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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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기를 쓴다


  기록을 남긴다. 고대 동굴 벽화에도 인간은 그림을 그렸고 그들만의 문자를 남겼다. 사냥과 성공의 기원을 담은 그림을 남겼고 활 쏘는 모습과 춤추는 사람들을 그렸다. 역사는 기록과 사실로 남는다. 인간은 남기기 위해 살아간다. 불안한 오늘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원을 각자의 자리에서 기록한다. 어떤 것은 일기가 되거나 사료로서 존재 가치를 가진다. 혹은 일기라고 쓴 것이 역사 기록으로 후대에게 남겨져 감동과 교훈을 만들어 낸다. 
  전쟁터의 참혹함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병사들을 걱정하고 적군의 동향을 살폈던 어느 장군의 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는 자신이 쓰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몰랐으나 기록으로 남아 우리는 과거를 소환할 수 있다. 독일인들을 피해 숨어 있던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의 생활과 초조함을 꼬박꼬박 써 나갔다. 그녀가 죽고 얼마 후 독일은 패망했고 남겨진 일기는 전쟁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았다. 
  남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슬프지만 자명한 사실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오늘, 우리는 오늘의 일기를 쓴다. 2014년의 봄을 쓰고 2016년의 겨울을 남긴다. 여기 1763년 8월 3일 조일전쟁 후 떠난 11차 통신사의 기록이 있다. 5백 명으로 꾸려진 통신사 일행에는 온갖 계급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정사부터 제술관, 격군까지. 신분을 막론한 사람들이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이야기의 운명은 무엇인가


  전란이 끝나고 모내기 법과 상품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농민들은 부유해진다. 서민 문화가 발달을 하고 부농들은 자식을 서당과 향교로 보낸다. 한문과 한글을 익히면서 문화가 꽃피운다. 장터에서는 판소리와 탈놀이, 마당극이 펼쳐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가 등장한다. 이야기를 짓는 작가들 역시 나타나면서 구비 문학은 기록으로 남는다. 중국의 소설들을 베껴서 색다르게 들려주고 짓는 작가가 있는 반면에 박지원은 양반임에도 양반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글을 짓는다.
  통신사 일행에 오른 변탁과 변박은 필명이 있는 작가였다. 그들은 배에 오르기 전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고 일본에 가서 보고 들은 것들 중 신기하고 기이한 것들을 글로 남길 것이라는 장담을 한다. 세책점 뒷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이 쓸 작품에 투자를 한다. 소동 임취빈은 그 판에 등장해 자신 역시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말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짜집기 하는 작가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자신 역시 통신사 일행에 따라가는 자로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니 투자를 하라고 한다. 
  중국과 외국의 기행문은 한문으로 쓰면 번역이 잘 되지 않아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언문으로 쓰되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여행기를 쓸 것이다고 말한다. 세책점 주인은 남자 오백 명이 일 년 동안 여행한 기록을 누가 읽고 싶겠냐며 통박을 준다. 임취빈이 쓰려는 이야기에는 임금도 반란 수괴도 위대한 정치인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읽었다. 일 년 동안 남자 오백 명이 일본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만나고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임취빈의 글쓰기는 작가 김종광의 『조선통신사』로 환생했다.


전주 방각본업계 쾌가 어음을 써주었다. "재능 있어 뵈는데 뭘. 꼭 써야 한다. 살해일왕 어쩌고 그건 접어두고 먼저 얘기한 거 말이다. 동고동락한 거. 네 진심이 절반만 발휘되어도 읽으만하지 않겠느냐?······원래 좋은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읽히지 않는 법이란다. 나라와 주군께 충성하고 어버이께 효도하자, 삼강하고 오륜 하자, 좋은 놈 잘되고 나쁜 놈 망한다, 사랑은 숭고하다, 이런 도덕 염불로 도배된 이야기나 팔리지. 진짜 이야기는 알아먹는 사람이나 알아먹는 것인지라 안 팔리는 게 당연하다. 자기계발, 처세술 책보다 안 팔리는 게 진짜 이야기야. 대중이 못 알아먹거든. 하지만 진짜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란다. 너에게 희망을 건다."


