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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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을 본다'라는 첫 문장으로 김유담의 『이완의 자세』는 시작한다. 문장을 읽고 목욕탕만큼 울기 좋은 장소가 또 있을까를 생각했다. 집에 샤워 시설이 따로 없던 시절 공중목욕탕을 다녔다. 늦은 일요일 오후에 아직 햇살이 있기 전에 세면도구를 챙겨 갔다. 오후의 목욕탕은 아침의 분주함이 빠져나간 이후라 한적했고 아직 훈기는 그대로인 상태였다. 문을 열면 안경에 습기가 차 한동안은 앞을 볼 수 없었지만 감으로 로커 앞에 찾아가 옷을 벗고 탕으로 들어갔다. 


그다음 문장은 이렇다. '유난히 세수를 오래 하는 여자들, 그들은 하얀 김이 서린 흐릿한 거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물을 세게 틀어놓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대체 어떤 사연들이 몸을 씻으러 온 곳에까지 다가와 울게 만드는지 부러 궁금하게 여기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혼자만의 목욕 공간을 가질 수 없지만 얼마간의 돈을 주고 더운물을 마음껏 쓰면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안도 뒤에 밀려오는 서글픔을 여자들은 그렇게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리라. 


『이완의 자세』는 한때 잘 나갔지만 사기를 당해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자칭 자영업 일명 때밀이, 세신사 간간이 여탕이라 불리며 일을 하는 엄마 오혜자와 그녀의 딸 김유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삶에 관한한 억척과 기민함으로 무장한 엄마는 다단계 사기를 당하고 며칠 안방에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딸 유라를 데리고 선녀탕 이후에 만수불가마로 이름이 바뀐 곳에서 사람들의 때를 밀어주며 살아간다. 목욕탕에서 인형을 씻기고 있던 유라는 동네 무용 학원 원장에 눈에 띄어 고전 무용을 시작한다. 


초반에 오혜자 씨가 사람들 때를 미는 기술을 익히려고 유라를 데리고 실험하느라 유라의 몸은 누군가의 손길만 닿아도 굳어버리게 되었다. 무용을 할수록 몸에 힘을 빼고 선생의 손길을 받으며 자세를 교정해야 하는데 유라의 몸은 경직되고 결국. 이후의 이야기는 『이완의 자세』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모녀의 과거에 이르러 현재까지의 모습을 그리며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사무실 의자는 목 받침이 없다. 등 받침까지만 있다. 처음에는 뒤로 젖혀지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쉽게 긴장하는 스타일인데 의자까지 딱딱하니 집에 돌아오면 등이 아파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긴급하게 다이소에서 산 등 지압기로 등을 꾹꾹 누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다. 의자 밑에 동그란 쇠를 돌리면 의자가 젖혀진다는걸. 잠깐 틈이 있을 때 뒤로 등을 펼 수는 있지만 목은, 내 목은? 여전히 경직된 자세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눕는다. 


유라는 몸에 힘을 빼고 살아가는 단순한 일을 하지 못한다. 유라뿐만이 그럴까. 모두들 힘을 바짝 주며 어딘가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속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풀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사우나 오너의 아들 만수 역시 유라와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어른들은 말하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고 이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끝이라고 말하면 끝이라고 받아들일 순 없는 걸까. 유라는 끝을 이야기한다. 『이완의 자세』는 꿈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절망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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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 - 김유담 소설집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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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에 담긴 김유담의 여덟 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화면 분할로 왼쪽에는 과거가 오른쪽에는 현재가. 과거 쪽 영상을 보고 있으면 기이한 슬픔이 차올랐고 현재 쪽 영상에서는 헛웃음이 났다. 부끄러움과 모멸을 번갈아가며 느꼈다. 탬버린의 주인공 은수가 타의로 대표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열창할 때. 아버지의 전신에 퍼진 암을 치료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전 애인이 들어준 보험금을 떠올릴 때.


소설 속 장면들을 따라가면 과거에 내가 한 후회와 오늘의 내가 한 잘못이 겹쳐지는 과몰입의 상태를 경험했다. 그만큼 『탬버린』의 소설들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지방을 벗어나 서울로 상경한 여성 화자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과 안쓰러움을 보여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기 시작한 여성들이 겪는 수모와 자기 비하는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지기는커녕 후퇴만 일삼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선옥이 80, 90년대의 누구나의 가난을 그리고 있다면 김유담은 2020년대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이들의 가난을 보여준다. 그때는 누구나 가난했다면 지금은 어떤 이들만 가난하고 슬퍼한다. 집에서의 경제적 지원은 바랄 수도 없고 오히려 힘들게 번 아르바이트비를 다시 부치지 않는다는 것에 만족하는. 누군가는 죽어야 8평 오피스텔을 얻고 포도밭을 살 수 있는 목숨 값에 빚지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하루 종일 도자기에 전사지를 붙이고 점심값 내는 게 부담스러워 밥을 굶는. 첫 데이트 때 남자친구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가방 하나를 사려고 하는.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그때의 장면을 보여줄 때 상대가 보이는 의아하다는 반응에 『탬버린』속 여성 화자들은 후회를 시작한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야 했던 청춘은 나이만 먹는다. 아등바등해도 현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을 단념한 채 끝이 난다. 나를 괴롭히는 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다. 


