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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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의 문장은 나를 과거라는 별로 데려간다. 광활하여 모래바람만 불고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없는 고독의 기억만이 자리 잡은 그 별로. 문장을 읽어가다가 나는 별의 기억 속으로 소환된다. 머뭇거리고 전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식의 화자의 서술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며 걸어간다. 사랑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독자는 헷갈릴 수도 있겠다. 사랑이었다면 죽음 뒤에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없다. 죽음이 우리 곁을 찾아와 머무는 순간까지도 사랑은 없다. 이제 우리는 순진하지도 않으며 열정은 내다 버린 지 오래다. 사랑의 순간에 머물렀던 기억이 남았다. 진실은 사라지고 기억만이 우리를 고독의 별로 안내한다. 열아홉 살. 케이시 폴은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빌리지의 테니스 클럽에 가서 젊고 가문이 좋은 여자애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폴은 어머니의 신념과 고집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그저 한 여자를 만나 테니스를 치고 사랑에 빠질 뿐이다. 


  마흔여덟. 수전은 딸이 둘 있고 가끔은 정원사 흉내를 내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이다. 각 방을 쓰고 있으며 남편의 눈을 본지 오래되었다. 폴은 테니스를 함께 친 뒤 수전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젊은 남자에게 부여되는 평판이라는 것이 있다면 폴의 어머니는 그가 이제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는 말로 그 일을 비아냥거린다. 수군거림, 비아냥, 남의 시선을 뒤로하고 그게 있다 해도 무시해 버리고 그들은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래도 이 정도는 발견했다.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모범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뒤에 오는 사랑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반면 더 쉽게, 더 좋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물론 가끔은, 첫사랑이 심장을 소작(燒灼) 해버려, 그 뒤로는 어떤 탐침을 들이밀어도 흉터 조직만 나올 수도 있지만.

(『연애의 기억』中에서, 줄리언 반스)


  세상의 통념과 형식을 깨는 그들의 만남은 폴과 수전을 알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한 시제인 미래로 데려간다. 폴은 오십 년도 더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기억으로 어루만진다. 가끔 쓴 일기 속에서 떠올려 보기도 하고 인과 관계가 맞지 않는 기억을 풀어 놓기도 한다. 사랑은 구체성이 없는 행위라는 것을 그 자신이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하나의 이야기에서는 폴은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한다. 둘의 이야기에서는 객관화를 목표로 '너'라는 이인칭, 셋의 이야기는 '그'라는 삼인칭으로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실패. 추측대로 폴은 사랑의 이야기 안에서 패배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폴도 나도 실패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랑의 실패는 삶의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 삶, 구원에서 우리는 실패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이 연애를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연애의 기억이 우리를 마지막에 부여받은 축복으로 안내한다. 그것이면 된다.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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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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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타 본 적은 없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본 적은 있지만. 가끔 야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의 불빛을 보고 잘못 날아온 별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세계는 그토록 연약하고 믿을 수 없는 것. 외국 영화에서 본 비행기 관련 소재는 납치, 시간 여행, 불시착,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승객들은 혼돈에 빠지고 주인공들은 대게 기지를 발휘해 행복한 결말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허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비행기를 겪었을 뿐이다.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일들을 겨우 뉴스로 보고 들었다.


