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자의 여행 - 형과 함께한 특별한 길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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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안다. 그러니까 산다는 게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게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 더 살아봐야 아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껏 살아보니 대체로 사는 건 대책 없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만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는 있다. 감당할 만큼의 슬픔을 나에게 가져다준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슬픔에 겨워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시련만 주시니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인형처럼 계속 끄덕 끄덕.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아, 휘청거릴 수는 있어도.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일중독자의 여행』을 읽는 동안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끄덕거림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울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번역가의 글의 제목처럼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가 그의 형과 떠난 여행기를 쓴 산문집이다. 책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에 지친 니컬러스가 우편물에서 발견한 여행 책자를 보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다. 그의 형 미카는 흔쾌히 동생의 제안을 수락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겠지만 형 미카는 낙천적이고 삶을 사랑하는 긍정주의자이다. 시련이 찾아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 반해 동생 니키는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다. 기대한 대로 흘러가야 하며 정해진 계획 안에서 움직여야 안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동생과 형이 세계 일주를 떠난다. 『일중독자의 여행』 은 여행기이면서 그들 형제가 나누어 가진 삶의 무게를 털어내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었다. 그럼에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는 듯이 그들 형제와 여동생을 키웠다. 강인한 부모 곁에서 자란 그들은 세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여행기와 섞어서 풀어낸 솜씨는 훌륭했다. 일 중독자임을 자처하는 소설가 니키는 여행 전날까지도 과연 다섯 아이와 아내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다. 형은, 그의 낭만적인 형은 동생의 기분을 알아채고 마음껏 즐기라고 말한다. 동생의 기분을 풀어주고 타인을 편하게 해주는 형과 함께라면 세계가 아닌 우주여행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 니키는 형과 떠나는 여행에서 그들 형제와 여동생이 겪은 성장 과정을 들려준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답게 그는 대중을 웃기고 울리게 할 줄 안다.


『일중독자의 여행』에서 우리는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보면서 웃고 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므로. 책을 읽어가는 동안 차라리 이것이 소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으므로. 그럼에도 형제는 이겨 낸다. 살아가고 슬퍼하고 극복하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책의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일중독자의 여행』을 꼭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덧 2018년도 끝나가고 있다. 올 한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일중독자의 여행』이다.


우리가 슬픔에 빠져 넘어져 있을 때 손을 잡아주는 이는 누구인가.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 주는 이가 있다. 가족. 시대의 흐름이 변해 가족의 개념도 바뀌었다. 혈연을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은 아니다. 오래 만나 알아온 사람이 가족이 된다. 사람. 나의 슬픔에 공감해 주고 아파해주는 이는 온기를 가진 사람이다. 아무도 없다고 절망하면 안 된다. 『일중독자의 여행』을 읽으며 형제가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기를 바라본다. 꽃길이 아니어도 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이해이다. 『일중독자의 여행』이 그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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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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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잠에서 깨고 난 그녀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잠깐의 잠이었다. 눈사람이 되고도 그녀는 당황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걸 받아들이고 긍정한다. 의문 없는 수긍이 한없이 슬프게 느껴지는 소설 한강의 「작별」은 겨울의 풍경을 담고 있다. 눈이 내릴까 기대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도시는 미세 먼지로 뿌옇게 흐려져 있다. 한 줌의 햇살을 기대해보지만 내내 어둡다. 어두운 거리를 사람들이 걸어가고 웃고 뜨거운 차를 들고 손을 흔든다. 오늘의 흐림은 내일의 밝음으로 기약되면 좋겠다는 듯이.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눈사람이 되어 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작별」을 읽는 동안 한강의 전작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의 시간을 떠올렸다. 대기권에서 비로 떨어질까 눈으로 내릴까 고민하는 하늘의 일을 인간은 알지 못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손바닥에 닿는 눈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선택 당하는 일도 괜찮다. 십 분 정도의 노천에서의 낮잠을 자고 난 그녀가 눈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역시 말도 안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소설의 일이라면 인정하고 대체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낙관을 가져 본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서 눈사람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심장과 옆구리가 녹아내리는 걸 걱정하는 것보다 눈사람이 되고 나면 남겨질 아들, 윤이를 먼저 떠올리는 「작별」의 화자에게 미안한 일, 손을 내밀어 내가 가진 반쯤의 온기를 나눠 주고 싶었다. 괜찮다면 상점에 들어가서 장갑과 목도리를 사서 건네주는 일. 그 일이 그녀를 파괴하는 일임에도 눈[雪]이 되어 그녀가 남기는 눈물이 이 세계를 적신다 해도 아직 남아 있는 이 세계의 훈기를 곁에 두고 싶다.


