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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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추위와 허기가 찾아온 부족민들에게 늙은 두 여자는 골칫거리였다. 두 여자는 성격적 결함이 있었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신다 불평을 해댔다. 늙은 것을 과시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런 두 여자의 태도에 별다른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늙은 두 여자는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 대신 가죽을 무두질해주는 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갔다. 


  겨울이었고 짐승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가 굶주리고 있었다. 족장은 회의를 통해 늙은 두 여자를 남겨 놓고 가기로 했다. 더 이상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기근이 닥쳤을 때 나이는 사람들을 두고 이동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사람들은 족장의 말을 듣고도 충격에 빠지지 않았다. 배고픔은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박새라는 뜻의 칙 디야크와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는 그렇게 남겨졌다.


  칙 디야크에게는 딸과 손자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무리들에게서 버려질까 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딸은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 가죽끈을 손자는 손도끼를 주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두 늙은 여자의 생존이. 벨마 월리스가 쓰고 짐 그랜트가 그린 소설 『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지방에서 유목을 하며 살아가는 그위친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극지방에 서구 문화가 도입되기 오래전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와 상상이 더해져 한 편의 소설로 탄생된다. 


  늙고 병들어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이유로 버려진 두 늙은 여자는 고난의 겨울을 맞이한다. 외로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칙 디야크에게 사는 분명한 말로 친구를 위로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딸과 손자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칙 디야크는 사의 말을 따라 한다. "뭔가 해보고 죽자고." 모닥불을 피우고 마른 이끼를 불 위에 던진다. 사는 손도끼를 꺼내 나무다람쥐를 잡는다. 칙 디야크는 딸이 주고 간 가죽끈으로 덫을 만들어 토끼를 잡는다. 


  아프다고 늙었다고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끊이지 않고 말하던 그들이 달라진다. 두 여자가 늙음이라는 과시에 젖어들기 전에 사용한 수많은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모닥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먼저 일어나고 서로가 외로움에 지치지 않도록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 앞에 놓인 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웃고 눈신발을 만든다. 


  짐이 되고 쓸모없다고 생각해 버리고 간 두 늙은 여자는 젊은 시절과 함께 했던 생존 기술을 하나씩 찾아낸다.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예전에 장소를 찾아간다. 지금까지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면 이제부터 그들은 스스로 길을 나선다. 


"우리는 씩씩하게 그들과 맞서야 해. 친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에 각오를 하자." 그녀는 한순간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죽음까지도 말이야."


  알래스카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든 살아가기는 버겁고 힘겨운 일이다. 우리는 『두 늙은 여자』의 생존기를 읽으며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고단함을 체험한다. 그곳과 이곳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것이다. 하루를 살아야 할 식량을 얻기 위해 눈바람을 헤치고 걸어야 한다. 혹시 모를 사람들의 해코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흔적을 없애야 한다. 상대가 고독과 외로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존중의 마음을 갖는다. 


  나이가 드는 건 삶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경험과 지식이 쌓여 그들의 주름을 만들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손가락에 굳은살로 옮겨간 것이라고. 늙었다는 이유로 고독과 외로움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우리 사회에서 『두 늙은 여자』는 꼭 필요한 책이다. 칙 디야크와 사가 들려주는 생존의 이야기, 『두 늙은 여자』는 먼 알래스카에서 날아온 오랜 전설이면서 오늘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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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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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마리암이다. 작가와 작중 인물의 이름이 같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가 의도한 것이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을 모방할 때 보이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리암 마지디는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말장난이 아니다. 마리암 마지디의 살아온 내력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녀가 어떻게 이란을 빠져나왔는지 프랑스에서 망명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위 현장으로 달려간 마리암의 엄마는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죽임을 당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본다. 마리암은 엄마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자신 또한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은 끈질기고 집요해서 마리암은 엄마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엄마의 움직임을 느끼고 엄마의 눈빛을 읽어내는 마리암. 아이는 태어나서 이야기를 마주한다. 책을 펴고 읽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짓는다. 