  임취빈은 제문을 쓰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이야기는 완성된다. 김종광이 그려내는 마당극 같은 이야기판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아니라 양반이 멋대로 지워준 그들의 이름에도 한자를 달아준다. 그렇게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원하게 펼쳐놓는다. 임취빈에게 어음을 써준 이가 한 말은 지금의 현실과도 통용된다.
  성공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늘어놓는 책과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거짓 위로를 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올라가는 이 판국에 김종광의 『조선통신사』는 이야기란 어떤 운명인가를 우리에게 묻는다.
  거창한 걸 쓴 게 아니다. 몇 월 며칠, 어느 곳을 향해 가고 무엇을 먹고 사람들은 왜 죽어 갔으며 무엇을 봤는지 썼을 뿐이다. 그들의 기록이 남아 책이 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들은 충실히 자신들의 하루를 기록했다. 갔다면 보고 보았다면 남겨라.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는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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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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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한 권의 책이 나온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헌책방을 순례한다. 주인에게 다가가 은밀하게 묻는다. ···········있나요?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헌책 마니아들을 그토록 애타게 했던 책은 2005년에 재출간된다. 그리고 다시 2017년에 표지와 저자 후기를 달고 새롭게 나왔다. 소문의 그 책은 읽은 사람들 속에선 전설로 통했고 이상하고 이상한 대화와 서술들로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바로 그 책이다. 작가가 밝힌 대로 이 책은 소설임에도 야구 코너에 가 있기도 했다. 새롭게 나온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후기가 실려있다. 표지는 푸른색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책의 판형은 작아졌고 띠지에는 '소설 마니아들을 헌책방 순례에 나서게 한 화제의 책!'이라는 한동안 절판돼서 소설 마니아들을 절망케 했음을 출판사 스스로 밝히고 있다.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황당하고 우습다. 1985년 한신 타이거즈의 우승 이후 우리가 하는 것은 야구가 아니다는 자각으로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야구를 꿈꾸고 야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이 세계에서 야구를 추억한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야구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부분으로 남아 세계를 이루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매일 야구에 관한 기록을 찾아 공책에 옮기는 남자가 있고 큰아버지가 가르쳐준 야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다. 모든 책들에는 신기하게도 야구에 관한 기록이 있고 카프카는 야구를 사랑하는 작가로 남았다. 소년은 큰아버지의 특훈 아래 야구를 배운다. 야구시 900편 쓰기와 야구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포르노 100편을 본다. 어떤 타자는 수비에 들어가서 짝수 이닝에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타자는 야구를 한다. 고독한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때문에 심판도 선수를 깨우지 않는다.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환자들을 모아 놓고 야구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일본 야구의 시작을 들려주다가 잠을 자러 가고 잠에서 깨 다시 야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야구 기록을 찾아 공책에 베끼는 남자는 자신이 쓴 소설이 <박물지>와 점점 비슷해져 간다는 것에 절망한다. 야구가 시작되는 스타디움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야구에 관한 감상에 빠진다. 공이 너무 잘 보여서 공을 칠 수 없다는 수위타자가 등장하고 한자를 읽지 못하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는 남자가 있다.


봇물이 터지듯이 내게 야구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야구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야구 소년은 고민한다.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어떻게 야구를 시작할 것인가. 야구를 같이 하자고 소녀에게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소년을 소년원으로 보내버린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면 야구는 이 세계에 가득한데 사람들은 야구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소년의 야구는 시작되고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줄거리를 요약해서 들려주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다. 무의미한 것은 무엇인가. 의미가 없는 일이고 의미가 없는 일에서 이 세계에서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무의미란 의미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의미를 강조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시민으로서 일본 소설을 읽고 의미를 찾아 해석해야 한다. 소설에 들어 있는 무수한 암시, 즉 은유와 비유를 찾아 들려주어야 하는 이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소설 마니아로서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 야구란 무엇인가와 더불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의 효용을 밝혀 내야 한다. 이것은 야구에 관한 이야기 인가. 야구로 빗댄 일본 문학에 관한 담론인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 야구를 모두 문학으로 바꾸면 의미가 생긴다.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의미를 찾은 것이다. 야구를 문학으로 대체해서 읽으면 의미 찾기와 의미 부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봇물이 터지듯이 내게 문학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문학과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문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야구를 기록하고 야구를 추억한다. 문학이 사라진 세계에서 문학을 기록하고 문학을 추억한다. 쓸모없는 일이다. 문학은 이미 설자리를 뺏기고 문학이 없어도 사람들은 가상 화폐에 올인하고 주식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을 모으는 일에 삶의 생기를 부여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로 책들은 팔려 나가고 팔리지 않은 작가들의 책은 번역이 되는 일이 요원해진다. 어렵게 출판돼도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처럼 곧 사라진다. 
  문학이 사라진 세계에서 문학 소년과 문학소녀들은 문학을 기록하는 노인들을 찾아 나선다. 오래전 소설가로 활동한 소설가는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쓴 소설들을 낭독하고 잔디밭을 돌고 잠에 빠진다. 매일 소설을 쓰지만 그것은 새로울게 없는 내용이고 자신이 쓴 작품이 다른 작가의 소설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한 반복되는 소설 쓰기는 전광판에 표시할 수 없는 이닝으로 승패를 알 수 없게 된다. 혼자 창밖에 서서 소설 쓰기를 꿈꾸는 전직 소설가.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이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계속 쓸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소설이 사라진 시대에 소설은 이야기를 부풀리고 있다. 「사랑의 스타디움」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이는 정체 모를 형체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꾸 커져가는 이야기는 야구 관리인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상상과 망상을 비롯한 허구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을 주문한다. 소설이 시작되고 장내 아나운서는 새롭게 출간될 소설의 목록을 읽어야 한다. 한자를 모르고 조사와 형용사만 읽을 수 있는 여자가 있고 소설이 너무 잘 보여서 소설을 쓸 수 없는 작가가 있다. 무의미한 곳에서 의미는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야구소년의 우울
데라야마 슈지
 
