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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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영의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의 첫 문장은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9p)로 시작된다. 당연히 안다, 한국. 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밥 먹고 웃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외신이 먼저 떠들어대고 전쟁이 날까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해 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곳, 한국. 이분법적 사고가 현재 진행 중인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이방인도 현지인도 꿈을 꾸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 땅에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이 있다. 어린아이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해괴한 소문이 퍼지고 약탈과 파괴가 들끓는 모국을 버리고 대륙으로 떠나온 단과 류, 도리와 미소, 지나 가족, 건지가 있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휴전선이 있는데 여전히 남과 북은 대치되고 있는데 그들은 대륙으로 향해간다. 그들이 살아가는 한국은 통일이 된 상태일 수도 있고 가뿐하게 지뢰 따위는 제거하고 북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달아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다. 
  세계는 바이러스를 잡을 백신을 발명하고도 속도에 뒤처져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건물은 파괴되고 강간과 도둑질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대륙에서 도리와 미소는 해가 지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러시아 대륙으로 설정된 배경에서 그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위와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잔인한 행동이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동생 미소를 지키기 위해 도리는 도둑질을 하고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녀들이 지나 가족을 만나 트럭 한 칸을 얻어 타고 길을 떠나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는 것은 지나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이다. 차에 타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32p)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남을 공격하고 자신조차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파괴된 세계에서 전쟁을 겪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그들은 사랑을 시작한다. 일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미루고 감춰왔던 사랑을 꺼낸다. 나중으로 유보되고 양보한 사랑을 들추어낸다. 대출금과 적금 납부의 하루에서 방관했던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바이러스로 가득 찬 세계에서 보여준다. 살아가는 것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는가. 나를 잃지 않는 일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만이 그들이 꾸는 꿈이 된다. 
  최진영의 소설들은 서사가 탄탄하다. 단단한 이야기 속에 버무려진 문장들은 힘이 있고 살아 있다. 단번에 소설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정돈된 문장 속에서 안정된 이야기를 구사할 줄 안다. 과잉된 문장으로 서사 속을 헤매지 않는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남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질문하는 이 소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의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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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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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씨는, 어떻게 보았어요?
앞뒤 자른 말이었지만 무슨 얘긴지는 알아먹었다.
온갖 보물이 들어 있는 다락방 같은 여자.
여혜는 이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더 없냐는 듯.
영원한 동심, 우주만큼의 자유, 한낮의 무의식, 또······.
그런 뻔한 얘기 말고, 그냥 즉물적인 느낌을 얘기해 봐요.
듣고 보니 이경은 자신이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슬펐어요.
슬프다.······뭐가?
우리가 몸을 가졌다는 것, 마음도 가졌다는 것. 어딘가로 향해 매 순간 달려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그런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어개씩 하고 정작 학교는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이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오늘 점심은 5천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는게 고민인 하루를 가진 이경. 그렇게 회사에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에 부랴부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다. 저금해 둔 돈을 까 먹으며 일 년을 공부하는 그녀를 찾아온 친구는 이경이 원하는 대학을 써 둔 종이를 보고 큿 하고 웃었다.
  엄마는 이경을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집을 나갔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죽고 그 집에 월세를 받기 위해 친구와 산다. 출석이 모자라 학점이 엉망인 교양 과목 교수를 찾아가 부모도 없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안되는 제 사정을 설명한다. 교수는 기말때 제출하는 영상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면 깎인 점수가 만회된다는 팁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현수에게서 받은 카메라를 가지고 이제는 노래를 하지 않고 은둔해 있는 가수 율을 찾아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 율은 말이 거의 없고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에 빠져 있다. 소설은 율이 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를 다뤄 본적도 영상물을 제작해본 적도 없는 이경은 흔들리는 손떨림을 그대로 노출한 채 촬영을 한다. 율은 꿈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자신의 몸이 사라져가는 장면을 이야기 한다.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에게 목소리와 악보를 적을 손이 사라지는 꿈은 현실에서도 이어진다. 스스로 천재라고 자부하는 그의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그가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멀다.
  이경이 찾아와 서툰 솜씨로 율의 자아를 깨우지만 그와 함께 살아가는 여혜는 그 두드림의 세기가 일정치 않다고 느낀다. 빔 벤더스의 다큐를 같이 본 후 여혜는 이경에게 감상을 묻는다. 사는 것 자체가 누군가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페이크 다큐 같은 삶을 살아내는 이경은 몸과 마음의 존재를 슬퍼한다. 