  마리암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자리 한편을 차지한다.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은 마리암. 불심검문에 잡혀간 삼촌. 감옥에서 팔 년을 보낸 삼촌은 마리암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갇힌 기자는 매일 <뉴사베의 모험>을 봤다. 유명하고 사회 운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 같은 만화만 보고 의아해했다는 것. 왜 매일 그 만화를 보냐고 물었다. 그는 만화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화를 보는 그 남자. 삼촌은 잊지 않기 위해 '뉴사베'라고 적었다. 


  엄마와 아빠는 마리암에게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눠 주고 땅에 묻으라고 했다.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였다. 장난감을 나눠 주고 버리고 마리암은 떠나기 위해 소유할 수 없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렵게 프랑스로 들어간 마리암과 엄마는 허름한 원룸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하고 크루아상을 먹고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 학교에 가도 마리암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과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 망명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었다. 페르시아어를 잊고 새로운 말을 배워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는 마리암을 다그친다. 마리암은 사실 프랑스어를 잘 배우고 있었다. 잘 듣고 머릿속으로 프랑스어로 말할 준비를 했다.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하리라 다짐한다. 학교 아이들이 돼지라고 놀려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가려들을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가제트 형사>를 보면서 마리암은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살아남아 야한다. 이란에서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유가 없었다. 불심검문을 당해 끌려가고 차를 타고 가면 두 사람이 가족인지 확인이 돼야 풀려났다. 살아남기 위해 조국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의 가족. 집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말을 하고 밖에 나가서는 프랑스어로 말을 한다. 모국어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두 개의 세계. 마리암이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쳐도 그녀는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란에 가면 그녀의 억양을 듣고 이방인이라 규정한다. 


  두 개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두 개의 세계에서 홀로 떠도는 일이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망명자의 비애가 소설에 절절히 드러나 있다. 태어난 나라를 뒤로하고 희망과 자유를 찾아온 세계에서 마리암은 멸시와 차가운 소외를 받는다.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고 이란의 우마르 하이얌 시인과 사데크 헤다야트 소설가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마리암은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란을 찾아가 친척을 만나고 그들과 뼛속까지 하나임을 느끼면서 마리암은 자신이 발 디딜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느낀다. 


  나의 언어는 하나. 망가진 나라에서 마리암은 택시 기사가 페르시아어로 들려주는 시를 듣는다. 사람들이 떠나고 착취 당하고 죽는 나라에서 오랫동안 쓰인 시. 용기를 가진 시인이 쓴 십사 세기의 시. 프랑스로 떠난 마리암들이 잊지 않고 조국을 그리워하며 배운 페르시아어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조국을 떠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다룬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어제』가 감춰진 서글픔을 그렸다면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잃어버린 자유와 언어를 찾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시를 읽기 위해 페르시아어 수업을 시작하는 마리암을 통해 우리는 부서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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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제1고등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4
전성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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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27일, 길이 열린다. 길을 열어 우리가 걷는다. 걸어서 만난다. 비행기를 타지도 않는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만난다. 손을 잡고 부둥켜안는다. 봄이 온다고 말하자 가을이 왔다고 화답했다. 노래와 춤이,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자리에 머물렀다. 손뼉을 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수줍어하며 말을 건네고 인사를 나눈다. 손을 잡아 온기를 느낀다. 


  전성희의 소설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는 통일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통일이 된지 10년 후의 한국은 아직 혼란스럽다. 혼란스럽지만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개성과 서울 중간쯤에 만들어진 통일시는 통일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복합 기능 도시이다. 소설은 그곳에 세워진 고등학교,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회장 선거를 통해 차이와 다름, 화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전교 회장을 뽑는 공고가 붙고 남쪽 아이들과 북쪽 아이들이 나뉜다. 흡수 통일을 한 탓에 문화와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만난 교실은 묘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언어와 생활방식이 다른 탓에 거리감을 느끼며 학교 안에서도 남쪽, 북쪽으로 갈려 있다. 


  남쪽에서는 공부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서재원, 인기 많고 성격 좋은 남보배, 성적이 좋지 않지만 활발하고 긍정적인 남대성이 후보 등록을 했다. 이렇게 나오자 북쪽에서는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뽑는 회장 선거에 남쪽 아이들만 후보가 되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후보를 내려고 한다. 전교생은 105명 그중에서 북쪽 아이들이 56명이다. 고향은 북쪽이지만 남한 국적을 갖고 있는 강철민은 북쪽에서도 후보를 내야 한다며 공부 잘하는 박영민에게 출마를 부추긴다. 


