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
윤성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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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나만 쉬었다. 10월 9일 한글날, 휴일이었는데. 쉬라고 해서 쉬었는데 마음이 불편 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시계를 자꾸 보게 되었다. 지금쯤이면 이걸 하고 있겠네. 이 시간이면 끝났겠네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어묵국을 끓였는데 어묵 보다 무가 많았다. 무 다 건져 먹기. 점심의 미션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에 눈길이 갔다. 깔아지나, 깔아져서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너무 재밌어서 앱을 지웠다가(심지어 탈퇴 신청까지 했다) 다시 깔아서 저녁 먹고 또 했다. 게임 한 번 당 하트 하나가 필요했다. 하트가 필요한 게임이라니. 사랑을 마구 구걸하게 만들다니.


  정신 차리고 윤성희의 『첫 문장』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나의 하루가 별 볼일 없는 건 아니었구나 위로가 되었다. 하루에 두 번 밥 먹기. 보일러 틀어서 샤워 하기. 자기 전 마음에 드는 책 골라 읽기. 귀여운 캐릭터의 유혹에 빠져 게임 하기. 윤성희의 소설 속 인물 같은 하루를 살아 내고 윤성희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만 쉰 휴일을 마무리 했다. 


   『첫 문장』은 '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 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말의 첫 문장은 '첫 문장은 중요하지 않다'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문장 역시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다. 중요한 건 문장이 아니다.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살아 오면서 네 번의 죽음을 맞을 뻔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어제의 나의 하루처럼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그게 다 시간의 힘이다. 죽을 뻔 했던 그 순간에는 세상이 꺼지고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이지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수긍이 된다. 이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유복자로 태어난 남자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다른 형과 누나 사이에서 자란다. 눈이 먼 할머니는 성이 다른 손자를 배척하지 않는다. 달도 가는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라디오 뉴스를 듣는 할머니 곁에서 막걸리를 얻어 마시며 유년을 통과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중 두 번은 자살 기도라는 오해를 받았고, 한 번은 '행운의 소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신문에 실렸다. 내가 죽으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고. 그땐 어렸다고. 단지 겁이 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아내가 떠나간 집에서 낮잠을 자던 토요일 오후에, 나는 내가 그 오해를 방패 삼아 사춘기 시절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성희, 『첫 문장』中에서)


  네 번이나 죽을 뻔 했던 남자는 살아 남아 결혼 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 자신은 네 번이아 죽음을 피했는데 열일곱의 딸은 그러지 못했다. 소설은 딸을 잃고 아내가 떠난 집에서 혼자 남은 남자의 일상을 그려낸다. 일요일에 회사에 출근해 자리를 정리하고 경비아저씨에게 받은 사탕 두 알을 받는다. 남자는 회사 회장님의 자서전을 대신 써준 적도 있었다. 회장님이 요구하는 자서전의 마지막 문장에 단어를 고치기도 했다. 조카의 결혼식에 갔다가 문구점에서 산 수첩에 '나'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적기 위해 고심한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버스 터미널에서 가을을 보낸다. 전국의 버스 터미널은 셀 수 없이 많고 사람들은 다양하고 언제라도 표를 사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남자는 딸아이가 살아 있었으면 썼을 열일곱의 자서전의 문장들을 고르느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딸과 함께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도 그날 딸이 마지막으로 신은 양말의 무늬를 기억해 내지 못해 운다. 


