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엄마가 들려주는 43가지 아들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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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성을 아시는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문학적인 사람입니다. 아우성?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를 말한다면 당신은 텔레비전 좀 본 사람. 아우성을 외치며 어느 날 텔레비전에 혜성같이 등장한 구성애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나요. 아침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의 경험과 자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교육을 해주셨지요. 그때는 조금 충격이기도 했어요. 아침 시간에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는 게. 잘못된 성문화에 일침을 가하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성교육을 하시던 구수한 입담의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흘러 텔레비전 말고도 다양한 채널에서 우리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지요. 유튜브 채널에서 '엄마와 아들의 성교육 상담소'라는 제목으로 성교육을 하시는 손경이 강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쓰신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을 하는 법』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을 자세히 볼까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을 하는 법'이네요.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웃기도 해야 합니다. 아들에게 성교육을 할 때는.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왜 당황하지 않고 웃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아직 우리는 서툴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성교육이라는 것에 대해서는요. 아들인지 딸인지 구분 지을 게 아니라 성교육에 있어서는 성별의 구별의 없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부모가 먼저 성교육을 받을 필요도 있다고 말하지요. 잘못된 성 지식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교육한다면 아이들 역시 그릇된 성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젠더 감수성을 아시나요? 젠더란 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성을 말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남자는 울면 안 돼, 여자는 수줍고 몸가짐을 조심해야 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텐데요. 이러한 말들은 우리가 가진 잘못된 젠더 의식에서 출발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성의 구분이 없지요. 남자아이가 공주 인형을 좋아할 수도 있고 여자아이가 축구를 할 수도 있지요. 그럴 때 부모는 잘못이라고 말하지요. 남자아이는 축구를 하도록 하고 여자아이는 공주 인형을 가지고 놀게 하지요. 


  남자, 여자를 구분 짓는 이런 행동은 아이의 젠더 감수성을 약하게 만듭니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틀리다로 규정해 버립니다. 상대의 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젠더 감수성에서 성교육은 출발합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을 하는 법』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성교육을 할 때 가져야 할 10가지 원칙을 먼저 제시합니다. 아이의 일상을 먼저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것. 성 지식을 먼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의 개념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가진 젠더 감수성을 먼저 점검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바로잡으며 건강한 성문화의 시작을 말하는 책입니다. 갑자기 성교육을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어 버리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아봐도 돼? 엄마가 뽀뽀해줄까?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아이가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대화가 중요합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일상을 묻고 느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폭력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요. 프레임을 뒤집어서 가해자 방지 교육을 실시한다면 더욱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거리의 존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존중하는 거리가 있어야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늦은 밤 여자가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남자는 잠시 멈추었다가 가면 오해받을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작은 대화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의 공유를 한 아이들은 자라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게 됩니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올바른 성 지식을 쌓으며 안전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지요. 엄마와 아이가 어떤 방법으로 성교육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을 하는 법』을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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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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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볼일 없는 인생이다. 밤하늘을 보면서도 별 볼일 없는 인생이야라고 시시한 웃음을 지을 당신,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를 권한다.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애꿎은 이불을 허공으로 킥하는 당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절망하는 당신이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 인생은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별 볼일 없이 흘러간다. 알고 있다. 별은 낮에도 떠 있지만 강한 태양빛의 그늘에 가려 있다는 것. 늘 하늘 위에 떠 있어 우리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데도 우리는 보이지 않다고 존재 자체로 부정해 버린다. 있다. 늘 별을 볼 수 있는 인생이.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음악이 없는 인생이란 진정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추억이나 기억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이 있기에 당신과 나 자신의 삶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소환할 수 있다.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지는 민망한 순간이어도 음악이 있다면 추억이라는 사진으로 찍혀 앨범 한편에 꽂아 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음악이 있다면.


  찰리는 이제 서른 살. 유행가의 가사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낭만쟁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아련한 눈빛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떠났지만 음악은 남았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을 이유를 갖다 대면서 시험을 보지 않아 대학은 중퇴했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술집 드링크스&모어에서 오후부터 새벽까지 일을 한다. 전직 컨설턴트라고 말하는 사장 팀 밑에서 일을 한다. 주거지가 불분명한 게오르크 아저씨에게 공짜로 커피를 줘도 된다고 말하는 인정 많은 사장이다. 


  일을 시작하는 찰리에게 팀은 편지 한 통을 건넨다. 동창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편지였다. 동창들은 다들 잘 나가는 직업에 종사해 있거나 종사할 예정으로 지금의 찰리와는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다. 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런 웬일, 첫사랑 모리츠가 드링크스&모어에 찾아온다. 찰리에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에 살았던 사람이다. 모리츠와의 사랑은 부끄럽고 민망한 장면들도 끝나버렸다. 좀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끝.


