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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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첫 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편의점 알바생과 사장이 근로감독관 조진갑 앞에서 알바비로 옥신각신한다. 조진갑은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고등학생 알바생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학생은 울면서 말한다. 이런 동정이 아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고. 후에 학생은 떼인 돈 받아준다는 갑을 기획을 통해 알바비를 받아낸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돈을 받겠다는데 그걸 못 준다고 하는 어른.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알아서 합의하라고 하는 어른. 어디에도 어린 학생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란 존재는 없었다.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읽고 엮은 창비 교육에서 나온 『땀 흘리는 소설』에서도 드라마와 비슷한 장면들이 나온다. 드라마와 소설은 허구이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여덟 편의 소설을 모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부디 사회에 나가서 약자로서 고통받고 살지 말라는 다정한 선생님들의 응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가르치지 못한 것. 정규 수업을 하느라 냉혹한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미안함이 『땀 흘리는 소설』에 담겨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람이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며 나는 프로다를 외치는 초년생이 있다. 공무원 공부를 하는 두 자매의 하루 동안의 어색한 서울 입성기를 그리고 슈퍼우먼을 원하는 직장에 맞추기 위해 트윈 로봇을 주문하는 엄마가 있다. 하루라도 욕을 듣지 않으면 이상한 날로 여기며 살아가는 콜센터 직원의 수다와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꿈을 가져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이야기. 회사에서 하라는 임상 실험에 참가했다가 도리어 전염병 환자로 취급받는 회사원과 알바생을 자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까지 여덟 편에 담긴 이야기는 21세기 노동 소설에서도 최전방을 그리고 있다.

장강명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를 읽기 전까지 5인 이상 근무지는 4대 보험 가입이 필수이며 해고 통보 시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알지 못했다. 낯선 세계의 법률이었고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규율이었다. 혜미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최 과장이 얄밉기까지 했다. 김애란의 소설 「기도」를 읽으며 웃으면 안 되는데 웃어 버렸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김애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면 때문이다. 언니에게 베개를 전해주기 위해 서울대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나'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왠지 모르게 그들 모두가 서울대학교 학생처럼 느껴진다. 존경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존경심이 일어난다'라는 마음속 생각 장면 때문에.

시급 17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여섯 시간을 꼬박 일해서 3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그걸 받아서 책 사고 빵 사 먹고 옷도 사 입었다. 나의 시간과 여유는 소비로써 자꾸 빠져나갔다. 세상은 땀 흘리는 것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한 사람들 다 나오라고 그래라고 외치고 싶은 날들이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진짜 알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가 『땀 흘리는 소설』에는 나온다. 편견과 차별과 약자에 대한 횡포 없이 정의와 용기, 연대가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꾸 지치지 않고 꿈을 꾸는 것에는 어떠한 걸림돌도 없다는 것을 학교에서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젊은 세대와 읽을만한 노동 선집이 없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70~80년 대의 오래된 서고를 뒤질 수 없어 21세기에 나온 소설 중 노동과 직업을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골랐다고 한다. 과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사회는 바뀌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처우는 개선되었을까. 근로감독관이 주인공으로 활약을 펼치는 드라마가 나오고 '갑과 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의 'N 포 세대'가 유행어가 되는 시절이다. 변한건 없는데 그럼에도 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이렇게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노동에 관한 소설을 모은 『땀 흘리는 소설』이 나온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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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 수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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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전까지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과 죽음 이후에 관여할 이유도 없었다. 삶은 나의 의지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책 없는 낙관으로 나는 죽음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거나 당당한 삶의 태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편혜영의 단편 「저녁의 구애」를 처음으로 읽을 무렵에는 소설의 분위기에 빠져 인물이 느끼는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십 년 전에 알고 지낸 어른이 임종 직전이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는 김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 못했다. 김은 대체 친구가 어떻게 자신의 꽃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근조 화환을 청할 생각을 했는지만이 궁금하다. 다가온 죽음이 황망한 것보다 전화를 걸어온 이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이 가득한 주인공이었다.

「저녁의 구애」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한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은 다양한 일로 꽃의 주문을 받는다. 그중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배달은 근조 화한을 보내야 할 때이다. 친밀하지도 않았고 나중에는 자신을 비방하는 서신을 보내온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 회사를 옮길 때 도움을 준 어른이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미리 화한을 보내달라고 한다. 김이 사는 곳에서 남쪽으로 삼백 킬로미터를 가야 하는 곳이었다. 김은 오랜만의 전화에서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꽃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싶지만 모든 말들이 침묵으로 돌아 나온다. 화한을 싣고 도시로 들어가자 보이는 장례식장에서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온다.

어른이 아직이니 장례식장이 아닌 병원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며 김은 도시를 돌아다닌다. 유예의 시간을 견디며 지진이 일어난 도시에서 선물 받은 어묵 통조림을 찾기도 하고 상조 회사에서 나온 이와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내내 김의 마음속 불안을 건드리는 것은 여자의 존재였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잘 웃지도 않고 농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여자. 번번이 여자와 만남이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친구의 전화가 아니면 지금쯤 여자와 만나서 닿지 않을 말을 주고받거나 어색한 웃음을 나눌 것이었다. 어른이 임종을 맞으면 화한을 건네주고 돌아올 수 있지만 어른의 시간은 아직 이곳에 머물러 있다.

