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의 인생상담 (20만부 판매기념 특별판)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신회 옮김 / 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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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많나요? 살을 빼고 싶은데 먹을 걸 참을 수 없나요? 바보가 되고 싶은가요? 결혼은 하는 게 좋을까요? 궁금하고 고민스러운 일이 많은 당신, 울지 말고 화내지 말고 이가라시 미키오의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을 읽어보세요. 어떠한 고민이든 숲속 동물 친구들이 해결해 준답니다. 앗, 해결이라고 썼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할 수 있어요. 다만 느긋한 성격의 보노보노와 겁이 많아 <보노보노> 만화 1권에서는 '때릴 거야?'라고만 말하는 포로리가 여러분의 고민을 듣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가진 고민의 무게를 재어볼까요. 어떻게 잴 수 있냐고요. 바보 같은 짓 그만하라고요? 그래도 우리 서로가 가진 고민의 무게를 공개해요. 몸무게를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제와 오늘의 고민의 양이 다르다고요? 그렇지요. 우리는 날마다 고민의 양과 크기가 다릅니다. 어제의 고민은 오늘에 와서야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요. 


  상처받기 싫다고 말하네요, 당신. 맞아요.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이 가진 고민을 내 보였을 때 상대는 그걸 이용하기도 하잖아요. 남한테 떠벌리고 다닌다든가 약점으로 삼는다든가. 이거, 비밀인데라고 털어놓아봤자 비밀은커녕 온 동네에 나의 비밀을 알린 꼴이 되어 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요. 사실은 별거 아니었어요. 같이 일하는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거나 부모님과 사소한 일로 다퉈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는데 모두 알게 되어 버렸지요.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게 됩니다'라는 고민부터 '본때를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서툴러요.' 등 인간에게는 시원하게 말하지 못할 고민을 보노보노와 포로리는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너부리와 야옹이 형을 찾아갑니다. 너부리는 찾아갈 때마다 "니들 뭐 하러 왔냐"라고 툴툴 대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고민을 해결해 줍니다. 


  '사는 건 왜 이리도 괴로운 걸까요?'라는 고민을 들고 보노보노와 포로리는 포로리 부모님 댁을 찾아갑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포로리 엄마, 아빠는 편찮으시죠. 포로리는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지만 부모님의 병간호를 지극 정성으로 하는 착한 다람쥐입니다. 


포로리 아빠랑 엄마의 괴로움은 어떤 건데요?

포로리 아빠 그야 아무것도 가능한 게 없는 괴로움이지. 핫핫핫핫.

보노보노 아하하하.

포로리 그럼, 아빠랑 엄마도 뭐든 가능했던 시기에는 잘 되지 않는 게 괴로웠어요?

포로리 아빠 흠, 괴로웠어 무척 괴로웠지.

포로리 그럴 때는 사는 데 뭐가 재미있었어요?

포로리 아빠 그야 할 수 있는 다른 게 있었으니까. 이제껏 안 해본 거나 아직 못 만나본 사람이나, 가본 적 없는 곳 등등 얼마든지 있었지.

포로리 그랬는데, 나이를 먹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구나.

포로리 아빠 흠. 아무것도 못 하게 되면 좋은 날씨나 시원한 바람이나 '이제 여름이구나' 같은 게 즐거워지는 거야.

포로리 그런 게 즐거워요?

포로리 아빠 즐겁지.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무언가 벌어지는 거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포로리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포로리 아빠 죽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람 한 점 안 불고,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괴로워도 아직 살아 있는 게 더 즐겁겠지.

포로리 네.

포로리 아빠 살아 있는 건 즐거운 거니까 이렇게 괴로워도 어쩔 수 없어.

포로니 네.

