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하나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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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즐겨 보는 영상은 청소와 정리 정돈 영상입니다. 화장실과 부엌의 묵은 때가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정작 저는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내 몸이 움직여야 집이 깨끗해지는데 남이 청소하는 영상만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니. 반성하겠습니다. 그래도 그런 영상을 열 개 정도 보고 나면 힘이 납니다.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할까. 마음을 먹은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정리를 했습죠. 빈 공간에 물건을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서랍장을 삭제해야겠어요. 서랍장을 두면 그 안에 물건들을 계속 채워 넣겠죠. 잘 쓰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쉬는 날이면 청소를 하고 비우고 누워서 책을 읽습니다. 작은 행복을 곳곳에 놓아두어야죠. 


얼마 전에 읽은 무레 요코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작은 행복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느긋하게 누워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느긋하게 읽다 보면 복잡하고 슬픈 나의 하루들에게 휴식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좋으니 편안해지렴.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 등장하는 고양이 타로가 말해줍니다. 


주점 겸 식당을 하는 엄마와 사는 아키코는 출판사에서 일합니다. 쉬지 않고 근무를 했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와 무관한 곳에 배치가 됩니다. 취향이 다른 엄마와 그럭저럭 계속 살아갈 줄 알았지만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인생에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 버렸죠. 그렇죠. 기쁜 일은 희귀하게 천천히 슬픈 일은 빈번하게 빠르게 다가오죠. 


아키코는 책을 만들 때 인연을 맺은 요리 연구가의 도움을 받아 엄마의 가게를 다시 차립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요. 매일 달라지는 수프와 샌드위치가 아키코 가게의 주메뉴가 되죠. 동네에서 오랫동안 엄마가 장사를 했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은 놀랍니다. 영업시간이 길지 않은 것에도요. 꿋꿋이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가는 아키코입니다. 


듬직한 직원인 시마 씨도 도움이 됩니다. 제목 그대로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아키코의 일상에 시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시련이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 나가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바닷가에서 샀습니다. 바다에 갔더니 도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책들로 가득한 바다라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을 세 권 전부 다 샀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네요. 


하나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둘, 셋의 이야기도 읽어야 합니다. 아키코의 변화된 일상을 보면서 계속 위로와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너무 애쓰지도 너무 힘들게도 살지 않아도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고 그러다 잠이 드는 하루를 너에게 선물해야 한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말합니다. 


아키코도 정리를 합니다. 모처럼 쉬는 날에요. 마음을 다스리는 건 어렵지만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며 배달 음식 시켜 먹기, 필요하지 않은 물건 버리기, 책 정리하기, 바닥 닦기 등.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게요. 좋아지고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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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무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연결에 대하여
김민섭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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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점점 안 좋게 변해가고 있어서 실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요즘이다. 어차피 망할 거라는데 조금 괜찮은 쪽으로 망할 수는 없을까. 이것 또한 이상한 바람이다. 망해버리는데 괜찮고 안 괜찮은 게 어디 있다고. 그래도 이왕 망할 거 덜 아프고 덜 상처받으면서 망하고 싶다. 어제도 많이 먹어 버려서 망했다는. 오늘은 절식을 해야지 하는 마음. 이렇게 다짐해도 다시 먹을 거여서 예고된 망함.


세상을 구하는데 필요한 건 세 가지. 유머와 귀여움 그리고 다정함. 이것들만 있으면 지구 멸망의 시간을 늦출 수 있다. 고 믿는다. 힘들어도 누군가의 웃긴 말 한마디와 귀여운 표정과 다정한 몸짓에 실망과 분노로 끓어오르던 마음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적정한 온도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고 존댓말로 이야기를 건네주는 일들로. 


김민섭의 에세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우리의 다정함으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자고 말한다. 지금 현재도 다정하니 조금만 더 다정해도 된다고 다독인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다정해. 조그만 힘을 내서 너의 다정함을 퍼뜨려 보자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나의 다정함을 증폭해서 더 멀리 날려보자. 으쓱해진다. 


오늘의 나의 다정함은. 쉬는 날이지만 업무 하나를 했다. 쉬고 있지만 컴퓨터를 켜서 하루에 하나씩 요청에 답을 해주자. 내일도. 귀엽고 상냥한 말투로 메시지를 보낼 예정이고 지난 실수를 들추지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인류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면 사나운 마음을 숨겨 보아야겠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나의 꿈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렸을 때는 터무니없는 꿈을 가졌다. 어느 대학교를 가겠다. 그리고 무엇이 되겠다. 실현된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불안이 많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후회를 반복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도 꿈을 꿀 수 있다면 지금이라고 안 될게 무엇인가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묻는다. 꿈을 이룬 어른은 못 되었지만 다정한 어른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다정한 어른, 문서 양식에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른, 카드 결제 서명란에 리본을 그릴 수 있는 어른, 꿈이 없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 지는 게임에서도 실망하지 않는 어른. 다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에게 다정해질 것. 나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 나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빌어줄 것. 


