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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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토요일에 나는 무얼 했냐면. 억울하게도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눈을 떴다. 유튜브로 책 추천 영상을 보다가(이럴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나을 텐데) 주말이니까 누릴 수 있는 주 5일제가 선사한 혜택,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를 시전했다는. 이상하게도 오래 잤는데 몸이 아파서 바로 일어나지는 못하고 드러누워서 정지음의 『젊은 ADHD의 슬픔』을 읽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책을 읽다가 방 구조를 바꿔 봐야겠다고. 유튜브 알고리즘보다 더 알 수 없는 나의 잡념과 상념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다. 26세에 ADHD 진단을 받은 한 사람의 고단한 삶의 분투기를 읽고 있으면서 고작 책상의 위치 따위를 생각하다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책을 다 읽고도 누워 있었다. 상상으로 이미 가구의 배치를 마쳤다. 인간, 일어나서 움직여라.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래.


『젊은 ADHD의 슬픔』에는 정지음이 모든 심리 테스트를 하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ADHD 자가 진단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20점부터 ADHD 의심군인데 정지음은 62점을 맞았다.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렵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문항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읽다가 나를 사찰하고 있는 건가 무서워졌다. 


요리인지 조리인지 모를 식사 준비를 한다고 하면 나는 당황하고 허둥지둥한다. 옆에 이선균 셒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음식을 흘리고 그릇을 깨부순다. 그래봤자 완성된 음식의 종류는 김치를 가득 넣은 라면, 양파 무덤인가 의심될 정도의 계란찜, 도시락으로 싸갈 김치볶음밥. 다 하고 나면 개수대에는 그릇과 조리도구들로 산을 이루고 있다. 상에는 겨우 두어 개의 그릇에 담긴 음식뿐인데. 


많이 누워 있다. 정지음도 그렇다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땐 사회성 없는 인간처럼 나름 위트가 있다고 생각한 농담을 하고 후회하기 일쑤다. 순서대로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그러다 중요한 일을 놓치고 만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젊은 ADHD의 슬픔』에서 정지음은 자신이 ADHD 진단을 받기 전까지와 받고 나서의 일상을 웃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묘사한다. 마치 슬픔을 이길 강력한 수단은 자신을 갈아 넣은 농담과 해학이라는 듯이. 


가끔은 슬픈데도 잡생각을 한다는 것 때문에 슬픔의 진위를 의심하게 되었다. 너무나 궁금해 한달음에 달려온 병원이면서, 진료 자체를 지루해하는 내가 남처럼 낯설었다. 남 같은 나를 되돌리기 위해, 하루빨리 지루해하는 내가 남처럼 낯설었다.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中에서)


59세에 죽은 엄마를 생각하면 슬픈데 내일 해야 할 업무가 떠올라 울적해진다.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지 속상하다가도 집에 가면 바로 눕지 말고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지 한다. 뻔히 보이는 약은 행동을 하는 인간을 보면서 재수 없네 그러다가도 카카오프렌즈에서 보내오는 신상품 톡을 보면 행복해진다. 『젊은 ADHD의 슬픔』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나에게 덜 불행해질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다. '타자와 상황을 인식할 땐 '나'라는 주어를' 빼라는 것. 


순간순간 우울해지는 때를 복기하자면 나는 나라는 자의식을 과장하고 과몰입해서 드러내놓고 있을 때였다. 그냥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라는 식으로 나를 빼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말에 하이파이브. 집중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일 뿐 결국엔 일어나서 생각했던 일을 하나씩 해내는 나. 다들 괜찮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노력 중이라는 걸 알고 나면 괜히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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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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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자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나의 우울부터 떨치고 싶으니까 나는 나쁘고, 그래서 우울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너무 별로여서 우울할 의무가 있다. 나는 나를 버티기가 힘들어 우울을 씻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한다. 

(정지음,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中에서)


내가 전 직장에서 이상한 인간을 만나 겁나 힘들다고 느꼈을 때도 누군가는 고작 그런 일로 힘들다고 징징대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할까 봐 참았다. 실제 그런 말을 듣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실체 없는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느라 우울을 드러내지 못했다. 참아야지. 참아봐야지. 이러다가 결국엔 참을 수 없는 지점까지 왔고 나는 그 길로 짐을 쌌다. 비유적인 게 아니라 진심 빡쳐서 모든 짐을 챙겨 나왔다. 