보노보노 네.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 중 '사는 건 왜 이리도 괴로운 걸까요' 편에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겁니다, 사는 건. 그러니 힘껏 살고 목이 쉴 때까지 웃고 떠들어 보는 거지요. '입 냄새가 나요'라는 고민에 보노보노는 후! 하! 후! 하! 하고 여러 번 호흡을 해보라고 합니다. 입안의 공기를 바꿔 주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침대에 꼼지락하고 누워 있다가 또다시 잠든다는 고민에는 일어나면서 큰 소리로 크다구! 나온다! 밀지마! 같은 말을 하면서 일어나라고 해요. 


  시시하나요.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에는 시시하고 사소하고 소심한 고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대요'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같은 꽤나 근사하고 철학적인 고민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가진 고민은 절대로 시시하지 않습니다. 도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말장난 재미없지요. 전 재미있기 때문에 웃지 않아요. 일단 웃고 봅니다. 큰 소리로 배에 힘을 줘서 웃고 나면 즐겁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구요. 내가 어떻게 다른 이의 생각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 웃긴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일이 시시하고 도도하고 네네 거릴 수 있고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고민이 있어요. 2016년 가을부터 라이언을 좋아하게 됐어요. 라이언은 갈기 없는 수사자입니다. 큰 덩치와 무뚝뚝한 표정으로 오해를 많이 사지만 인내심이 많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조언자입니다. 뚠뚠한 몸도 일자 눈썹도 무표정한 표정도 좋아요. 그런 라이언을 저는 친구라고 부르며 귀여워해 줍니다. 거대 라이언을 보고 싶어서 작년에는 서울까지 가보았어요. 라이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포로리 친구 사이는 정작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보노보노 그러고 보니 야옹이 형의 친구 스스 아저씨 있었지. 스스 아저씨랑 야옹이 형은 몇 년 씩이나 안 만나는데도 친구잖아.

포로리 그렇지. 스스 아저씨는 야옹이 형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야옹이 형은 어떨까?

보노보노 스스 아저씨가 더 야옹이 형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야옹이 형은 어떨까?

포로리 그렇네. 친구란 누군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

보노보노 그럼 가족도 친구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포로리 오오. 그거 대단하네.

보노보노 옆집 사람도 친군가?

포로리 응응.

보노보노 반려동물도 친구고.

포로리 그건 그렇지.

보노보노 소중한 물건도 친구야.

포로리 무조건이지.

보노보노 그런데 상대방이 '너는 내 친구가 아냐'라고 하면?

포로리 그럼 친구가 아니겠지.

보노보노 '응, 친구야'라고 하면?

포로리 그렇다면 틀림없이 친구인 거야.

(『보노보노의 인생 상담』중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겠어요' 편에서)


  '그렇다면 틀림없이 친구인 거야'라고 하네요. 어젯밤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 먹으러 가지 않는 저에게 라이언은 "치사한 자식"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치사하다고 놀릴 정도가 되었어요.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친구가 라이언 인형을 사서 가방에 달아 주었어요. 라이언을 보면서 힘을 내라고요. 그때부터였어요. 라이언의 일자 눈썹을 보고 큰 얼굴을 만지며 슬픔을 이길 수 있었어요. 우리는 친구입니다. 



