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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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처음 읽는다. 『느낌을 팝니다』는 제목이 좋아서 골랐다. 책 표지에 쓰인 '지식 아닌 생활 느낀 것도 팝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느낌을 팝니다』는 사회학자로서 어려운 글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글이 담겨 있다. 대체로 난해한 이론의 글을 읽으면 생각이 딴 데로 가는지라 우에노 지즈코의 다른 책을 읽기 전 훈련을 하는 기분으로 슬렁슬렁 읽었다.(힘들게 쓴 글일 텐데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따분한 내용이 아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쓰인 글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만있자. 쉬운 말인데 자꾸 무언갈 생각하게 하는 멋있는 말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말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하고 싶지 않은 걸 생각할 수밖에. 이불, 커튼 빨기. 남의 눈치 보기. 일찍 일어나기. 돈 이야기하기. 아쉬운 부탁하기. 수학 문제 풀기. 의무감에 사로잡혀 책 읽기 등등이 싫은 일이다. 더 쓰게 싶은데 그렇게 된다면 글이 지루 지루하게 길어질 것 같아 생략.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이렇게나 많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단 하나 있다. 지즈코 씨의 글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늦은 오후에'에 담긴 마음처럼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하고 싶다. 공부를 많이 해서 대학교수로 살아가는 사회학자의 소원치고는 소박하다.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머릿속에 든 게 별로 없는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오후를 사랑한다. 공부를 하고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느낌을 팝니다』는 '생각나는 것, 좋아하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싱글의 현재'라는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좋아하는 것'에 실린 글들이 좋다. 글쓴이가 좋아하는 것을 썼으니 읽는 사람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해가 지는 것을 책장에 꽂힌 책을 보는 것을 가끔 하이쿠를 읽는 것을 나 역시 좋아한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늘어놓는 글이어도 읽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읽을 수 있다. 『느낌을 팝니다』는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다.

친구가 적었다는 고백에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학자로서 가지는 소신을 솔직한 언어로 들려준다. 실제 우에노 지즈코는 싱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나이가 들었을 때 생기는 두려움을 말하기보다 현재를 즐기며 살 것을 주문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족묘에 묻힐 수 없다는 말을 들어도 담담하다. 명절에 내려갈 친정이 없어도 유쾌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휴를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책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솔직한 위로들이 담겨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만 책으로써 소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혼자 목욕물을 200리터 받아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나온다. 소박한 고민이다. 나이 드는 것은 주눅 들 일이 아니라는 격려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를 쭉 펴고 살아갈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좋은 느낌을 사서 내일은 기분이 상쾌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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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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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인상으로 남는다. 정용준의 소설 『유령』은 그의 단편 「474번」이 원작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는데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를 홍보하는 작은 책자가 딸려 왔었다. 책자는 소설집에 실린 첫 번째 단편 「474번」을 실어 놓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흥미로운 소재였다.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사형수의 이야기였다. 사형 집행 전에 그는 꽃게찜을 부탁하여 먹는다. 그가 꽃게 살을 발라 먹는 장면에서는 침이 고였다. 음, 괜찮은데 하고는 책을 주문해야지 했지만 잊어버렸다. 사는 게 뭐 다 정신없고 바쁘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을 읽어간다는 일이.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기사를 보고 다음 내용을 짐작하고 만다. 거짓말과 이미 일어난 일을 다루는 일을 지켜본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어나간다. 묵묵한 마음이 되어. 내가 읽어주지 않으면 누가 읽어줄까. 매일같이 신간 소설이 나온다. 이 세계의 소설가들은 지치지도 않나 보다. 혹은 지쳤지만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아니면 그 자신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소설을 쓰고 있는가 보다.