  시작은 땅콩 한 봉지였다. 승무원은 사과하고 사무장은 미국 공항에 홀로 버려졌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말은 틀렸다. 그는 사고를 일으킨 경영진인 당사자가 업무에 복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녀는 봉사 활동을 하고 반성한다는 몇 마디의 말을 한 뒤 경영에 복귀했다. 한국은 그런 나라다. 문화의 최고 지위를 가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는 한국을 모른다. 땅콩 회항이 있고 이번엔 물컵이었다. 언니는 땅콩. 동생은 물컵.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를 보여주고 있다. 광고 회사 직원들에게 폭언을 하고 물컵을 집어던졌다는 의혹에 휩싸인 동생의 수사는 항공사의 탈세와 밀수입으로 조사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외국으로 수출된 한국어 '갑질'은 이제 대한민국을 수식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갑질'은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따로 번역을 하기 힘들어 우리가 쓰는 언어 그대로 내보냈다. 부끄러움을 수출하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이제 우리는 갑과 을이 아닌 을과 을의 대결로도 나아가고 있다. 박민정의 소설 『미스 플라이트』는 주인공 유나와 아버지 정근이 겪은 을과 을의 부끄러운 대결을 다룬다. 임용고시를 공부하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기로 한 유나는 B항공에 입사한다. 자부심보다는 수치와 모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직 공군 대령이기도 했던 유나의 아버지는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딸이 일한 하늘에서는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아버지 정근은 고등학교 이후 절연했다시피 한 딸이 살았던 인생의 행로를 찾아 나선다. 소설은 유나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와 정근의 서사, 유나의 남자친구였던 주한의 시점으로 풀어간다. 유나가 겪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지탱했던 부끄러움에 대해 추측할 뿐이다. 


  대령의 운전을 도맡아 하고 임무가 아님에도 대령의 사모, 딸의 운전을 해야 했던 사병 영훈의 이야기를 통해 유나가 느꼈던 사회의 부조리는 그녀가 어른이 되면서 더욱 커진다. 물길을 막는 공사를 하고 비행기 수리에 들어갈 돈을 나눠 먹느라 사람들이 죽고 비리를 폭로하려다 오히려 내부 고발자로 몰려 자살을 하는 대한민국에서 유나의 꿈은 불시착한다. 같은 팀 안에서 간절함을 이용해 어느 한 명을 엑스맨으로 지정해 고발을 시키는 B항공에서 유나는 좌절한다. 


  면세품을 팔지 못하면 승무원이 직접 사야 한다. 승무원을 검색하면 딸려 나오는 야한 사진들을 보고 경악한다. 이러한 소설의 내용이 충격적이지 않았던 건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로 충격 회로가 무뎌졌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가방 하나와 버려졌던 사무장이 있었고 차마 얼굴을 보여주지 못해 가면을 쓰고 나와 집회를 하는 항공사 승무원들을 보았다. 회장님이 들어오시면 나란히 서서 꽃다발을 주고 노래를 부르며 환영 인사를 해야 했다. 


  유나와 정근은 을이었다. 그들은 을들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같은 을끼리 대결하고 실패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갑들은 자신들이 직접 칼자루를 빼서 휘두르지 않는다. 권력과 돈으로 을을 사서 을들을 겨냥하게 한다. 생계라는 약점을 쥐고 흔드는 갑에 맞서다 실패한 유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 마디를 안고 지상으로 돌아온다. 『미스 플라이트』는 연대와 공존이라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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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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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부든 친구든 같이 있다고 '둘'이라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그저 외톨이와 외톨이일 뿐이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中에서, 데라치 하루나)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은 쌍둥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밖에서 보낼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가정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그녀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셔츠나 원피스를 다림질하고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자신의 모습을 창가에 앉아 들여다보는 동안 외로운 여인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집안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에게 말해보았지만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돌아왔다.


  쌍둥이들의 방학 동안 그녀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방학이 끝나고 좋아졌지만 두 달의 방학이 다시 찾아오자 그녀는 불안해져서 욕조에 앉아 심호흡을 해야 했다. 꼭대기방을 청소하고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혼자만의 방이라고 해도 그곳은 집이었다. 꼭대기방은 가족실로 변했다. 방이 필요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쉴 수 있는 방. 수전은 작고 조용한 호텔을 발견했다. 낮에만 방을 빌리고 싶었다. 하룻밤 숙박료를 지불하고 방을 빌렸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라는 느낌에 빠졌다.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우리는 각자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니까. 19호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당신의 상상대로 과격하고 뻔하게 흘러갈까. 수전은 단지 방 하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는 두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19호실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유미코는 서른아홉 살이다. 아이는 없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고 계약직 사원이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일자리를 찾고 있다. 수예 교실에 다니면서 친해진 선생님의 아들을 소개받아 결혼을 했다. 한 번 결혼한 경력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는 이미 그가 좋아진 뒤였다. 


