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헤리 홀레, 매튜 스커더, 요시키 형사, 마르틴 베크. 모두 추리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범죄가 발생한다. 잔혹한 현장에서 그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기 위해 서류를 들여다보고 팀원들 혹은 혼자서 퍼즐을 맞춘다.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는 전직 형사로서 알코올 중독에 걸린 탐정이다. 도시의 여자들이 사라지면 의뢰인이 매튜 스커더를 찾아온다. 전직 형사의 인맥으로 단서를 모으고 혼자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 습격을 받기도 한다. 요 네스뵈의 헤리 홀레 역시 알코올 중독이다. 


  다들 그렇게 심연을 들여다보다 심연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물이 되어 간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훑으며 니코틴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악과 싸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형사와 탐정 시리즈를 읽으며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묘미는 경찰 특유의 직관력보다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빠진 조각을 줍듯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결정적인 한 방이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이든 미국이든 세계 각지의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는 형사와 탐정과 함께 하기를 즐겨 하는 독자에게 난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 하나가 던져졌다.


   수준 높은 복지 국가 스웨덴에서 날아온 벡스트룀 형사는 같은 국가 출신인 마르틴 베크와 미카엘, 리스벨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후자의 인물들이 정의와 사건의 진실 등에 관한 보편적인 감정을 소유한 인물들이라 하면 벡스트룀 형사는 반대편에 선 인물이다. 범죄학자이면서 소설가인 레이프 페르손은 악당 한 명을 창조해 냈다. 악당이라는 글자 뒤에 형사를 붙여야 하니 독자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용을 죽인 형사』는 벡스트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벡스트룀은 폭식과 폭음이 전문이며 사건 수사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각종 차별적인 생각들을 서슴없이 하는 벡스트룀. 사건이 벌어지고 젊은 시절 자신이 교육한 후배 경찰 밑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굴욕적이라거나 수치스럽다는 감정 따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의사가 진단한 술을 끊고 야채샐러드로 식사를 해야 하는 생활이 힘들 뿐이다. 


  복지 국가라는 이면 뒤에 가려진 스웨덴의 잔혹 범죄를 그리는 레이프 페르손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물 벡스트룀을 내세우는 방법을 취하는 전략을 취한다. 자국의 심각한 범죄 문제에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선과 악이라는 진부한 구성을 피하기 위해 악당 형사 벡스트룀을 창조한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나쁜 인간. 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착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공식을 파괴한다. 


  술고래이면서 전직 회계사가 냄비 뚜껑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문 배달부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배달부는 소말리아 난민으로서 스웨덴으로 오기 전 시체를 일상으로 본 인물이다. 그렇기에 신고할 때도 떨거나 흐느끼지 않는다. 경찰은 난민인 배달부를 다른 스웨덴 시민과 다르게 거칠게 대한다. 술고래 회계사가 사는 집 주변을 탐문 수색한다. 건축 현장에 있던 목수는 살인 현장에 쓰였을 옷가지를 발견한다.


  솔나 경찰서의 초동수사 지휘관인 벡스트룀이 사건을 맡는다. 그는 팀을 이루는 경찰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비웃음을 날린다. 굉장히 혐오스러운 생각도 서슴지 않게 한다. 여자와 이민자로 구성된 팀에서 벡스트룀은 겉으로는 사건 수사에 노회한 경찰인 척 굴지만 차별적인 생각들을 끊임없이 한다. 실제 벡스트룀은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회계사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신고자인 신문 배달부가 목이 졸려 물속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수사는 다른 방향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회계사를 둘러싼 배후에는 돈 세탁과 전직 경찰이 엮여 있고 이란 출신 이민자 형제들이 등장한다. 


  벡스트룀 경감은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국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전 상사의 부패를 밝히려다 재산추적과라는 엉뚱한 곳으로 좌천됐다. 경찰 조직에서 벡스트룀 같은 인물은 골칫거리였다. 그를 이 년 동안 도난당한 자전거와 분실된 지갑 곁에 둔 윗선은 그를 다시 솔나 경찰서로 보내 버렸다. 분실물 창고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다시 한 번 상사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기까지 한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일어나 반격을 시작한다. 