취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회식 자리에서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해야 한다. 자율학습을 빠지며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서 갈고닦았던 추억의 탬버린은 현재로 불려 나와 서글프게 흔들린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언니를 보호하느라 지친 동생은 어느 날 말없이 찻잔과 에코 가방 하나만을 들고 떠난다. 평범하고 싶다는 건 이제 누구나의 소망이 되어버린 시대. 평범해지기 위해서는 특별해져야 한다는 걸 사명처럼 여기며 사는 청춘의 모습을 『탬버린』에서 만날 수 있다. 


기이할 정도로 그들과 나의 과거는 비슷하고 현재의 모습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아득한 슬픔에 머무르는 겨울이다. 


(김유담의 청춘 삼부작은 『탬버린』, 『이완의 자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이다.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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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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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의 장편소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의 주인공 연희가 직장에서 겪는 수모는 이런 식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옆자리 성대리의 컴퓨터의 전원을 켜 놓고 팀장의 메신저 프로필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기분을 눈치채는 일. 이름이 있지만 야, 막내로 불리며 팀장의 차를 세차하러 맡기러 다니고 어느새 내 일로 넘어온 일을 하느라 수시로 야근을 한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전공보다는 동아리 연극 활동을 더 열심히 한 연희. 소설은 꿈보다는 현실에 밀려 출판사에 취업한 연희의 오늘과 꿈만으로도 가득해서 찬란했던 연희의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연희는 박봉에 과다 업무, 잦은 야근을 견디기 위해 자신에게 신입사원 1이라는 역할을 부여한다. 비록 신입사원답게와 신입사원 같지 않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회식을 끔찍하게 여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오두방정을 시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상적인 사회인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다를 수없이 되뇌어도 분위기에 휩쓸려 조롱과 냉소가 담긴 나름 위트 있는 농담이랍시고 툭툭 말을 내뱉다가 아차 하는 순간을 여러 번 맞이한다. 연희 역시 워크샵이라는 말이 일의 능률을 위해 기술, 교육을 나누는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추진한 이의 삼대를 멸문지화를 처하게 해도 모자란 곳에 가서 술을 먹고 팀장과 대리에게 꼬장을 부린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꿈을 꾸는 자와 현실에 순응한 자의 대비를 통해 청춘을 살고 있는 이들의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하는 책이다. 연희와 연극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장미는 취업이라는 선택지 대신 연극 활동을 이어 나간다. 연희는 직장에서 수모와 모욕을 당하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장미를 부러워하면서도 한심해한다. 한때 열렬했던 꿈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연희와 장미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현실이라는 무대로 넘어와 상영된다. 전형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여겼는데 입체적으로 변모하고 놀라울 정도로 각성을 해서 신입사원 1의 연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고전소설의 특성인 권선징악과 행복한 결말은 현대 소설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빌런이라고 여겼던 팀장과 대리는 느닷없이 선한 사람으로 배역을 수정하고 결말은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게 슬픔을 안겨준다. 


술만 마시면 자꾸 과거가 떠오른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으로 부풀었던 과거가. 현재의 나는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를 기억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연희가 깨달은 것, '꿈꾸던 시간조차 지워버린 나'로 살면 안 된다는 것에 무한한 공감을 보낸다. 어떤 결말로 극이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걸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여기 배역을 부여받고 또박또박 대사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있다. 허무와 냉소로 상대 배역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퇴장까지는 남은 시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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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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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날이 급격히 추워졌다. 겨울 잠바 몇 벌을 꺼냈다. 기모가 든 청바지를 살까 고민했다가 작년에 입던 바지의 먼지를 털고 그냥 입기로 했다. 아직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은 상태. 첫눈이 오고 겨울일까. 두꺼운 옷을 꺼내기 시작하면 겨울일까. 눈과 겨울의 인과 관계를 헤아리는 일도 피곤해진 지금은 제대로 된 시간인 걸까. 금요일 밤이면 주말에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야지, 처리해야지 건설적인 마음이 든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한 일이란 누워서 김금희의 연작 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을 겨우 읽어낸 일뿐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적 배경을 두고 아주 작은 사소한 인연들로 모인 인물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담은 소설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남을 반복하는 일. 영영 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하며 결별했지만 일 때문에 지금 먹고사는 일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서 불면의 밤에 건, 조, 하, 게 이메일을 쓰며 만남을 갈구하는 일. 


김금희가 그려내는 소설 속 인물들은 다들 한 번씩은 망가지고 훼손되지만 끝내 자신을 폐기처분하지는 않는 강철 같은 체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힘이 아주 없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일을 할 때는 상식 있는 사회인인 메소드급 연기를 하다가도 삐딱하고 자기 비하가 심한 본캐가 나와 상대가 당황하기도 전에 나부터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반만 순수한 인물들. 『크리스마스 타일』에는 주말 내내 이불 밖은 위험해를 중얼거리며 밥을 시킬 기운도 없어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 아무거나를 꺼내서 먹을 것 같은 그러다가 월요일 아침에는 씩씩하게 일어나 세수를 하는 당신과 나들이 등장한다. 


