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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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의 제목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새로운 직장 갑질에 관한 이야기인가. 매일 도시락을 그것도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니, 말세다 말세. 괴로운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아서 책이 나오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책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 아니구나. 오해였구나. 요즘의 내 상황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인 것 같아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사 생활은 힘든 법. 더구나 요즘 같은 취업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일본이 배경이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연예인들이 한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고 회사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위해 휴게 시간을 주고 그 시간에 보드게임을 한다. 직급을 따로 부르지 않고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했다. 그 회사에서는 사장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더라. 옷차림도 개성적이었다. 후드티를 입거나 개량 한복을 입은 직원들. 카메라가 돌아가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정은 밝았다. 


나는 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나 힘들어 죽겠소 하는 표정을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컴퓨터 작업에 서툰 연예인에게 몇 번이나 친절하게 웃음을 보이며 방법을 알려준다. 내내 웃었다, 그 회사 사람들은. 의외로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웃는 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희귀한 존재로서 천연기념물쯤 되겠다. 무표정으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지시를 한다. 


내가 속이 꼬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맞다, 나 속 엄청 꼬인 사람이다, 인정한다. 회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 주제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웃어 버렸다. 물론 이 어려운 시기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자신이 왜 자랑스럽지 않은가. 자신감과 자부심이 듬뿍 든 회사 취업기를 들으며 대단하시네요라는 배알 꼴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회사 인간. 실제 컴퓨터 사용법을 모르는 사원을 뽑지도 않을거니와 모른다고 물어봐도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온다. 카메라 꺼진 회사의 풍경은 서늘하고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파견 직원 사와다 미치코와 부장 쿠로카와 일명 앗코 짱이라는 별명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앗코 짱은 장신의 가수 와다 아키코와 닮아 앗코 짱으로 불린다. 물론 부장 앞에서는 앗코 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와다는 점심 먹을 상대도 없고 회사 근처에 음식점이 없어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외근 업무를 나갔다가 돌아온 부장은 사와다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평소에는 말도 섞지 않았다. 사와다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자신이 도시락을 대신 먹겠다고 한다. 


톳과 고기 감자조림과 콩자반을 밥과 함께 담은 도시락을 건넨다. 그때부터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 바꿔 먹기가 시작된다. 이런 이야기는 안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바꿔서 먹게 한 이야기. 하필 그날 가난한 아이는 처음으로 소시지 반찬을 싸왔다. 그걸 모른 선생님이 바꿔 먹게 해서 가난한 아이는 매일 먹던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유즈키 아사코의 앗코짱 시리즈 1탄인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주일 동안 앗코짱과 사와다는 서로의 점심을 바꿔서 먹는다. 앗코짱의 주도하에 벌어진 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와다는 앗코짱의 시간을 경험한다.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정말 좋겠다 하는 모든 면을 가지고 있는 앗코짱. 카리스마 있고 다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눈치도 빨라 다른 이의 곤란을 쉽게 파악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앗코짱은 사와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려고 한다. 파견 사원 사와다는 자존감을 찾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은 네 편의 이야기를 건넨다.『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보다 건네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예쁜 도시락을 감싼 손수건을 풀면 그 안에 따뜻하고 기발하고 싱싱하며 기운 넘치는 네 편의 추억의 맛이 담겨 있다. 지치고 자격지심 때문에 매일 눈물을 흘리며 잠드는 당신에게, 좋은 걸 좋게 보지 못하고 삐뚤게 보는 나에게 어깨를 쭉 펴고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가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안에 있다.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만두고 싶다_앗코짱의 야식」의 제목은 내 일기장을 훔쳐본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격하게 공감했다. 


먹어야 산다. 한 끼라도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 먹어야 어른이라고 말한다. 혼자 먹을 도시락을 쌀 때와 부장에게 주기 위해 도시락을 쌀 때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사와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을 구경하며 이건 소설이잖아, 실제는 그렇지 않아, 저런 부장이 어디 있어, 허무에 빠지긴 했다. 카메라 돌아가는 회사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허구의 세계이지만 앗코짱의 시간에 나를 끼어 놓고 싶었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상처받고 아픈 이들을 위한 특별 도시락 세트 같은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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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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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의 소설 『거지 소녀』는 나를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유년으로 데리고 간다. 온전한 추억이 될 수 없었던 겨울의 날들이었다. 그 시절의 경험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해질 수 없다면 글로는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 시절을 글로도 쓰지 않았다. 기억의 벽장 안 맨 아래쪽에 접어 두었다. 기쁘고 좋은 일로 덮어 두었다. 그런 일들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기에 시도 때도 없이 기억은 들춰졌다. 나는 떠올리지 않았는데 문학이 소설이 시가 기억을 데리고 왔다. 『거지 소녀』를 읽으며 내내 겨울이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로즈. 『거지 소녀』의 주인공. 온타리오주 핸래티에 있는 상점 뒤편에서 아버지, 새어머니, 이복동생과 사는 여자아이. 『거지 소녀』는 로즈가 새어머니인 플로의 주도 아래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장엄한 매질」은 로즈의 가족사를 간단하게 보여준다. 로즈가 이복동생 브라이언에게 가르친 험한 말에 대한 추궁에서 시작된 플로와의 신경전은 결국 아버지까지 개입하게 만든다. 매질이 장엄할 수도 있음을 로즈의 아버지는 보여준다.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매질이었다.

