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나와 일 - 돈과 일, 그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이원지 외 지음 / 얼론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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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자주 하고 있는 짓이 있다면 그건 수시로 은행 앱에 접속해 보는 일이다, 요즘에 내가. 돈 들어올 데라고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없고 나갈 데는 수십 군데. 알림이 뜨면 그건 백 번에 백 번 돈이 나갔다는 알림. 설정을 잘못해둔 건지 광고 알림이 뜨기도 한다. 주식 계좌 개설 안내라든지 새 금융 상품이 나왔다고. 됐고. 관심 없고. 그래서 얼마 모았나.


모은 건 없고 한 달 소비 분석을 해준 화면으로 데려다준다. 3월에는 온라인 쇼핑을 많이 했다나봐요. 어느 배우의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두 가지 조건이라면 하나는 됐고(아무도 나를 모르고) 두 번째를 이루기 위해(돈이 많았으면) 쓰레기 같은 몸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간다. 돈 벌러. 혹은 돈 쓰러. 


모니터를 보다가 눈이 시려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싶어 CCTV를 피해 핸드폰 앱을 실행. 들어가는 곳이래봐야 몇 군데 없다. 배민. 11번가. 알라딘. 예스24. 그래 오늘은 예스24. 전자책 신간이 뭐가 나왔나. 신간 목록에 있는 저자 이름을 보다가 어라? 내가 아는 유튜바 원지의 하루의 그 원지? 『돈과 나와 일』이라니. 돈을 벌려고 일하는 나의 이 모습을 사찰하고 있는 듯한 제목.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일하다가 현타와서 한 게 책을 사는 거라니(두 권 샀다. 다른 한 권은 염기원의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지금 읽고 있는 중, 재미있을 예감.) 나 뭐지? 그날도 초과 수당 없는 야근을 하고 돌아와 오후에 산 책을 펼쳤다. 누워서. 제일 좋아하는 자세인 옆으로 누워서. 『돈과 나와 일』은 유튜버, 소설가, 사진가, 책방 주인, 기자, 배우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13인이 돈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을 들려준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절약 팁 같은 건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 거고 『돈과 나와 일』은 애증의 돈 앞에서 어떤 자세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의 마음가짐을 들을 수 있다.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라고 그랬는데. 내내 없는 게 돈의 속성인 것 같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도 무의미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개똥철학임이 밝혀졌고. 


지금의 안정적인 나 자신이 되기 전까지 돈과 싸웠던 일화를 들려주는가 하면 돈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프리랜서직의 애환도 들을 수 있었다. 일을 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일이 들어오기 전 금액과 지급 시기를 논하기로 했단다. 자영업자로서 살아가는 비애, 일희일비하는 시간까지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음식 단식에 이어 소비 단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잉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의 소비 생활을 보자면 일상에 필요한 용품은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사 놓는 편이다. 파워 P답게 즉흥적인 쇼핑을 즐긴다. 산책 나갔다가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를 사는 식. 절제하는 몇 주를 보내다 스트레스 받아서 한꺼번에 무언갈 사는 식. 돈에 관한 철학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차라리. 돈이 있어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그냥 쓴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나를 달래기 위해 라이언이 그려진 화장지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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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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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황정은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알람을 꺼야 하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시 눕고 싶을 때 말이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신문을 사러 가는 길은 멀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옆에 두고 떡국을 끓여 먹었다. 솜씨가 없는 요리였는데 옆 사람은 맛있게 먹어 주었다. 무얼 해준다고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사람. 


황정은의 「마더」를 읽고 공책에 감상을 적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고 『연년세세』를 꺼내들었다. 책이 막 나왔을 때 사 놓고 읽어야지 했다가 잊어버렸다. 왜 잊었을까. 그런 건 기억에 남지 않고 책이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해 냈다. 어제는 사무실로 가다가 멈춰 섰다. 비가 오고 다음날이라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맑았다. 벚꽃나무를 찍었다. 비가 오기 전에 모두 떨어질 꽃잎이 남아 있는 벚꽃나무를 향해 찰칵. 우리는 자정이 되기 전까지 업무 통화를 했다. 말 끝에 꽃도 못 보고 시간을 다 보내겠다는 상대의 한탄이 떠올라서. 


그곳에도 꽃은 피겠지만 이곳의 지금의 봄을 담아 보내도 될까요? 


『연년세세』에 실린 네 편의 단편은 겨울의 입김을 닮았다. 봄의 온기는 쉬이 느껴지지 않고 겨울의 한기가 소설 곳곳에 실려있다.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서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고 밝힌다. 그가 자주 만난 여성 순자는 쉽게 단념하고 포기를 한다는 자각도 없이 생의 모든 면에서 포기를 단행한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고 지금은 큰 딸의 살림을 봐주면서 살아간다. 작은 딸과 외조부의 이장을 하러 가는 여정을 그린 「파묘」. 