  솔나 경찰서로 부임하면서 맡게 된 연쇄 살인을 벡스트룀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경찰 노조의 아는 힘으로 총기를 간신히 소지한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술집이었다. 노란색 리넨 고급 양복을 입고서. 수사국의 팀원들이(벡스트룀은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탐문 수사와 회계사의 공책에서 발견한 숫자를 조합하는 동안 벡스트룀은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의 일을 계속 생각한다. 이상하다, 이상하단 말이지. 


  사건은 생각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함정에 빠진다. 사건을 조종하는 배후는 누구인가. 


  형사의 반대말은? 


  동생 안 사. 


  ······


  피식 웃기라도 했다면 성공. 현실에는 없다. 뛰어난 직관과 추리력으로 사건 현장을 둘러 보고 범인의 윤곽을 그리는 형사는. 정의와 용감함, 의협심과 투지로 똘똘 뭉친 형사는 없다. 뚱뚱하고 폭식과 폭음을 즐기고 같은 경찰의 말도 믿지 못해 혼자 집으로 돌아와 괴한들에게 무릎을 꿇는 벡스트룀이 있을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악당을 만나보고 싶다면 레이프 페르손의 『용을 죽인 형사』를 추천한다. 


  허구와 가상에서라도 용감하고 정의로운 형사를 꿈꾼다면 그래도 『용을 죽인 형사』를 만나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형사 시리즈가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큰 아이들'에게 던지는 악당 전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라, 작가라······작가들은 보통 교통사고도 잘 안 난다던데······운전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여기 있네요, 작가. 작가는 일용 잡급에 해당하니까······일당 만팔천원이네요."

아아, 그렇군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고개라도 끄덕거려야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아무렇지 않아 보일 것만 같았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中에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수록)


  그러니까 작가 이기호는 외장하드를 사러 중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병맛 소설'이라고 분류된 자신의 책을 발견한다. 그룹 1, 2에서 다섯 권을 사면 공짜로 준다는 글과 함께.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연락해 직거래를 하자고 한다. 자는 아내를 깨워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내는 인터넷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라고 한다. 소설가가 소설을 안 쓰는 게 모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광주송정역에서 행신행 KTX를 타고 '제임스셔텨내려'를 만나러 간다. 책을 받아들고 열심히 들여다본다. 책은 흠집이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다. 드디어 자신의 책을 펼쳐보는 소설가 이기호. 그곳에는 '최미진님께. 좋은 인연. 2014년 7월 28일 합정에서 이기호'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제임스셔터내려'는 이기호를 알아보고 도망간다. 다시 돌아와 책과 돈을 교환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하는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이기호는 소설이 그렇게 한심했냐고 묻는다. 최미진이 누구냐고도 묻지만 '제임스셔터내려'는 달려간다.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이기호는 '제임스셔터내려'가 박형서인지 자신이 아는 누군가인지 궁금했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로 한 사람의 얼굴을 알고 싶은 마음에 광주에서 서울까지 달려간다. 야구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인 남자가 있을 뿐이고 그를 알아본 '제임스셔터내려'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한다. 작가들도 그런 사이트에 들어올지 몰랐다면서. 


  그래서 소설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상대의 반응은 호의도 적의도 아닌 어정쩡한 호기심일 뿐이다. 아, 그러세요는 괜찮은 반응이다. 화성에서 살다 돌아온 외계인 보듯 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라 그런 직업이 지구상에 있단 말이지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전 오기로 했던 크레인 기사를 찾아가 돼지갈비와 떡갈비, 비빔냉면을 사주면서도 소설가는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서 과적 단속에 걸려 현장에 오지 못한 크레인 기사와 술을 마시는 소설가는 나중에 할부 이십 개월이 남은 아이폰이 박살 나서 운다.


  그럼에도 소설은 쓰지 못하고 동네 호프집에 앉아 소주 탄 생맥주를 마시는 '나'는 소설가다. 사채업자에게 두 번 돈을 보낸 권순찬 씨가 아파트 앞에서 천막을 치고 있을 때도 입주민 대표에 의해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교수님이니까, 맞춤법을 봐달라는 권순찬 씨의 부탁도 들어준다. 그게 소설가고 교수님인데 소설은 못 쓰고 학교는 열심히 다니는데 업무는 너무 많은 그런 일인데. 사채업자를 만나러 온 권순찬 씨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데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소설가란 직업은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화자 본인조차도 의심할 정도다. 「한정희와 나」에서는 학폭위에 회부된 한정희가 결국 서면 조치로 끝나자 한다는 말이 고모부는 작가니까 대신 써달라고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중고 사이트에 그룹 3으로 '병맛 소설'로 덤으로 끼워 주는 자신의 책을 들여다보고 판매자가 누구인지 찾아가고 술 마시고 핸드폰 깨져 울고 틀린 맞춤법을 봐주고 사과문을 대신 써주는 일들에 초연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하는 질문에 딴청 피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소설이, 대단한가. 