이제 다 틀렸어.

나직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가 얼굴을 돌려 그녀를 멍하게 마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한강, 「작별」中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들려주고 힘껏 껴안아 주는 일로 눈사람의 생애를 마치는 그녀. 나 없이도 세상에는 눈이 아니면 비가 올 것이고 아이는 자랄 것이다. 가장 신성한 눈 맞춤과 사랑을 주었던 아이의 생애를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녀는 다른 세계로 떠나기 위한 모든 작별의 준비를 마치고 돌아선다. 안녕이라고 윤이라고 현수 씨라고 녹아 없어지는 입술로 말할 수 있는 생애를 위한 작별의 순간만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지막 세기에는.


나와 타인의 구별되지 않는 세계에서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강화길의 「손」은 지독한 거짓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남편의 해외 근무로 인해 혼자 딸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나'는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시어머니의 제안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대체 맥락 없는 희망은 절망의 순간에서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손」은 한마을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들의 실체를 독자에게 친절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짐작하고 추측해야 하는 소설속 세계의 비밀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강화길의 「손」이 시골의 음험함을 담고 있다면 김혜진의 「동네 사람」은 익명이 보장되면서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공간인 도시에 감춰진 음흉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다양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듯한 얼굴의 세련됨을 가장하는 도시에서 두 여자의 일상은 비밀이 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자주 가는 곳이 어디인지 심지어 사는 집까지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곳에서 안락함 대신 오싹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와 다르게 사는 건 무조건 배타적으로 여겨 버리는 곳. 말이 말이 불러오는 곳.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에서 두 여자의 내일은 보장되지 못한다. 끝내 그녀들은 '동네 사람'으로 불리지 않는다.


「희박한 마음」에서 권여선은 과거의 일이란 복기할수록 결국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예전의 일을 떠올리는 시간이 찾아들면 그건 죽음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들리지만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알 수 없는 소음의 근원을 찾는 일처럼 우리의 과거는 시작을 알 수 없다. 이승우는 소설 「소돔의 하룻밤」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천사 두 명을 대하는 방식으로 인간 세계의 잔인함을 표현한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를 일깨우려 찾아온 나그네를 롯을 제외한 소돔의 사람들은 폭력으로 대한다. 구원은 없다. 소설로서 증명하는 현실 세계의 명제이다.


사소한 정의마저 이루어지지 못하는 세계에서 청춘의 가치는 훼손되어 버린다는 이야기 정이현의 「언니」에서 우리는 출구 없는 문을 찾아 헤매는 경험을 한다. 갇힌 문 앞에서 탈출을 지시받은 청춘은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을 찾고 문이라고 부를 수 없는 벽 앞에서 주먹으로 두드린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상한 명언을 떠올리면서. 지하 카페에서 파는 메뉴를 두고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을 떠올리면서 주문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인회 언니는 집중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가장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 당한 현실에서 탈출자는 없다.


다양한 시간을 살고 있는 만큼 소설의 이야기도 다채롭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모두 다르고 모두 이상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하니 이해보다는 오해로 놔두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소설 덕분이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배운다. 현실에서 관계하는 인간들에게는 적절한 무시와 비웃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소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지돈의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한 채로 놔두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소설을 오독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답을 맞히고 높은 점수를 내는 일에는 실패했으니 소설을 읽으며 지낸다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도 신난다. 이왕 엉성하게 살기로 했으니 어떤 소설을 읽을 때는 느슨함을 유지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돌연 표정을 바꿔 반복되는 미래의 예언을 들려주는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읽을 때에는 긴장보다는 여유를 찾으시길.


