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은 사람들이 죽으러 병원에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사들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라는 무주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무주와 말테는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정확히 간파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병원과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준비된 죽음이었다.


  편혜영의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삶과 병과 죽음의 실패. 우리는 매번 실패해서 실패한 순간에도 그게 실패라고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 내 이마에 실패의 낙인을 찍지 않는 이상 이 생에서 패배했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한때는 조선 산업으로 번창했던 도시 이인 시(里仁市)는 경기가 나빠지자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면서 도시를 빠져나가거나 부랑자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술에 취해 사고를 내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온다. 인구 9만의 쇠락한 도시에도 병원은 있다. 선도 병원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로 일을 시작한 이석이 그곳에 있다. 성실하고 사람이 좋아서 그는 병원에서 원무과에서 일을 하며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 병원에서 과장과 함께 병원에 들어오는 비품의 단가를 올리거나 리베이트를 받으면서 일했던 무주는 혼자 책임을 지고 선도 병원으로 쫓기듯 내려왔다. 무주의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 순간 무주는 제대로 살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병원 혁신위원회 팀이 꾸려지고 상사인 이석의 추천으로  팀에 들어갔다. 사무장은 병원을 위한 혁신안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문이 떠오르고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이석이 작성한 회계 장부의 숫자를 검토한다. 


  이석의 아들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석이 일하는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그 순간 원장은 돈이 많은 다른 환자의 치료를 먼저 해주었다. 타이밍을 놓친 이석의 아들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서울의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아들의 병원비, 대출, 세금, 그 밖의 생활비를 이석은 어떻게 감당했을까. 무주는 장부에 적힌 누가 봐도 과하게 부풀린 액수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정의로운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석의 비리를 병원 사이트에 익명으로 제보한다. 


  어진 마을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가진 이인 시는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다. 소설가 편혜영이 만들어낸 가공의 도시에서 나는 익숙함을 마주한다.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말을 아끼고 죽음에 무감각했다. 병상이 비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죽음조차 빈자와 부자를 차별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아놓고도 1인실을 쓰지 못하는 세계였다. 정사각형이 아닌 삼각형 안에서 바닥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공간이었다. 


  무주는 좋은 동료이자 농담 상대인 이석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에게만 들이대며 위협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에도 산 자들의 세계에서 믿음은 배신당한다. 다시 돌아온 이석은 무주에게 말한다. 병원은 불리한 건 절대 들춰내지 않고 원하면 뭐든 감출 수 있다고. 죽음과 생명이 각축을 벌이는 곳에서 오로지 죽은 자들이 승리한다. 죽음에서 실패한 자들이 병원에서 퇴원한다. 편혜영은 불균형, 불평등, 불합리함으로 얼룩진 삶의 현장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으로 이 세계의 탈출구를 열어 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 문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
윤성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는 나만 쉬었다. 10월 9일 한글날, 휴일이었는데. 쉬라고 해서 쉬었는데 마음이 불편 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시계를 자꾸 보게 되었다. 지금쯤이면 이걸 하고 있겠네. 이 시간이면 끝났겠네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어묵국을 끓였는데 어묵 보다 무가 많았다. 무 다 건져 먹기. 점심의 미션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에 눈길이 갔다. 깔아지나, 깔아져서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너무 재밌어서 앱을 지웠다가(심지어 탈퇴 신청까지 했다) 다시 깔아서 저녁 먹고 또 했다. 게임 한 번 당 하트 하나가 필요했다. 하트가 필요한 게임이라니. 사랑을 마구 구걸하게 만들다니.


  정신 차리고 윤성희의 『첫 문장』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나의 하루가 별 볼일 없는 건 아니었구나 위로가 되었다. 하루에 두 번 밥 먹기. 보일러 틀어서 샤워 하기. 자기 전 마음에 드는 책 골라 읽기. 귀여운 캐릭터의 유혹에 빠져 게임 하기. 윤성희의 소설 속 인물 같은 하루를 살아 내고 윤성희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만 쉰 휴일을 마무리 했다. 


