멀었다. 자차 운전 필수라는 조건에서 잘렸다. 버스가 다니는 곳이라 생각하고 갔지만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야근만 없었어도 다닐 수 있었다. 야근이 있어서 심야에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최저시급에 맞춘 월급을 택시비로 태울 수는 없었다. 


통근 버스를 운행하는 곳도 있었지만 면접을 보러 가는 길도 험난한 곳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만 하늘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를 돕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여야 했다. 지역에 큰 제철소, 화학 단지 등 공장이 있었지만 운전이 안되니 그림의 공장이었다. 김경민의 책 『미르의 공장 일지』의 시작은 일식집에서 일을 하다 공장으로 버스를 타고 면접을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 김경민은 필명 미르로 글을 쓴다. 엄마 태몽에 용이 나왔고 용의 순우리말 미르의 발음이 예뻐서 쓴단다. 일을 하면서 분노하는 일이 잦았고 그 일에 쓰다 보니 김경민이 아닌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화가 났던 일상을 적기에 딱인 이름 아닌가. 불을 내뿜는 용, 미르. 그는 그렇게 미르라는 이름으로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썼다. 


여성으로 공장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워낙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이라 그렇듯 어느새 기계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최근에 어떤 사람과 전에 일하던 곳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알바로 들어갔는데 너 계속 일해라 해서 정규직이 되었고 면접 때 들었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더란다. 그렇게 6년을 일했다고. 차에 타라고 차를 탄 것뿐인데 여긴 어디 난 누구 하는 식으로. 


미르는 근로계약서와 퇴사서를 같이 쓴다. 갑자기 그만둘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것이라고 경리 담당자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국 공장 현실과는 맞지 않는 외국 사례를 보여주는 안전 교육을 받고 라인을 탄다. 소음을 제거해 주는 스티커를 부착하는 일로 미르는 공장에서 본격적인 일을 한다. 『미르의 공장 일지』라는 제목처럼 공장에서 겪은 일을 일기와 일지의 중간 형식으로 기록한다. 


잔업, 사고, 불법파견, 원청, 도급, 법인 연수생, 재작업, 탄력근로제, 화재 경보음 같은 단어들이 쓰이지만 엄마, 통화, 한자, 힘내본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연속 근무를 하고 잔업을 하는 중에도 미르 노동자는 자신이 겪어낸 하루를 글로 옮긴다. 함께 일을 하면서 나눈 노동자들과의 대화도 그들의 시간도 잊지 않기 위해 쓴다. 


공장일을 하면서 작가는 한자 공부를 한다. 주경야독.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 미르는 이 말을 개똥 같은 소리라고 한다. 밭을 갈면 피곤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고. 유튜브에 떠도는 직장인 공부 브이로그를 보고 있으면 나를 반성해야 하지만 저게 정말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든다. 실제 일을 하고 공부를 하니 영상으로 남겼을 것이라 각성하고 이번 주 내내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인강 하나를 듣는데 어깨가 아작이 날 것 같다. 


『미르의 공장 일지』는 그럼에도 해본다, 좋겠다,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그 시절 선생님에게 검사 맞기 위한 일기 속 마지막 문장, 다짐의 글이 있다. 의미를 생각하느라 결국엔 이해 못하는 나를 꾸짖게 되는 문장보다 단순하고 담백한 언어는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 드라마 《악귀》에서 경찰 홍새는 무심한 얼굴로 "일은 원래 다 힘들어. 그래서 돈 받고 하잖아"라는 2023년 올해 최고의 팩폭 명대사를 날린다. 귀신이 나온다기에 귀신이 나오면 놀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대사에 심장이 섬뜩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모두 아프지 않고 죽으면 더더욱 안 되고. 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여도 어제도 내일도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잊지 말고. 그냥 그런 사람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고. 다 울었으면 책을 펴자. 한자, 영어, 한국사, 회계, 세무 등등 직무와 관련 있는 일이든 아니든 골라보자. 책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오늘 있었던 더럽고 치사한 일이 잊힌다. 왜냐. 책이 너무 많고 가격도 좀 있어서. (그래서 나는 영어 학습지를 할 거냐 말거냐. 하는 사이에 가격이 올랐네. 이런.)