순일의 큰 딸 한영진의 일상 풍경을 담은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을 내내 참고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고르느라 자신을 아프게 해버리는 사람. 영진은 당신과 나이기도 하다. 「무명無名」에서 순일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 순자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함께 한 시절을 보냈던 순자까지도. 나를 지키기 위해 잘못을 저질렀던 후회의 시간이 순자들에게 있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황정은, 『연년세세』, 「다가오는 것들」 中에서)


순일의 둘째 딸 한세진의 순간순간은 「다가오는 것들」에 있다. 북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 세진. 그곳에서 세진은 자신이 일부러 두고 왔을지도 모를 과거를 만난다.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했다. 흐르고 흘러서 오늘로 도착한다고. 어른인 척 살아가는 오늘은 오늘이 아니라는 걸 『연년세세』의 순간이 말해준다. 어른의 얼굴로 지내는 오늘은 실수로 가득한 어제 얼굴의 반복. 어제와 오늘은 뒤섞이며 내일로 나아간다. 


잘못했고 틀렸다. 이런 말들을 듣는 오후는 병으로 죽어간 이의 얼굴이 스쳐간다.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든 이는 한 번 정신을 차려 큰 소리를 내고 내내 눈을 감았다. 잘못했고 틀렸지만 살 수 있다, 살아간다. 잘못했고 틀렸지만 안심할 수 있는 건 그이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나의 잘못과 실수를 덮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건 기만일 테지만 산 자는 이렇듯 뻔뻔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러니 모두 죽지 마.


연년세세의 뜻은 '해마다, 매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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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오늘의 젊은 작가 39
김홍 지음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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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서, 좋다. 계속 질문해 주시라.) 『엉엉』이라고 답했다. 엉엉? 응, 엉엉. 『엉엉』은 그런 책이다. 엉엉이라고 말하는 순간 엉엉 울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말한 듯해서 후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계속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내내 계속 엉엉 속으로 울면서 지내는 시간들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의 본체가 떠난 이후의 일상을 그린다. 본체는 집이 좁고 더워서 떠난 듯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체가 비상금까지 훔쳐서 나가고 나서 든 깨달음이다. 나의 집은 나와 본체를 담기에는 비좁다. 본체는 고지서로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고소장은 덤이고. 나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채무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다 본체의 소식이 끊겼다. 고지서도 독촉장도 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옮긴다. 지금보다는 넓은 집으로. 그 사이에 본체가 전화를 걸어오면 새 주소를 알려줄 텐데. 전화는 오지 않으니까 이사를 했다. 마스크 공장에서 일을 했다. 본체가 떠난 후로 계속 울었다. 울면서도 일은 하고 쿠팡에서 고양이 밥도 주문했다. 울어도 생활은 해야 하니까 울면서 살았다. 내가 울 때마다 비가 내렸다. 


건전지를 모아서 동사무소에 갖다주러 갔다가 '슬픈 사람 모이세요'라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나와 동그람 씨는 매주 모여서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본체에게서 연락이 오고 본체를 잃어버린 사람들 틈에서 나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지낸다.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 유튜브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음구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 나도 이상한 사람.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일 수도. 같이 이상해지면 되니까. 『엉엉』의 설정은 낯설지 않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이지만 같은 나. 나를 혹은 나의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나의 나는 떠난다. 불법적인 일 같은 거 하지 않고 빚도 지지 말고 살면 좋을 텐데. 그러면 같이 행복해질 텐데. 본체는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의 은유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내가 울면 하늘도 같이 운다는 설정 또한 은유라고. 내가 슬프면 세상도 같이 슬퍼야 하지 않겠느냐는 하소연 같은 거라고. 『엉엉』을 다 읽고 황정은이 떠올랐다. 『엉엉』의 쓸쓸과 황정은의 쓸쓸이 겹친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 우리들은 고지서의 숫자를 볼 때마다 엉엉 울고 있다. 본체가 나를 떠난 이유를 생각하면 자꾸 슬퍼진다. 


소설은 모두의 근황을 알려주면서 끝난다. 이런 결말이 좋다. 그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웃길 땐 웃으면서 계속 누워 있어도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본체가 떠나지 않으니까. 3월의 고지서를 받고 이체를 하면서 엉엉. 4월은 4월에 엉엉하자. 엉엉 울면서 살아보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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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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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 실린 단편 「안(安)」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답답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한 의과 대학이 아니라 사회학과에 간 주인공 '나'는 기자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결혼은 여자한테 손해이며 지옥불로 걸어들어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혼 생활은 이어졌다. 매주 토요일에 남편의 본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 시누이 가족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과일과 차를 내놓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건 시모의 몫이었고 치우는 건 며느리인 '나'만이 했다. 


결국 '나'는 어떻게 했을까.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요즘 최애 친구인 유튜브 앱을 실행. 이건 뭐지. 카카오 TV에서 제작한 드라마 《며느라기》 몰아보기가 상단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정말 무섭다, 무서워. 그렇지만 이런 알고리즘 좋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빵 터진 장면이 있었다. 시모가 아들에게는 갈치를 며느리에게는 무 조림을 얹어 주는 것이 아닌가. 새 밥을 아들과 남편 밥그릇에 담고 아침에 한 밥은 우리 둘이 먹어치우자고 명랑하게 말한다.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건가, 줏대 없는 나는 다른 이의 생각이 필요하기에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웬걸. 드라마라서 과장하는 거 아니야라는 글이 달려 있을 줄 알았지만 격하게 공감한다와 이 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매일 같이 틀어줘야 한다는 댓글의 연속이었다. 갈치와 무 조림. 새 밥과 헌 밥. 나는 무 조림과 헌 밥을 좋아해서 그렇게 줘도 타격감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다면.