  윤성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의 취향에 관대하다.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따져 묻지 않고 긍정해 준다. 예의 없는 말버릇에도 양말을 뒤집어 벗는 행동에도 웃어주고 받아 준다. 남자는 딸이 가진 특이한 말투와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농담을 하면 농담으로 받아주고 원하는 게 있으면 전부 들어주려고 했다. 그 자신은 네 번이나 죽음을 피해 놓고 딸에게는 운을 물려 주지 않았다. 남자는 딸의 자서전을 대신 쓰는 것으로 슬픔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모두 첫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살아오는 내내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시계를 보고 게임을 한다. 첫 문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첫 문장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대체로 삶이란 그런 것이다.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게임 한 번당 하트 하나는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어제는 나만 쉬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오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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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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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강성은


라디오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꿈속에는 과거의 사람들만 가득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햇볕 속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제설차가 지나갔다


죽은 사람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집 지붕 위에서


라디오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나무 라디오는 두 개 하나를 듣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재빠르게 다른 하나를 켠다 모자라고 비어 있으면 불안하다 일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꿈이었다 꿈속에서눈을 맞고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눈사람을 발로 찼다 꿈속에는 과거의 사람들만 가득했다 몸이 아픈 엄마, 우울한 동생이 나와 꿈의 무게는 늘어났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내게 인사해 주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질문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를 쳐다보아도 그 속에 사람이 살아갈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 햇볕 속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제설차가 지나갔다 발로 차 버린 눈사람이 거기 있었다 죽은 사람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무 라디오는 두 개 죽은 자들의 연주를 듣는다 우리 집 지붕 위에서



Ghost

-강성은


나는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는 아이였다

식은 밥과 국을 들고 서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문득 오리너구리는 어쩌다 오리너구리가 된 걸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긴 복도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고

햇볕만 가득한 삼월


 식판을 들고 급식실을 나왔다. 시멘트 의자 위에 앉았다. 엉덩이는 대신 시원했다. 국에 밥을 말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급하게 먹었는데도 체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김치 국물이 교복 소매에 묻으면 식판을 두고 수돗가로 달려가 씻었다. 돌아오니 식판이 사라졌다. 탕수육 두 개, 뜯지 않은 조미김이 있었는데. 



저녁의 저편

-강성은 


여자는 그에게 저녁을 먹으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전화를 끊자 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들이 자꾸만 유리창에 부딪쳐 떨어졌다 여자는 갑작스런 코피가 멈추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새로 산 양탄자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새들은 자꾸 날아와 부딪치고 여자는 코피가 멈추지 않아 그대로 누워 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새들은 무엇을 보고 돌진해 오는 걸까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누가 이 많은 새들을 날려 보내고 있을까 우리에게 왜 이런 계절이 닥치는 걸까 생각한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보였는데 머리에 쌓인 흰 눈을 털었다 여자는 일어나 침착하게 음식을 내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주 앉았다


  가끔 정신 나간 새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창문과 문을 열고 막대기를 들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적막이 소란스러움으로 바뀌곤 하였다.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이 힘들어지고 여름은 끝을 모른 채 패악을 부린다. 가을이 시작하고 겨울이 우리에게 도착할까. 의문을 담아 국수를 삶는다. 기름때를 닦아내고 노란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다행히 이곳의 불안은 수신되지 않는다.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가벼운 행복을 수다하는 오전. 질문하지 않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골똘한다.



Lo-fi 뒤표지 글

-강성은


작년에는 남자였다가

올해부터 여자가 된 사람

어제는 노인이었는데

오늘은 아기가 된 사람


작년에는 동물이었다가

올해부터 식물이 된 사람

어제까진 지구인이었는데

오늘은 외계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겨울이면 얼고

봄이면 녹는


불 없이 타오르고

물 없이 익사하는 사람


많은 창문을 가진 사람 바람 부는 밤 덜컹이는 덧문들을 그는 어떻게 잠재울까 모르는 길들이 대추 잎사귀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암모니아 애비뉴를 들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 아이를 생각했다