  그 시간에 축구나 보고 인문학 책이나 보는 게 좀 더 그럴 듯하지 않냐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도 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은 대단하지 않다. 부끄럽고 남루해서 비겁한 사람이 되기는 쉽다. 「오래전 김숙희는」을 읽다가 책을 던질뻔했다. 남편 보험금으로 받은 육천만 원 대신 삼백만 원을 찾아 내미는 정재민의 속물스러움에서 발견한 부끄러움 때문에.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움을 감추고 비겁함을 보이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생활인 이기호와 소설가 이기호가 만나는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리한 구조를 선보인다. 작가의 말 대신 「이기호의 말」을 넣어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이 안 되게 만들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소설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이득인가. 대단하지 않은 걸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소설이 대단하지 않아도 대단하게 보이고 싶은 소설가의 소심한 복수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들어 있다. 세상을 향한 거창한 복수 말고 소설로써 욕심부리지 않고 애꿎은 사람에게 화내지 않으려는 몸부림 말이다. 


  일당 만 팔천 원의 하루가 모여 삶의 적의를 꾹꾹 눌러쓴 한 권의 소설집이 세상에 나왔다. 좋은 인연이라고 믿는 소설가와 독자는 정발산역 2번 출구가 아닌 각자의 책상에서 만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먹었는데 입안에 가시를 박아 넣는 선인장 같은 소설을 들고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남편이 죽었다. 슬프지 않다. 15년을 함께 살았다. 시집 식구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행히 고모는 울지 않는 '나'를 걱정해 준다. 차라리 우는 사람은 걱정이 덜 된다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채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법이라고.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주산 학원에 보냈다. 남들처럼 피아노나 바이올린 학원이 아닌 단순히 가게 단골손님이 주산 학원 원장이라는 이유로. 그 덕분인지 암산이 빠르다. 


  자식이 없는 남편이 남긴 소액 보험금. 남편의 사망으로 갚지 않게 될 주택 융자금. 지방지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 벌 수 있는 월급. 장례식장에 앉아 돈 계산을 빠르게 하고 있다. 여전히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은 외근과 야근으로 함께 저녁을 먹는 횟수가 드물었다. 기념일은 넘어갔고 서로에 대해 불만 사항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날도 도쿄로 출장을 갔다고 믿었다. 회사 직원이 알려온 장소는 살고 있는 도시의 호텔이었다. 충격. 장례식을 가까스로 치르고 시댁에 불려 갔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불단을 최고급으로 주문해 놓았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나'의 집에 들여놓겠다고 한다. 짐이 적은 곳이고 언제든 찾아가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할 수 없이 다다미 방에 크고 무거운 불단을 들여놓았다. 


  가키야 미우의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나'의 이름은 다카세 가요코. 결혼과 동시에 이토우라는 성 대신 남편의 성을 따랐다. 직장에서도 피트니스센터에서도 다카세 씨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지 않다. 가요코는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비밀을 떠안게 됐다. 죽은 남편은 호텔에서 급사했다. 남편의 동료가 사실을 알려왔다. 도쿄 출장지가 아니었다. 왜 호텔에 간 것일까. 


  남편의 분향을 이유로 사오리라는 청순한 여자가 찾아와 오래 기도를 한다. 왜, 왜 저러는 것일까. 기도가 끝나고서 한다는 말이 남편의 유품으로 잠옷을 달라고 한다. 기막히다. 순간 거짓말을 한다. 잠옷은 내가 입고 자서 안 된다고.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남편의 유품 상자에서 꾸준히 사오리에게 송금한 내역이 담긴 통장을 발견한다. 도대체 무슨 사이였길래 적지 않은 돈을 보냈단 말인가. 


  생각 하나마나 그들은 부인인 나 몰래 바람을 피웠던 것일게다. 남편의 죽음 이후 시어머니는 가요코가 살고 있는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 불단에 분향을 한다는 이유로. 불도 켜지 않고 남편의 서재에서 남편 옷을 끌어안고 울고 있어 깜짝 놀랐다. 치매가 분명한 시아버지, 히키코모리 시누이, 집안의 명예를 중시하는 시어머니에게서 가요코는 며느리 역할을 졸업하기로 한다. 