일을 하고 돌아와 한자 공부를 하는 미르의 뒷모습이 『미르의 공장 일지』에 있다. 모두 함께 살기 위해 어제 익힌 걸 오늘 까먹는 앞모습도. 나를 위한 공부는 너와 우리를 위한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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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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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권고사직이란 단어를 넣고 검색하다가 기사에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의 어느 한 문장을 읽고 멍해졌다. 실업급여를 타러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한 결과 어떤 계층은 웃으면서 오고 어떤 계층은 침울한 얼굴로 온다는 담당자의 말이 공식적으로 발화된 말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들이 낸 고용보험료는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일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실업 급여라는 제도로 돌아온다.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실업 급여 받아서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니 실업급여 대상자의 계좌 추적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기사에 인용된 문장은 이렇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한도의 임금 그러니까 2024년에는 지금보다 240원이 오른다. (장난쳐?)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2,060,740원을 받는다. 내년에는. 이걸 다 받는 건 아니고 여기서 4대보험료와 소득세 및 지방세를 공제한다. 각자의 생활과 소비 패턴이 다르기에 세전 금액으로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생활을 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사치도 허영도 아름다움이라는 세 단어는 저 금액에 끼어들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절약하는 아름다움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잊기 좋은 이름』의 작가 김애란을 키운 팔 할에 대한 이야기는 첫 부분에 등장한다.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팔았던 '맛나당'에서 작가의 유년은 시작한다. 공기처럼 스며든 맛나당의 정서를 풀어 놓으며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꾸려간 어머니의 모습에는 사치와 허영, 아름다움이 있었다. 번 돈을 모두 생활에 쏟아부은 건 아니라는 거. 자신이 번 돈으로 방문판매원이 권하는 화장품을 사고 비전 냄비, 코끼리 보온 도시락을 사던 작가 어머니의 옆모습은 그 글을 읽는 독자인 나의 어머니의 옆모습과도 겹쳐진다. 


우리 앞에 생존만 있다면 얼마나 지치고 가엽고 숨이 찰 것인가. 권리로 받은 국가의 혜택 앞에서 표정을 관리해야 하고 먹을 게 아닌 다른 걸 샀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비난을 받는 현실은 참으로 가혹하다. 『잊기 좋은 이름』은 작가의 유년과 작가가 되고 난 후의 단상이 읽기 좋은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시절 이야기부터 지금은 사라진 출판사의 풍경, 상을 탄 동료 작가에게 바치는 축하의 글, 감명 깊게 읽은 책의 독후감, 연필을 주고받은 어느 봄의 기억들이 뜨거운 여름 한낮에 불어오는 바람 같은 모습으로 실려있다.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듣는 열다섯 아이는 선생님이 되라던 엄마의 말을 거스르고 예술 학교에 진학을 했다. 방을 얻기 위해 8월의 서울을 어머니와 돌아다녔고 지친 나머지 누구나 그렇듯 아무 집이나 계약을 하고 팥빙수를 먹었다. 어둡고 선득한 방에서 전 세입자들이 붙여 놓은 천장의 야광 별을 응시하고 책을 읽고 아무 때나 놀러 다녔다. 설거지를 하다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기억을 품은 우리 모두의 계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책에서 책으로. 『잊기 좋은 이름』을 읽고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읽는다. 다시 한번 놀란다. 몇 십 년 전에도 쓰였을 박완서의 소설은 2023년의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엄청난 속도감의 문장들이어서. 나는 『잊기 좋은 이름』을 한동안 『잊기 좋은 여름』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잊기 좋은 이름』이든 『잊기 좋은 여름』이든 잊기 좋은 건 없었다. 잊고 있었다는 착각을 할 뿐이다. 이름을 떠올리다 보면 그 여름 어느 풍경을 떠올리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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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고 글쓰고 - 일하며 글쓰는 작가들이 일하며 글쓰는 이들에게
김현진 외 지음 / 빛소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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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작가라고 우기면 작가가 될 줄 알았지만 그냥 우기는 사람이 되어 있다. 직업을 바꿔야 할 시기가 있었다. 그때 자격증 공부 대신 용기를 내어 제대로 된 습작을 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라기보다는 IF 조건문처럼 만약에라는 상상을 할 뿐이다. 꿈 실패자는. 관리비, 세금, 식비, 보험료 등등 숨을 쉬기 위해 내야 하는 고정지출은 어떡할래? 배달 음식도 시켜 먹어야 하고 귀여운 제품이 있으면 그것도 사야 되잖아. 