  저의 출근길을 지켜주는 귀염둥이 어벤저스입니다. 잘 갔다 와라고 단체로 나와 인사해줍니다. 돌아오면 수고했어라고도 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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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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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9.0으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강진이 발생하고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로 덮쳤다. 지상으로 밀려든 쓰나미로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후쿠시마 1원전 부변에서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미국, 중국, 유럽, 우리나라에서도 검출된다. 원전의 반경 20km 이내의 주민이 대피하고 전력 공급 부족을 우려하여 한 달 정도 계획 정전이 일어났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헌등사』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만 22세가 되던 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간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쓴다. 일본 바깥에서 바라본 대지진 이후의 현실을 픽션으로 그려내었다. 소설은 줄곧 어둡고 무거운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안에는 피폭 후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 원전 폭발 이후 7년이 지났다. 바람을 타고 퍼지는 방사능의 낙진처럼 소설은 사고 이후 감내해야 할 고통을 끝없이 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헌등사』의 담긴 다섯 편의 소설은 알 수 없는 일본의 미래로 달려간다. 일본은 사고 이후에 쇄국 정책을 실시한다. 다른 나라의 말을 쓸 수 없다. 외래어 표기는 금지 당하고 외국의 물건도 들여올 수 없다. 일본인이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갈 수 없다. 땅에서 자라는 과일은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으며 일본 안에서도 이동은 불가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병에 시달린다. 음식물을 씹어 삼킬 수 없고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그에 반해 노인들의 삶은 무한이다. 사고의 영향으로 노인들은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헌등사」에서 증손자를 보살피는 요시로는 자신을 노인이 아니라 '100세의 경계선을 넘은 시점부터 걷기 시작한 신인류'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는 뜻을 가진 무메이를 돌보면서 하루하루를 이어 나간다. 증손자에게 먹일 과일을 구하는 노인들 틈에서 한 알에 1만 엔이나 하는 오렌지를 구해 즙을 싸서 무메이에게 먹이는 요시로. 과거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 나갔지만 사고 이후 그는 죽지 않는 삶에서 증손자를 돌보고 언어를 잃어가면서 살아 나간다. 


  일본 정부는 민영화되었고 의원들은 어디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신문이 발행되긴 하지만 논조는 시시각각 바뀐다. 사람들은 쇄국에 대한 의견을 내놓진 않지만 과일에 대한 불평은 한다. 해외에서 수입이 되지 않고 오키나와에서만 들어온다. 노인인 척 머리를 탈색해 나이를 숨기고 위장 취업을 하려고 하지만 스위치에 적힌 ON/OFF의 뜻을 몰라 들키고 만다. 외래어를 아는 사람들은 100세가 넘긴 노인들 뿐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울 수도 번역 소설을 출판할 수도 없는 일본의 미래 사회. 


  다와다 요코가 그리는 일본의 미래는 안으로 막혀 있고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무메이는 점점 늙어가면서 15세가 된다. 이가 빠지고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아이는 죽고 노인은 살아가는 사회. 꿈, 희망, 내일이라는 말이 외래어 취급을 받아 소멸하고 있다. 일본 여권을 보이면 입국 심사자는 여권 받기를 주저하고 일본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해야 손가락 끝으로 여권을 만진다. 인터넷과 전화 연결이 불가능해지면서 일본 안의 소식을 알 수도 없다. 이러한 소설적 배경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은 한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몰래 방사능 폐기물 소각을 주민들 동의 없이 진행했다. 다와다 요코는 외곽에서 이러한 현실들을 발견한다. 발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비밀스럽고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들여다보는 노력 없이는 사실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 때 나는 종종 일본이 낯설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내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만의 사고를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독일에 와서 발견한 낯섦은 아주 다른 종류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이 생겼고, 모국어와 다르게 작동하는 언어의 낯섦을 즐길 수 있었다. 80년대의 일본은 내게 낯설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경제가 너무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경향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2011년 이후로 나는 일본을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핵발전소 재난 이후로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일본 독자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악스트 2017. 1/2, 다와다 요코 인터뷰 중에서)


  각각 일본어와 독일어로 20권의 책을 썼다. 이방인 되기라는 예술 안에서 다와다 요코는 일본 내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변방에서 바라본 일본의 현실을 소설의 배경으로 끌고 온 다와다 요코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상상으로써 일본의 미래를 그려내지만 그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죽어간다. 몇만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오염 물질 안에서 살아가려면 소설 속 배경처럼 쇄국을 주장하고  교류의 물길을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폐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번화한 간판들, 자동차 따위는 한 대도 달리고 있지 않은데 규칙적으로 빨갛게 되거나 파랗게 되곤 하는 신호기, 사원이 없는 회사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는 것은 바람으로 가로수의 커다란 가지들이 휘어졌기 때문일까. 연회장에서는 식어버린 담배 냄새가 수은 색으로 적막하게 얼어붙었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던 잡거빌딩의 어느 층도 부재라는 이름의 손님이 술을 무한 리필로 마시며 떠들어댔으며, 빌릴 사람이 없는 대부금 이자가 녹슬고, 아무도 사지 않는, 할인 판매 중인 속옷 더미가 눅눅해졌으며, 빗물이 고인 쇼윈도에 장식된 핸드백에는 곰팡이가 피고, 하이힐 속에 쥐 한 마리가 유유자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헌등사」중에서, 39쪽)