  남편이 죽은 후에 배후자의 친족과 인연을 끊고 같은 묘에 묻히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제출하기로 결심한다. 가요코는 결혼 전의 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구성회복신청서'도 함께 낸다. 아침 드라마 같은 구성으로 한 번 읽으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생활 밀착형 소설이다. 


  가요코가 걱정하는 일상이나 고민이 낯설지 않다.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살아온 시부모님은 가요코의 파트타임 일을 가볍게 여긴다. 성탄절을 함께 보내자고 하고 일하는 곳에 이야기해서 이탈리아 여행에 가주기를 바란다. 시아버지의 코골이가 심해 각방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지 않느냐는 이유다. 며느리와 함께 자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가요코는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 올까. 시월드에서 현명하게 바다가 보이는 빨간 예쁜 집으로 완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 남편의 비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악당도 완벽한 착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 소설에서 독자는 공포와 스릴을 느낀다. 일상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비밀로 이루어진 것이었나. 


  담백하고 쉬운 문체로 우리의 오늘을 그리는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을 통해 그럼에도 당신의 내일에 박수를 보낸다는 따뜻한 응원을 받는다. 책을 덮고나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중간에 읽다가 고구마 열 개를 먹은 듯 답답해질 때가 있다. 사이다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읽다 보면 소심하게나마 파이팅이라고 가요코 씨에게 말해줄 수 있다. 


  소설은 며느리, 부인, 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만을 바라는 사회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이름을 가진 '나'를 찾아가는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 『유혹하는 글쓰기』, 『문장 강화』든 읽고 나면 문장과 단락을 쓸 때 멋진 기술 하나를 얻지 않으려나 호기심이 생기는 정도이다. 대부분 실패. 시 창작과 소설 창작 책도 읽어 봤지만 시 한 줄 소설 한 문단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 일쑤였다. 최근에 읽은 책은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 제목으로 독자에게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된다, 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게으르고 얻고 싶은 것만 많은 사람이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바른 글쓰기 습관이 잡히지 않는다. 대게 글쓰기 책을 읽는 이유는 영업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하루 중 언제 글을 쓰나. 그가 앉아서 작업하는 책상의 형태는 어떠한가. 펜으로 쓴다면 어떤 펜을 쓰나. 글쓰기는 빼고 주변적인 걸 알고 싶어서 읽는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블랙 윙 연필을 한 다스 샀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을 읽고 괜찮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난 건 아니고 계속 누워서 괜찮다, 잘 쓴다고 생각한 작가 곽재식의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읽었다. 글쓰기 책이라고 책상에 앉아서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옆으로 누워서 읽었다. 저자 소개에 '화학자 출신 소설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6개월간 단편 4편을 완성하는 곽재식 속도 1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속도 1을 유지하는 작가의 글쓰기 비법이라. 다음 장으로. 어렸을 때 비디오 대여점 마니아였다고 한다. 비디오 커버에 적힌 영화 소개 글을 읽고 영화를 골라야 하는데 어느 날부터는 고를 것도 없이 그냥 빌려봤단다. 그러면서 망한 영화에서도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글감 찾는 팁을 알려준다. 망한 영화라. 세상에는 망한 영화와 흥행 영화로 나누고 있구나. 이분법에 감탄한다. 영화를 보는 기준은 배우다. 혹은 한 감독을 따라서 본다. 조니 뎁이 나온 영화를 다 찾아보기도 하고 이창동이 그랬다. 영화는 그저 생각 없이 멍하게 보곤 했는데 그곳에서 글의 소재를 찾으라니, 이제부터 생각을 좀 하고 봐야겠다.