  작가 정미경의 마지막 작품이 된 『가수는 입을 다무네』의 줄거리를 따라가다보면 마주치는 삶의 황폐함과 불완전함 때문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작가는 암말기 선고를 받고 한 달이 지난 다음에 죽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 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들의 결혼식에 가고 싶어 했으나 수척해진 얼굴을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어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작가가 쓴 마지막 단편을 작년 가을 이맘때쯤 읽었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았다.
  소설은 이경과 가수 율의 삶의 궤적을 연출 없는 다큐의 어조로 보여준다. 타자의 개입 없이 카메라로 찍는 흔들리고 거친 질감과 영상미를 가진 화면으로 삶을 그려낸다. 틀에 박힌 듯 억지 감동과 눈물을 짜내는 영화 같은 방식이 아니다. 이경에게 과제를 내준 교수는 영화를 찍어 오지 말라고 한다. 이경은 율과 인터뷰를 하며 그의 이야기를 찍는 한편 그녀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가 믿는 종교를 들추어 내고 행복 없는 신산한 일상을 거짓 없이 찍는다. 
  기형도의 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율이 노래를 하지 않게 된 것과 예술이 가지는 허상을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율의 부인 여혜는 더이상 노래 하지 않는 남편의 고통을 가만히 응시한다. 자신의 고통을 감춰두고 율의 침묵과 침잠을 곁에서 아파한다. 입을 다문 가수의 곁에서 감내하는 일상의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예술이 우연에 기대어 유명해지는 것과 삶이 주는 무기력함을 작가 정미경은 담담하게 표현한다. 소설은 이경과 엄마의 일상적인 대화로 끝이 난다. 소설은 끝이 났고 결말은 지은 작가의 삶 역시 안타깝게도 마지막을 말하고 말았다. 생경한 것은 죽음이 아닌 삶 자체인지도 모른다. 죽었다는 것에 놀라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뜻밖의 일이 되어가는 시대. 작가 정미경의 명복을 빈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흰 김이 피어오르는 골목에 떠밀려
그는 갑자기 가랑비와 인파 속에 뒤섞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세월이 떠돌이를 법으로 몰아냈으니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그는 천천히 얇고 검은 입술을 다문다
가랑비는 조금씩 그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도 아득했다
나를 괴롭힐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모퉁이에서 그는 외투 깃을 만지작거린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그는 걸음을 멈춘다, 어느새 다 젖었다
언제부턴가 내 얼굴은 까닭 없이 눈을 찌푸리고
내 마음은 고통에게서 조용히 버림받았으니
여보게, 삶은 떠돌이들을 한 군데 쓸어 담지 않는다. 그는
무슨 영화의 주제가처럼 가족도 없이 흘러온 것이다
그의 입술은 마른 가랑잎, 모든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니
따라가보면 축축한 등뒤로 이런 웅얼거림도 들린다

어떠한 날씨도 이 거리를 바꾸지 못하리
검은 외투를 입은 중년 사내 혼자
가랑비와 인파 속을 걷고 있네
너무 먼 거리여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강조된 것은 사내도 가랑비도 아니었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中에서,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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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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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연휴를 가진 당신에게 그러니까 듣도 보도 못한 달력의 빨간색 한 줄을 얻은 우리에게 한 편의 소설을 추천한다면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시리즈를 던져주겠다. 베개로도 손색없을 두께를 가진 밀레니엄 시리즈를 손에 들고 긴 시간을 맞이할 당신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다가 잠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장이 궁금해서 한자리에서 다섯 시간은 꼼짝 않고 읽어낼 것이다. 아침은 낮으로 저녁으로 새벽으로 다시 아침으로 당신의 시간은 바뀐다.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미카엘과 리스벨트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상한 조합의 두 인물을 사랑하게 된다. 
  예전에 나왔던 밀레니엄 시리즈를 감각적인 표지로 옷을 바꾸어 새롭게 출간되었다. 책들을 모으면 반짝이는 홀로그램의 밀레니엄 글자가 연결된다. 책 한 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탄했던 우리들,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자. 달려가기 싫은 그대들에게는 전자책을 추천한다. 구매 즉시 다운로드해 읽을 수 있고 배송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홀로그램 글자들은 전자책 리더기의 프론트 라이트를 조절하면 다채로운 색감을 얻을 수 있다. 흑백이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어둠에도 다양성은 존재한다.
