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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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다.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조금 언짢고 아프다,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요즘 그렇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차마 위로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속상할 그이들의 사정이 짠하다. 서로가 서로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만 있어도 된다고 넘겨보지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내가 웃으면 누군가는 울면서 잠들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롯이 나의 행복만을 바랄 때가 있었다. 나만 잘 살면 되는 거지 하면서 살아가는 날이. 여전히 키는 작지만 다른 이의 슬픔을 넘겨다볼 정도의 눈높이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건 소설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있어서 누군가의 슬픔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일에는 함께 웃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생전에 그이를 두 번 뵈었다. 봄과 겨울. 소녀처럼 가녀린 음성에 맑게 웃으시던 박완서 선생을 만난 스무 살을 기억하고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날이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몇 번의 계절을 건너 어느덧 선생이 아름다운 별들의 나라로 가신지 8년이 되었다. 선생의 빈자리를 추억하는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으며 내가 가진 꿈의 크기를 재어 보았다. 꿈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나는 꿈을 잃지 않았고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소설을 실은 작가들 역시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문학을 사랑하지만 힘에 부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소설가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삶의 순간이 명징 해진다. 도덕과 부도덕을 시원하게 넘나들고 욕심과 욕망의 줄타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선생의 글을 읽으며 나만 치사한 건 아니구나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실린 스물아홉 편의 소설은 그런 선생의 문학의 자리를 추억한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소설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란 같은 지점을 선회한다. 한유주의 소설 <집의 조건>에서 만난 존대와 하대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중개인의 모습에서 얼마 전에 겪은 나의 경험이 떠오르고 술김에 충동적으로 산 아들의 레고 장난감을 환불하러 가는 이기호의 <다시 봄>에서 짠하고 짠한 부자의 봄길을 상상한다.


떠올림과 상상의 힘으로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어나간다. 그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도 괜찮다. 선생을 뒷모습만을 만난 추억을 쓴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에서 진실한 이야기의 힘을 만난다. 소설이지만 나는 정세랑의 힘 있는 다짐을 그 안에서 읽어낸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박완서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렇게 생생한, 계속 읽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좋은 가늠이 되었다. 사실 아라가 생전에 작가를 뵌 건 아주 잠깐, 아주 멀리서였고 그것도 뒷모습이었다. 그때 아라는 대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가지도 싶다고 기이한 생각을 했다……. 한 올만 뽑으면 안 될까 하고 록스타에게 손을 뻗는 팬처럼 침을 꿀꺽했지만 물론 그런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용기 내 앞에서 인사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따라 걷는 자에겐 뒷모습이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된 건 요즘의 일이었다.

(정세랑, <아라의 소설>中에서)


장르 문학이라고 규정되어 버린 자신이 쓰는 소설을 대놓고 무시하는 선배의 말에 기분이 상한 아라는 생전에 SF 작가에게 빛나는 평가를 내린 박완서 선생님을 그리워한다. 이 마음은 서술자 아라를 넘어 소설가 정세랑의 것이리라 감히 추측해본다. 소설가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다정하고 환한 글이 남아 후배 작가들의 등을 토닥여준다. 소설가 박완서의 글은 토닥임으로 작가들을 책상으로 인도해 준다. 그이가 남긴 소설의 어떤 시간들을 불러와 자신만의 이야기로 그리움을 적어간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사랑이다.


아직, 이곳에, 사랑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윤이형의 <여성의 신비>에서 만난 지혜와 슬기는 나의 미래이거나 현재이며 <언제나 해피엔딩>에서 백수린은 우리 삶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넌지시 말함으로써 별도 없는 한 밤을 살아가는 우리를 달래준다. 짠하고 고독한데 우습고 분주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우리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오늘을 버틴다. 다시 겨울이고 이내 봄이 올 것이다. 선생이 떠난 자리에 풀이 돋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놓아둔다. 책장을 덮고 나면 기억에서 사라질 이야기를 쓰는 우리가 있음에 선생은 흐뭇한 얼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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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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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에 끝나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다섯 시. 새벽에 읽다만 책을 잠깐 읽다가 초저녁잠이 들었다. 일곱 시에 일어나 걸어서 칼국숫집에 갔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피곤해 보이는 주인은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반찬은 셀프. 다른 이가 반찬을 가져다 먹는 걸 보고 나도 가서 몇 가지 찬을 가져왔다. 어묵볶음과 겉절이 김치 그리고 콩나물.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듯 심심한 맛이었다. 그 때문에 먹을 생각도 없던 밥을 먹었다. 칼국수와 함께 나온 밥은 윤기가 흐르는 찰밥이었다. 칼국수와 메밀 전병. 12000원.