겨울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나가자마자 아빠는 여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미술대학에 다닌다고 했던 첫 번째 여자는 질투심이 심했다. 그때 나는 만화로 된 성교육 책을 한 권 구해서 읽고 있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생기는 몸의 변화를 코믹하게 다룬 책이었다. 단지 성(性)이라는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나를 이상한 애 취급했다. 여자는 내가 읽으면 안 되는 책을 읽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자고 있던 나는 몸이 들려져서 맞았다. 먼저 뺨을 세차게 맞았다. 너무 아파서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여자 말만 듣고 어린 딸을 때린 아빠와의 신뢰 관계는 깨졌다.

「장엄한 매질」을 당하면서 로즈는 성장한다. 『거지 소녀』는 단편 열 편이 모두 한 이야기를 이룬다. 각각 따로 읽을 수도 있는 소설들은 하나로 모인다. 시골 마을에서 여자아이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앨리스 먼로는 삶의 낭만이란 없음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낭만이 무언가. 간신히 유년을 지나왔지만 청소년기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좁은 시골마을에서 도덕성, 정의, 용기 따위는 변소에 쌓인 똥보다 못한 존재이다. 아이들은 순수함과 동심의 상징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특권」에서 남매간에 행해지는 불온한 놀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로즈는 그런 상실과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대체로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앨리스 먼로, 「특권」中에서, 『거지 소녀』)

로즈가 살면서 겪는 놀라움이란 부끄럽고 기막힌 일들로 인한 것이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행복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인생은 어느 방향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행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침에 무얼 먹냐는 교사의 물음에 로즈는 기발함을 가장한 거짓말을 한다. 자몽 반 개를 먹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몽 반 개」에서 로즈는 흉악한 아이들 틈에서 버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인기 있는 애에게 사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실제 앨리스 먼로는 시골에서 자랐고 책을 좋아했다. 좀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앨리스 먼로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장학생으로 대학에 간다. 로즈 역시 상점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

『거지 소녀』는 로즈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지만 그녀의 새어머니 플로와의 사건도 중요하게 다룬다. 열두 살 때 플로는 다른 집으로 보내진다. 학교를 보내달라는 조건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도망쳐 핸래티에 있는 장갑 공장에서 일했다.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 아버지도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 같아야 하며, 지도가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 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앨리스 먼로, 「자몽 반 개」中에서, 『거지 소녀』)

영리하게도 앨리스 먼로는 『거지 소녀』를 여성주의 소설로도 성장 소설로도 읽을 수 있게 곳곳에 암시들을 배치해 놓았다. 플로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여성주의 소설로. 로즈의 인생을 따라가면 성장 소설로. 어떻게 읽느냐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앨리스 먼로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다채로운 세계관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 자신이 살아내야 했던 경험을 아프지 않게 소설로 복원해낸다.

공장 지대의 마을이었다. 옆집과 앞집의 경계가 없는 곳이었다. 어린이날이 되면 이웃집의 아무나와 손을 잡고 놀러 갔다. 그 안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무얼 하냐는 질문 끝에 영어 과외를 한다고 했다. 로즈가 아침으로 자몽 반 개를 먹는다고 말한 것처럼.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거짓말일게 뻔한 말을 해댔다. 마을에 사는 아이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부끄러움보다 무시가 두려운 시기의 일이었다.