후회하느냐고? 놉.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잘했다고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나에게만 말해준다.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땐 들을 수 있게 잘했다고 말해준다. 잘한 겁니다. 쌔하고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바로 나와야 합니다. 버텨야 한다. 참을성이 없다고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전에 재빨리. 


정지음의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는 인간관계의 오묘함과 복잡함을 유머러스하게 파고든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고 매일 고성과 윽박과 가스라이팅을 당하다 이제는 은은하고 은근한 압박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일을 한다. 업무가 많아서 인간관계를 생각할 틈이 없다는 건 다행인 거,겠지? 책은 작가 정지음이 겪은 인류애가 사라진 에피소드와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시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한 문장을 읽고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너무 별로여서 우울할 의무가 있다'니. 힘들다고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 정도면 너는 살만하지 않느냐. 다른 힘든 사람도 많은데 호강에 겨워 요강 차는 소리 한다는 위로 같은 비난을 받고 나면 그래 난 우울하면 안 돼 이겨내야 해 아자아자 혼자 청춘 드라마를 찍었다. 


나도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내가 너무 별로라는 거.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공효진이 외치는 것보다 크게 외칠 수 있다. 별로인 나.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요행이나 바라고. 매일 드러누워 있으면서 잘 되기를 바라고. 성공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며 나의 미래를 대입하며 좋아하기만 하는. 나는 별로니까 우울해도 된다.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는 엉망진창인 나를 그럼에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늘을 잘 지내보자고 한다. 


별로인 거 받고 우울해도 되니 그 상태여도 너는 너라는 것. 책을 읽으면 엉망진창인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읽어도 좋고. 기대했지만 묘수는 없네 실망해도 좋다. 나 말고도 인간을 대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 망한 인간관계 에피소드 모음집이라 나만 망한 게 아니었네 미안하지만 안도할 수도 있는 책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요즘은 가끔이 아니라 내내 광기를 발하고 있는 것 같아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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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일곱 조각
은모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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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우주가 존재한다면 나는 다른 곳에서 근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도 위로가 되나. 은모든의 연작소설집 『우주의 일곱 조각』은 그런 상상도 위로가 될 순 있겠지 걱정하면서 쓴 소설 같다. 성지, 은하, 민주 세 여성의 삶은 챕터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변화한다. 영화배우였다가 자영업자였다가 회사원이었다가 전업주부로. 


할 수만 있다면 이름과 성별, 부모의 품성을 골라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한 번씩은. 복불복, 선택 못함, 무작위로 세상에 던져진 나는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삶을 소망한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니까 여기서 멈추고 새롭게 시작하자며 용기를 내는 사람에게는 박수를 쳐주면서. 검색창에 평행우주를 쳤더니 문과생으로는 겨우 이해한 건 이곳이 아닌 곳에서 같은 시간대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거라는데. 맞나.


『우주의 일곱 조각』은 평행우주가 있다고 가정하고 성지, 은하, 민주의 바뀐 삶을 그려 나간다. 육아에 지친 어느 세계에 있다가 또라이 상사 밑에서 일하는 다른 세계로 건너뛴다. 배우로 못 나가더라도 나를 미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세계와 거절을 연습하며 하루를 탈 없이 보내길 바라는 세계로 점프 점프. 


일곱 개의 우주를 하나로 묶는 상징들이 귀엽다. 샛노란 간판을 가진 케이크집, 방정식이 적힌 티셔츠, 첩보원 역을 맡은 배우. 은모든은 각기 다른 우주에 교집합을 완성하려는 듯 공통된 설정을 넣지만 일곱 조각의 우주는 사실 하나의 우주라는 걸 강조한다. 어딜 가도 비슷한데 그래도 가볼 수 있으면 가보자고. 매일 똑같은 절망보다는 다른 형태의 절망도 있으니 만나러 가자고. 