집 앞에 수제 초콜릿 가게가 있는 걸 유심히 봤다. 통통한 몸을 가진 이유는 단 것을 좋아하고 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붉은 조명이 환하게 켜진 가게의 문을 열었다.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초콜릿 가게에서는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캐러멜 초콜릿과 로즈 송이 초콜릿, 막대 초콜릿을 샀다. 11000원. 아, 이 돈이면 한 끼 밥값인데 하는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겨울 저녁에 먹는 칼국수와 수제 초콜릿은 허름한 시절을 밝혀주는 온기 같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내 가난한 시절에는 마트에서 파는 양 많고 싼 초콜릿을 사서 이불 속에서 까먹곤 했었다.


그때보다 좋아진 것이리라. 나는 변화했고 따뜻한 칼국수 국물을 달달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시절로 건너온 것이다. 김의경의 장편 소설 『콜센터』의 다섯 청춘들에게 오늘 나의 하루를 선물해 주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칼국수와 심심한 반찬을 먹고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라면 들어가서 망설이지 않고 초콜릿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프랜차이즈 피자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다섯 청춘들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들의 공통점이란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스물다섯이라는 것이다.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했지만 정규직으로 취직이 안되어서 그러니까 콜센터는 잠깐 지나가는 정류장이다.


취직이 될 때까지 혹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학비를 벌 때까지만 이었다. 석 달만 일해야지 했는데 육 개월이 되고 어느새 일 년이 넘게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 크리스마스이브, 각종 연휴에 밀려드는 콜을 받느라 그들은 화장실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다. 블랙 컨슈머라고 쉽게 말하면 진상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전화를 걸어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상담사의 혼과 눈물을 빼놓는다. 죄송하다고 말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나왔으니 새 피자를 줘야 한다, 자신을 대학교수나 기업체 사장이라고 말하며 반말을 하고 평생 콜센터에서 일하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하는 슈퍼 진상들을 상대하느라 청춘들의 하루는 눈물로 얼룩진다.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콜센터』는 소설가 김의경의 경험이 녹아들어 가 있다. 실제 작가는 피자 주문을 받는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학생이거나 휴학생들 사이에서 외로운 처지로 일을 해야 했다. 살아남는 게 꿈이라던 작가의 사수는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사수에게 바치는 소설 『콜센터』를 읽으며 이제는 꿈을 꾸는 것보다 아직 꿈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나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렸다. 김의경은 『청춘 파산』과 『쇼룸』에서 가난한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모두 작가의 체험에서 기반된 소설이었다. 빚을 져 봉고차에 실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집을 구하지 못해 이케아의 쇼룸에서 집의 환상을 그려야 했던 작가의 경험이 소설이 되었다.