  시리즈의 시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마법은 시작된다. 헨리크 방에르는 매년 자신의 생일날 압화 액자를 선물 받는다. 그 선물의 시작은 자신의 조카 딸 하리에트이다. 가문에서 가장 영리하고 단정한 성품을 가진 하리에트는 1966년 9월 22일, 실종되었다. 그날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헤데스타드에서 퍼레이드가 열렸다. 하리에트는 그 퍼레이드에 친구들과 구경을 갔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몇 분 후 오후 2시 15분 다리 위에서 유조차를 들이 박는 사고가 벌어졌다. 다리 위가 아수라장이 되고 마을과 섬의 연결이 끊어졌다. 하리에트는 그날 삼촌 헨리크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고 그 이후 사고가 벌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다리 위의 사고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사고가 수습된 다음날 하리에트가 집안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수색에 들어간다. 
  미카엘은 자신의 친구가 오프 더 레코드로 말해준 사실들에 경악한다. 벤네스트룀이라는 기업가가 행했던 일들에 주목하고 그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지만 법정에서 명예훼손죄라는 판결을 받는다. 경제 전문 기자로서 <밀레니엄> 공동 사주로서 자존심에 타격을 받은 미카엘은 제안을 받는다. 벤네르스트룀의 방해 때문에 광고주를 잃은 <밀레니엄>에서 물러나 있기로 한다. 그런 미카엘에게 헨리크의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스웨덴의 경제를 이끌었던 방에르 기업의 총수였던 헨리크를 만나달라는 것이다. 
  헨리크는 어린 시절의 미카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미카엘의 부모가 방에르 가문에서 잠시 일을 했고 사라진 조카 하리에트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다. 헨리크는 하리에트의 실종과 관련 있을 자신의 가문 이야기를 헨리크의 회고록 형식으로 써줄 것을 부탁한다. 자신이 그동안 모은 하리에트의 사건들의 기록을 보여 주고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도 좋으니 실종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수사해 달라고 한다. 미카엘이 의뢰를 받아들이면 그에게 명예훼손죄를 안겨준 벤네르스트룀을 옭아 맬 자료를 주겠다는 제안도 한다. 미카엘은 고민 끝에 헤데스타드 마을로 들어가 방에르 가문의 연대기를 쓰기 시작한다. 
  리스벨트는 법적 후견인이 존재한다. 보안회사 '밀톤 시큐리티'에서 일을 하는 평범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다른 사람이 짐작할 수 없는 불안과 세상을 향한 혐오로 가득 차 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인과 교류를 거부한 그녀에게 스웨덴 법원은 혼자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후견인을 둘 것을 명령한다. 그녀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 때가지 통장 거래나 취업 등 일상적인 것들을 변호사와 의논해야 한다. 리스벨트는 홀게르 팔름그렌이라는 인자한 변호사의 보호 아래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간다. 회사에서는 독특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그녀의 놀라운 업무 능력을 파악한 대표 드라간의 배려로 프리랜서로서 조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헨리크의 부탁으로 그의 변호사 디리크는 리스벨트에게 미카엘의 조사를 맡긴다. 그녀는 뛰어난 해커이기도 하다. 미카엘의 컴퓨터에 들어가 그의 자료를 빼내는 등 완벽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한다. 미카엘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일에서 저지른 사소한 실수 때문에 그녀와 미카엘이 만나게 된다.
  미카엘은 방대한 방에르 가문의 역사를 정리해 나간다. 하리에트가 실종된 날에 찍힌 사진을 우연히 넘겨 보다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 잡힌다. 그날 하리에트가 퍼레이드를 보다가 찍힌 사진에서 말이다. 사진을 찾아내고 방에르 가문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 나간다. 자신을 뒷조사했던 리스벨트를 만나 조사원으로서 일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려나간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미카엘이 겪은 명예훼손죄를 받은 사건과 헨리크가 의뢰한 하리에트 실종 사건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날 다리 저편에서 방에르 가문의 사람들이 모든 혐의를 가진 범인으로서 존재하는 시간 속을 살고 있는 헨리크는 죽기 전 사건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미카엘과 리스벨트가 밝혀 가는 사건의 실체들은 경악스럽고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소설은 사건을 탐색하고 해결하는 추리 소설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다른 지점에서 리스벨트라는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기도 한다. 여성으로서 리스벨트의 삶은 순탄치 않다. 학교생활에서의 따돌림과 괴롭힘, 정신 병원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새로운 변호사 닐스의 폭력들이 리스벨트를 어두운 심연 속으로 끌고 간다. 그녀 안의 놀라운 능력을 보지 못하는 타인들이 그녀에게 저지르는 무례함 들은 리스벨트가 누구와도 다정한 감정을 나누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리스벨트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미카엘은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다. 