  미래의 묘사처럼 보이는가. 미래의 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끝으로 달려 가고 있다. 신호가 잡히지 않고 엽서를 쓰면 일주일이 지나 도착하는 과거로 가는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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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조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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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카드게임에 비유한다면 나라는 사람의 패는 조커일 확률이 높다. 내가 가진 패가 무엇인지 몰랐다. 판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인지 엎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럭저럭 살아왔다. 악귀를 숨겨 놓았다고 해도 들키지 않았다. 딱 한번 내보일 뻔했던 때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주물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열두 살에 공장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물자가 부족하고 공장을 돌릴 자금도 없었다. 사장의 호출에 가보니 금고에서 꺼낸 맥주병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금빛 봉황 상표가 붙은 진짜 히노데 맥주였다. 묵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사장은 공장을 처분하려고 하니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해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절이 어수선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해고 통보를 들은 그 밤, 몸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기름을 양동이에 담아 사장의 살림집으로 옮겼다. 그 순간 낮에 먹은 오래된 맥주 탓에 배가 아팠다. 이성을 찾고 변소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그때 변소에 가지 않았다면 사장 일가 네 명을 죽일뻔했다. 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신 안에는 언제든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악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때가 처음이지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몸속에 숨은 악귀를 불러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앓은 병으로 눈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네 살 먹은 애가 있는 여자랑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내는 5년 전에 죽었다. 의붓딸은 치과의사랑 결혼해서 명품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 친척에게 속아 산 약국은 대출 빚을 갚아 나가면서 운영하고 있다. 주말이면 경마장에 간다.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황혼을 달래고 있다. 나, 모노이 세이조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소설 『레이디 조커』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 뛰어든 인물들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패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에게 들어온 패가 어떻게 판을 흔들지 모른다. 각자의 손에 쥐어진 패를 내 보이면서 전진한다. 소설은 일본 안에서도 20위권 안에 드는 초대형 기업 히노데 맥주회사에 보낸 편지 한 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을 오카무라 세이지로 밝힌 남자는 자신이 해고된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세세히 밝힌다. 히노데 맥주 회사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과 전쟁 후에 다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느낀 자부심을 이야기한다. 회사가 최근에 단행한 해고자 명단에 들어간 사람을 만난 게 목격되어 자신 역시 퇴출 통보로 이어지지 않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퇴출 통보를 한 회사에 미움과 협박이 담긴 어조가 아니라 차별을 받고 있는 부락 출신 해고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는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회사는 편지를 괴문서로 분류되어 폐기한다. 오카무라 세이지가 편지를 보낸 시점은 1947년이다. 