  신용이 불량한 찰리는 수표를 끊어 옷을 사러 간다.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실패한 첫사랑이지만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에 찾아와 준 모리츠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동창회에서 보낸 시간은 찰리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 베스트 상위에 올라갈 정도로 끔찍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모리츠는 이자벨과의 밀당에 찰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위로해주는 팀이 건넨 코트에서 발견한 명함 한 장이 찰리를 다른 인생으로 끌고 간다. 뉴라이프라는 회사의 명함에서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찰리는 회사로 찾아간다. 직업을 구하는 것보다 돈 많은 남편을 만나는 게 빠를 것이라는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사무실에서 나온 찰리는 엘리자라는 여성을 만난다. 엘리자와의 시간 이후로 찰리의 인생은 새롭게 펼쳐진다. 지우고 싶은 순간들을 기억해서 CD에 담는다.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 찰리는 민망하고 꼴불견으로 기억되는 자신의 인생의 순간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다. 대학 중퇴. 술집 아르바이트. 살은 점점 찌고 있는 중. 애인 없음. 부모님은 다정한 분. 친한 친구와는 절교 중인 찰리가 과거를 지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유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음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흐르는 음악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버스에 앉아 창문 밖을 쳐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도 음악이 흐른다면 신나는 출근길로 저장되어 우리 인생을 별 볼일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바뀐 찰리의 인생에 찰리가 듣던 음악은 없었다. 찰리의 음악. 나의 음악. 음악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말하고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당신 음악의 이야기.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과 늘 함께하는 찰리에게 오늘의 음악을 보냅니다. 한국 가수가 부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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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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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제 공책에는 빨간 색연필로 그린 동그라미 세 개가 있었다. 글씨를 못 쓰거나 문제를 많이 틀렸을 때는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 세 개를 받는 날에는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하나만 받았을 때는 가방이 무거웠다.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공책 한 권을 다 쓰면 동그라미 수를 세기도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보다는 확인의 의미인 검이 더 많이 찍혔다. 웃는 얼굴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어 일기를 길게 쓰기도 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점수가 낮게 나왔을 때 찍힌 열심히 하세요 도장이 기억에 남는다. 운동회 날 달리기를 하면 손등에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었다. 늘 꼴찌를 도맡아 했기 때문에 1등 한 아이의 손에 찍힌 도장을 부러운 듯 바라보기만 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공책 한 권을 사서 거기에 암기 내용을 적었다. 암기만이 살 길이라는 목표로 공책을 채워갔다. 한 권을 다 쓰면 시험날이 다가왔다. 문제집을 풀 때 나오던 지우개 가루. 맞춘 것보다 틀린 게 많아서 지우개질을 많이 해야 했다. 지우고 또 지웠다.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와 가루를 뭉쳐봤다. 회색의 지우개 똥. 뭉쳐서 공 모양을 만들어 조물락 거렸다. 한 손은 문제를 풀고 다른 한 손을 지우개 똥을 만졌다. 그걸 만지면서 시험공부를 했더니 시험을 잘 봤다. 


  징크스. 야구 선수도 아닌데 징크스를 만들었다. 지우개 똥을 조물락 거리며 공부를 하면 시험을 잘 본다! 시험 기간 내내 더러운 지우개 가루를 뭉치고 공을 만든 이유였다. 그다음 시험 점수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지우개 똥 쪼물이』는 교실 어드벤처 액션 동화이다. 2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지우개 똥 친구들이 아이들을 위해 울보 도장을 물리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으면 교실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받아쓰기 시험을 하고 구구단을 외우고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그리운 풍경. 사물함에 넣어 놓은 빵과 과자가 먹고 싶어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 『지우개 똥 쪼물이』는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짝꿍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불러온다.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 별명은 깐깐 선생님. 엉성한 걸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도 띄어쓰기 하나만 틀려도 틀렸다고 표시한다. 깐깐 선생님은 아이들의 공책에 울보 도장을 쾅쾅 찍는다. 세 개 이상 틀린 유진이의 공책에 '찡그린 채 두 뺨에 눈물을 세 방울씩 매달고 있는' 울보 도장이 찍힌다. 엄마가 받아오라는 모범상 대신 울보상을 받을 것 같아 아이들은 슬프다. 