  선거는 남과 북, 북과 남으로 갈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선거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서재원은 남쪽 후보를 불러 단일화를 제안한다. 자신들은 세 명. 북쪽은 한 명. 표가 갈릴 것을 우려해서다. 남보배와 남대성은 쉽게 단일화를 수락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문자 공세를 한 탓에 남대성은 출마 포기를 한다. 남은 사람은 자신과 남보배. 아이들을 모아 후보 단일화 투표를 한다. 서재원은 이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이 남자인 게 좋다는 발언을 한다. 남보배는 남녀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남보배는 자신이 회장이 되면 남쪽 아이 하나와 북쪽 아이 하나가 짝꿍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한다. 결과는 서재원이 후보가 된다. 


  북쪽 아이들은 강철민을 중심으로 박영민을 후보로 등록한다. 선거가 있기 전 상대를 견제하는 방법으로 축구와 중간 연설을 하면서 전교 회장 선거의 열기는 달아오른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불리한 작전을 펼친다. 박영민의 할아버지가 당 지도부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서재원은 연설 중간에 박영민을 공격한다. 당황하지 않고 박영민은 평등에 대한 소신을 밝히며 연설을 마무리한다. 북쪽 후보는 박영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도 제 목소리를 내고 아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리고 싶은 리수연도 후보 등록을 했다. 리수연은 북조선이 사라져도 북조선 사람들은 살아갈 것이라는 진심과 마음을 담은 연설을 한다. 


  통일된 후의 통일한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학교라는 배경으로 끌고 온 소설은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의 교훈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자!'이다. 체제가 다른 상태에서 흡수 통일이 된 미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정하여 다름을 인정하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행하던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닫고 고쳐 나가는 점은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통일한국의 리더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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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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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나에게 친근한 동물이 아니다. 개뿐만이 아니라 고양이, 쥐도, 햄스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귀여워하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동물들이 나는 무서웠다. 어렸을 때 개에게 물린 후로 개만 나타나면 뛰었다. 전봇대 뒤에 숨어서 개가 지나가길 바랐다. 자전거 옆에 고양이가 죽어 누워 있기도 했고 물을 받아 놓은 대야에 쥐가 빠져 죽어 있기도 했다.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기른다며 햄스터 상자를 열었을 때 나는 교실 밖으로 도망갔다. 털이 있고 작은 눈을 가지고 이빨이 있는 그것들에게 쉽게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사람은 변한다. 약간만.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다 보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적응한다. 사회성이라는 게 생겨서 사회 안에서 살아가게끔 진화한다. 주인집 개가 있었고 마음대로 지은 이름을 부르면 목에 달린 방울을 흔들며 뛰어왔다. 먹이를 주고 한 번씩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래전에 이야기이다. 지금 그 강아지는 죽었겠지 생각하며 하재영의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는다. 


  소설가 하재영은 어떤 시작을 계기로 개인적 체험을 한다. 피피라는 치와와 강아지를 키우면서 소설가의 인생은 변곡점을 맞는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피피는 소설가의 집에 우연히 가게 된 것인가. 꼭 가야 할 이유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것인가. 누구도 알 수 없다. 작고 누군가가 키우지 못할 사정이 생긴 피피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애완동물이라는 명칭 대신 평생을 함께하고 인생의 동반자라는 개념이 강한 반려동물로서 개는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도 나오지만 동종보다 사람에게 정을 주고 따르는 종은 개가 유일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가 아프다.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특히 그렇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떠나고 우리는 그들보다 이 세상에 오래 머문다. 그런 줄 알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것은, 미코야, 왜 나에게 너였을까. 왜 너에게 나였을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중에서 어떤 응답, 하재영-


  피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재영은 또 다른 피피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 온라인에서 '뚱아저씨'를 만난다. 만남은 만남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만남을 피하지도 피할 수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뚱아저씨'는 다이어트 컨설턴트 겸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실의에 빠진 그는 유기견을 입양한다. 그리고 인생은 동물 구조로 이어진다. 