 
1. 스트라이크 죤을 기술할 의도
 
다이캅은 말했다. 스트라이크 죤은 타격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언제나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라고. 그날부터 나와 이 입방체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옆구리 밑에서 무릎사이, 홈베이스 위의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고 홈베이스의 오각형을 저변으로 하고 있다. 높이 약 90센티, 너비 30센티의 입방체인데 투명하여 육안으로 볼 수는 없다. 중력이 없기 때문에 휴대하는데 아무런 고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형태가 아닌 영역이고 나에게 공을 던지려고 하는 상대와의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하나의 세계상태였다.
 
나는 이 스트라이크 죤에 공이 통과하는 것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불리하게 하는 것이고, 때로는 나의 죽음마저도 뜻하는 것이 된다, 라고 심판은 말했다.
 
만원의 지하철 차내에서, 나는 때로는 나의 스트라이크 죤에 침입하는 이와 같은 다른 사람의 가방이나 종이 봉투, 다른 사람의 엉덩이 등을 의식하고는, 그것들을 죤 밖으로 밀어 버렸다. 그 성역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술주정꾼을 밀어낸 적도 있다.
 
나는 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스트라이크 죤을 형상화할 것을 생각하고, 일요목공입문서를 사오고 즉시 3센티 4방각목 5개, 두께 1센티 베니어판 5장으로 된 상자형태의 죤을 만들어 보았다.
 
공이 왜 이곳을 통과하려 하는가. 나는 왜 이 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 한 번도 논의된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20년 긴 세월동안 이 스트라이크 죤을 계속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독신인 것이다.
 
아마 노년이 되면 나는 나의 이 스트라이크 죤을 개집처럼 꾸며서 그 속에서 잠자겠지. 그리곤 귀를 쫑긋 세우고 언젠가는 꼭 찾아올 공의 울림을 계속 기다리겠지.
 
2. 세컨드 플라이는 언제 떨어질까
 
화물창고 계단을 반쯤 내려온 곳에 걸터앉아 떨어질 세컨드 플라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나이.
시합은 20년 전에 끝났고 배트도 핏쳐도 가정의 피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전도 있었고 파산도 있었다. 남자, 47세, 직업 보험회사 외무원, 아내 병사, 취비 빠찡꼬, 월수입 12만원, 위장병, 그러나 떨어져오는 플라이만은 꼭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야수의 임무이며 <교대>를 기다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저물녘 다 낡은 신사복 차림의 세컨드를 둘러싼다. 거리에 런너는 없다. 사물은 의식에 리―드되고 있다. 투아웃이지만 아직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 9명의 벙어리 이야기
 
두 명의 외로운 벙어리가 있었다. 한 사람은 핏쳐라는 이름, 또 한 사람은 캣쳐라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언어 대신에 공을 던져 서로의 情意를 확인하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흐뭇하고 원만히 지낼 때, 공은 똑바로 왔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크게 빗나갔다. 그런데 이 두 벙어리를 질투하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두 사람의 관계를 흩어놓고자 배트라는 여문 몽둥이로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인 공을 두들겨 다른 세계로 날려 보내 버렸다.
 