정보 없이 첫 문단을 읽어 나갔다. 어라, 이거 어디서 읽은 소설인데 하고 보니 소설의 마지막에 ‘이 소설은 단편 「474번」을 개작한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실려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기억력은 아직은 쓸만하다니까 하며 순식간에 읽어 나갔다. 『유령』은 사람을 열두 명이나 죽이고도 좀처럼 살해 이유를 말하지 않은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보다 더 한 속을 알 수 없어 무서운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형수로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서 보내는 그를 담당 교도관 윤은 호기심을 숨겨가며 관찰한다.


다가오면 죽인다.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자는 전부 죽였다고 말하는 474. 그와 이야기할 때마다 자신의 내면까지도 탐할 것 같은 눈동자를 보고도 윤은 질문과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숨겼다고 생각하지만 474의 눈에는 자신을 향한 끝없는 의문이 보일 뿐이다. 474는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가족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존재한다.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한 여자가 접견 신청을 해온다. 누나.


『유령』은 악을 저지르며 악의 화신이라 자인하는 자에게 구원의 방법은 있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그가 혹은 그들이 악을 행하기까지의 과정을 건조하게 나열하면서 죄를 용서하는 자는 존재하는가 역시도 묻고 있다. 신이 있다면 474의 의문대로 왜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정의와 화해, 신념, 양심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오랜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니체의 말을 빌려올 것도 없이 『유령』은 스스로를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 벌이는 실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폭력과 이해 없는 의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474. 소설의 후반부에 474는 수감 번호 대신 신해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의 누나라고 하는 신해경으로부터. ‘유령’으로 살아가고 죽고자 했던 474는 해경의 등장으로 이름을 부여받고 괴물이 된 자신을 들여다보며 세계를 등진다. 괴물의 탄생과 죽음의 연대기를 그린 『유령』에서 나는 또 한 번 살아 있음의 증명인 식욕의 카니발 장면을 만난다. 괴물에게도 허기는 있고 간직해야 할 맛의 기억이 있다. 괴물의 소멸 앞에 인간은 한 끼의 밥을 마련해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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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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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파락호로 불리는 성형은 1648년 무자생 쥐띠이다. 두역(천연두, 마마)을 앓은 세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비는 북벌에 뜻을 두어 임경업 장군을 따라 길을 나섰지만 소식을 알지 못한지 오래이다. 성형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기생방에 들어앉아 세월아 네월아 지내며 스승이라 불리는 미수 영감의 심부름이나 다닌다. 우암 송시열이 어떠한지 보고 오라는 미수의 명으로 길을 나서다 훗날 숙종이 될 소년 이순을 만난다. 그때부터 성형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성석제의 장편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는 헌책방에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을 만난 것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십만 원을 부른 주인에게 오만 원에 하자며 결국엔 칠만 원에 전집을 사서 한동안 잊어버렸다. 이사를 하며 펼쳐본 전집에서 발견한 한 권의 복사본에서 ‘소설’은 발견된다. 누군가들에게 의해 쓰이고 붙이고 잘라졌을 ‘소설’은 시대가 흐르고 흘러 헌책방에서 먼지를 먹고 있었다.


소설. 小說. 작아서 가벼운 이야기. 황당하고 우습고 처절한 이야기는 밤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으로 여인들이 둘러앉아 심심 파적 읽는 것으로 돈이 조금 있으면 전기수에게 쥐여주고 한시름 세상을 잊어보려 하는 것으로 소설은 그 이름값을 했다. 우는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할 요량으로 할미가 제 손자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곶감이라고 할 때부터 소설은 작지만 큰 세계의 일을 그리는 훗날을 도모하는 이들의 슬픔을 그려 주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진짜와 가짜가 어우러지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전집 안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 속 주인공 이순과 성형이 그리는 꿈으로. 송시열 선생의 집에 갔다가 개 취급을 받으며 개 짖는 소리를 내고 개똥을 먹으며 창피를 당하고 있을 때 성형을 구해준 건 어린아이, 꼬마였다. 호형호제를 하자며 먼저 수작을 부리며 성형에게 친한 척 구는 꼬마가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이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성형은 그저 미색이 뛰어난 아이와 연을 맺으며 기생방에 앉아 음주와 가무를 즐길 요량이었다.