  소설의 첫 장을 펼친 우리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두 인물을 만난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주 보게 되는 진실 앞에서 경악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사건들은 계속된다. 작가가 3권을 출판사에 넘기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지만 그의 유족과 출판사가 다비드 라케르크란츠를 공식 작가로 지정해 시리즈를 이어가게 했다. 빨간색 한 줄을 얻은 우리에게 늘 내면에서는 빨간색의 숫자를 가지고 있을 당신에게 『밀레니엄』시리즈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선물한다. 리스벨트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그 마음이 다시 닫히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2권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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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권 독서법 - 하루 한 권 3년, 내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적
전안나 지음 / 다산4.0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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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계획을 세워 보았다. 저자의 말처럼 작심삼일 이어도 삼일은 실천해 볼 수 있는 거니까. 독서 노트도 준비해놨다. 읽어야 할 책이 줄줄이 대기 중인 풍경이다.>



  


  책 읽는 것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밖에 나가서 노는 것보다 혼자 책 읽는 것이 더좋았다. 낡은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다음날 반납한다. 점심시간만 책을 빌릴 수 있어서 급식을 일찍 먹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돈이 조금 모이면 책을 샀다. 헌책과 새책을 가리지 않았다. 주로 문학 책을 읽었다. 한국 문학 단편집을 시작으로 현대 문학까지 열심히 읽었다.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같이 읽었다. 책을 읽으면 달력에 제목과 작가 이름을 쓰고 작은 노트에 짧은 감상들을 적어 놓았다. 

  책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외롭지 않았다.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감정들을 느꼈다. 어둡고 우울한 주인공들에게서 삶의 칙칙함을 받았고 발랄한 인물들에게서는 삶의 생기를 얻었다.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어 좋은 사람을 만났다. 『1천권 독서법』의 저자처럼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삶을 향한 꿋꿋함과 용기를 받을 수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남들보다 떨어지는 환경에 좌절했을 것이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통해서. 
  『1천권 독서법』의 저자는 삶이 주는 막막함 끝에서 독서를 통해 치유의 방법을 찾았다. 살다가, 굉장히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살아가다가 우리는 종종 삶의 절벽 끝에 도달하게 된다. 그 끝에서 뛰어내릴지 다시 돌아 나올지 결정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그 끝에서 독서라는 지난하고 고독한 행위를 하기로 선택했다. 일하는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역할에서 주는 책임감에서 삶의 기운을 소진한 저자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작가에게 박수를 쳐주고 엄지 척을 해주고 싶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 24시간을 쪼개기 시작했다. 출근 전 15분, 업무 전 30분, 점심시간 45분, 퇴근길 20분, 저녁 식사 후 1시간, 아이 잠든 후 1시간을 만들어서 책을 읽는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을 발견해 그 시간을 독서로 채우기 시작한다. 책은 시간이 날 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에게도 시간은 충분히 많다. 시간이 부족할리는 절대 없다. 누워 멍하니 있는 시간, 태블릿 PC 속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 텔레비전에 빠진 주말의 시간. 그 시간들을 반성한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일상의 풍경이 달라졌다고 한다.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치우고 6인용 탁자를 두고 책장을 배치했다. 저자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지루해진 가족들이 곁으로 다가온다. 아이에게는 열 권씩 읽으면 초콜릿이나 사탕, 실내 놀이터에서 놀기 같은 보상을 준다. 아이는 하루에 세 권을 읽는데 두 권은 자신이 선택한 책이고 나머지 한 권은 저자가 골라주는 책이다. 책을 놀이처럼 받아들인 아이는 스토리 텔링의 문제가 나와도 힘들어하지 않고 풀어 나간다. 