  딸이 하나 있는데 전처가 데려갔다. 아이가 크자 이것저것 말썽을 피웠다. 친엄마가 아닌 유미코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와 해결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딸아이의 전화를 받으면 곧장 달려 나갔다.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고 이혼을 하기 전 별거를 권한 건 시어머니였다. 그 뒤로 유미코는 집에서 나와 이름만 예쁜 메종 드 리버 맨션에서 살아가고 있다. 


  유미코가 이사 올 때 옆집에 사는 카에데는 그녀가 궁금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단정하고 담백하게 생긴 여자였다. 음식을 자주 해먹는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카레 냄새에 취해 맛있겠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유미코가 같이 먹을래요라고 말해줘서 그때부터 친해졌다. 요코지 절임에서 오 년 넘게 일했다. 마흔한 살인 카에데는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은 채 남자와 살았었다. 결혼 예정인 남자가 전근하게 되면서 따라왔다. 당시 남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당분간 입적은 안된다고 해서 그대로 따랐다. 동거하는 동안 사이가 나빠졌다. 서로의 안 좋은 점만 보였다. 싸움의 횟수는 잦아졌고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연애 센서를 작동해가며 심각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보통이라고 부르는 삶이 아닌 채 살아가는 그녀들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은 유미코의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가기. 두 여성은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꼬여 있는 삶의 타래를 풀어간다.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 결혼했는데 아이는 왜 갖지 않느냐는 걱정을 가장한 의문. 기분 나쁜 물음표를 바로 펴서 느낌표로 만들어가는 여행에서 나는 그녀들과 하나가 된다. 성별과 종교, 인종과 빈부로 구분 짓는 인간 세계의 냉혹함에서 벗어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와 실천을 『같이 걸어도 나 혼자』를 읽는 동안 얻을 수 있었다.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유미코와 카에데가 바다를 바라보며 일상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듯이 나 역시 묵묵히 삶의 정면을 응시할 것이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이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둘에게는 각각의 19호실이 필요하다. 그래야 같은 곳을 보며 걸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이라는 틀에 묶이지 않은 그녀들이 살아가는 '메종 드 리버'로 초대한다. 그곳에는 튀긴 것을 좋아하고 혼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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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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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썩었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불의가 도사리고 있다. 파괴된 세계에 남아 있는 건 서로를 미워하는 인간들이다. 바퀴벌레도 있다. 인간이 바퀴벌레가 된 건지 바퀴벌레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인간과 바퀴벌레는 끝이라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공존한다. 절망을 숨기고 상대가 쥐고 있는 손에 희망이라도 남아 있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이 그리는 세계, 김사과의 장편 소설 『 N.E.W. 뉴』는 핏빛으로 물든 지독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1991년생 정지용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 인간을 둘러싼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조망한다. 정지용의 아버지는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루머를 전해 들은 정지용의 엄마 은미라는 일찍 산통을 했다. 여자들 곁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랐다. 게이라는 소문도 불사하고 다시 회사를 살린 아버지 덕분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설계된 인생대로 정지용은 교수를 부모로 둔 최영주와 결혼을 했다. 


  최영주 역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당당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들어본 일이 없는 여자였다. 완벽한 부부의 조합. 신혼여행을 다녀와 호텔에서 잠시 지내다 정지용의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일이 있다고 나가는 정지용은 사실 운동을 다니는 것이었고 무료함을 달래려 최영주는 백화점 쇼핑을 다닌다. 그들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은 특이한 곳이었다. 5평짜리 원룸에서 200평에 달하는 펜트하우스까지. 입주민들의 동선과 생활 방식은 CCTV와 센서로 통제된다. 지나친 소음, 냄새, 공공장소에서의 소란을 기록한다. 경고가 누적되면 거주인 전용 웹사이트 사용이 제한된다. 이러한 조치는 75평 이하의 주거민들에게만 해당한다. 