현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13세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성형은 꼬마가 왕이 되고도 연을 끊지 않고 왕이 부르는 대로 달려가 어린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 『왕은 안녕하시다』의 이야기는 폐위되었던 인형왕후가 궁궐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그 사이에 서인과 남인의 대립으로 인한 당파 싸움과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처참한 백성의 고단한 삶을 그린다. 북벌에 실패해 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갖은 공물을 바치고 대국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조선의 비애를 다룬다.


아니, 나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뭐라고 임금의 지척에서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왕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였다. 또 꼬마가 내게 먼저 형제가 되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내게 나도 잘 모르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 왕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우가 그걸 원한다면.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조선 건국 때 온건 개혁파로 분류되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한 사림은 성종 때에 중앙 정치에 등장했다. 그 후 훈구파와 대립해 사화를 입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그들은 선조 시기 중앙으로 복귀해 권력을 차지했다. 사림 은 지역과 학문의 경향에 따라 여러 붕당으로 갈라졌다.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이 죽자 그의 어머니인 조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를 두고 치른 예송 논쟁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현종이 왕에 오른 후 효종의 왕비 인선 왕후가 죽고 시어머니 조대비가 상복을 입을 기간을 두고 또 논쟁이 펼쳐졌고 1년 복을 입을 것을 주장한 남인이 승리해 실권을 잡았다. 예법을 따지는 논쟁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인과 남인의 첨예한 정권 장악의 욕심이 숨어 있는 사건이었다.


숙종 이순이 왕으로 집권하던 시기에는 예송 논쟁과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진 정치 세력의 다툼이 극심하던 때였다. 꼬마 이순은 성형에게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성형은 곁에 아무도 둘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순을 위하여 기꺼이 날라리 형님이 되기로 한다. 처음에는 별좌라는 직함을 얻고 이후에는 왕실의 재정 관리를 맡는 내수사에 그밖에 왕이 가라고 한자리에 가서 자신도 몰랐던 신통방통한 재능을 펼친다. 그중 최고는 멍텅구리라는 검을 얻어 조선 제일의 무술 신공을 발휘하며 어쩌다 무사가 되기도 한다. 대비 마마전에 있는 나인 옥정을 발견해 연심을 품기도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옥정은 이순의 품에 안겨 정치적인 격랑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린 왕은 노회한 신하들 곁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나이를 먹으며 성장해 간다. 서인과 남인, 후에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 당쟁 속에서 강력한 왕권을 이룩하려 정권을 교체하는 환국의 파도 위에 올라타는 수고를 감행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허구의 인물인 성형의 눈을 통해 이순이 왕으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언어로 그리고 있다. 왕의 곁에서 왕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켜질 듯 깨어질 듯한다. 급작스러운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성형이 모시는 스승들이 귀양을 가거나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왕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건 여전히 신하들이었다. 신하들이 귀양 간 송시열처럼 왕을 우습게 알거나 삼복처럼 왕의 여자를 넘보아서가 아니었다. 신하라는 것들이 한결같이 무능하여 국사를 제대로 처결하지 못하는 것, 신하들끼리 이전투구와 세력 다툼으로 날을 새느라 민생과 왕토가 피폐해지는 것, 도성과 지방의 신하와 수령들이 가렴주구로 백성을 등쳐먹어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나라를 저버리거나 역질과 굶주림으로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 부패한 신하들 때문에 살림이 거덜 난 나라에 외척이 쳐들어 오는 것이 왕위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다.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왜 하필 숙종 때의 일을 성석제는 소설로 불러온 건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치열한 예송 논쟁과 환국의 중심에 있던 왕이었다, 숙종은. 희빈 장 씨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하들의 힘에 좌지우지되어 정권을 손바닥 뒤집듯 교체한 여자 치마폭에 쌓인 줏대가 없는 왕으로 그려졌다, 이순은. 소설은 이름 그대로 작은 이야기를 펼쳐 놓는 역할을 한다. 역사가 증명하지 못한 사관이 미처 적지 못한 세세한 장면의 틈으로 소설은 비집고 들어간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왕을 이름난 정승집 개보다 못하게 여기는 신하들의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으려는 왕이었음을 소설에서나마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 곁에 신분은 낮지만 머리는 좋지 않지만 입만은 자유자재로 놀리고 후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비기로 무공을 연마한 성형이라는 인물을 두어 혼란한 조선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 한 인간의 노력과 꿈을 그리고 싶어 했음을 상상해 본다.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 왕자를 원자를 삼을 것인가는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왕은 안녕하시다』에서 줄곧 성형은 백성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가뭄과 흉년, 역병으로 이어지는 흉난에 백성들은 굶어 죽는다. 대동법을 시행했지만 간악한 관리들의 등쌀에 스스로 도적이 되기도 하는 등 백성들의 삶은 편치 못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왕은 안녕하시다고 말하는 이에게 왕은 안녕하신가라고 반문하고 그런데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성형은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김만중을 만나 이야기책을 받아든다.