공을 잃은 두 벙어리는 망연자실 서 있기만 하였다. 몽둥이로 공을 날려버린 사나이는 악마처럼 팔을 올리고 두 사람의 둘레를 빙빙 돌았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숫자가 기록되고 그 숫자가 불어갈수록 두 사람의 불행지수는 높아갔다. 거기에 이 두 사람에게 공을 돌려 주려는 7명의 벙어리가 몰려 왔다. 그들은 몽둥이를 든 남자를 죽이기 위하여 <태양이 빛나는 땅>에서 왔는데 왼손이 특별하게 컸다.
 
<왼손> 세로 30.5센티 이하, 엄지 손가락 밑부분 안쪽에서 새끼 손가락 밑부분 바깥쪽까지 <손바닥 너비> 20.3센티 이하,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과의 간격은 손가락 끝에서 11.4센티 이하, 손가락 밑부분에서 8.9센티 이하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광장 여기저기에서 세계 도처의 벙어리들이 몰려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제 언어를 익혀버린 뒤라서 그들 곁으로 돌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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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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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일들은 우연에 의지하기도 한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일을 망쳐 놓은 채 한편으로는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세계는 필연과 우연이 공존하면서 적당하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망상을 펼친다. 필연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인과 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우연에 맡긴다. 조급한 마음을 슬그머니 숨겨 놓고 여유를 연기한다. 속이는 짓을 뻔뻔히 해 놓고 상대를 조롱하면서 이 세계에서 살아 남고 싶다고 큰 소리로 외친다.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세계는 즉각 반응한다. 너의 허위와 가식을 벗겨 주겠다고 나선다. 세계의 다른 면에 사는 또 다른 나는 이 세계를 책임지러 찾아온다. 얼굴 없는 사내가 찾아와 펭귄 인형이 달린 핸드폰 고리를 내밀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실상 이 세계의 나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나약함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세계의 나는 어두움과 불안의 모습으로 이 세계를 사는 나를 방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나'는 얼굴 없는 사내의 초상화를 언젠가는 그려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일은 꼭 해내야 한다. 무의 세계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얼굴 없는 사내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다. 3월의 찬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는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에 그의 세계는 한쪽으로 균형을 잃고 삐끗한다. '나'는 기울어진 세계를 안고 도망친다. 낡은 푸조를 타고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닌다. 
  자동차에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온천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면 하룻밤 묵어가는 식으로 결별의 통보를 받아들이려고 힘껏 노력한다. 더 이상 여행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때 친구 아마다 마사히코의 제안으로 그의 아버지가 머물렀던 집에 살게 된다. 마사히코의 아버지는 일본화의 대가로 지금은 아흔이 넘어 요양원에 누워 생사를 다투고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살면서 '나'는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기묘한 이름을 달고 있는 그림은 도모히코의 역작으로 불릴 만큼 압도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천장 위 좁은 다락에 종이 포장으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형상화한 그림을 발견한 이후로 '나'의 세계의 균형은 점점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웃집에 사는 멘시키라는 남자의 초상화 그림을 제안받고 한밤중에 벌레 소리마저 끊이고 들려오는 방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다. 『기사단장 죽이기』1권의 부제는 현현하는 이데아로 관념으로 존재하는 기사단장이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다.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데아로 '나'는 아내가 통보한 이혼이라는 이데아에 찔려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기울어진 이 세계의 중심에서 그림 속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망가진 '나'의 세계를 다른 세계 속에 사는 공포와 불안으로 잠식당한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로 표현하면서 '나'는 어긋한 세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젊은 날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사건들을 잊지 못하고 그림으로 남긴다. 개인의 이데아가 역사 속으로 매몰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은둔한 채 그린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는 관념을 뛰어넘는다. 도모히코의 동생도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 안에서 죽어갔다. 군인으로서 행했던 일들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살했다. 동생의 죽음과 자신의 연인의 죽음에서 도모히코는 우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메타포로 이 세계에서 자신의 이데아를 지키려 한다. 
  은유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세계의 이데아를 끌고 들어온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세계의 어두움을 불러오고 그림으로 그린다. '나'는 직업적인 초상화 작가로 사람의 얼굴이 가진 특징을 정확히 잡아낸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행동을 그림으로 특색 있게 그릴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사람을 모델로 세워놓지 않고 한두 시간을 들여 대화한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를 기억해 그림으로 그린다. 