  가난한 자와 부자는 섞여서도 안되지만 떨어져서도 안된다는 정지용의 아버지, 정대철의 신념이 담긴 주거 빌딩 안에서 유령이 탄생한다. 이하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공부도 못하고 뚱뚱한 친구가 인터넷 방송을 하며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술김에 방송을 시작한 이하나는 자동수면녀라는 컨셉으로 대박을 쳤다. 한 달 수입은 2~3백만 원. 고시원을 탈출해 정대철이 설계하고 만든 메종드레브의 5평 원룸으로 들어간다. 


  서민과 부자가 어울려 산다는 기이한 메종드레브 안에서 예감했겠지만 정지용과 이하나는 만난다. 반경 5킬로미터 안에서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정지용은 가정부 차림을 하며 돌아다니는 이하나를 호기심 있게 관찰한다. 뜬금없는 정지용의 고백으로 이하나는 그의 세컨드가 된다. 스물여덟의 정지용과 스물둘의 이하나가 보여주는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는 피와 구덩이가 등장하는 잔혹 복수 호러로 장르가 바뀐다. 

 

  김사과의 소설에 서사가 더해진 것이 반갑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친절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화해를 요구하거나 용서라는 위악을 떨지도 않는다. 욕망에 충실하고 욕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천오백만 원짜리 팔찌를 사서 상자는 못생겨서 버렸다고 말하며 건네주는 인물에게서 연민을 느끼지 않아도 다행이다. 돈보다는 사랑이라고 권태에 찌든 채 이제 와 울고불고 매달리는 인간에게 통쾌함까지 느끼게 한다. 


  신경학 neurology, 전기 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 World War 2이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는 정대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볼까. 이에 덧붙여 본다. 소설 novel, 교육 education, 감시 watch가 미래의 판을 짠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새롭지 않으며 진짜의 얼굴을 가장한 가짜가 난립한다. 발전, 혁신, 개혁을 말하는 자를 경계하라, 김사과의 소설은 합법적인 가짜의 얼굴로 말한다. 비뚤어진 청춘의 얼굴을 빛 속으로 끌어내는 『 N.E.W. 뉴』의 세계는 참담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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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집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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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그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아무리 의심해도 나의 확신은 더욱 굳건해져만 간다. 마그리트가 옳았다. '환상은 우리가 믿는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마르타 베크만의 진정한 삶은 말기 환자를 위한 침상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산산조각 난 존재, 덧없기 짝이 없는 운명에게 비상탈출구를 열어주고 또 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닌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빛의 집』 中에서)


  예술은 죽어가는 자를 위한 선물이다. 예술가란 삶의 빛이 꺼져가는 이들을 저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육체는 왜소해지고 정신은 흐릿해져 갈 때 우리 삶의 남은 힘을 모아 예술에 투사한다. 뇌의 착각 말고 과학적인 증명으로 밝힐 수 없는 지점에 예술이 침투해 들어간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의 영혼은 그림과 문학, 음악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파괴한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소설 『빛의 집』을 읽고 든 생각이다. 