  소설가도 그렇고 '뚱아저씨'도 '행강대부'도 알 수 없는 힘들에 끌려 동물 구조의 길로 들어선다. 누가 그들의 손을 잡아 버려진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입양하는 힘든 길로 이끄는가. 당신은 알 수 있는가. 생각하기와 질문하기를 거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이야기하기를 시작한다. '동물에 대한 아무 비하도 멸시도 없이 말하건대 인간다움'을 말한다. 


  소설가는 취재를 위해 동물보호 단체의 활동가들과 새끼 빼는 기계들처럼 취급당하는 개들이 모인 번식장과 세상의 모든 개를 팔 수 있는 경매장을 다닌다. 버려진 개들이 가는 마지막 장소 공설 보호소, 애니멀 호더의 경향을 보이는 사설 보호소까지도. 그리고 살아서 나갈 수 없는 개들이 모인 개농장과 개시장을 간다. 길을 잃거나 주인이 버린 경우 개들은 유기견으로 취급되어 보호소에 맡겨진다. 그곳에서 개들은 열흘 동안 입양을 기다린다. 그 후에 개들은 안락사 당한다. 


  보호소를 운영하는 어떤 수의사는 안락사를 시키는 대신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렸다. 시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을 대로 받고 몰래 뒷돈도 챙기는 것이다. 수의사라는데 주사기 하나로 여섯 마리 개에게 주사를 놓았다. 그 개들은 감염으로 전부 죽었다. 보호소라고 사정이 나은 것이 아니다. 안락사는 고통사를 의미했다.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주입해야 하는 약물로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약물을 투입 당한 개들은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간다. 소설가는 언어 뒤에 숨겨진 폭력성을 찾아낸다. '어떤 안락사는 고통사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어떤 입양은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것을, 언어들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쓴다. 


  한쪽에서는 반려동물로써 개를 키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신으로써 개를 먹는다. 개를 먹는 사회. 돼지, 닭, 소, 오리도 먹는데 개는 왜 안되냐 반감이 드는가. 개 식용을 합법화해서 깨끗하게 도축하고 확인된 개를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질문하고 싶은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는 개를 시작으로 한 이러한 반감과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개식용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개가 축산법에는 포함되면서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포함되지 않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즉 현행법은 개를 사육하는 것만 허용할 뿐 식품으로 도살, 유통,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제7조 '가축의 도살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도살은 "허가받은 작업장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개는 축산물 위생 관리법의 대상이 아니므로 허가받은 작업장(도살장)이 없다. 그래서 개를 잡아먹으려는 사람과 개를 식용으로 판매하려는 사람은 개농장, 개시장, 무허가 도축장, 개인 주택, 야산 등에서 개를 도살한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중에서 쓸모 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 하재영-


  단순하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의 관점이 다양해진 현시대에 맞는 법을 개정하면 된다. 잘못된 것은 고친다. 관습에 의해 우리가 식용으로 개를 다루었다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법을 만들면 된다. 개식용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개식용이 합법화될 경우 개 역시도 농장동물로 편입되어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는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저질러지는 사람들의 추악한 이기심과 현대 축산업의 민낯을 들추어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동물복지 대신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가져다 쓴다. '동물권은 동물해방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동물도 생명권이 있다는 것,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것이다. '동물보호가 인간이 주체가 되어 객체를 보살핀다는 시혜의 어감을 가진다면 동물권은 우리의 인식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권적인 어감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다시 시작해보자. 생태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최종 소비자는 인간이다. 생산자부터 올라간 삼각형의 가장 윗부분을 인간이 차지한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에서 인간 역시 그런 취급을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며 동물 구조에 힘쓴 소설가가 오랜 시간 힘겹게 써 내려간 글에서 그는 '이 이야기는 자격이 없는 자의 응답이다'라고 끝마친다. 펜션에서 만난 바둑이 미코의 죽음을 겪으며 죽음이라는 모호한 관념을 실체로 맞닥뜨린 소설가는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 간다. '나는 어디에서 타자와의 공존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나와 당신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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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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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과 음식에 관해서라면 나는 고급 취향이 못 된다. 취향이라는 게 고급, 중급, 초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방송과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부분에서 나는 멀리 있다. 패션은 패션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크고 편한 옷 몇 개를 돌려 입는 게 전부다. 비슷한 색깔과 문양을 몇 개씩 사놓고도 계절 내내 한두 개를 돌려 입는다. 음식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면 좋다. 미식이라고 요즘은 많이 떠들어 대지만 허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을 먹으면 만족한다. 