   『첫 문장』은 '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 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말의 첫 문장은 '첫 문장은 중요하지 않다'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문장 역시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다. 중요한 건 문장이 아니다.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살아 오면서 네 번의 죽음을 맞을 뻔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어제의 나의 하루처럼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그게 다 시간의 힘이다. 죽을 뻔 했던 그 순간에는 세상이 꺼지고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이지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수긍이 된다. 이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유복자로 태어난 남자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다른 형과 누나 사이에서 자란다. 눈이 먼 할머니는 성이 다른 손자를 배척하지 않는다. 달도 가는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라디오 뉴스를 듣는 할머니 곁에서 막걸리를 얻어 마시며 유년을 통과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중 두 번은 자살 기도라는 오해를 받았고, 한 번은 '행운의 소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신문에 실렸다. 내가 죽으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고. 그땐 어렸다고. 단지 겁이 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아내가 떠나간 집에서 낮잠을 자던 토요일 오후에, 나는 내가 그 오해를 방패 삼아 사춘기 시절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성희, 『첫 문장』中에서)


  네 번이나 죽을 뻔 했던 남자는 살아 남아 결혼 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 자신은 네 번이아 죽음을 피했는데 열일곱의 딸은 그러지 못했다. 소설은 딸을 잃고 아내가 떠난 집에서 혼자 남은 남자의 일상을 그려낸다. 일요일에 회사에 출근해 자리를 정리하고 경비아저씨에게 받은 사탕 두 알을 받는다. 남자는 회사 회장님의 자서전을 대신 써준 적도 있었다. 회장님이 요구하는 자서전의 마지막 문장에 단어를 고치기도 했다. 조카의 결혼식에 갔다가 문구점에서 산 수첩에 '나'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적기 위해 고심한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버스 터미널에서 가을을 보낸다. 전국의 버스 터미널은 셀 수 없이 많고 사람들은 다양하고 언제라도 표를 사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남자는 딸아이가 살아 있었으면 썼을 열일곱의 자서전의 문장들을 고르느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딸과 함께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도 그날 딸이 마지막으로 신은 양말의 무늬를 기억해 내지 못해 운다. 


  윤성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의 취향에 관대하다.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따져 묻지 않고 긍정해 준다. 예의 없는 말버릇에도 양말을 뒤집어 벗는 행동에도 웃어주고 받아 준다. 남자는 딸이 가진 특이한 말투와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농담을 하면 농담으로 받아주고 원하는 게 있으면 전부 들어주려고 했다. 그 자신은 네 번이나 죽음을 피해 놓고 딸에게는 운을 물려 주지 않았다. 남자는 딸의 자서전을 대신 쓰는 것으로 슬픔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모두 첫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살아오는 내내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시계를 보고 게임을 한다. 첫 문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첫 문장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대체로 삶이란 그런 것이다.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게임 한 번당 하트 하나는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어제는 나만 쉬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오늘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

-강성은


라디오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꿈속에는 과거의 사람들만 가득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햇볕 속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제설차가 지나갔다


죽은 사람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집 지붕 위에서


라디오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나무 라디오는 두 개 하나를 듣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재빠르게 다른 하나를 켠다 모자라고 비어 있으면 불안하다 일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꿈이었다 꿈속에서눈을 맞고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눈사람을 발로 찼다 꿈속에는 과거의 사람들만 가득했다 몸이 아픈 엄마, 우울한 동생이 나와 꿈의 무게는 늘어났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내게 인사해 주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질문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를 쳐다보아도 그 속에 사람이 살아갈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 햇볕 속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제설차가 지나갔다 발로 차 버린 눈사람이 거기 있었다 죽은 사람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무 라디오는 두 개 죽은 자들의 연주를 듣는다 우리 집 지붕 위에서



Ghost

-강성은


나는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는 아이였다

식은 밥과 국을 들고 서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문득 오리너구리는 어쩌다 오리너구리가 된 걸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긴 복도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고

햇볕만 가득한 삼월


 식판을 들고 급식실을 나왔다. 시멘트 의자 위에 앉았다. 엉덩이는 대신 시원했다. 국에 밥을 말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급하게 먹었는데도 체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김치 국물이 교복 소매에 묻으면 식판을 두고 수돗가로 달려가 씻었다. 돌아오니 식판이 사라졌다. 탕수육 두 개, 뜯지 않은 조미김이 있었는데. 