  당신은 시의 목소리를 듣습니까. 매일 신간 목록에는 시가 올라오고 있는데 시를 찾는 사람들은 줄어듭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가 쏟아지는 이유는 시를 찾는 이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가능한 추측을 하며 저음질로 수신되는 시를 읽어 갑니다. 시집은 시인의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그가 빈 방에서 녹음한 시들은 불량 음질입니다. 볼륨을 높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빛을 끌어모아 시집에 적힌 말을 읽어갑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는 지구에서 탈출하고 싶어 보내는 미약한 신호의 시가 녹음됩니다. 길을 잃은 외계인이 탄 우주선이 전파를 감지하고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신호는 쌓이고 가난한 시인은 얇은 시집 한 권을 내는 일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계시를 받고 예언을 들을 줄 알았는데. 폭발이 일어나기 전 나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대충 불리다가 죽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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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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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문장을 가지고 마거릿 밀러의 소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화목하게 보이는 부부의 아침 풍경입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잡아당겨 봅니다. 짐은 데이지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줍니다. 폭풍 전선이 형성됐으니 이곳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데이지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여느 아침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합니다. 


  짐은 데이지의 심상찮은 기색을 살핍니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묻습니다. 데이지는 망설이다 꿈 이야기를 합니다.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이란 자신이 묻힌 무덤에 가서 묘비를 봤다는 것입니다. 묘비에는 '데이지 필딩 하커, 1930년 11월 13일 출생. 1955년 12월 2일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녀는 4년 전에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짐은 그건 꿈속의 일이라며 지금은 살아 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데이지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죽은 날짜에 비밀이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그들이 사는 집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생활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멀리서 본다면 그들 부부의 일상은 기쁘고 찬란한 희극입니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이지요. 짐은 토지 측량사로서 성공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집을 지어 이사도 왔습니다.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장모를 위해 별채를 따로 두기까지 했습니다. 마을에서 짐의 평판은 상당히 좋습니다. 데이지 역시 그런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입니다. 조용하고 그런대로 굴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부부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들의 일상이 금이 가게 되는 건 데이지가 꾼 꿈 때문입니다. 데이지는 엄마와 남편의 만류에도 4년 전인 12월 2일의 기억을 모으는 작업을 합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죽었던 그날 현실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죠. 사실 데이지의 부모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따로 살기 시작했으며 아버지라는 사람은 가끔 편지를 보내와 돈을 요구합니다. 데이지는 순하고 착한 성격이라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데이지가 사는 동네에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보석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오지요. 데이지는 아버지의 보석금을 대신 내준 피나타라는 이름의 탐정을 만납니다. 그를 통해 잃어버린 그날의 기억을 찾습니다. 꿈속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그날 데이지의 하루는 대체 어떤 빛깔이었을까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가면서 드러나는 데이지의 비밀은 비극을 향해 달려갑니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데이지에게는 위선과 가식으로 둘러싼 견고한 울타리가 둘러 쳐져 있었던 거지요.


"그럼 이 허튼짓은 당장 그만둬라, 알겠니? 우리는 탐정을 고용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냐. 뉘앙스가 무척 추잡하잖니."

"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 척 가식을 떨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가식이라고? 세상에 점잖은 모습을 내보이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거냐, 가식이라고? 글쎄, 난 아니구나. 나는 그걸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부르지."


  데이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데이지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수록 강인해져갑니다. 가정이라는 역할극에서 맡았던 조신하고 말 잘 듣는 아내와 딸의 배역을 걷어차 버립니다.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을 당당히 드러낼 준비를 합니다. 그에 반해 데이지의 엄마는 가식의 다른 이름이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요. 본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합니다. 


  로스 맥도널도와 일찍 결혼한 마거릿 밀러는 결혼 초기에 우울증을 앓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에게 남편은 추리 소설을 잔뜩 가져다주지요.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며 소설을 쓸 결심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보람도 성취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종종 우울로 발전합니다. 마거릿 밀러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병을 이겨냅니다. 작가의 실제 삶은 『내 무덤에 묻힌 사람』에 반영됩니다. 데이지의 각성은 소설가 마거릿 밀러의 각성입니다. 소설은 추리 형식을 빌려와 인간이 가진 욕심과 비겁함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사회에 만연된 인종 차별적인 요소도 꼬집습니다. 