  유진이는 지우개 가루를 뭉쳐 지우개 똥을 만든다. 지우개 똥 얼굴에 사인펜으로 눈을 그리고 입을 그렸다. 숨을 불어서 지우개 똥에게 바람을 넣어주자 지우개 똥이 살아났다. 유진이는 자신이 만든 지우개 똥에게 '쪼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이들에게 자랑하자 너도나도 지우개 가루를 뭉쳐서 지우개 똥을 만들었다. 이마가 툭 튀어나온 지우개 똥에게는 '짱구'라는 이름을. 딸꾹질을 하며 만든 지우개 똥에게는 '딸꾹이'. 삐쩍 말라 헐랭해 보이는 똥에게는 '헐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우개 똥들에게 아이들은 숨을 불어 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나오는 지우개 가루를 먹으며 교실 탐방을 한다. 가방과 학급 문고, 아이들 서랍 속에도 들어가 본다. 유진이가 울보 도장을 받고 울자 지우개 똥 친구들은 울보 도장을 교실에서 쫓아내기로 한다. 아이들을 슬프게 만드는 울보 도장을 몰아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똥 친구들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울보 도장은 순순히 교실에서 물러날 것인가.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질 때 누군가 나를 위해 숨어서 해결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해주는 동화 『지우개 똥 쪼물이』. 울보 도장 대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 칭찬을 듣는 날이 온 건 지우개 똥 친구들이 모험을 펼쳤기 때문이다. 넌 최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이. 공책에 찍힌 칭찬과 응원을 말을 읽으며 아이들은 자란다. 울보 도장이 없어도 아이들은 글씨를 잘 쓸 수 있고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을 맞을 수 있다.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올 정도로 문제를 많이 풀었기 때문이었다. 지우개 똥은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만들 수 있었다. 


  쪼물이, 짱구, 딸꾹이, 헐랭이. 친구들아, 2학년 3반 아이들과 늘 함께 지내줘, 아이들을 지켜주고 칭찬해줘. 좋아하는 국어 문제 많이 풀어서 지우개 가루 잔뜩 남겨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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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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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알고 그를 리코메데스에게 보낸다. 여장을 시켜 여인들 무리 속으로 들여보낸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이미 아킬레우스와 사랑을 나눈 데이다메이아는 파트로클로스를 속인다. 무희들 틈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는 단번에 찾아낸다. 그가 금발을 감추고 여인처럼 섬세한 춤을 추고 있다고 해도 파트로클로스는 사랑하는 이를 발견한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이 벌이는 사랑에는 어리석고 불안한 기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불멸의 길로 아들의 운명을 이끌고 싶었던 어머니 테티스에 의해 약점이 드러나는 아킬레우스의 사랑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다. 바다의 님프 테티스는 아들을 신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 파트로클로스가 아들 곁에 머무는 것을 반대한 이유이다.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긴다. 죽는다. 묘석 하나만 남아 기억도 추억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과의 사랑은 부질없다. 사랑은 죽음을 부른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을 수 있다. 


  매들린 밀러의 장편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대사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절규한다. 아가멤논과의 불화에서 시작된 비극은 죽음을 부른다. 세계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헬레네를 데려오기 위해 시작한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운명은 신의 손으로 넘어간다. 전쟁에 참가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킬레우스 자신의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설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나'로 시작하는 소설의 서사는 몰입이 가능하고 이입이 추가된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로 밝히는 '나'의 이야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식 답지 않게 약하고 가냘팠다. 빠르지 않고 튼튼하지도 않았다. 노래도 못 불렀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백치였다. 아버지가 주관한 경기에서 그를 처음 만난다. 금빛 머리카락이 빛나게 달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년. 우승을 한 그에게 아버지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주사위를 뺏으려는 아이를 밀쳐 죽이고 '나'는 금과 함께 프타아로 쫓겨난다. 그곳엔 어머니가 여신인 아들 금빛 머리카락에 월계관을 쓰고 환하게 웃던 그 소년 아킬레우스가 있었다. 펠레우스는 버림받은 왕자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며 키우고 있었다. 소년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당당함과 아름다운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다. 


  수많은 소년들이 아킬레우스 주변을 서성인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무화과 하나가 파트로클로스 손바닥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운명은 테티스의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두 소년은 소년 시절을 보낸다. 


그의 목소리가 바위 위로 흐르는 강물 소리와 섞이면서 아킬레우스와 나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색함을 해소시켰다. 흔들림 없고 차분하며 귄위 넘치는 케이론의 표정에는, 지금 이 순간에 하는 놀이와 그날의 저녁식사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가 옆에 있으니 그날 바닷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켄타우로스 특유의 몸집 덕분에 우리 몸이 더 작게 느껴졌다. 어쩌다 우리는 우리가 어른이 된 줄 알고 있었던 걸까?


  여신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끊임없이 찾아온다. 인간에 불과한 파트로클로스와 자신의 아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신이기에 인간의 운명을 예언하고 운명을 바꾸려 한다. 신이기에 인간의 일에 개입하고 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만 신의 몸으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예언과 운명을 뒤에 둔다. 오직 파트로클로스와 함께하는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는 신의 예언 따위 중요하지 않다. 시절과 순간을 살아가는 사랑이 그의 생을 끌고 간다. 불멸이 아니라야 한다.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영원히 고통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이 있기에 사랑을 한다.