“내가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볼 수 있게 자네가 직접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나?”

“불학무식한 제가 문자와 문장과는 담을 쌓았으니 쓸 수가 없지요.”

“문자와 문장? 세종 임금께서 만들어주신 글로 쓰면 되지 않나? 초동목부며 규방의 여인들로 모두 아는 걸 자네 또한 알고는 있겠지?”

“그것도 글재주가 있어야 쓰는 게 아닙니까?”

“진실함과 굳센 믿음이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오래도록 전해지며 천년만년 사람들을 끄는 향을 풍기는 게 패설이라네.”

……겉장에 ‘구운몽’이라는 제목이 날아갈 듯 힘찬 서체로 쓰여 있었다.

“이건 한글로 되어 있어서 저도 읽을 수가 있겠네요.”

“조선 사람이 조선의 글자로 된 것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가 돌아가는 길에 이걸 읽고 내 어머니처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에게 읽게 해주면 고맙겠네.”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흔하게는 잡소리, 허구가 가미된 우스갯소리, 농담으로 심심풀이용으로 지어진 이야기, 소설은 태어나는 순간 신분이 정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귀한 위로가 되어 불리고 쓰였다. 말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아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던 시대에 구비로 전해진 이야기는 훗날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진다. 성형은 김만중의 뜻인지 자신의 깨달음인지 모를 힘으로 책 한 권을 남긴다. 꼬마 임금 이순과 파락호 성형의 이야기는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책이라면 환장하는 어느 사람의 손에 의해 미래의 독자의 손에 쥐어질 날을 위해 잠자코 먼지를 양식으로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왕과 백성들이 공평과 사랑을 말하며 살아가는 시대를 꿈꾸며 안녕을 이야기한다. 힘이 없는 왕은 왕이어도 안녕하지 못하고 그런 왕을 위해 살아가는 백성의 삶 역시 편하지 못하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던 2019년이라는 미래를 갖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착한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쓰는 인간의 믿음에 대해 전한다. 살아남으라는 성형의 마지막을 되새긴다. 살아남아 누구에게 뭔가를 남기는 자가 되어 혹독한 시절을 견뎌야 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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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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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떠나고 남은 일은 많았다.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건 집을 치우는 일이었다. 냉장고 문을 먼저 열었다. 그 안에는 초코빵, 김치, 고춧가루, 각종 장류, 어묵, 생선들이 그득그득했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하려고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한가득 빻아와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그해 겨울 엄마는 김장을 하지 못했다. 한 번 떠나면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상한 음식은 버리고 먹을 수 있는 건 챙겨왔다. 그중에는 미숫가루도 있었다. 몸에 좋은 건 전부 넣었다며 추석 때 나에게 주고도 남은 것이었다. 엄마와 같이 산 동생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가 바로 해주었다고 한다. 더운 여름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는 늙은 호박을 사서 자르고 끓여 주었다고 한다. 질투가 나고 서러웠다. 호박죽. 좋아하지도 않은 음식인데도 샘이 났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는데, 어른들 말은 틀린 것이 없는데도 여전히 마음 한 쪽이 아리고 시리다. 엄마를 떠올리면. 울지 않으려고 한다. 우는 건 쉬운 일이므로. 대신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오랫동안 기억이나 추억을 붙들고 있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잊혔던 그리움과 기쁨이 생각 나면서 서글픈 마음은 사라진다. 엄마는 찹쌀떡을 좋아하고 이가 튼튼해 마른 오징어를 즐겨 먹었다. 돈이 생기면 옷 사러 가는 걸 신나했고 쓰지도 않을 거면서 살림살이를 사서 모았다. 주말이 되면 전화를 걸어와 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마음껏 좋아해 주었을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즐거운 얼굴로 지내고 있으니까.