슈퍼 진상을 처리하기 위해 다섯 청춘들은 헤드셋을 던져 버리고 부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전화선 너머로만 존재하는 슈퍼 진상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사방이 막힌 벽에서 진상들의 감정 배설 창구로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에게 김의경은 바다를 보여준다. 겨울이란 칼국수와 초콜릿, 바다로 기억된다. 나의 하루를 따뜻함과 달달함으로 마무리해준 칼국수와 초콜릿에게. 주리, 용희, 시현, 형조, 동민의 각박한 삶에 푸른빛을 선사한 바다에게. 고맙고 고맙다고 말해본다. 아프지만 잘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려 애써보는 시간으로 청춘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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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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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의 장편 소설 『홀딩, 턴』은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사랑 이야기로 끝이 난다.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한 진과 랄라는 결혼이라는 결말로 향해 갔다. 결말이 결혼이라고 썼지만 소설은 끝이라는 곳에 결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의 끝은 결혼도 이혼도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홀딩, 턴』은 이야기한다. 그들은 서로를 닉네임인 진과 랄라로 부르는 가벼운 만남에서 현실의 이름을 들려주고 무람없이 영진과 지원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진지한 사이로 발전한다. 이별이란 전조도 느낄 수 없는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사랑 역시 그러함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가닿지도 않았다. 약속이 어긋나고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아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밥을 먹다가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술을 마시고 문 닫아야 할 시간이라 술집에서 나온다. 버스는 끊기고 거리를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감정이 충돌한다. 지원과 영진은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 만났지만 춤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지원은 연애 세포를 깨우기 위해. 영진은 파혼한 친구를 달래주기 위해. 춤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움으로 변했다. 영진은 9급 공무원으로 스윙 댄스 이외에도 수화를 취미로 배우고 있었다. 그가 공연을 하기로 한 날 어쩌다 보니 지원만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이렇듯 사랑은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연한 수순까지는 아니지만 영진의 열렬한 구애로 그들은 결혼을 한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의 결말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그리하여 그들은 싸움을 시작하고 각자의 방에 머물고 별거 끝에 이혼을 결심했습니다라는 동화의 판타지를 깨면서 소설은 출발한다. 발을 씻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연애는 상대방의 맨발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상대의 맨발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홀딩, 턴』은 말한다. 영진은 정리를 잘하는 스타일이지만 위생 관념은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외출해서 손과 발을 바로 씻지 않고 자기 직전에 씻었다. 지원은 그런 점을 참을 수 없어했다. 문을 열지 않고 발냄새를 풍기며 축구를 보고 있는 영진. 식탁에는 배달 음식 그릇이 놓여 있는 그날 지원은 눌러 두었던 화를 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던 어른들의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깨진 그릇은 붙여 쓸 수 없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단점을 고쳐야 한다고 이런 점은 네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각자의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상대의 기분에 그때그때 맞춰줄 순 있겠지만 한계 상황이 찾아온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지금의 불행을 행복으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홀딩, 턴』을 추천해주고 싶다. 지원은 스윙 댄스 동호회의 카페 메인에 걸려 있던 문구를 떠올린다. '즐겁지 않으면 스윙이 아니다.' 이 말을 단어를 바꿔 지원과 영진에게 돌려준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도 못 살지도 모르는 인생. 우리는 우리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나는 이혼해도 너희랑 호칭부터가 다르다. 싱글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니?

-그래, 너는 많이 무겁다. 승천 보류.

취객들의 대화에 지원은 소리 내어 웃었다. 흩어지고 사라질 웃음이지만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사람을 끝까지 지탱하고 보듬어주는 게 있다면 유머와 애정일 것 같았다.

(서유미, 『홀딩, 턴』中에서)


지금의 불행을 잠깐 홀딩 해 두고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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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덜 외로운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2
고이케 마사요 지음, 한성례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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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연에 이끌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 걱정되겠지. 나도 그때는 그랬어. 여자 혼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고 말이야. 당시에는 눈앞이 캄캄했어. 괜찮아. 만나 보렴. 그런 다음 네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보고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위를 향해 반듯하게 자라나 줘. 자라서 가지를 펼쳐서 너라는 나무의 모든 가지에 작은 새들이 쉬어가게 해주렴. 태어났으니 힘껏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 넘어지고 굴러떨어져도 살아가는 거야. 모든 것을 삼키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거야.-

(고이케 마사요, 『조금은 덜 외로운』中에서)