망해버렸지만 망한 상태에서도 살 수 있어야 한다. 나만 망한 거지 세상이 망한 거 아직 아니니까. 나에게 다정함이 부족하다면 다정함을 배워서 살아간다. 시끄럽고 복잡한 세계에서 잠시 이탈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읽으며 다정함을 장착해 지구로 다시 귀환하길 바란다. 나의 다정함으로 너를 사랑할게. 꼭 안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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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녹는 Entanglement 얽힘 1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 다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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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녹는』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볼 때 이제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그대로 직진하며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조명가게》 역시 강풀 작가의 원작이라는 것만 알았지 내용에 대한 사전정보는 없었다. 


휴일 낮에 본 《조명가게》는 무서웠다. 공포물이구나. 그러다 점점 F는 울고 말았다지. 이런 이야기였구나. 강풀은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발상과 주제를 생각해 내었을까. 현생에서는 불가. 다음 생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이서수의 단편이 실려 있다는 『봄이 오면 녹는』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지 말자마자 하면서도 주문했다. 또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 붉은 등 아래에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봄이 오면 녹는』에 실려 있는 각기 다른 작가의 세 편의 이야기의 주제는 '손절'이었다. 와.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손절이라니.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싫은 소리 듣거나 하는 걸 못 견디는 나에게 필요한 올해의 단어가 아닐까. 2025년의 너는 칼같이 손절 좀 하라는 책으로 전달하는 신의 계시.


몸이 아플 때 보던 영상은 도시에 있는 모든 걸 버리고 산이나 섬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그들은 젊을 때 사람과 세상과 돈에 상처를 받고서 몸이 아프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모든 걸 버리고 훌훌 떠나보자.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내 인생에 휴식과 즐거움을 줘보자. 모든 관계와 세상을 손절하고 사는 사람들은 얼굴부터가 달랐다. 별거 아닌 일에도 웃었다. 그런 삶에도 걱정이 있겠지만 표면적으론 걱정이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내려놓을 수만 있어 모든 걸 내려놓으면 마음과 얼굴이 좋아지는가 보다. 고통과 상처를 얻고 난 뒤의 깨달음이라 비싼 값을 치른 후에 앎이어서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소중해지는가 보다. 『봄이 오면 녹는』을 다 읽고 나면 제목 그대로 봄이 오면 우리의 그런 관계가 눈 녹듯 과연 녹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만큼 각각의 이야기들의 결말이 파격이다. 특히 성혜령의 「나방파리」는. 아이를 읽은 종희와 일영이 영매를 찾아다니면서 밝혀지는 그들의 과거사는 현재와 만나면서 아찔함을 준다. 사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선의를 가장한 악의가 무엇인지 사유하게 한다. 


이서수의 「언강 위의 우리」는 웃기는 손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손절과 이별의 차이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손절은 일시적인 헤어짐의 상태.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의 상태. 손절은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이별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 종선과 미진과 예슬이 어감도 이상한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으면서 나누는 우정은 봄이 오면 녹는 관계여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친한 게 맞아. 


앞의 두 소설이 인간관계를 손절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전하영의 소설 『시간여행자-처음 한 여행과 다르게 여행하는 것』은 시절을 손절한다. 현재의 내가 회상하는 과거의 어느 시절을 하나씩 열거하며 수치와 나태를 버린다. 과감하게까지는 아니고 천천히 오래 감정을 만지면서 손에서 놓아버린다. 과거를 손절할 수 있다면 미래 역시 손절 가능한 대상이 아닐까 희망을 준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정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다. 정보는 과연 정보 다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무 많은 정보는 정보가 아니었음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 자주 정보 없이 무언갈 보고 듣고 사랑해 봐야겠다. 그때 내게 달려오는 이야기의 감동의 무게가 상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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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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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되었다. 새해가 밝으면 서서히 올라오는 다짐 내지 의지.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또는 의지. 미라병. 어느덧 유튜브 알고리즘은 청소와 정리 정돈 영상으로 점령했고 나는 그런 영상들을 누워서 보면서 나도 해야 하는데 마음으로만 몇 날 며칠째 이러고 있다. 버리는 게 아닌 남길 걸 고르면 비우기가 쉬워진다는데 물욕의 화신인 나로서는 전부 남겨야 할 것투성이다. 


비우기의 최고난도는 추억의 물건이다. 10년 넘게 일기를 쓰면서 매해 모인 일기장이 있다. 서랍장 가장 위쪽에 일렬로 놓여 있다. 한 번도 꺼내 본 적은 없다. 일기라는 게 그게 좀 다시 읽으면 부끄럽고 유치하고 나중엔 수치까지 몰려온다. 50L 쓰레기봉투를 사서 한 번에 모아서 버리는 상상만을 또 몇 날 며칠째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쉬워질까. 어느 날 내가 가방 하나면 들고 떠나야 한다면?