  사람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과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들이 집약되어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이 세계의 일들을 스스로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멘시키와 '나'가 여행지에서 본 흰색 스바루를 탄 남자, 멘시키의 딸일지도 모르는 마리에까지. '나'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들이 살아갈지도 모르는 다른 세계 속에서 차례로 만난다. 
  2권의 부제는 전이하는 메타포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사건의 발생에 은유가 없다고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 이 세계에서 사건이란 어차피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 다른 세계에서 봤을 때 논리적이다. 원인과 결과, 논리와 이성, 정확성과 부정확성, 확증과 편향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전이해온 메타포일 뿐이다. 이 세계의 시간을 재고 충실히 하루를 살아갈 뿐 더 이상 일어난 일에 진상을 파헤치지 않는다는 것이 『기사단장 죽이기』의 은유이다.
  이 세계에서 죽음은 한 사람의 생애가 끝났다고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이데아는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펭귄 인형이든 방울이든 회중전등이든 얼굴 없는 사내에게 맡겨서 강을 건너 이 세계를 죽이면 된다. 다른 세계 속으로 전이된 이데아는 살아가는 것으로 얼굴 없는 사내의 빚을 갚아나가면 된다. '나'는 그 사내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도모히코는 기사단장을 죽이는 그림을 남기는 것으로. 죽음은 일어날 일의 하나의 현상으로 의미도 애도도 슬픔도 다른 세계 속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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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스태킹 - 쌓일수록 강해지는 습관 쌓기의 힘
스티브 스콧 지음, 강예진 옮김 / 다산4.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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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스티브 스콧의 책  『해빗 스태킹』의 광고 문구다. 먼저 자신의 생활을 바꿀 습관을 만든다. 꼭 지켜야 할 핵심 습관과 보조 습관, 지키기 어려운 덩치 큰 코끼리 습관을 계획한다. 이 책은 7가지 습관 근육의 예들을 제시하고 독자가 필요한 부분을 선택해서 실천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면 좋을 습관부터 업무 시작 전과 집에서의 쌓아야 할 세밀한 습관의 예가 나와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번 길들인 자신의 습관은 좀처럼 바꿀 수가 없다. 늦잠을 자거나 매번 약속 장소에 지각을 하는 일들을 바꾸지 못해 곤란해하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 물을 많이 먹는 것, 자기 전에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보는 일들을 바꾸고 싶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24시간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내일은 운동을 해야지 군것질을 줄여서 살을 빼야지 다짐만 한다. 
  스티브 스콧은 이 책의 마지막에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습관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미니 습관을 만들어 1분과 5분 같은 사소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할 수 있다고 한다. 운동 30분의 실천이 힘들다면 7분의 운동을 하고 팔굽혀펴기 1회를 시작으로 습관을 쌓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우리 몸을 이루는 뼈와 근육처럼 습관도 근육으로 만들어 꼭 필요한 부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커리어, 자산, 건강, 여가생활, 정리정돈, 인간관계, 영성을 위한 습관 근육을 만들 수 있는 127가지의 실천 방법들을 구분 지어 놓고 있다. 하루 5분의 시간을 활용해 핵심 습관을 도울 보조 습관을 만드는 방법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책상 정리부터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법까지 습관 근육을 만들기 위한 지침을 읽다 보면 이렇게 쉽고 간단한 일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다. 바꿔야 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할 수 없었던 나의 하루하루가 떠오른다. 변화는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물을 많이 마시고 서류를 정리하고 타인에게 진심의 말로 칭찬을 대하는 것들로 건전한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동안 누워 있다. 하루 동안 어떤 일들을 해야 하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멍하니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꽤 길어서 다시 잠들어 버린다. 스티브 스콧은 하루의 시작이 되는 아침 시간에 구체적인 습관을 만들어 쌓아갈 것을 제시한다. 건강 주스 만들기, 찻물 올리기, 침구 정리, 비문학 글 읽기. 글을 쓰고 싶다면 하루 30분의 시간을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여길지 모를 일이다. 알지 않은가.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일일수록 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습관을 바꾸지 못할 이유를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실천 방법까지 마련해 놓았다. 『해빗 스태킹』에서 제시한 뽀모도로 알람 어플을 깔아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25분 집중과 5분 휴식. 하나의 습관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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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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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이 그리는 세계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된다. 이야기는 출구에서 빠져나오자 입구에서 갇히고 만다.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 『당신의 신』에서 보여주는 소설의 색채는 어둡고 흑백의 점이 무수히 박혀 있는 복사 불량의 흐릿함을 가지고 있다. 