저녁의 저편

-강성은 


여자는 그에게 저녁을 먹으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전화를 끊자 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들이 자꾸만 유리창에 부딪쳐 떨어졌다 여자는 갑작스런 코피가 멈추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새로 산 양탄자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새들은 자꾸 날아와 부딪치고 여자는 코피가 멈추지 않아 그대로 누워 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새들은 무엇을 보고 돌진해 오는 걸까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누가 이 많은 새들을 날려 보내고 있을까 우리에게 왜 이런 계절이 닥치는 걸까 생각한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보였는데 머리에 쌓인 흰 눈을 털었다 여자는 일어나 침착하게 음식을 내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주 앉았다


  가끔 정신 나간 새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창문과 문을 열고 막대기를 들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적막이 소란스러움으로 바뀌곤 하였다.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이 힘들어지고 여름은 끝을 모른 채 패악을 부린다. 가을이 시작하고 겨울이 우리에게 도착할까. 의문을 담아 국수를 삶는다. 기름때를 닦아내고 노란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다행히 이곳의 불안은 수신되지 않는다.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가벼운 행복을 수다하는 오전. 질문하지 않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골똘한다.



Lo-fi 뒤표지 글

-강성은


작년에는 남자였다가

올해부터 여자가 된 사람

어제는 노인이었는데

오늘은 아기가 된 사람


작년에는 동물이었다가

올해부터 식물이 된 사람

어제까진 지구인이었는데

오늘은 외계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겨울이면 얼고

봄이면 녹는


불 없이 타오르고

물 없이 익사하는 사람


많은 창문을 가진 사람 바람 부는 밤 덜컹이는 덧문들을 그는 어떻게 잠재울까 모르는 길들이 대추 잎사귀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암모니아 애비뉴를 들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 아이를 생각했다


  당신은 시의 목소리를 듣습니까. 매일 신간 목록에는 시가 올라오고 있는데 시를 찾는 사람들은 줄어듭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가 쏟아지는 이유는 시를 찾는 이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가능한 추측을 하며 저음질로 수신되는 시를 읽어 갑니다. 시집은 시인의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그가 빈 방에서 녹음한 시들은 불량 음질입니다. 볼륨을 높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빛을 끌어모아 시집에 적힌 말을 읽어갑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는 지구에서 탈출하고 싶어 보내는 미약한 신호의 시가 녹음됩니다. 길을 잃은 외계인이 탄 우주선이 전파를 감지하고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신호는 쌓이고 가난한 시인은 얇은 시집 한 권을 내는 일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계시를 받고 예언을 들을 줄 알았는데. 폭발이 일어나기 전 나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대충 불리다가 죽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문장을 가지고 마거릿 밀러의 소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화목하게 보이는 부부의 아침 풍경입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잡아당겨 봅니다. 짐은 데이지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줍니다. 폭풍 전선이 형성됐으니 이곳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데이지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여느 아침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합니다. 


  짐은 데이지의 심상찮은 기색을 살핍니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묻습니다. 데이지는 망설이다 꿈 이야기를 합니다.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이란 자신이 묻힌 무덤에 가서 묘비를 봤다는 것입니다. 묘비에는 '데이지 필딩 하커, 1930년 11월 13일 출생. 1955년 12월 2일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녀는 4년 전에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짐은 그건 꿈속의 일이라며 지금은 살아 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데이지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죽은 날짜에 비밀이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그들이 사는 집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생활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멀리서 본다면 그들 부부의 일상은 기쁘고 찬란한 희극입니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이지요. 짐은 토지 측량사로서 성공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집을 지어 이사도 왔습니다.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장모를 위해 별채를 따로 두기까지 했습니다. 마을에서 짐의 평판은 상당히 좋습니다. 데이지 역시 그런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입니다. 조용하고 그런대로 굴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부부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들의 일상이 금이 가게 되는 건 데이지가 꾼 꿈 때문입니다. 데이지는 엄마와 남편의 만류에도 4년 전인 12월 2일의 기억을 모으는 작업을 합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죽었던 그날 현실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죠. 사실 데이지의 부모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따로 살기 시작했으며 아버지라는 사람은 가끔 편지를 보내와 돈을 요구합니다. 데이지는 순하고 착한 성격이라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데이지가 사는 동네에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보석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오지요. 데이지는 아버지의 보석금을 대신 내준 피나타라는 이름의 탐정을 만납니다. 그를 통해 잃어버린 그날의 기억을 찾습니다. 꿈속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그날 데이지의 하루는 대체 어떤 빛깔이었을까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가면서 드러나는 데이지의 비밀은 비극을 향해 달려갑니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데이지에게는 위선과 가식으로 둘러싼 견고한 울타리가 둘러 쳐져 있었던 거지요.


"그럼 이 허튼짓은 당장 그만둬라, 알겠니? 우리는 탐정을 고용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냐. 뉘앙스가 무척 추잡하잖니."