  제레미 렉스. 네 살부터 열두 살까지 잘 나가는 인기 아역 배우였다. 스물다섯인 지금은 일한 지 삼 일 만에 해고되었고 제빵사 자격증이 전부인 청년이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2인 여행권을 얻었다. 사랑하는 여인 캉디스와 함께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러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소한 다툼으로 결국 킹사이즈 침대 하나를 차지한 채 그녀에게 보낼 편지나 쓰고 있는 처지다. 곤돌라끼리 부딪쳐 필리프 네케르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도 최근에 연인과 안 좋은 일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제레미는 그에게 레스토랑 디너 이용권을 함께 사용하자는 낯 뜨거운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같이 저녁을 먹는 대신 휴대 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제레미는 혼자 '빛의 제국'을 보러 가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림 속에서 빛나고 있는 주황색 불이 그의 눈앞에서 꺼진 것이다. 이층에는 두 개의 창문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 창의 불 하나가 꺼졌다고 경비원에게 말했지만 곧 폐관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빈 집에 살고 있는 유령이나 영혼을 탐지하는 일을 하는 필리프 네케르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분명 창문에 불이 꺼졌다고. 다음날 미술관으로 다시 그림을 보러 간 제레미에게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그림 속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제레미는 같이 온 필리프 네케르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빛의 제국'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제레미는 그 순간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각몽 안에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감사해 하면서. 그는 르네가 싫어하니 창문으로 들어오라는 여자의 부탁에 응한다. 검은 머리 여자는 자신을 마르타라고 소개한다. 르네가 누드화를 그릴 때 모델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림 안에서 멍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보기도 한다. 마르타는 그가 오류 때문에 말을 듣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마르타는 그에게 감미로운 밤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사라진다. 제레미는 캉디스를 처음 만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처음 그녀를 만나던 장소의 질감으로 펼쳐져 있었다. 방금 만든 크루아상을 가지고 그녀 방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이 살아났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발현되어 사랑으로 이어진 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장면은 다시 이년 후의 시간으로 바뀌고 날선 공방과 서로를 향한 원망이 없는 시절로 제레미를 데리고 간다.

  

  사분 삼십 초 동안 제레미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시간동안 그는 완벽하게 죽어 있었다. 그림 속에서 캉디스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제레미는 기이한 실험실로 찾아가 머리에 뚜껑을 쓰고 전극을 붙인다. 식물로 환각을 일으키고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전력 공사의 직원의 집에 가서 궐련을 피우기도 한다. 


  제레미는 '빛의 제국'의 그림 속으로 도피한다. 지금의 현실은 제빵사이긴 하지만 가끔 빵을 만들고 캉디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첼로 연주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끝을 보지 못했다. 심장 전문의로 성장한 캉디스의 꿈을 위해 3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그가 그림 앞에서 심장 이상으로 쓰러지자 골칫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돈을 돌려받는다. 어째, 점점 캉디스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이별할 것 같은 조바심이 춤을 춘다. 제레미는 마르타만이 그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빛도 어둠도 완벽하게 지배하지 않는 시간. 지상에는 어둠이 깔려 있어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이층의 방 두 개에도 주황색 불빛이 들어온다. 하늘은 아직 청명하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불온한 시간을 그린 그림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 야릇한 일을 그린 『빛의 집』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사랑에 빠진 자만이 벌일 수 있는 황당무계한 사건의 연속으로 결국 그림 속비밀을 밝혀가는 추리적인 재미까지 소설은 선사한다.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총명한 눈의 생기는 반쯤 흐려지고 그 혹은 그녀를 향한 집착으로 불이 꺼진다. 내가 이만큼 상대를 갈망하는데 반응이 없을 때 스스로 빛을 끄고 심연으로 들어간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 자의 행동이다. 제레미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한 예술가가 남긴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누군가의 호출이든 구원의 외침이든 낮은 목소리에 반응한다. 


  완벽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무시와 냉대를 감내해야 한다. 『빛의 집』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에 예술이 있다면 고통과 절망에서 비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쓰였다. 젊은 시절 화가의 뮤즈로 문학 속으로 침잠하는 시기로 완벽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예술은 인간의 절망에 화답한다. 제레미가 그림 안에서 캉디스와 만났던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그는 좋았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미래의 행복한 순간을 미리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실존이고 현재로 기억된다. 과거는 흐릿해지고 미래만이 남는다. 마르타의 과거는 그녀 침실의 대형 거울 뒤에 숨겨진 채 보존된다. 현재는 죽음으로 건너가기 위한 단 하나의 장치로 발견되기를 기다린다. 절망과 사랑의 공통점은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절망해서 죽거나 사랑해서 죽는다. 죽기 위해 절망하고 사랑한다. 완벽을 가장한 죽음이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랄 때 예술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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