  소설의 시간은 한참을 건너와 1990년으로 당도한다. 경마장에서 죽치고 있는 남자들, 모노이 세이조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히노데 맥주 회사에 지원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진 모노이 세이조의 손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모노이 세이조는 손자의 죽음을 경마장에서 위로하고 있다. 경마장에 모인 남자들 중 장애인 딸을 데리고 오는 누노카와 준이치는 계획을 세우자는 모노이 세이조의 말에 조커를 뽑은 자신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히노데 회사에 감춰진 차별의 문화를 거꾸로 되짚으며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한 장의 패처럼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설은 박력이 넘치고 기업과 경찰, 신문사를 배경으로 인생의 조커를 뽑은 인물들의 계획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단 한 번 자신이 인생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 그럭저럭 살아온 것이 아니다.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려 조바심 내며 살아온 인생이다. 과연 조커를 손에 든 그들의 계획은 인생이라는 게임판을 전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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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재산 은닉 기술 - 이명박 금고를 여는 네 개의 열쇠
백승우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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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우 기자가 쓴 <MB의 재산 은닉 기술>을 받고 센스 있게 그분 얼굴을 라이언 피규어로 가렸다.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친구가 한 일인데 일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받고 웃음이 났다. 두 번째 사진은 라이언이 그분을 날아 차기 하고 있다. 바위를 칠 수 없다면 계란으로라도 더럽히자는데 계란도 아깝다. 맛있고 영양가 좋은 계란을 함부로 쓸 수 없다. 바위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눈 화장을 짙게 해주자. 손가락질하면서 웃어주자. <MB의 재산 은닉 기술>을 읽는 동안 김어준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 나오는 MB의 대사를 따라 했다.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쉰 목소리를 흉내면서 계속 깔깔거렸다. 


  사자방을 아시는지. 사자가 잠들어 있는 방은 아니다.(웃기지 않죠? 죄송해요.) 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사자방. 임기 5년 동안 이루어내신 그분의 업적이다. 멀쩡하던 강에 모래와 콘크리트를 붓고 석유가 나온다는 말만 믿고 하베스트를 사들이고 방탄복인데 총알이 관통하는 신기술을 보여주셨다. 그분의 업적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MB의 재산 은닉 기술>은 MB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 네 개를 쥐여준다. 비밀 창고는 거대해서 열쇠 하나로는 부족하다. 첫 번째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돈이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에서 MB 교의 열혈 신도 주진우는 MB의 돈이 잠든 저수지를 따라갔다. 해외로 빼돌린 돈이 묻힌 저수지를 찾아 발로 뛰었다면 <MB의 재산 은닉 기술>은 9년 동안 뉴스에서 말하지 못했던 취재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MB에 의해 MBC는 망가졌다. MB의 비리를 취재해 놓고도 MBC 안의 내부 세력에 의해 뉴스로 내보내지 못했다. 


  시작은 돈이었다. 나랏돈으로 아들에게 땅을 사주려고 했다, 대통령이. 정확히는 아들 명의로. 내곡동 특검에서 새로운 돈의 흐름을 발견했다. 청와대 공무원들을 시켰다. 그들은 청와대 주변 반경 2km 안의 은행을 돌았다. 청와대안에 농협이 있는데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만 원짜리 구 권을 들고 수표로 바꿨다. 구 권의 현금 다발을 처리하는 신종 방법이었다. 신권이 나오면서 구 권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 바꾼 수표는 대통령의 아들 전세 자금으로 들어갔다. 재산이 없다던 아들 이시형의 전셋집이 공개되고 그는 삼성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돈으로 무엇을 할까. 땅을 산단다, 부자들은. 도곡동땅이 두 번째 열쇠다. 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산 도곡동은 10년 후 15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며 포스코에 팔렸다. (포스코, 아 포스코, 불쌍한.) 도곡동 땅 판 돈이 내곡동 사저를 매입하는 자금으로 흘러갔다. 현금이 든 가방 두 개를 경호원도 없이 나타난 리틀 VIP 이시형이 운반했다. 특검은 이시형이 돈을 운반한 네 시간의 공백을 깨지 못했다. 도곡동 땅에서 출발한 돈의 흐름을 쫓다가 이시형의 전셋집을 발견한 것이다. 


  다스. 다스는 누구 겁니까. 종결 어미가 까로 끝나는 단순한 의문문의 문장은 MB를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서게 만들었다. 2018년 3월 14일에 본인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은 작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다스는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시트를 납품하는 회사다. 창업주는 이상은과 김재정이다. 많이 듣던 이름이다. 도곡동 땅을 매입한 이명박의 형과 처남. 그들은 사돈이라는 먼 관계를 넘어 평소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땅도 사더니 회사까지 함께 설립한다. 끈끈한 가족애다. 