  왕의 자손이면서 거짓말도 하지 못한 채 쫓겨온 파트로클로스의 삶으로 뛰어든 아킬레우스는 노래를 불러주고 몇 번의 끈질긴 질문에도 처음 듣는 질문 인양 대답해준다. 나의 생에서 꿈틀거리는 불안과 적막을 공허를 달래주는 사랑을 만난 것이다. 소설의 문장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알고 사랑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격정 속으로 몰아간다. 전쟁에서조차 그들은 화살을 막아주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다. 죽은 뒤에 남아 있는 명성을 위해 대신 갑옷을 입고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공기로 남은 '나'를 위해 저승에서도 함께 하기를 원한다. 


"내가 써두었다." 그녀가 말한다. 처음에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비석 위에 새긴 이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아킬레우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파트로클로스가 있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동안 사랑은 나란히 이름 두 개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랑이 남고 두 개의 그림자가 마주 본다. 나의 아킬레우스, 나의 파트로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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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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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


  오타 아이의 『범죄자』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풀어 놓으며 시작한다. '눈 색깔은 밝은 파란색'의 남자를 영화에서 어린 '나'는 만난다. 줄거리는 정확하지 않다.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남자는 줄곧 '플로리다키스'에 가고 싶어 했다. 추격을 피한 끝에 플로리다키스로 가려던 남자는 총을 맞고 죽는다. 남자가 죽을 때 짓던 마지막 표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치오지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나', 시게토 슈지는 2005년 3월 25일 금요일 두 시에 아렌을 만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슈지의 메일 주소를 묻던 아렌이 싫지 않았다. 상대를 파악하는 질문도 하지 않고 곧장 용건부터 밀고 들어왔다. 자신의 메일 주소는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지도 않고 메일 주소를 물었다. 슈지는 화면에 주소를 띄워 주었다. 당황한 아렌은 눈썹연필을 꺼내 종이컵 받침을 꺼내 적었다. 자신의 이름이 아렌이라는 것과 "손톱도 케라틴으로 되어 있잖아. 물들면 안 지워져."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시게토 슈지는 기억을 더듬어 아렌과 만난 일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려야 했다. 


  아렌이 보낸 '내일 오후 2시 진다이지 역 남쪽 출입구 역 앞 광장에서 아렌.'이라는 메일을 받은 그날 이후 슈지의 삶이 일변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본 플로리다키스의 하늘이 떠오르며 슈지의 삶은 금요일 오후 두시를 기점으로 한 편의 영화 같은 구조로 흘러간다.


  역 앞 광장에서 분수를 둘러싼 돌의자에 앉아 아렌을 기다린지 8분 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무차별 살인에 희생되었다. 다스베이더 같은 몰골을 한 남자는 망설임 없이 회칼로 중년 남자를 죽이고 여대생, 노부인, 주부를 살해했다. 슈지는 의식도 없이 그 광경을 보다가 다스베이더에게 달려들었다. 다스베이더를 제압하기 위해 돌의자 옆에 있던 오로나민C 빈병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왼쪽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몸을 돌리자마자 오른쪽 얼굴을 얻어맞고 분수에 처박혔다. 물속에서 하늘을 봤다. 그곳에 어린 시절 영화에서 본 플로리다키스가 펼쳐져 있었다. 


  한낮에 벌어진 무차별 살인.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잡거빌딩 화장실에서 범인이 잡힌다. 아니 발견된다. 죽은 채로. 사인은 마약 중독. 범인은 필로핀을 주사해 흥분한 상태로 범행을 저지르고 헤로인을 흡입해 심장 이상으로 죽었다. 사건은 약물 중독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나려고 한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순경의 도움으로 살아난 슈지는 경찰 집단 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마를 만난다. 알 수 없는 일로 집단 내에서 배제되며 사건을 수사하는 소마는 슈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범인은 약물중독자가 아님을 직감한다. 소마가 돌아가고 혼자 병원 복도에 남겨진 슈지는 무테안경을 낀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슈지에게 말한다.


  "······달아나.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


  『범죄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 직전까지 간 슈지에게 달아나 그리고 살아남아라는 말을 던지며 독자를 거대한 음모의 세계로 끌고 간다. 두 발목이 잡힌 슈지와 독자는 대낮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이면의 뒤를 쫓아야 한다. 경찰이 싫다던 슈지는 소마와 함께 자신을 죽이려는 비밀에 맞서야 한다. 달아나야 살 수 있는 남자와 열흘 안에 사건을 끝내야 하는 사람의 추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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