유년은 완성되지 못한다. 로즈는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녀가 사는 마을로 돌아가 플로와 잠시 지내기도 한다. 소설은 로즈의 일생에 나의 유년과 지금을 겹쳐 놓는다. 로즈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펼쳐지는 기억의 어두운 저편은 나를 쓸쓸하게 만들어 놓고야 만다.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그게 어떤 책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무턱대고 때린 남자를 떠올리게 했고 거짓말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뻔뻔한 꼬마를 기어이 불러냈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앨리스 먼로, 「섭리」中에서, 『거지 소녀』)

『거지 소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관한 소설이다. 거짓말을 해서 위악을 떨어서 아픈 타인을 모른척해서 나를 나답게 만들지 못해서 가져야 했던 부끄러움을 농밀하게 표현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 로즈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내내 어둡고 슬프고 절망으로 둘러싸인 채 살아왔다는 증거이므로. 시를 베껴 쓰면서 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질문하던 미스 해티의 진심까지 헤아리려고 한 로즈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 무엇이든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문학으로 이겨낸 앨리스 먼로. 버티기 싶어서 책을 읽고 장학생이 되어 마을을 떠난 로즈. 그건 오해라고 말하지도 못한 채 맞고 거짓말로 가난을 감추고 싶었던 나. 우리들은 『거지 소녀』의 세계에서 조우한다. 국경을 넘고 언어의 장벽을 부수어 세계라는 문학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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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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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세계가 당도한다면 어떨까. 인간의 숙명은 죽음. 그걸 거부한 시간을 살아간다면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김성중의 소설 『이슬라』는 죽음이 사라진 이후를 그린다. 열다섯 살에서 시간이 멈춘 '나'는 백 년 동안 사춘기를 살아간다. 성장이 멈춘 채 어린 얼굴 그대로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그런 세계가 도래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이었고 숙모는 8개월 된 태아를 뱃속에 넣고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삶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곡기를 끊었지만 죽어지지 않았다. 숙모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사막에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은 비참한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은 사막에 비가 내릴 때 집이 무너져 죽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죽음만을 바라는 삶으로 변화했다. 마을의 신령한 선인장을 잘라 즙을 먹이면 죽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버지는 선인장을 잘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이 되고 공식적인 죄수가 되었다. 아무도 죽을 수 없는 곳에서 삶은 형벌이 되었다. '나'는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가진 물이 바닥나자 쓰러졌다. 술사로 불리는 이탕카와 아야가 목숨을 구해주었다. 아야와 함께 도시로 여행을 시작했다. 도시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사람들은 죽을 수 없다는 것에 환호하는 대신 중독과 절망에 빠졌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간과 날짜는 흐르지만 계절은 그대로였다. 꽃은 핀 그대로였다. 완벽해질 줄 알았다. 죽음이 사라지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성중이 만들어낸 『이슬라』의 세계에서는 절망만이 남았다. 죽기 위해 서로를 고문하고 괴롭힌다. 유사 죽음을 가장하고 육체가 죽을 수 없다면 정신이라도 죽여야겠다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묻는 소설 『이슬라』에서 구원은 없다는 비관의 메시지를 받아든다.

섬과 고립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슬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처럼 도착하여야 할 이슬라.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확실하고 위대한 축복은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너무 먼 세계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는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노인이 곡기를 끊는데도. 죽음이란 슬퍼하고 그립고 애달픈 일이 아니라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김성중은 마법 같은 세계에서 전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자라지 않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반응해 오고 나는 그걸 모른 척한다. 어른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은 어린이의 연령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취한 선택이다. 죽음이 사라진 『이슬라』의 세계에서 도서관은 도피처 혹은 안식처로 그려진다. 그 안에서 백 년도 못 살고 죽은 인간들이 남긴 책을 무한의 삶에 버려진 사람들이 읽는다. 당신들이 저쪽으로 넘어가도 나는 이곳에 남아 책을 읽는 것으로 불멸을 견디겠다. 『이슬라』는 죽음만이 우리의 절망을 없애는 유일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한다. 나는 구원받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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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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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장혜령, 『사랑의 단상들』, 「어둠이라는 권리」中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과 함께 한다. 눈 뜨면 전날 읽었던 책을 펼친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워밍업. 전자책 리더기로 책을 읽은 뒤부터는 몇 시간이고 어둠 속에 누워서 책 읽기가 가능해졌다.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느라 손목이 아프지도 않다. 암막 커튼 아래에서 게으르게 문장을 훑는다. 바깥세상의 안위는 잊은 채 이야기를 따라간다. 종종 어둠 속에서 읽은 책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 탁, 하고 꺼져 버린다. 서사는 희미해지고 문장은 휘발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는 것이다. 