영상도 봤으니 책을 읽어볼까. 마침 이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책 추천 마법사에 무레 요코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두둥 등장했다. 한동안 책장 비우기를 한다고 전자책을 사서 읽었는데 손에 잡히는 물성이 좋아 다시 종이책을 사 모으는 중이다. 이것도 반성해야 할까. 책은 아무래도 (도서관이 멀기에. 이것도 핑계이겠지.) 사서 책장을 넘기며 읽는 손맛이 중요한 거 아닐까. 합리화하는 게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거다. 


매일 그렇지만 유난히 마음이 지친 어느 날의 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읽었다. 붉은 등 하나만을 켜놓고 책을 읽는 밤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집에 돌아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등을 켜두세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얼마 전에 《조명가게》를 봤기 때문이다.) 비움을 주제로 엮인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은 일상의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이야기이기에 몰입감이 상당하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언니 토모코와 태생이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동생 마이가 옷을 정리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진솔한 못 버리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을 시작으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는 제목 그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진을 대비해 비상식량을 딸 모르게 잔뜩 쌓아두는 엄마, 결혼을 위해서는 서로의 애장품을 버려야 하는 예비 신혼부부, 병원 검사를 위해 잠시 집을 비운 남편의 방에서 이상하고 대단한 걸 발견하는 모녀, 집을 나간 며느리의 짐을 정리하는 시아버지까지 물건에 집착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짐을 했다. 책은 다 읽고 사자. 옷은 비슷한 걸 사지 말자. 전부 실패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는데 어찌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응원의 의미로 사야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이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는데 또 어찌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산 옷 전부 옷장에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캐릭터가 있냐 없느냐의 차이만이 있다. 나 또 왜 그랬어. 머리를 쥐어 박지만 원래의 나는 이런 걸 어떡해. 


대신 마구잡이 소비는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에 통장의 잔고는 작고 귀엽고 소중하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내가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에 쇼핑을 하진 않는다. 책은 다 읽으면 헌책 팔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옷은 안 입고 입을 때 불편한 건 한두 개씩 정리하고 있다.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이 아닌 나의 집착과 욕심이다. 그것들만 새해에는 조금씩 비우기로 한다. 유난 떨면서 다짐과 의지를 내보이는 마음도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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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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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새삼스레 가족의 뜻을 찾아보았다. 품사는 명사이고 뜻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네이버 어학사전이 알려준다. 그러면 다시 뜻을 음미해 본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다,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단 말이지. 음. 그래. 그래.


그래그래 하다가도 뭐가 그래라는 반발심 내지는 의문이 든다. 그 어느 것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아 자격지심이 올라오는 걸까.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다는 걸 은연중에 뻐기고 가족애를 드러내는 것에 마음이 꼬여서 일까. 가족이라는 말은 폭력으로 다가온다. 마음을 때리는. 마음이 맞아서 아픈. 그래서 다시 가족의 유의어인 식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식구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 집에 살면서 혹은 한 조직에 속하면서 끼니를 같이 하고 함께 일을 하는 식구라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 요즘엔 유사가족이라는 말도 유행하지 않는가. 전부 내 마음이 꼬이고 몸이 가난을 기억해서 이런 것 같다. 가족보다는 식구나 유사가족에 마음이 가는 게.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나의 잘못과 나의 부주의함을 떠올린다. 


소설은 내가 두고 온 계절의 기억을 데리고 온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기하에게 어느 날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새어머니와 그가 데리고 온 동생 재하. 기하는 그들의 출연에 당황하고 불편해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너의 가족이란다. 기하는 새어머니와 재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 채 지낸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지 그때는 알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새로 생겼지만 기하는 그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덟 살 어린 동생 재하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무턱대고 애정을 줄 수도 매몰차게 차가움을 표현할 수도 없어 미지근한 온도로 대한다. 그 적정의 온도가 상대에게는 가장 춥고 시린 온도인지 자각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두고 온 여름』의 정서는 이상한 그리움이다. 그때는 틀린 게 아닌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맞은 게 아니고 지금은 깨닫게 된 것이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자 했지만 그때는 그걸로 상처를 받았다. 지금은 그때의 가족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고 온 여름』은 말한다. 처음으로 가족 나들이를 떠난 날 기하는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을 느낀다. 그날 그 여름에 기하는 아무것도 두고 온 것이 없다고 했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을 두고 나왔다. 


시간이 지난 후 기하와 재하는 그 시절을 복기하면서 자책하지 않는다. 그때의 자신들의 어쩔 수 없음에 어리숙한 자신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결핍의 상처가 어린 자신들을 웃지 못하게 했다. 두고 온 건 그것이다. 가장 크게 웃을 수 있었던 유년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 대신에 기하와 재하가 가지고 나온 건 대책 없이 비관할 수밖에 없을 어른의 미래였다. 


읽고 나면 마음이 아리는 소설 『두고 온 여름』을 나의 시절과 기억으로 보낸다. 잘 있었니. 나는 그래 잘 있으려고 해. 담담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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