소설의 세계가 그 세계가 일부러 꾸민 얼굴을 보여 주고 거짓말을 무람없이 하는 세계여서 한순간에 눈사람이 되고 오해를 받아도 그저 사과하는 일로 편안한 내일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실패는 현실의 긍정으로 연결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서로를 불러 이곳에 내가 있고 그곳에 당신이 있다는 실감을 확인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그 사이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히 작별의 말을 하지 못했다는 진실을 떠올린다. 언제라도 그들에게 사랑과 안녕을 말할 준비를 하며 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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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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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는 아이에게는 서언물을 안 주신다고. 일 년에 단 하루,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기 위해 아이는 어른들의 그 말씀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친다. 자기 전 머리맡에 커다란 양말을 걸어두고 그 안에 담길 선물 상자를 상상하는 것이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을 외치는 사람의 혼잡한 무리를 걸어 선물을 사서 돌아오는 일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그 날은 크리스마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마음이 관대해진다. 소원했던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한 끼를 먹자고 말하는 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친하게 지내보자며 웃음을 주고 받는다.


울지 않았나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잔뜩 받았으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반가운 초인종 소리와 배달된 종합 선물 상자 같은 소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눈이 오기를 기대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반짝 추위가 찾아왔다. 슈퍼 안에 반짝이는 불빛과 함께 진열된 과자 종합 선물 상자를 기억하는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추리 소설 작가들이 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잔뜩 담긴 과자 종합 선물 같은 책이다.


과자 선물 상자를 손에 든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전부 좋아하지만 어떤 과자를 먼저 먹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당신,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처음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네 개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구분되어 있는 책은 한 편 한 편 그냥 지나칠 이야기가 없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부터 누군가가 죽고 산타 복장을 한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범죄가 벌어지는 이야기까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온갖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너무 좋아서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었다. 과자 선물 상자 속 과자를. 아껴서 하나씩 꺼내 먹으며 달콤한 맛을 즐겼다. 상자 안에는 달콤한 맛, 짠 맛, 신 맛 등 세상의 모든 행복한 맛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우리가 그때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맛 같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사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가슴 찡하고 우습고 조금 오싹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가 뭐 별건가 라는 시큰둥한 생각이 들 때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면 당신의 막막했던 기분은 풀어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대목인 좀도둑 이야기는 우습고 기발하다. 사람들은 산타 복장을 한 사람을 보고도 관대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가 도둑인줄도 모른 채. 도둑질을 하러 가서 가정의 불화를 해결해주기도 하는 인물을 보고도 어찌 인상을 찡그리기만 하고 있겠는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과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폴 오스터의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정도만 알았던 나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앞의 세 편의 이야기를 변형하고 비튼 이야기도 들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흥미롭고 우습고 무서운 크리스마스 소설이 잔뜩 있었다니. 그걸 우리의 미스터리 소설계의 명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알뜰살뜰하게 모아 책으로 선물해 주는 것이다. 원래는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국내에는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나온다. 한 권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올해 나왔고 다른 한 권은 2019에. 그리하여 우리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내년까지 울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가득한 두툼한 책을 들고 오실테니. 우리 착한 어른이들은 내년 한해도 말 잘 듣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속 내용처럼 이상한 일은 차라리 그것이 소설이었다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허무맹랑하고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사건은 일어나고 명탐정은 크리스마스라고 한가하게 쉬고 있지 않는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곧바로 수사에 들어가고 단서 하나도 허투로 놓치지 않는다. 유령이 나온다는 저택에 들어가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도 관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인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소설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일 년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표정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아껴 읽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만큼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날도 없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느라 정신 없는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들은 도둑과 가난한 연인들 증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불을 켜고 달려가는 탐정들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나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모두에게 다정한 웃음과 인사를 해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선물해 주는 멋진 우리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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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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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에 걸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가계부를 보니 병원비와 약값 목록이 늘었다. 아프지 않고 겨울을 버틴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실감했다. 겨우 감기를 다스리고 나니 이내 찾아온 건 몸살이었다. 아침마다 어긋난 뼈를 맞추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몸에는 뼈들이 어디 도망가지 않고 잘 붙어 있었다. 안녕, 척추뼈야 팔뼈야. 인사하고 정신을 차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남쪽 나라 도시에는 비가 내리고 미세 먼지가 찾아왔다. 우울해지다가도 한순간 마음이 밝아지는 시간이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마음은 그런 식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고 결별을 말하는 연인처럼 내내 알 수 없음의 마음 상태를 유지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고 쓸 수 있던 건 그 와중에도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란 인간은 자주 불안에 시달리다가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손홍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을 읽으며 한 주를 버텨 나갔다. 「문학은 소다」로 문을 여는 산문집은 성실한 소설가의 글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살았던 시골에서 소는 위대한 유산이었다. 때 되면 사람 보다 밥을 먼저 챙겨 먹이는 식구였고 한 소년의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나이가 들면 트럭에 실려 팔려 나가는 걸 묵묵히 받아들일 줄 아는 말 없는 천사였다. 소설가 손홍규의 문학의 시원을 찾아 들어가면 구석에는 소가 있었다.