연극배우 엄마를 둔 가쓰라코는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연극이 끝나면 여행을 떠나는 엄마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면 큰 나무를 찾아가 보라는 말을 남겼다. 여행지에서 낙석 사고를 당했다. 절벽에 떨어져 사망해 버린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가쓰라코는 이제 세상에 아무도 없는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없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꼈다. 엄마가 유언처럼 남긴 말대로 가쓰라코는 은행나무 곁으로 갔다. 고이케 마사요의 소설 『조금은 덜 외로운』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이들을 위한 조금 긴 시이다. 고이케 마사요는 시인이기도 하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소설이기도 한 『조금은 덜 외로운』은 나무와 꽃,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준비된 이별은 없다. 그 누구도 작별의 인사를 하고 떠나지 않는다. 이별은 느닷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 사람이 해달라고 하던 부탁을 들어줄 걸 하던 후회만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움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별은 그래서 서글프다. 그이가 없다는 걸 실감할 때 마다 찾아오는 슬픔 때문에 마음이 미어진다. 그런 채로 살아가야 한다. 남은 사람은. 엄마를 잃고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몰라 여행을 떠나는 가쓰라코의 이야기, 『조금은 덜 외로운』에서 안간힘을 마주한다. 헤쳐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정면을 바로 보아야 하는 가쓰라코의 성장기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소설은 엄마를 잃고 혼자가 된 가쓰라코의 내면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좌절은 쉽다. 멈춰 서는 것도. 울어서 부운 눈이지만 괜찮은 척 일어나 이불을 개고 창문을 연다. 찬 공기를 마시고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나가는 것까지.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어렵다. 가쓰라코는 한동안 잠이 오면 자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엄마의 지인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와타루라는 남자에게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듣는다. 엄마처럼 가쓰라코도 연극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첫 연극에 참여하기로 한다. 나무와 꽃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가쓰라코는 인간의 마음으로 살기를 거부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과 규범을 생각하지 않는 삶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로 한다. 소설은 가쓰라코의 여행지를 따라 나무에 많은 설명을 할애한다. 한 군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무의 삶. 지구가 생기기 전부터 살아남은 나무도 있고 지구가 끝나더라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나무도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가진 인간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나무의 삶일 수도 있다. 가쓰라코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 여기저기를 부유한다. 새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이들을 보며 스무 살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닌 삶이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가쓰라코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정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면의 들끓는 불안과 정념을 스스로 정리한다. 영혼이 된 엄마가 가쓰라코에게 해주는 말처럼 그녀는 살아간다. 죽지 않고.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은 흔적을 바라보아야 하는 모든 이들을 다독이는 소설 『조금은 덜 외로운』을 읽고 내일에게 안녕을 말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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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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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한 글자 사전』을 일주일 내내 읽었다. 새벽과 이른 아침에 잠깐씩 틈틈이. 글자 하나에 뜻 하나씩. 시인의 눈은 과연 달랐다. 한 글자 안에 온 우주를 담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문장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글자 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음미하느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글자 사전』은 지친 한 주를 달래주었다. 때론 웃겼고 때론 슬펐다. 국어 대사전을 펼쳐놓고 글자의 뜻을 고심했을 시인의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오전을 책상에 앉아 단어를 고르고 펼치고 잘랐을 시인의 생각 많은 뒷모습.


변해가는 모든 뒷모습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온 유일무이한 존재.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낮에도 밤에도 달은 하늘에 있다. 우리 머리 위에. 바빠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어도 달은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변한다는 것. 오늘의 내 마음과 내일의 너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달의 변화는 기쁘기만 하다.


폐가 될까 걱정하는 것이 사람다움이다. 폐가 폐라는 걸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폐가 된다.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우리는 사람인데 가끔 그걸 잊고 살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면 안 되는 짓을 서슴없이 할 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눈을 뜨고 살 수가 없었다. 햇빛은 찬란한데 바람은 불어오는데 뉴스에서 날아든 소식 때문에 빛을 느낄 수 없었다.


예를 갖추기 위해선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믿는 시대.

(김소연, 『한 글자 사전』中에서)


예라고 한 번만 말해도 되는데 예예 두 번씩 말한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습관이 되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아니오. 아니오. 버스를 탈 때마다 아니오를 연습했지만 언제나 예라고 말했다. 나를 낮출수록 참담했다. 자라지 않는 자존감을 끌어안았다. 내 안의 빛이 꺼지고 문이 닫혔다.


한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책, 『한 글자 사전』을 곁에 두기를 추천한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도 자도 피곤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이 들 때 고른 책이다, 『한 글자 사전』은. 글자보다 여백이 많은 책. 순식간에 문장을 읽고 여백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것과 지나갈 것을 생각했다. 빈 종이에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세상은 많은 말을 만들어 냈지만 시인은 한 글자만을 골라 가장 따뜻한 옷을 입혀 주었다. 우리를 다독이는 데에는 한 글자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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