  회사에서는 책을 통해 배운 감정과 인간관계의 깨달음으로 그전보다 스트레스가 낮아졌다. 동료와의 사이도 좋아지고 자신의 내면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업무가 바뀌면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한다. 관련 책들을 스무 권 정도 읽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대학원을 가고 싶어 지망했지만 일곱 번을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책을 읽으면서 책 읽기가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무자 중에서 장학금을 주는 면접에서 저자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하루에 한 권을 목표로 정했다고 해서 꼭 지킬 의무감은 없다. 책 읽기가 고통스러워지면 포기해 버린다. 하루에 한 시간이어도 좋으니 책을 읽을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자신 없는 저자는 출근길에 영어 듣기를 하고 영어 잡지를 읽는다. 그렇게 모인 시간들을 수치로 보여줌으로써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는 3년이 넘는 시간에 천 권 읽기를 했다. 읽으면서 쓰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독서 노트를 만들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주로 800번으로 시작하는 문학 책만 읽어왔다. 즐거운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 좋고 신나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감탄스러운 문장들을 베끼고 매혹적인 인물이 나오면 작가의 모든 책들을 찾아서 읽는다.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인데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읽기 행위이다. 스펙이 화려하지도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 다니지도 않지만 우울하지 않은 이유는 책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1천권 독서법』을 읽으면서 책이 우리 삶에 주는 감동과 놀라운 치유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책이 주는 힘에 있었다. 삶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준건 한 권의 책이었다. 오늘 읽는 책은 어제를 살았기에 가능하고 내일을 살 수 있는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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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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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 안아주었고, 그렇게 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라이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98p)


  맹장 수술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병원에 9주 동안 누워 있는 루시 바턴은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오랜 기억들과 대화를 나눈다. 옷 가게에서 만난 세라 페인과의 만남에서 루시는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쓸 것을 다짐한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을 향한 기억을 가진 이야기. 세라 페인은 말한다. "독자에게 무엇이 작중 화자의 목소리고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는 아닌지를 알리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텔레비전도 없고 차고에서 살아야 했던 루시의 어린 시절을 지탱했던 건 따뜻한 난방이 나오는 도서실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보낸 시간 덕분에 루시는 숙제를 충실히 하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성적은 나아졌고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들어갔다. 루시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는 어떤 의미에선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루시의 옷차림을 좋게 보지 않은 교수가 있었고 그에게선 사랑을 느꼈으나 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루시는 책을 쓰길 원했고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틈틈이 단편 소설 두 편을 발표했다. 늘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루시의 엄마가 찾아왔다. 그녀는 루시 곁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루시와 대화했고 오랜 기억들을 나눴다. 대부분 아는 여자들의 결혼 생활과 그 이후의 일들이었다. 루시는 왕래가 없었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엄마와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루시가 퇴원하고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임종을 지키러 갔지만 엄마는 루시에게 곧 떠나줄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떠나오고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올곧게 자랐고 루시는 작가로서 성공을 한다. 연락하지 않았던 오빠와 언니와 전화를 하고 언니가 요구하는 돈을 보내며 살아간다. 나를 이루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루시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죽음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친절하거나 그때는 몰랐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본다.
  엄마와 보낸 다섯 밤낮은 루시를, 루시의 글쓰기를, 루시의 삶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돌아보게 만든다. 간호사를 별명으로 부리는 엄마. 다정하지도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지 않은 엄마. 딸이 걱정되어 비행기를 타고 와 이야기를 나눠 주는 엄마. 루시는 완전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 낡은 추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에서 오로지 '나'를 들여다보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엄마와 보낸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연약함과 미성숙함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었다. 다인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봐 소곤거렸고 피곤해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 곁을 지키는 동안 삶은 불편하고도 지루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루시를 안아주는 치통 간호사처럼.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주사를 주는 간호사.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마음에 바나나 껍질을 까서 내미는 환자 보호자. 목욕을 해주고 머리를 깎아 주는 자원봉사자들. 보호자들을 위해 매주 한 번씩 점심을 마련해 주는 사람들. 너덜너덜해진 채 감사합니다를 말하곤 했지만 그때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기억해 쓴 것일까. 소설에서 영화에서 본 장면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삶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작업이다. 엄마가 죽고 나서 나의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유년은 짧았다. 나 대신 다른 이가 그 사랑과 함께 살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몰려올 때 책을 읽거나 맥락이 맞지 않는 글을 쓴다. 가끔 슬프다. 주말이면 걸려오곤 했던 엄마의 전화가 없고 명절이면 갈 곳이 없다. 조금 기쁘다. 루시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과 싸울 수 있고 슬픔을 이길 수 있어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어서 엄마 없는 추석이 쓸쓸하지 않을 수 있겠다. 
  잘 쓴 소설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2017년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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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1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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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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