  외아들이었던 그에게는 고모의 형제들과도 막역하게 지냈던 기억이 자리 잡는다. 고모의 부음을 받고 돌아간 시골에서 그는 고모의 형제들과 한 번 더 만난다. 죽음은 사람을 고향으로 불러온다. 누군가는 곡을 하고 누군가는 애써 그이의 죽음을 외면한다. 죽음이 너무 깊어서.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얼굴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소설가가 겪은 최초의 죽음에의 경험은 한 방을 쓰던 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아홉 살 때 돌아가신 그이의 죽음 앞에서 그는 어렸다고 그래서 슬픔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이유로 죽음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쓴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소설가 손홍규가 살아온 유년의 기억이 담겨 있다. 유년을 지나 청년의 기억도 애써 부려 놓는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그는 서울로 간다. 밤이 되면 돌아갈 집이 없는 운명의 시간을 그는 청년 시절 내내 겪어 낸다. 쥐가 새끼를 치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토사물이 묻은 이불을 덮고 찬 기운을 이겨냈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동안에도 그는 문학을 하겠다는 열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후에 그는 이스탄불을 방문해 노 작가와 마주해 그가 문학을 해야 하는 당위를 받아들인다.


나는 그저 그의 서재에서 그와 비스듬히 마주 앉은 채 넓은 창 바깥으로 펼쳐진 보스포루스해협을 이따금 바라보았을 뿐이다. 귓가에 매달린 그의 목소리와 창을 통과하면서 부드러워진 오후의 햇살과 뱃고동 소리. 건너편 유럽 지역의 옛 건물들과 성이 아련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뭐가 무서워 감추겠느냐.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말라. 문학은 바로 네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거다.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中에서)


  어디에서든 문학을 하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청년은 소설가가 되었다. 어두운 저녁 동네 어른이 찾아와 아버지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알려온 그 시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자인 나는 해가 저물고 소가 울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그 저녁으로 소설가의 탄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탈곡기에 아버지의 손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년은 그게 무슨 사고인지 몰라 겁을 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집안에 어른이 없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을 했다. 할머니 상전에 밥을 해 김치와 함께 올렸다. 그리고 소가 울었다. 우는 소를 위해 여물을 쑤어 주었다. 기다렸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아버지는 한 손가락만을 잃었고 그 후로도 농사를 지었다. 장갑을 쓸 때는 손가락이 없는 쪽을 잘라서 썼다.