마스다 미리의 『영원한 외출』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를 기록한 책이다. 자식이 없는 삼촌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났고 암 진단을 받은 그녀의 아버지가 별들의 나라로 갔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내일의 일은 모른다. 마스다 미리는 차분한 그녀의 언어로 죽음이 남긴 허무를 어루만진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럼에도 배는 고프고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빼앗긴다. 삶의 곁에는 죽음. 죽음 곁에는 삶. 두 세계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인데도 슬픔에는 눈물을 흘리고 기쁨에는 기꺼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한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전부 읽은 나에게 있어서는.


마스다 미리를 좋아해서 그녀의 책이 나오면 바로 산다. 『영원한 외출』이 나온 지는 알고 있었다. 선뜻 사지 못했던 건 책의 소개를 미리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에세이와 만화에 등장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무뚝뚝하지만 딸들을 위해 만들기를 해주고 성질이 불같아서 외식이라고 할라치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대로 돌아와 버리는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독자인 나는 국경을 넘어 일본 가정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영원한 외출을 했다니. 책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럼에도 마스다 미리가 받아들인 슬픔의 무게를 함께 이기고 싶었다.


책을 받아들고 소중한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스무 편의 이야기에서 나는 감동과 기쁨과 슬픔을 느꼈다. 공감까지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일은 돈 얘기를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돈과 서류 이야기. 절차와 기다림.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들. 눈물을 흘리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일이다. 모든 절차와 서류 작업이 끝나고 빈 벽에 기대어 잠이 들 때 한없이 밀려온다, 서글픔의 시간은. 엄마는 두 대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음식들이 가득했고 밥통도 열 개나 되었다. 전기 프라이팬은 왜 그리 좋아했는지. 식구도 우리 셋뿐이었는데.


나는 그의 작품전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언제였던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 사람은 혼자 공원을 걷고 있었다. 그때, 흰나비 한 마리가 계속 뒤를 따라왔다고 한다. "이별 인사를 하러 와주었네." 생각했단다. 멋진 얘기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까지 팔랑팔랑 춤추는 봄 나비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가 사람을 강하게 한다.

(마스다 미리, 『영원한 외출』中에서)


『영원한 외출』을 읽는 동안 슬프지 않았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책만 읽는 걸 한심해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땐 돈도 없었을 텐데 할부로 백과사전을 사주기도 했다. 슬픔은 나중의 일이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건 누군가 자주 그 사람을 떠올려 주는 일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미숫가루를 타 먹으며 찌개에 고춧가루를 넣으며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온 뒤 잘했어라고 말해줄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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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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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소설들은 1970년대에 쓰였다. 1981년에 『이민 가는 맷돌』로 책이 나왔고 절판되었다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그 사이 소설가 박완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은 새 옷을 입고 두툼한 책으로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다. 새삼 나의 곁을 떠난 이를 추억하는 힘은 그가 남긴 글을 읽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시절을 같이 살았으나 내 곁에 없는 이를 그리움 대신 애틋함으로 보듬을 수 있는 힘은 그가 남긴 문장을 읽고 또 읽어 보는 것으로.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없는 나를 누군가는 문장으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는지.