『돌보는 마음』에는 열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열 편 모두 가독성이 좋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이 잔뜩 있다. 여자와 여자 주변의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여자와 나의 이야기가 『돌보는 마음』에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위해 담을 넘어 대추를 서리하고 감옥에 간 동생의 석방을 위해 가족이 외면한 이를 찾아간다. 직장에서는 마음을 나누는 건 절대 금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고 그때 사지 못한 집의 시세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린다. 


가족을 돌보는 건 누구인가. 가족을 떠나는 건 누구인가. 대답해 주시라. 자꾸 모른다고 하지 말고. 표제작 「돌보는 마음」은 미연이 시터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터 임화숙은 미연이 잘못 알고 있다고 그 말을 반복한다. 설사 잘못 알고 있다고 해도 상대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마음이 상한다. 미연은 임화숙 대신 친구가 소개해 준 업체에서 시터를 고용한다. 미연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CCTV를 확인한다. 


돌봄의 대상이었다가 돌봐야 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들은.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돌봄 노동에서 벗어난다. 뉴스는 특집으로 인구 절벽을 다룬다. 입학생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소득이 적을수록 연애 경험이 없다는 수치를 보여준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농담 같지만 사실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온다. 일 하다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에게는?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은 비현실 같은 현실을 그린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 놓고 저녁이 되면 어느새 어두워진 마음을 발견하며 울적해지는 시간을 『돌보는 마음』은 선사한다. 내내 어두웠구나. 마음. 오늘은 지워지고 내일은 아득한 늦저녁에 『돌보는 마음』 읽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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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김지현 옮김 / 플레이타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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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슬픔』은 정지음의 『오색 찬란한 실패담』에 소개된 문장을 읽고 공감받아서 어머 이건 읽어야 해 하면서 읽었다. 몸과 다이어트에 관한 그 문장들은 실패한 다이어터의 고뇌와 참회가 담겨 있었다. 숫자를 먹는 바보. 허영을 먹는 바보.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바보. 책의 저자 멀리사 브로더는 『오늘 너무 슬픔』에서 바보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는 정도가 온갖 것으로의 중독으로 점철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진짜 이렇게까지 할 거야 정도로 낱낱이 밝힌다. 중간에 정신줄 놓고 마구 먹어댄 1년을 제외하고는 근 10년째 다이어터와 유지어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반려 저울에 올라가서 몸무게를 확인하다. 어떤 날은 드디어 저울이 맛이 갔구나 바꿔야지 할 정도로 납득이 가지 않는 숫자를 우에엑 토해내는 반려 저울, 미워. 


『오늘 너무 슬픔』에서는 멀리사 브로더는 의문한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다이어트를 했었을까. 남자였다면 그냥 그렇게 칼로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지 않았을까. 그는 평균 이상의 몸무게로 태어난 먹보다. 엄마는 그가 뚱뚱해질까 봐 겁에 질렸고 음식을 통제했다. 멀리사는 폭식증과 거식증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키가 168센티미터인데 몸무게는 45킬로그램이었다.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어떤가. 읽고 싶은 마음이 무한으로 치솟지 않는가. 이 에세이의 첫 문단은 '먹보다'로 종결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멀리사의 정체성은 먹보다. 책을 읽을 에너지조차 바닥이 났을 때 자기 전에 누워서 먹방을 본다. 보고 있으면 잠이 온다.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신종 자장가, 먹방. 나는 먹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잘 먹음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응원한다. 


다이어트 중독 말고도 『오늘 너무 슬픔』에서는 여러 중독 이야기가 많다. 멀리사는 중독에 중독된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다. 트위터에 오늘너무슬픔이라는 비밀 계정을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말할 수 있다니. 어느 중독자는 누구나의 중독자가 되었다. 매번 나만 이런가에 시달린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내가 잘못 살고 있는가라는 '머릿속 위원회'의 비난에 몸부림치면서. 


『오늘 너무 슬픔』을 읽다 보면 그렇지 않고 우리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고 있어서 그동안 겪은 고통과 비난은 쓸데없는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엉망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나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잘 가, 미래의 예뻐질 나 자신. 중독은 나쁜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없기에 멀리사는 오늘 왜 너무 슬픈지 중독이 왜 나쁜지 『오늘 너무 슬픔』에서 들려준다. 


미래의 나 자신이 예뻐질지 좋아질지 알 수 없다. 과거에 내가 있었고 현재에 내가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어쩌면 존재할 수도 있을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오늘 조금만 슬프기로 한다. 너무는 너무하니까 조금씩만 슬퍼하면서 그러다 슬픔이 아니게 될 때까지 나를 내일로 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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