야무지게 선택을 한 것도 아니고 선택을 당한 것 같다. 당한 선택으로 여기까지 흘러와 있어 배신감을 느낀다, 삶에게. 어딜 가도 똑같을 거라는 말을 한 그 입을 때려주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는 시간여행자였던 걸까. 어딜 가도 비슷하다는 걸 어떻게 알고 한 말일까. 현명하네. 『우주의 일곱 조각』에서 그리는 일곱 개의 삶은 결국 하나의 삶으로 모인다. 


소설은 포천 쿠키 속 애매한 문장을 거절 잘하고 맛있는 디저트 잔뜩 먹고 기회가 왔다 싶을 땐 기회가 아닌 것이니 한 발 뒤로 물러나 선택하라며 구체적으로 해석해 준다. 같지만 다를 거다. 평행우주를 믿든 안 믿든. 오늘의 우주를 사는 나는 행복해야 한다. 다른 우주를 사는 나 역시도 해피 해피 그 잡채의 삶에서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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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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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서 쓰는 단어인 벤더라는 걸 이해하고 싶어 한참 상대의 말을 들었다. 대형마트에 행사팀으로 들어갈 수 있게 중간에 다리를 놔주는 거군요. 중언부언의 말 끝에 내가 이해한 내용이었다. 그럼 사업자등록증과 통장 사본 보내주세요 했더니 자기가 지금 짐 정리가 끝나서 통장이 없단다. 두 개 보내주셔야 입금이 됩니다.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냐고 융통성이 없다고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러냐고.


음. 여기서 나의 문제점은 모욕의 말을 들어도 그게 모욕인지 농담인지 생각하는 순간이 길다는 거. 판단 능력이 재빠르지 않다는 거. 나이와 결혼 유무를 묻길래 나는 또 왜 등신처럼 고분고분 말하고 있는지. 갑갑하게 구니 그 나이 먹도록 결혼을 못 한 거냐고. 웃다가 농담이라고. 그래도 안 된다고 서류 보내주시라고 했더니 나에게 깝깝하게 군다고 서너 번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의 화는 나지 않았다. 상대의 말투가 웃겼고 벤더라는 걸 길게도 설명해 줘서. 그냥 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정지음의 『언러키 스타트업』을 읽으며 낄낄거려서 낮의 일은 에피소드 정도로 지나갔다. 책의 시작은 SGC TEST라는 이른바 시궁창 테스트로 포문을 연다. 수능 볼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문제를 읽고 점수를 더했다. 나중에 @@ 님에게 해보라고 했더니 전투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점수를 합산하더라. 근래 본 모습 중에 제일 진지해서 빵 터졌다. 


같은 곳에서 일해 그럴까. @@ 님과 나는 약한 파동형으로 결괏값이 나왔다. 서로 조심하자. 불행의 초입이라니까. 『언러키 스타트업』은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이라는 이름만 들었을 땐 뭐 하는 회사인지 잠시 고민하게 만드는 곳에서 벌어지는 웃음과 슬픔의 난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대표 박국제를 중심으로 그의 온갖 변덕과 광기를 등에 짊어진 채 일하는 다정, 수진, 지구, 혜은, 보정의 이야기는 웃으면 안 되는데 가차 없이 웃긴다.


특히 주인공인 김다정 DJ 주임은 소설 속 인물인데 나 같아서(문예창작학과 나왔다고 사훈을 캘리그래피로 쓰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눈물이 났다) 과몰입해서 읽느라 내가 박국제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박국제. 아, 박국제. 대표 박국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만 있다면 드라마 《 W 》에서 보여준 기법처럼 소설 속으로 들어가…. 들어간다고 해도 현실의 이 성격으로는 다정 주임님처럼은 못 하겠지. 박국제의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온몸으로 흡수해 병이 들고 그러다 죽겠지. 


-맞다. 니들 블라인드 해 달랬지? 내가 그거 당장 해 줄게.

-… ….

-이야, 여수 다녀오면 사무실이 더 아늑해지겠어. 김다정이 오늘 소원 풀었네, 안 그래?

나는 마지못해 감사하단 대답을 웅얼거렸다.

직장인의 '감사합니다'는 때로 경멸의 뜻이기도 했지만, 대표들은 늘 그것을 몰랐다. 몰라도 돼서 몰랐고, 모르는 게 나으니까 몰랐고, 실제로도 그냥 몰랐다.