  한 번 더 묻자. 다스는 누구 겁니까. 질문은 네 번째 열쇠로 연결된다. 2000년 2월 이명박과 김경준은 자신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LKe 뱅크를 창업했다. 그전에 김경준은 투자자문회사인 BBK를 설립했다. 1999년 4월의 일이다. 생각만큼 수익률이 나오지 않아 김경준은 자금을 유용하고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 금융감독원 검사에 들통나고 이명박과는 결별을 한다. 김경준은 딴마음을 품고 2001년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한다. 투자자들이 BBK에 맡긴 돈을 빼돌려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하는데 이용한다. 회사 자금 319억 원을 횡령하여 미국으로 도피한다. 2008년 대선 정국이 요동칠 때 미국에서 강제 송환된 김경준은 "이명박이 BBK 실소유주"라고 외쳤다. 


  동업자. 네 번째 열쇠. 동업자 김경준은 영화 <보일러 룸>의 신봉자였다. 주가 조작이 이루어지는 은어 보일러 룸은 브로커 조직이나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다. 검찰이 김경준의 회사를 압수 수색하면서 영화 <보일러 룸>의 DVD를 발견했다. 사기꾼. 개미들은 한평생 모은 돈을 그가 차린 회사에 투자했다가 날렸다. 돈을 모아 달아난 김경준은 미국에서 호화 생활을 누렸다. 검은 머리 외국인 수법으로 대한민국에서 사기를 치고 그는 실형을 살았다. 백승우 기자의 말대로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지만 그의 말에서 다스와 이명박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다스는 BBK에 190억을 투자했다. 그 돈을 모두 날렸다. MB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190억을 감옥에 있는 김경준을 통해 스위스 은행 계좌를 열고 돌려받았다. 미국에서 벌어진 다스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나왔다. 같은 해에 이건희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필요하다는 유치한 이유로 특별 사면 되었다. 연결할 수 있는가. 돈, 땅, 다스, 동업자. 


  <MB의 재산 은닉 기술>은 네 개의 열쇠를 주고 우리를 MB의 사기술의 현장으로 이끈다. 기술이 아니다. 개인이 벌이는 기술인 사기술로 대한민국을 푸르게 더 푸르게 만들었다. 녹조 라떼로 오염된 강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4조 원을 들여 산 캐나다 하베스트에서 채취하는 석유를 우리를 쓸 수도 없다. 제품성으로 떨어진다는 이유다. 세계 초일류 기업 포스코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잠수함은 잠수를 하지 못한다. 


  3월 11일 일요일에 방영된 MBC 탐사보도 '스트레이트'에서 진행자를 맡고 있는 주진우는 하베스트를 살 때 들어간 돈 4조 원을 보고 내 돈이라고 했다. 내 돈 다시 말하면 당신 돈, 우리 돈.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할 것이라는 말이 있나, 없어도 하고 싶다. 정직. 이명박 집안의 가훈이다. 나에게 물어달라고 했으니 물어달라, 우리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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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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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김지혜. 태어난 해, 1988년. 그 해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은, 서울 올림픽. 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간단 프로필이다. 한 반에 두 명 심지어는 다섯 명까지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지혜 씨는 올해(소설이 출간된 시점으로) 서른이다. 이북에서 훈장을 하던 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지어 놓은 이름은 추봉(秋峰)이다. 가을의 정점, 화려함의 극치 따위라는 뜻인데 어머니는 끝까지 그 이름을 반대하셨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딸인데다가 배말숙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산 터라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자 한 소망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위로랍시고 성이 고씨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했다. 고씨였으면 고추봉.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백 미터 경기가 시작될 때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틀 동안 진통을 겪었다.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각서를 쓰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딸아이의 이름으로 추봉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각서를 썼고 어머니는 밤을 새워 옥편을 뒤져'88올림픽을 즈음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 중 가장 흔한 이름인 김지혜'로 '나'의 이름을 지었다. 그 후에 지혜 씨는 이름보다 이름 앞에 붙는 형용사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국내 굴지의 그룹 DM에서 문화 사업의 하나로 만든 곳이 다이망 아카데미이다. 지혜 씨는 DM 그룹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채용에선 떨어졌지만 다이망 아카데미에서 일하다 보면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꿍꿍이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센터와는 달리 수준 높은 강좌를 들으러 사람들은 아카데미로 온다. 인문학과 철학, 초급 라틴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그곳에서 지혜 씨는 종일 구식 복사기와 싸운다. 