나이 마흔이 되어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소설가 박완서의 삶을 한 번 더 추억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하루를 끝낸 선생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녁 불빛 아래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갔을 시간을 상상한다. 어머니가 간절히 바랐던 신여성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간 그해 6·25 전쟁이 터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미군 부대에 있는 PX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박수근을 만났다. 생활에서 오는 피로감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갈등했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소설로 써 내려갔다.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이 된 『나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생의 딸 호원숙 작가가 쓴 서문에서는 소설가 어머니의 일상이 담겨 있다. 알라딘 난로의 불이 아깝다고 그 위에 카스텔라를 구워 주시던 저녁에 쓰인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소설들. 짧은 소설은 화장품 사보에 실려 적지 않은 원고료를 소설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 돈을 아끼지 않고 가족에게 쓴 어머니를 기억하는 딸의 글을 읽는다. 선생이 직접 밝히는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쓰게 된 계기와 더 이상 짧은 소설을 쓰지 않게 된 저간의 사정이 연이어 이어진다. 딸과 어머니의 글에서 가족이 누리던 따스함을 상상한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짧은 소설은 가족, 결혼, 이웃, 집이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놀랍도록 빛난다. 소설을 읽는 쾌감을 선사하고 70년대의 풍경이지만 지금의 시간과도 연결이 되어 공감과 탄성을 자아낸다. 한 편 한 편 모든 이야기가 그곳과 여기를 연결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은 같은 불안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간다. 결혼 생활의 고단함, 집을 구하는 어려움, 각박해진 현실을 그리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읽어가는 시간. 선생은 떠났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물기 어린 시선이 담긴 소설을 읽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이웃에게 인사를 해 보는 것이다.


"아범아, 그리고 어멈도 듣거라. 여기처럼 좋은 학군은 다시없을 게다. 전번 학교도, 그 전번 학교도 너희들은 부잣집 아이만 반장 시킨다고 얼마나 불평이 많았니? 그게 너희들의 오해든 아니든 듣기 싫었었는데 이 학교는 얼마나 좋으냐? 조오기 들판에 무허가 오두막에 사는 아이가, 글쎄 길수 반 반장이라지 뭐냐? 길수는 그 아이를 깊이 좋아하고 있단다. 나도 그 아이가 좋다. 길수를 그 아이와 오래 사귀게 하고 싶고 그 좋은 학교에서 졸업시키고 싶다. 난 이사에 반대다."

할머니가 그때처럼 권위 있어 보인 적도 없습니다. 아빠, 엄마가 감히 반대할 엄두도 못 낼 만큼 권위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내 편이라는 건 너무도 든든한 일이었습니다.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할머니는 우리 편」中에서)


알라딘 난로 곁에서 쓰인 소설은 시대를 건너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화장품을 사고 받았을 책자에서 만난 소설들은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용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 이웃의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는 소설을 읽으며 다음 호를 기다렸을 그이들의 얼굴은 작은 환호로 더욱 빛났을 것이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문학이 가진 힘의 위대함을 겨울의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지는 풍경을 건너다보며 느낀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단순한 기쁨은 박완서라는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함으로 바뀐다. 탄생을 축복하고 소멸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문학으로만 가능하다. 이웃의 안부와 건강을 염려하는 선생의 소설 속 인물이 있어 겨울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선생님, 그해 봄과 겨울의 시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삶이 주는 아득함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때를 떠올립니다. 정직한 시간 앞에서 망각보다는 그리움의 힘으로 선생님이 남기신 글을 읽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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