  자신이 죽는 꿈으로 인해 데이지의 현실은 바뀝니다. 꿈에서 죽은 그녀는 현실에서는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녀 자신이 묻힌 무덤 속에서 보내온 호출에 응답한 데이지는 반전에 해당하는 비밀을 알아가는 것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과 틀을 깨뜨립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하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읽으며 불행한 가정의 저마다의 사정을 알아가보는 탐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시길 바라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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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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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의 문장은 나를 과거라는 별로 데려간다. 광활하여 모래바람만 불고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없는 고독의 기억만이 자리 잡은 그 별로. 문장을 읽어가다가 나는 별의 기억 속으로 소환된다. 머뭇거리고 전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식의 화자의 서술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며 걸어간다. 사랑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독자는 헷갈릴 수도 있겠다. 사랑이었다면 죽음 뒤에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없다. 죽음이 우리 곁을 찾아와 머무는 순간까지도 사랑은 없다. 이제 우리는 순진하지도 않으며 열정은 내다 버린 지 오래다. 사랑의 순간에 머물렀던 기억이 남았다. 진실은 사라지고 기억만이 우리를 고독의 별로 안내한다. 열아홉 살. 케이시 폴은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빌리지의 테니스 클럽에 가서 젊고 가문이 좋은 여자애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폴은 어머니의 신념과 고집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그저 한 여자를 만나 테니스를 치고 사랑에 빠질 뿐이다. 


  마흔여덟. 수전은 딸이 둘 있고 가끔은 정원사 흉내를 내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이다. 각 방을 쓰고 있으며 남편의 눈을 본지 오래되었다. 폴은 테니스를 함께 친 뒤 수전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젊은 남자에게 부여되는 평판이라는 것이 있다면 폴의 어머니는 그가 이제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는 말로 그 일을 비아냥거린다. 수군거림, 비아냥, 남의 시선을 뒤로하고 그게 있다 해도 무시해 버리고 그들은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래도 이 정도는 발견했다.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모범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뒤에 오는 사랑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반면 더 쉽게, 더 좋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물론 가끔은, 첫사랑이 심장을 소작(燒灼) 해버려, 그 뒤로는 어떤 탐침을 들이밀어도 흉터 조직만 나올 수도 있지만.

(『연애의 기억』中에서, 줄리언 반스)


  세상의 통념과 형식을 깨는 그들의 만남은 폴과 수전을 알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한 시제인 미래로 데려간다. 폴은 오십 년도 더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기억으로 어루만진다. 가끔 쓴 일기 속에서 떠올려 보기도 하고 인과 관계가 맞지 않는 기억을 풀어 놓기도 한다. 사랑은 구체성이 없는 행위라는 것을 그 자신이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하나의 이야기에서는 폴은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한다. 둘의 이야기에서는 객관화를 목표로 '너'라는 이인칭, 셋의 이야기는 '그'라는 삼인칭으로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실패. 추측대로 폴은 사랑의 이야기 안에서 패배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폴도 나도 실패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랑의 실패는 삶의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 삶, 구원에서 우리는 실패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이 연애를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연애의 기억이 우리를 마지막에 부여받은 축복으로 안내한다. 그것이면 된다.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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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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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위안소에 있는 금자는 글을 몰라 종이에 편지를 쓸 수 없다. 대신 강가에 나가 물 위에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시골집에 있다가 공 씨가 비단 짜는 공장에 취직 시켜준다는 말에 따라갔다. 어머니는 아직 애기가 어딜 가냐고 말했지만 돈 벌어서 부쳐주면 어머니하고 동생들이 굶지 않을 것이라는 공 씨의 말에 따라나서기로 했다. 트럭에 올랐더니 맹순 언니도 와 있었다. 여자애들이 많았다. 대구역에서 기차를 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국이었다. 열세 살 때의 일이었다.