  나에게 도움이 됐던 부분은 두 번째와 네 번째 챕터였다. '경험과 변주-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리는 법과 생존-꾸준히 쓰는 힘을 기르는 법'.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작가가 가장 쓰고 싶은 부분을 먼저 쓰라고 말한다. 영감이 떠오르고 이 장면은 최고야 하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 인물 소개하고 배경 설명하는 지루한 시작을 할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부분을 첫 부분으로 하면 작가가 신나서 재미있게 쓸 수 있다. 우리에겐 워드프로세서가 있기 때문에 쓰고 싶은 장면 먼저 쓰고 자르고 붙이고 이어서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개떡같이 써놓고 나중에 고치자', '마무리 짓기 쉽도록 일단 짧은 글로 시작하자.' ~자로 끝나는 청유형 문장에서 당신도 할 수 있어가 아닌 같이 해보자는 응원이 느껴진다. '일단 쓰자'라는 보기에 무책임한 표현도 있지만 써야 고치고 완성하고 공모전이든 낼 것이 아닌가. 가장 중요한 비법이 있다. '백업을 잘하자'


  여러 글쓰기 책을 읽었지만 이런 중요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백업. 딱 한 번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글이 나를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를 순간을 경험한 적이. 저장하기를 누른 순간 화면이 까맣게 변하면서 컴퓨터가 재부팅 되었다. 알고 있는 욕은 다 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김첨지의 심정으로 다시 글을 써 보았지만 멍청한 기억력의 소유자라 복원할 수 없었다. 이메일이든 외장하드든 백업을 해놓자. 수시로 저장하기를 눌러야 한다. 


  글쓰기만으로 생존을 할 수 없다고 사실 그대로 일러주기도 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책 백날 읽어봐야 도움이 되겠어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겠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방법으로 글을 쓰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암울함을 이긴다. 다음 책은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로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대로 중요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어떻게든 글쓰기는 어떻게든 읽기부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는다는 것은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것. 

꿈에서 만나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어도, 그건 위로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없는, 그런 매일을 살기 위해 떨쳐 버리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 서커스 나이트 中에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공평한 일이다. 누구도 두 번 태어나지 않고 두 번 죽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죽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도 몸은 두 번 죽을 수 없다. 사후 세계를 경험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무리일 수 있는 말이지만 다들 한 번씩 살고 죽는다. 이제 겨우 한 번 살고 있다. 죽음을 옆에서 바라본 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함께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의 인물들은 죽음을 지켜보고 생의 빛을 향해 걸어간다.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뚜벅뚜벅. 누구의 손에 등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고요하고 가만한 빛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소설이다. 


  어렸을 적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사야카. 쌍둥이 형의 죽음을 자라는 내내 간직해야 했던 이치로. 진행성 위암으로 곧 죽어갈 운명에 처한 사토루.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마쓰자키 부인. 아버지 사토루의 죽음과 함께한 어린 미치루. 인물들은 죽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미워하지도 죽어간 이를 과장되게 그리워하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고 이어서 분침 조금 있으면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각자의 삶의 바퀴를 굴린다. 


  사야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만지면 기억과 느낌을 알 수 있다. 사이코메트리. 완벽하지는 않고 틀릴 때도 많지만 사건 수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딸 미치루는 엄마의 그런 능력을 좋아한다. 신기해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는다. 미치루뿐만 아니라 소설의 인물들은 사야카의 능력을 존중해준다. 


  소설을 흐르는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본 그들은 상대에게 책임을 묻거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우연히 날아온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불안하고 어두웠던 사야카의 내면을 빛으로 인도한다. 스무 살의 사야카는 사랑을 했다. 부모님을 잃고 발리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세계 일주를 하고 머물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였다. 


  이치로의 가족이 운영하는 신사에 머물게 되면서 현명하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자신만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치로에 반해 연애를 한다. 이치로의 가족 모두 사야카를 한마음으로 보듬어 주었다. 부모님을 동시에 잃는다는 것에서 치유되지 않은 사야카는 가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겨우 빛으로 걸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엄지손가락의 마비를 겪고 밤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밤 속을 헤매다 오랜 친구로 지낸 사토루의 느닷없는 고백과 제안을 받아든다. 사야카는 사토루와 결혼을 하고 미치루를 낳는다. 사토루는 어린 미치루를 힘껏 좋아해 주고 천국으로 간다. 소설은 남아 있는 자들이 삶과 함께 부르는 위로의 노래로 가득하다. 죽어간 자들이 그곳에서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죽음은 무섭고 슬퍼지는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 자주 기쁘고 고요함으로 버티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남아 있다, 아직 여기에. 산소포화도가 0으로 떨어지고 심정지를 알리는 그래프가 평행선을 그리는 장면에서. 하늘에서 만난 그들이 있어 남아 있는 우리는 위로 비슷한 감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한 이름의 가족이 되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