"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 척 가식을 떨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가식이라고? 세상에 점잖은 모습을 내보이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거냐, 가식이라고? 글쎄, 난 아니구나. 나는 그걸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부르지."


  데이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데이지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수록 강인해져갑니다. 가정이라는 역할극에서 맡았던 조신하고 말 잘 듣는 아내와 딸의 배역을 걷어차 버립니다.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을 당당히 드러낼 준비를 합니다. 그에 반해 데이지의 엄마는 가식의 다른 이름이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요. 본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합니다. 


  로스 맥도널도와 일찍 결혼한 마거릿 밀러는 결혼 초기에 우울증을 앓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에게 남편은 추리 소설을 잔뜩 가져다주지요.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며 소설을 쓸 결심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보람도 성취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종종 우울로 발전합니다. 마거릿 밀러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병을 이겨냅니다. 작가의 실제 삶은 『내 무덤에 묻힌 사람』에 반영됩니다. 데이지의 각성은 소설가 마거릿 밀러의 각성입니다. 소설은 추리 형식을 빌려와 인간이 가진 욕심과 비겁함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사회에 만연된 인종 차별적인 요소도 꼬집습니다. 


  자신이 죽는 꿈으로 인해 데이지의 현실은 바뀝니다. 꿈에서 죽은 그녀는 현실에서는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녀 자신이 묻힌 무덤 속에서 보내온 호출에 응답한 데이지는 반전에 해당하는 비밀을 알아가는 것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과 틀을 깨뜨립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하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읽으며 불행한 가정의 저마다의 사정을 알아가보는 탐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시길 바라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문장은 나를 과거라는 별로 데려간다. 광활하여 모래바람만 불고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없는 고독의 기억만이 자리 잡은 그 별로. 문장을 읽어가다가 나는 별의 기억 속으로 소환된다. 머뭇거리고 전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식의 화자의 서술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며 걸어간다. 사랑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독자는 헷갈릴 수도 있겠다. 사랑이었다면 죽음 뒤에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없다. 죽음이 우리 곁을 찾아와 머무는 순간까지도 사랑은 없다. 이제 우리는 순진하지도 않으며 열정은 내다 버린 지 오래다. 사랑의 순간에 머물렀던 기억이 남았다. 진실은 사라지고 기억만이 우리를 고독의 별로 안내한다. 열아홉 살. 케이시 폴은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빌리지의 테니스 클럽에 가서 젊고 가문이 좋은 여자애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폴은 어머니의 신념과 고집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그저 한 여자를 만나 테니스를 치고 사랑에 빠질 뿐이다. 


  마흔여덟. 수전은 딸이 둘 있고 가끔은 정원사 흉내를 내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이다. 각 방을 쓰고 있으며 남편의 눈을 본지 오래되었다. 폴은 테니스를 함께 친 뒤 수전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젊은 남자에게 부여되는 평판이라는 것이 있다면 폴의 어머니는 그가 이제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는 말로 그 일을 비아냥거린다. 수군거림, 비아냥, 남의 시선을 뒤로하고 그게 있다 해도 무시해 버리고 그들은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래도 이 정도는 발견했다.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모범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뒤에 오는 사랑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반면 더 쉽게, 더 좋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물론 가끔은, 첫사랑이 심장을 소작(燒灼) 해버려, 그 뒤로는 어떤 탐침을 들이밀어도 흉터 조직만 나올 수도 있지만.

(『연애의 기억』中에서, 줄리언 반스)


  세상의 통념과 형식을 깨는 그들의 만남은 폴과 수전을 알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한 시제인 미래로 데려간다. 폴은 오십 년도 더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기억으로 어루만진다. 가끔 쓴 일기 속에서 떠올려 보기도 하고 인과 관계가 맞지 않는 기억을 풀어 놓기도 한다. 사랑은 구체성이 없는 행위라는 것을 그 자신이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하나의 이야기에서는 폴은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한다. 둘의 이야기에서는 객관화를 목표로 '너'라는 이인칭, 셋의 이야기는 '그'라는 삼인칭으로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실패. 추측대로 폴은 사랑의 이야기 안에서 패배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폴도 나도 실패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랑의 실패는 삶의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 삶, 구원에서 우리는 실패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이 연애를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연애의 기억이 우리를 마지막에 부여받은 축복으로 안내한다. 그것이면 된다. 사랑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