(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中에서)


맥락 없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는 요즘이다. 다정 주임님이 주말과 맞바꾸며 블라인드를 획득하는 장면에서 박국제한테 감사합니다를 말하는데 감사할 상황도 아닌데 감사합니다를 추임새처럼 말하는 내가 왜 그러고 있지 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감사합니다는 상대를 어쩌지는 못하겠고 그저 밉고 싫은 경멸의 감정을 숨기는 방어기제라는 것을. 


책을 읽다가 배를 그러안고 넘어질 정도로 몹시 웃는 포복절도의 순간을 근래 들어 맞이한 적이 있던가. 자야 되는데 하면서도 『언러키 스타트업』을 놓지 못했다. 뒤로 갈수록 환장과 난장과 막장이 이어지며 배가 끊어질 정도로 웃겼기 때문이다. 대표 악당 진짜 대표인 박국제가 벌이는 악당 같은 짓을 보고 있으니 그간 내가 당했던 설움과 모욕과 슬픔이 쓰나미 같은 기세로 밀려들다가도 웃기니까 웃었다. 나만 이러고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구나 위로받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언러키 스타트업』은 강제로 위로를 주입해 주고 장렬히 끝났다. 


어째 드라마나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완벽하다. 어떤 개소리를 들어도 타격감 없이 웃게 된 건 다행한 일인지. 그날 내가 전화 통화에서 들은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 님에게 해줬더니 그거 전라도 비하 아니냐고 화를 내주었다. 그래 약한 파동형끼리 이렇게라도 하루하루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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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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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아프다는 핑계로 주말 내내 누워 있었다. 원래 계획은. 그러니까 계획은 새로 산 자격증 교재를 펼치고 강의를 두어 개 듣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는, 그런 계획이었다는. 비 오는 토요일은 온통 흐린 빛이어서 마음까지도 그 빛으로 물들었나 보다. 맥락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고 무심코 말을 던져 놓고 후회하는 월요일에서 금요일을 보내고 나는 참 한결같이 바보네, 바보야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업무 때문에 전화를 할 일도 받을 일도 많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말이 짧고 혼잣말로 위장해 타인을 향한 무례한 말을 하는 이들이 꽤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전화가 울리면 그래서 마음이 작아진다. 검색창에 전화공, 까지 쳤는데 전화 공포증이 자동 완성으로 떠서 또 놀랐다. 다들 그렇게 공포와 불안을 견디며 살고 있구나. 


정세랑의 미니 픽션 『아라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몇몇만이라도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는 이를 나무라지도 않고 한 밤에 산책을 하며 취객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속 가다 보면 타협 다음의 답이 보일지도 모르니 계속 가본다는 다짐을 하는 의뭉스럽지도 꼬이지도 않은 건강한 사람들이 단 몇이라도. 


지진 난 곳이 하필 서점이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책을 읽으며 버티는 이가 있다. 정세랑의 소설을 관통하는 마음은 무한한 다정함과 한없이 너그러운 이해심이다.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 물어도 한숨 쉬지 않는 이가 『아라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팬데믹의 세계에서도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 나의 잘못이 없나 먼저 살핀다. 짧은 소설을 모아 놓은 『아라의 소설』은 하루 종일 수화기 너머로 설명을 듣고 또 듣다 이해는커녕 오해만 하고 돌아온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친절한 사람들이 소설의 세계에서는 이토록 가득하다. 내가 비굴할 정도로 웃음과 친절을 보이는 이유는 나 또한 그러한 웃음과 친절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지만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는 로알드 말을 기억하면서 겁먹지 말아야겠다. 상대의 친절을 바라지 않고 나의 친절함을 유지하면서 전화를 받고 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주말에 『아라의 소설』을 겨우 읽었다. 월요일에 어깨가 덜 아프면 집에 가서 『아라의 소설』 리뷰를 써야지 했지만 젓가락으로 과자를 먹기만 했다. 소설은 아프고 힘든 현실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괜찮다. 어차피 다 죽을 거니까. 죽음이 큰 슬픔과 고난으로 느껴지던 시절은 지났다. 죽는다고 하니까 죽었다. 방법이 없었다. 다음 세계에서는 다정함만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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