일하다가 병을 얻고 병명은 숨긴 채 수술을 받고 다시 복직하는 사람. 대학 내내 함께 했지만 나의 원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사람을 짝사랑하는 사람. 의욕을 내기 위해 중국 유학을 가서 관계가 파탄 나는 걸 보는 사람. 어린 시절 오해와 몰이해로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 방송국 막내 작가로 온갖 굴욕적인 일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 반려견을 잃고 도저히 일상을 살아갈 힘이 없어 개가 있는 지인들을 연락해 심지어 첫 직장 사수와도 만나 외로움을 이겨내려는 사람. 


처음에는 자신의 모서리를 드러내다가 끝내는 그 모서리를 자신 쪽으로 돌리며 날카로움을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일이 잘 안될 때도 잘 될 때도(잘 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지만) 있다는 걸 아는데도 일이 엎어지면 나를 탓하다가 결국에는 마음에 내상까지 입고 만다. 후회를 반복하다가 인류애를 잃어버리고 자기애마저도 쓸쓸히 떠나보낸다. 김금희 소설에서 일상은 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쉬워 보이다가도 나를 그 안으로 밀어 넣으면 소설 속 인물들이 망치는 것보다 더 심한 강도로 관계를 끝장내고 마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혼란극이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니까 좌중우돌의 연속인 사건이 펼쳐지고 마지막은 홀리하고 해피한 결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기대감은 충족시켜준다. 눈이 내리고 산책을 하고 짝사랑을 끝내겠다는 다짐을 하는 마지막의 장면들. 대단한 결심 뒤에 오는 해내지 못할 거라는 한숨이 따라오겠지만 일단은 오늘은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생긴다. 얼마나 웃을 일이 없으면 일부러 웃음을 유발하는 영상을 찾아보며 이건 웃긴 거니까 웃어야 해 하며 나를 다독이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지는 않는지.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타일』을 순서는 상관없고 제목이 마음에 든다거나 끌린다거나 하는 단편 하나를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서로의 망가짐과 깨짐을 방치하지 않고 이상한 유머를 곁들인 치유책을 내놓으며 내일을 기약하자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월요일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는 행성에 떨어져 있지만 부서지지도 어지럽지도 않은 평안한 웜홀 속으로 들어가 금요일 밤이라는 시간으로 『크리스마스 타일』은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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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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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과 해설,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나면 '수록 작품 발표 지면'이라는 페이지와 마주할 수 있다. 소설이 언제 쓰이고 어디에 실렸는지를 보다가 2014년과 2022년이라는 연도를 주목한다. 2014년에 두 편을 쓰고 2020과 2021년에 각각 한 편 나머지 네 편은 2022년에 쓰였다. 


2014년과 202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다들 한 번씩은 무너졌고 무너진 김에 일어나지 못하고 오래 울었을 거고. 누군가 혹은 각자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 앞인지 뒤인지 모르지만 일단 걸어갔을 수도 있고. 안녕한지 묻는 게 미안해 어색한 웃음을 인사 대신 나누던 시간들이었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지 못했던 거다. 써보려고 시도했고 안간힘을 다해 문장을 적어갔을 테지만 문장은 버려졌을 거라는 짐작을 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실린 소설들은 사랑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8년의 공백을 메운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슬픔에 미래를 떠올릴 수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2022년에도 여전히 가슴 아프다. 그들에게 내일이 있다는 걸 누군가가 말해주기만 했어도,라는 걱정의 마음으로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쓰였다. 


죽음이 암시되는 미래를 거부하고자 현재를 끝내기 위한 연인들이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다가 흩어지고 부서지고 소멸되는 것이라 믿는다. 곧 힘든 시간이 지나갈 거야 막연한 믿음조차 서로에게 주지 못하자 죽음을 선택하기로 한 젊었던 시절의 자신들. 예언자의 말처럼 세계는 끝장나고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절망만을 노래처럼 들려주던 우리들이 소설에 있다. 


배가 뒤집히고 단 한 명도 그 안에서 구해내지 못 한 참혹한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지나 미래의 시간에 안착했다. 그럼에도 미래는 '이토록 평범한' 걸 그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짐작할 수 없어서 자꾸 울었다. 소설 속 인물은 달에 도착할 수 없어도 달에 가는 것처럼 걸을 수는 있다는 말을 듣고는 결심을 한다. 완벽한 결말은 없어도 완벽한 절망은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각성했기에. 「엄마 없는 아이들」의 제목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엄마 없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알려주기에. 


사랑의 상실을 겪어내고 이별 후에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면 바다에 가지 않더라도 바다를 그리워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바람을 맞으며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지나가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하며 나를 살게 한다는 걸 떠올리면 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거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어서 그 바다에 두고 온 사랑과 슬픔을 함께하며 좋았던 추억을 자꾸 들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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