장혜령의 산문집 『사랑의 단상들』을 읽는 내내 내 방의 불은 꺼져 있었다. 웬만하면 형광등을 켜지 않는 방. 스탠드 불빛 아래이거나 그마저도 꺼져 있는 방에서 책을 읽었다. 십 년 동안 발표할 지면을 기약하지 않으며 쓴 글을 모았다고 했다. 작가가 되려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으리라. 세상으로 내보내기에는 완벽하지 않은 글. 여행의 기록과 일상의 기억을 모아 문장으로 썼을 그 방도 내내 어두웠으리라. 『사랑의 단상들』은 사랑이란 주제로 묶어가는 끝나지 않은 시다. 에필로그로 글은 끝나지만 사랑의 속성처럼 이 책은 끝나지 않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혼자라서 가능 한 일. 그럼에도 외롭지 않은 일. 책 읽기는 광활한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빛 속에서 책을 읽었다, 그동안. 문장을 이야기를 놓칠까 봐.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안다. 이해한 것보다 놓쳐버린 이야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어떤 문장은 종이 위에서 번져가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흘러간다는 것을. 『사랑의 단상들』을 읽으며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좋았지만 전부를 사랑할 순 없었다. 사랑의 정의를 찾아가는 『사랑의 단상들』은 흑백 처리된 과거를 불러왔다.

 

지나고 나면 사랑이었다. 우리의 순간은. 그걸 모른 채 살아가고 죽는다. 죽으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온다는 말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만난다.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죽음을 정의하기에는 이 세계에서의 기억과 추억이 너무 많다. 일상을 견디는 힘으로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추억과 시간의 잔상을 모아 기록한다. 써야겠다는 의식도 없이 여백에 채워지는 글 때문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말하여질 수 없다. 그저 느끼다가 사라지면 수긍하는 것. 언젠가는 그게 있었지 하며 떠올리는 것. 『사랑의 단상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슬프거나 기억의 덫에 빠질 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에 붙잡혀 후회하는 동안 읽었듯 당신도 원인 모를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읽으면 되는 책이다. 우리가 읽은 책이 본 영화가 걸었던 장소는 한 권의 책이 된다. 


출근길, 합정에서 당산으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다. 내 허리 높이보다 작은 키의 꼬마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나는 전동차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아이가 어느새 내 앞에 자연스레 끼어들어 있었다. 봄이었다. 바깥의 따스한 햇살이 문안으로 들이쳤다. 그 애가 유리 문에 입술을 맞추며 뭔가를 계속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향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를 향해 교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혜령, 『사랑의 잔상들』, 「낯선 것이 우리를 호명할 때」中에서-


시시각각 나는 다른 세계로 불려간다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다

이 하루는 저 하루와 다르다

어떤 말은 듣지 않는 게 좋다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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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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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 장편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주인공 다현이처럼 나도 블로그를 한다. 블로그 히스토리를 눌러보니 2004년 12월 2일에 처음 시작했다. 그날그날의 감상을 적어 올리는 목적이었다. 블로그 기능 중 '지난 오늘 글'이 있다. 예전에 썼던 낯 뜨거운 감성 충만 주책 글을 볼 수 있다. 10년 전 오늘, 7년 전 오늘, 5년 전 오늘 등 과거 속 오늘을 만나는데 새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문장은 엉망인데다 비공개로 쓰는 글들이라 실명이 등장하고 지역과 동네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영화 감상글도 올렸는데 대놓고 영화 더럽게 재미없다, 못 만들었다는 글이 있어(이런 글을 비공개로 안 해놓고 공개로 해 놓았다, 왜 그랬냐) 얼른 비공개로 돌려놓는다.

15년 동안 한 공간을 빌려 꾸려가고 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가상의 곳이지만 한 번도 초기화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블로그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 그동안 쓴 글의 수는 1794편. 놀라지 마시라. 공개 글 보다 비공개 글이 많다. 말 못 할 고민이 있으면 글로 남겼다. 검색어로 잡히지 않기 위해 제목은 숫자로만 올렸다. 하루에 많아봐야 한두 명이 방문했다. 그러다 책 관련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닌데 이제는 하루 평균 삼사백 명이 들어온다. 이걸 매일 세고 있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방문객 수가 뜬다. 한 주가 지나면 지난주에 많이 읽은 글이 목록으로 보인다.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닌 보임을 당해 보는 것이다.