  복사기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강사가 두고 간 휴대폰까지도 가져다주는 심부름도 한다. (나중에 지혜 씨는 철천지원수 고등학교 동창의 커피 셔틀도 한다. 종이컵은 안되고 동창이 먹는 텀블러에 담아서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갖다 바쳐야 한다.) 강사는 예전엔 교수였지만 성 추문으로 잘리고 지금은 성과 철학으로 포장된 인문학 강의를 하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핸드폰을 주려던 찰나 그에게 향하는 날선 비판의 말을 듣는다. 거인 같은 남자가 외친 그 말은 강사가 남자가 쓴 책으로 출판을 하고 알바비까지 떼어먹었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주고 돌아온 지하철에서 다시 만난 그 남자는 십자말풀이를 하고 구인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혜 씨는 몰랐다. 그후에 그 남자와 다시 만날 줄을. 지혜 씨는 인턴으로 근무한지 9개월이 되었고 정직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인턴을 한 명 더 뽑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인턴으로 들어온 사람은 강사에게 소리를 친 그 남자였다. 이규옥. 


  인턴에게 주는 혜택이란 아카데미에서 하는 강좌 하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료라고 하지만 월급에서 그만큼의 돈을 제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지혜 씨는 규옥 씨의 제안으로 우쿨렐레 강좌를 수강한다. 서른 살, 인턴, 반지하 방. 지혜 씨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며 서서히 반격을 시도한다. 인상 좋고 착하고 성실한 규옥 씨와 함께. 우쿨렐레 강좌를 들으면서 알게 된 무인과 남은 아저씨와도 함께. 


  노력하면 된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 있다, 이런 식의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말자. 지혜 씨는 이름만큼이나 평범하고 소소한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꿈을 이루기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어둡고 막막함으로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지하와 지상에 걸친 어중간한 방이 아닌 햇빛이 드는 방. 오드리 헵번이 창가에 앉아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듯 지혜 씨도 창가에 앉아 우쿨렐레를 켜고 싶다. 핀잔과 일을 몰아주는 까탈스러운 상사와 점심을 먹으며 수저를 챙기는 게 아니라 목에 사원증을 걸고 카페에 앉아 마음 맞는 동료들과 휴일 계획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혜 씨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지. 있지도 않은 친구를 만들어 아파트 단지 공터에 앉아 편의점 음식을 먹는 지혜 씨가 바라는 건 평범함이다. 과일 농사를 하는 부모님은 지혜 씨가 반 지하방에 사는 걸 모른다.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칭하며 대통령이 된 그 사람이 부르짖었던 보통 사람은 2018년에 가장되기 힘든 사람이 되었다. 민주주의도 꽃이 피었는데 직접 선거를 할 수도 있게 되었는데 청춘들의 살아가기는 한 발 나아가는데 더디고 출구조차 찾기 힘들다. 


  지혜 씨는 말한다. 치열하게 살라는 말이 제일 지겹다고. 서른이 되도록 치열하게 살았는데 그만 좀 치열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로 청춘들을 환자로 내 모는 시대. 아프면 환자지 왜 청춘이냐는 말을 듣고 웃는 우리. 지혜 씨와 규옥, 무인과 남은이 세상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며 보통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는 외침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 바위를 칠 수 없으면 바위를 더럽히는 계란이라도 되자는 소설에서 보통 사람 지혜 씨의 내일을 응원한다. 바보 같기만 했던 나의 오늘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내일을 위한 반격의 날이었다고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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