이혼이라는 주제로 끌고 가는 『당신의 신』에서 당신들은 이야기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한다.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여성 화자의 목소리는 대체적으로 낮고 가라앉아 있는 음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첫 번째에 실린 「이혼」에서 '그녀'는 이혼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부부부터 나이 든 부부까지 그곳에서 이혼 절차를 밟는 사람들의 연령은 다양하다. 남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라는 대명사를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소설은 그녀가 오래전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험 기간 때 책상에서 꾼 꿈을 떠올린다.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와 이혼하는 꿈. 직장 동료들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년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로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그보다 못한 학력을 가진 어머니를 구타하는 참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두 번이나 도망을 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체념으로 그녀 자신이 집을 나온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하는 그녀의 남편 철식은 남쪽에 있는 조선소에서 노동자의 사진을 찍느라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에서 빠져 있었다. 전세 만료의 집을 알아보고 물이 새서 고쳐야 하고 유방암에 걸린 그녀가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불면증을 견뎌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그녀는 같이 일했던 동료 영미를 불쑥 찾아간다. 일류대를 나온 영미는 회사에서 부적절한 소문이 돌아 해고당했고 혼자서 생활하기 위해 감자탕 집에 취업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학원을 하나 차렸는데 학부모의 끈질긴 질문에 이혼하고 혼자 사노라 말했더니 그날 이후로 원생의 수가 뚝 끊긴 일까지, 담담하게 이혼 후의 삶을 들려준다. 
  시를 쓰는 그녀에게 남편 철식은 이혼을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과는 다름 없다는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다,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결혼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대답한다. '나'가 아닌 '당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요구하는 결혼에서 김숨은 영혼의 구원은 각자의 몫이라고 선언한다.
  「읍산요금소」에서 삼 년째 정산원으로 일하는 그녀 역시 이혼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동창은 그녀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는 말에 연금보험을 권하고 중고차 매매업을 한다는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노래방에 가지 않고 몰래 도망쳐 나온 그녀에게 친구는 그 남자가 보험 계약을 해지했다고 원망했다. 그녀가 일하는 읍산요금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요양원과 그곳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차량들을 보며 혼자 늙고 기억마저 사라질 이후를 감당해야 하는 피로감을 느낀다. 
  우성실업으로 가기 위해 이십 분마다 요금소를 통과하는 한 남자의 질문들을 받으며 이곳이 출구와 입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뫼비우스의 곡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남자는 노래방에 가자고 강요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감추고 그녀를 폴란드 모텔로 데려간 소장일 수도 있다. 그녀가 폐쇄된 요금소의 이름을 묻자 관리 소장은 읍산요금소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삶은 무한으로 반복된다. 
  「새의 장례식」에서 화자는 '나'로 설정되었지만 주로 '그녀'의 이야기를 '그'가 전해주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녀와 이혼 후 그녀를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그녀가 재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재혼한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오는 건 뜻밖의 일이다. 그는 나에게 그녀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사고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내가 그녀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병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와 재혼 후 아파트에서 살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욕실로 통해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학대를 받는 것 같은 아이를 그녀 집으로 데려온 일. 그 아이가 했던 어떤 말이 그녀가 키우던 십자매를 죽게 한 것 같다는 의심까지. 
  말의 무서움과 폭력의 흔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녀의 상처의 기원은 '나'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직감한다. 그녀에게 가했던 나의 폭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혼」의 그녀가 겪었던 아버지의 폭력은 「새의 장례식」의 그녀로 이어진다. 「이혼」에서 그녀는 자신의 오빠들에게도 아버지의 폭력성이 대물림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 오빠들 중에 한 명으로 호출된 것 같은 「새의 장례식」의 '나'는 그녀를 울게 만든다.
  재혼한 그들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한 번 절차와 수속의 난관을 통과한 그들은 다시는 이전의 일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무한으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 내기 위해 혼인 신고 없이 살고 있다. 이야기는 반복되지 않고 그녀들은 체념도 실수도 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당신의 신이 되는 것이 아닌 당신의 신들을 찾기 위한 여행의 시작으로 살아가려는 김숨의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는 고요하고 분명하다. 끔찍한 이 생을 살고 싶어 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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