  단 한 번도 명품 옷이나 가방, 신발을 가져본 적도 없다.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0을 제대로 세고 있나 의구심이 들 뿐이다. 선물로 명품을 선물하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고는 말았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백화점에 가서 명품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계산한다. 생일이라고 돈가스만 사준 게 미안했다. 초를 켜고 노래를 불러주는 목적 외에는 필요 없는 케이크를 사지 않았다고 뿌듯해했는데. 뚱뚱한 팔로 한 번 안아주고는 끝이었는데.


  코스 요리가 나온다는 곳도 가본 적이 없어 기념일이 되면(사실 기념일도 잘 안 챙긴다. 기념할 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돼지갈비 집에 가서 갈비를 굽는 게 전부였다. 생활은 평범하고 보통의 날들로 흘러간다. 매일 하이패션을 입고 미식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할까. 


  제시카 톰의 『단지 뉴욕의 맛』은 음식 작가를 꿈꾸는 대학원생 티아 먼로를 통해 성공과 행복에 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 어떻게 살아야 꿈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티아는 모든 꿈이 모여든다는 뉴욕에 살아간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영화나 책을 통해 알고 있는 뉴욕은 활기 넘치고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키 크고 날씬한 여성이 걸어가는 곳이었다. 노란 택시를 잡고 내려서 큰 건물로 들어가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는 바쁜 도시. 


  화려하게 보이는 뉴욕에서 청춘들의 꿈은 좌절하고 짓밟힌다. 『단지 뉴욕의 맛』은 성공을 위해 모여든 뉴욕에서 꿈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그들에게서 성공이란 달콤하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에 가고 졸업. 다시 대학원에 입학. 기회를 잡지 못하면 인턴십 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티아는 대학에 오기 전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요리 시간을 소재로 글을 썼다. 교내 신문에 글이 실리고 <뉴욕타임스>에서 연락이 와 칼럼을 썼다. <뉴욕타임스>의 푸드 섹션 에디터, 레스토랑 비평가이기도 한 헬렌 란스키가 티아의 글을 마음에 들어 했다.


  대학에 와서 방황을 한 티아는 그 일을 계기로 뉴욕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요리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대학원 입학 환영회에서 헬렌을 만나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드렸던 다쿠아즈 드롭을 직접 만들었다. 헬렌을 만나 그녀가 칭찬했던 글을 쓴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리면서 다쿠아즈 드롭을 건네고 싶었다. 헬렌 밑에서 레시피를 연구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헬렌에게 쿠키를 내밀면 되는데 그 순간 나타난 마이클 잘츠가 나타나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쿠키는 땅에 떨어지고 헬렌을 만나지도 못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마이클은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메일 주소를 건넨다. 마이클은 <뉴욕타임스>에 레스토랑 리뷰를 정기 기고하는 평론가였다. 티아는 자신이 쓴 에세이를 첨부해 메일을 보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이 꼬이면 끝도 꼬이게 된다. 그때부터 티아의 뉴욕 생활은 평범한 대학원생에서 벗어난다. 비밀을 가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 주변 세계에서 점점 멀어진다. 


  미각을 잃은 레스토랑 평론가와 함께 음식을 맛보고 대신 감상을 말하고 리뷰를 쓴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는 명품 옷을 가지고 미식의 세계에서 웨이팅 없이 음식을 맛보는 생활. 티아의 일상은 혼란으로 가득 찬다. 그녀가 꿈꾸는 뉴욕의 맛은 점점 멀어지고 오직 화려함과 자기 과시로 물든 공허한 맛이 남을 뿐이다. 


  『단지 뉴욕의 맛』을 읽는 독자는 티아의 선택을 지지할 수도 망설일 수도 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끌어내는 이 소설은 당신이 꿈꾸는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성공의 계단을 오르지 않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우리의 못된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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