매달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 그때는 불안했다. 다들 그렇겠지. 신용카드는 쓰지 않으니까 체크카드 잔고액을 확인하고 생활비가 모자란다 싶으면 적금을 해지하고.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격증 공부를 했다. 이력서도 부지런히 내고. 면접도 보러 다니고. 돈이 없어서 작가가 되지 못한 거라고 변명해 보지만 안다. 용기 없음과 노력 부족 때문이라는걸. 되고자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했었어야 한다는 걸. 


에세이 『먹고살고 글쓰고』는 '일하며 글 쓰는 작가들이 일하며 글 쓰는 이들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똑같이 일하며 글 쓰는데 전자는 작가들이고 후자는 이들이다. 작가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일하며 글 쓰는 사람들이 이들에 해당한다(나도). 책을 읽어보면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가 되었지만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은 작가의 소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십여 년 넘게 글을 썼지만 작가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 말농장에서 일을 하다 귀에서 피가 나고 등단을 했지만 청탁이 없어 택배 일과 카페 창업을 했다. 시를 써서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통계적인 분석을 해주고 요가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강의를 한다. 책에서 인용해 준 안톤 체호프의 「초보 작가를 위한 규범」의 두 문단은 필사해야겠다. 


작가든 작가 지망생이든 먹고사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는 작가가 되었는데도 생계에 힘이 부치고 작가 지망생은 작가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일에 힘이 든다.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이에게 하는 조언도 있다. 시인 이원석의 말처럼 작가가 되겠다는 건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어느 날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라고 잊고 살았던 왜 작가가 되고 싶었나의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그랬다. 그냥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책의 문장에 마음이 홀려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더랬다. 


근로소득은 대단히 중요하고 엄청나게 소중하니까. 작가가 되어도 생계를 책임지는 직업은 꼭 가지고 있으라고 하니 사무실 책꽂이 투명 파일에 끼워 놓은 사직서는 안 보이게 감춰 놓았다. 집에 돌아와 일일신 우일신의 마음으로 대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마음으로 책상에 앉는다. 그냥 작가가 되기로 했으니까 써야 되는 이유 같은 건 찾지 말고 그냥 쓴다. 스티븐 킹의 말처럼 한 번에 한 단어씩. 


송승언 시인은 이렇게 조언한다. '낮 동안 열심히 또는 영혼을 빼놓은 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글을 쓰'라고. 나를 화나고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대답으로 글을 쓰라고. '그게 아마도 문학일' 거라고. 나와는 직무가 맞지 않다거나 인간관계 지옥에 살고 있어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그래서 퇴사를 권유하고 회유하는 누군가의 말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먹고살고 글쓰고』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쓰기 위해서는 벌어야 한다고 일만은 그만두지 말라고 없던 일도 만들어서 해야 한다고 뼈를 때리는 조언, 충고, 잔소리 3종 세트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기에. 


누가 읽지 않아도 나는 읽는다. 쓰다만 시와 소설아. 기다려 다음 문장을 적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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