왜 시작했을까, 블로그를.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다현이는 체리새우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 비공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올리고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 은따를 경험한 다현이는 블로그의 주제를 '나'로 잡았다. 외갓집에서 체리새우를 처음 보고 예뻐서 블로그 이름도 체리새우로 정했다. 가곡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다현이는 진지충, 선비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자신만 쏙 빼놓고 대화를 하면서 은따의 세계로 들어갔다. 안다, 그 기분. 사람 앞에 놓고 자기들만 아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거지 같은 기분. 다현이는 자신을 은따하는 아이들에게 대놓고 자신을 따 시키는 거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계속 다현이를 무시한다. 그때 설아가 다가와 아이들이 다현이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현이는 튀지 않으려고 했고 조용히 지내며 중학교로 올라왔다. 설아를 다시 만났다. 설아는 자신의 그룹에 다현이를 끼워 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현, 설아, 아람, 미소, 병희가 모인 다섯 손가락이 만들어졌다. 단톡방도 만들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마 그 애들에게 체리새우 블로그를 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처럼 진지충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가장 예민하고 그래서 아픔도 최강으로 느끼는 시기인 사춘기 극강의 중학교 2학년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키는 큰데 다리는 짧고 화장품 사는 것을 좋아하는 여학생, 김다현. 그 나이답게 친구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짝남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귀염둥이. 자신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모르는 아이. 평범한 걸 거부한다기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아갈 줄 아는 소녀. 누구라도 소설 속 다현이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과 현재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아이 다현이는 지금의 나가 된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하는 어른을 위한 소설로 읽을 수 있다.

새 학기 첫날, 다섯 손가락 멤버가 정한 밉상 2위인 노은유와 짝이 된 다현이는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소설은 말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신경 쓸 만큼 시간은 많지 않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해도 시간은 모자란다. 눈치 보지 말고 습관처럼 선물하지 말고 분위기에 휩쓸려 남의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건 기본 아니냐고? 그런데 이게 은근히 하기 힘들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나 때문인 것 같고 그 애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치면 사줘야 될 것 같다. 쟤는 이상해라고 말하면 맞아, 맞아 해야지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 된 우리의 매일이다. 소설은 명랑한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현이는 비공개 블로그를 공개로 바꾼다. 닫힌 자신의 문을 연다. 친구를 오해하는 일은 이해하는 일로 가기 위함이었음을 알아간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황영미,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中에서)

은유 말이 맞다. 수능 공부하는 애들 뒷모습을 보며 연습장에 일기를 쓰고 문장을 옮겨 적던 시간을 지나 대학에 왔다. 떼로 몰려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혼자 지냈다. 친하게 지낼 뻔했던 몇 명의 사람이 있긴 했는데 멀어졌다. 같이 다니다 보면 햇살이 되어주긴커녕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시끄러워지기만 했다. 나무로 살다 보니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찾아왔다. 햇살과 바람은 혼자 서 있는 나무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그늘을 펼쳐주었다.

햇살은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제목을 빌려 왔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나는 나에게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유치하다. 그때 쓴 글들을 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어도 '지난 오늘 글'을 읽는다.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가며 내년 오늘에 읽을 글을 쓴다. 황영미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댓글을 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밝힌다. 소설가는 실제 청소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고민 글에 댓글을 달아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다. 황영미 소설가를 알진 못하지만 그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제일 좋아할 것 같다. 그랬기에 아이들의 고민 글을 읽고 진심을 다해 댓글을 썼을 것이다. 댓글은 소설이 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엄마는 당선소식으로 답장을 보내왔다는 작가의 말. 최근에 읽은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뭉클하고 가슴 시리다.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블로그에는 책 리뷰를 주로 쓴다. 일기는 일기장에 쓴다. 진짜 종이 일기장에. 책 리뷰와 일상 사진을 올리는 카테고리를 공개 설정해 놓았다. 누구라도 와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는다. 안부글과 비밀댓글로 블로그를 팔라는 글이 적히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책을 읽고 글쓰기 훈련을 한다는 심정으로 리뷰를 올리며 나무로 살고 있다.

안부글에는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쓴 글이 있다. 어떤 사람과는 오해가 생겼는데 그 사람은 그동안 내 블로그에 쓴 자신의 댓글을 전부 지우기도 했다. 다현이의 블로그 체리새우에도 친구들이 쓴 댓글과 안부글이 쌓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채리새우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이가 멀어져 자신이 쓴 글을 지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끊기도 할 것이다.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에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나를 주제로 한 블로그였다. 나의 감정과 일상을 기록하고 보관하기 위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일이었다.

다현이를 위한 블로그 꿀팁! 네가 쓴 글에 광고글이 달릴 수도 있어. 그럴 땐 신고하기 버튼을 가볍게 클릭하면 돼. 얼굴 사진은 되도록 올리지 말고. 아, 이미 알고 있다고? 멋지구나. 난 서로이웃 신청은 받지 않고 있어. 대신 네 체리새우 블로그를 이웃추가 할게. 댓글은 안 쓰더라도 좋아요는 누를게. 추천 음악도 잘 들을게.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리뷰도 정성스럽게 쓸게. 너도 내 블로그에 놀러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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