  아버지의 다친 손을 보며 문학은 시작되었다고 쓰면 과장일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한 사람이 문학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꿈을 꾸고 이루어낸 과정이 담겨 있다. 그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의 제목처럼 그는 소설가가 된 꿈을 꾼 것일까. 그는 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쓰러지고 슬퍼한 자리에서 문장은 시작된다고.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시작한 글쓰기는 그를 문학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내가 졸업한 대학에 소설을 가르치러 왔었다. 그때 나는 문학에 한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졸업은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걸 내세우며 산다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은 상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소설을 가르치기 위해 그는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물 건너 산 넘어왔다.


  그의 소설처럼 그는 성실한 선생이었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간절히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멀리서 나는 그의 책을 사 모으고 그가 부디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하고 응원했다. 소설가의 시간은 소설로써 증명된다. 그는 내가 문학과 다투고 토라져 있는 사이에도 부지런히 소설 쓰는 노동자로 살아갔다. 소설가임에도 소설을 쓰는 시간이 없어 황망해 하던 그는 소설을 쓰고 사이사이 산문을 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와 짧은 만남을 가지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면 된다. 꼬박꼬박 시간을 지켜 약을 먹고 밥을 먹는 동안 몸은 나아간다. 그렇다면 마음은?


  딸아이가 아픈 팔을 스스로 달래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세상에는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 많아질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써 내려간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우리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소설가의 위로가 담겨 있다.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독한 이 세계에는 고독한 우리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으로 삶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 그곳에서 문학은 시작된다. 그래서 아픈 오늘은 괜찮은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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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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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지만 그 책은 없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나보다 한발 앞서 빌려 간 것이다. 어제까지는 있었는데 오늘은 없는 책, 은 잊어버리고 시내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북적북적한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좀 더 널찍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옮겼다.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들고 갔지만 읽지는 않았다. 커피를 옆에 놓아두고 책 사진만을 찍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탁자 위에는 커피 얼룩이 있었다. 책의 제목대로 우아하게 찍을 순 없었을까. 우아함과는 거리를 둔 채 우아해지기를 바라며 제목에 우아함이 들어간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는 하루를 보냈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잠이 드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밤 산책을 못마땅해하는 「산책」의 그녀. 「임시교사」로 한평생을 살아온 P 부인. 가볍게 한 이야기였는데 현실로 찾아와버린 「상자 사나이」를 만나는 나. 그들은 실재가 아닌 환상 속을 거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손보미는 그들에게 잠을 선사한다. 잠이란 무엇인가. 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버틴 이들에게 주는 천사의 선물이다. 악인도 선인도 하루를 끝내기 위해서는 잠이 들어야 한다. 잠이 들면 꿈을 꾸든지 다시 깨어 끝없이 눈물을 흘리든지 각자의 몫이지만 일단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의 공통점은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하는 화자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화자의 목소리는 손보미의 마음이다. 소설가 손보미는 각기 다른 화자의 목소리로 등장해 불안에 떠는 우리를 향해 괜찮아, 당신들의 하루는 무사할 거야라고 말한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호텔이 불에 타도(「대관람차」)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가 거짓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게 놔두어도(「산책」) 마치 자고 나면 잠만 자면 내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소설을 마무리 한다. 헤어진 연인의 집에 가서 무단 침입해 들어온 고양이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야기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같은 짧은 소설에서도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당신들의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어떤 하루의 꿈속은 「죽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일생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상자 사나이」를 만나기도 한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임시교사」의 마지막 문장처럼 하루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잠이 드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눈물이 줄줄 흘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에서도(「고양이의 보은-눈물의 씨앗」) 잠이 들면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고통이 존재한다면 우리 안에 불안이 자라고 있다면 그저 잠들어 버리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는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읽다가 나 역시 잠이 들었다. 


  열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오늘은 얼마나 무사한가, 실감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생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굴절로 인해 좌절하고 꿈이 꺾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인물들의 시간에 비해 나는 기껏 빌리러 간 책이 없거나 비좁은 탁자를 차려 놓고 장사를 하겠다는 카페에서 꾸역꾸역 커피를 마신 것 밖에는 없었다. 불탄 건물을 보지 않아도 되고 햇빛에 눈이 부셔 눈물이 흐르면 휴지를 꺼내 닦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나 대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본다. 고마워, 매일 울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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