  금자는 위안소에서 후유코로 불린다. 군인이 지어주었다. 겨울 아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지어준 금자 대신에 그녀는 후유코, 도시코, 모모코, 후미코, 아에, 미쓰코, 요시코, 히후미, 유키코로 다양하게 불린다. 군인들은 그들의 정혼자나 아내의 이름을 붙여가며 밤마다 찾아온다. 김숨의 소설 『흐르는 편지』는 열다섯 소녀 금자의 공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 중이고 영문 모르고 위안소로 끌려온 소녀들이 있는 황폐한 그곳으로. 인간의 존엄은 무시되고 오직 전쟁과 추악한 욕망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김숨의 다른 소설 『한 명』에서는 위안부로 끌려간 노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흐르는 편지』는 세계위안소를 거쳐 낙원위안소로 흘러온 소녀인 '나'의 상황을 그대로 들려준다. 전작에서는 노파의 회상에서 등장한 위안소의 모습은 『흐르는 편지』 안에서는 직접적인 배경으로 소환된다. 공장인 줄 알고 있는데 그곳은 군인을 받는 곳이었다. 위안소 주인 여자는 자신을 오카상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오카상의 뜻은 어머니. 금자는 말과 상황의 부조리함에서 의아함을 느낀다. 낙원위안소의 주인은 할아버지라는 뜻의 오지상으로 부른다. 오지상은 손녀뻘 되는 여자애들과 밤을 보낸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김숨, 『흐르는 편지』中에서)


  금자는 누구 애인지도 모를 아기를 가졌다.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는 아기가 죽기를 바란다. 악순 언니는 아기를 낳았다. 키울 수 없으니 중국 여자에게 보냈다. 악순 언니는 밤마다 헛소리를 한다. 누구라도 미칠 수 있는 곳이었다.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곳이었다. 위안소에서 그녀들은 허기와 밤마다 달려드는 군인과 냄새와 죽음의 공포와 싸운다. 위안소에서 일을 해 나갈수록 쌓이는 빚은 전쟁이 끝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강물 위로 쓰는 편지는 어머니가 있는 남쪽 나라로 흘러갈 수 있을까. 편지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말들을 강물에 토해낸다. 배가 불러오면서 아기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기가 태어나면 살 수 있을까 궁금함이 금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차라리 이것이 완전한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 『흐르는 편지』는 위안부로 끌려간 그녀들의 육성이 담겨 있다. 김숨은 할머니들 곁에서 이야기 듣기를 계속했다. 증언이 이야기로 탄생해 세상에 나왔다. 완벽한 허구는 없다. 허구 안에는 밝혀야 할 진실이 숨어 있다. 『흐르는 편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를 가져온다. 


  편지는 흐르고 흘러 2018년에 도착한다. 굽은 산을 타고 계곡 아래를 흘러 도착한 편지에는 이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그녀들 스스로 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목소리가 들어 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세계위안소 23호 방에 시체처럼 누워, 2, 30분 간격으로 밀려드는 군인들을 받으며 몸이 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왼팔 팔뚝에 '冬子(동자)'라는 글자가 새겨지는 동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먹물 묻힌 바늘이 살갗을 찔러올 때마다 손가락 하나도 내 게 아니라는걸.

(김숨, 『흐르는 편지』中에서)


  이름을 지우고 산 세월이었다. 이름과 나이와 기억과 고향을 버리고 살았다. 10억 엔을 주며 잊어버리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매주 수요일에 모여 외쳤다. 사과하라. 용서는 그다음이다. 아기를 가진 금자는 죽으면 끝이라는 언니들의 말을 애써 무시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기와 함께 지옥을 빠져나가 살고 싶다고 어머니께 편지를 쓴다. 삶의 존엄이 파괴되어도 생명은 피어난다. 죽음 곁에서 타오르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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