트럭이 불타고 멀리 장례식장이 보이는 국도변에 서서 김은 불현듯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방금 전 이별을 고한 자신이었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는 걸 목격한 뒤 삶이 다른 곳으로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지진이 잦은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재난에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고 곧 죽음의 땅으로 건너가야 할 누군가가 누워 있는 곳. 김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여자에게 구애의 말을 전하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랑만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의 몸짓으로 말이다. 여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을 무시하면서 때론 귀찮아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달려오는 마라토너의 몸짓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애도하는 듯 빛나는 트럭의 불타오르는 모습이 조등弔燈으로 보이는 환영을 보면서 김은 처음으로 삶의 기민한 의욕을 느낀다.

김이 그 저녁 여자에게 보이는 관심은 삶을 향한 구애의 신호이다. 살아 있으니 산 인생이었다. 의미와 긍지를 찾을 여유는 없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처럼 삶의 열의도 난데없이 발화한다. 「저녁의 구애」를 두 번째 읽은 시점에서 나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재난의 현장처럼 멀고 낯선 것이었다. 내게까지 도착할 명분이 없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김이 국도에 서서 여자에게 길고 긴 낯선 구애의 말을 하기까지의 암담함과 불안의 이유를. 마라토너의 포기하지 않는 완주와 트럭에서 솟구치는 불길은 희망은 동시에 절망이기도 하다는 것을 편혜영은 물기 없는 건조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소설가라 하더라도 인물의 절망 앞에서 그 어떠한 감정도 내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상의 모든 것을 재로 소멸시켜 버린다. 무로 변해버린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인간만을 남긴다. 살아야 하는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기까지 죽음의 고통 앞에서 오래도록 버틸 수밖에 없다. 예민한 눈으로 죽음과 삶의 공동을 그린 「저녁의 구애」를 읽으며 이제는 삶을 버틴다는 것보다 죽음으로 서서히 건너간다는 기분으로 살아가야지 생각하는 것이다. 삶의 태도를 당당히 가지지 못하는 자는 죽음 앞에서도 비겁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삶에 아부하는 것과 죽음에게 구애의 말을 펼치는 것. 고양이가 우는 깊은 밤 친밀해진 죽음의 곁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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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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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야 미우의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는 발상이 재미있는 소설이다. 국가가 나서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맞선을 추진한다. 국회에서 법안으로 가결돼서 원하지 않아도 기간 내에 맞선을 봐야 한다.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전적과 자녀, 전과가 없는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 한 가지만을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지역 내에서 무작위로 추첨하는 방식이다. 맞선을 보고 세 번 거절했을 시에는 테러박멸대에서 2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소설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간호사 요시미, 컴퓨터 엔지니어 다쓰히코, 라디오국에 근무하는 나나, 외국 여행 가이드 란보를 통해 <추첨맞선결혼법>에 맞서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국가가 저출생에 대비해 이런 법안을 만들고 국회에서 통과될 줄 몰랐다. 네 명의 주인공은 법안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익혔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는 저출산이었다. 왜 저출생이라는 말을 썼을까. 저출산이라는 말에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주체가 여성임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출생률이 떨어지는 원인을 여성으로 돌리고 있다는 뜻도 된다. 요즘 추세에는 저출생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다. 소설은 저출생의 대책으로 기혼율을 높이는 <추첨맞선결혼법>이 통과되면서 일어나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각자의 사정과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법안은 혼란을 주기도 한다. 의지력 약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요시미와 스스로를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다쓰히코는 이 법안이 마음에 든다. 요시미는 자신에게만 매달리는 어머니와 따로 살고 싶다. 다쓰히로는 국가가 나서서 결혼을 시켜준다는 생각에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서 입는 등 맞선에 기대가 크다. 나나와 란보는 만난 지 2년 째이다. 나나는 부유한 란보와 결혼해서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란보가 왜 청혼을 해오지 않은지가 궁금할 뿐이다. 란보는 마마걸인 나나가 부담스럽다. 이야기는 네 명이 얽히면서 이상한 법안에 맞서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말한다.

<추첨맞선결혼법>에는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외적인 목적이 있는 반면 일본의 군대 구축을 합법화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세 번 거절한 남녀는 강제로 테러박멸대에 들어가 복무해야 한다. 일본은 2차 대전에 패하면서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 자위대는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남녀를 테러박멸대에 복무함으로써 일본 내의 전력을 향상시키려는 꼼수를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에서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소설 시작의 신문 기사로 간략하게 나올 뿐이지만 세계 평화와 안전을 부르짖지만 뒤로는 군대 전력을 총력으로 키우는 일본을 비판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이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가를 집중 탐구하는 소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결혼과 추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결혼을 복권 당첨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소설에서라면 신랄하게 풍자할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국가의 강제적인 법안이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통과될 수도 있다. 소설은 현실을 가정하고 쓰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서둘러 결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현재란 역사를 잊은 자들에 의해 다시 과오가 저질러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의 역사가 떠올랐다면 비약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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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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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블로그를 했다. 비공개로 일기나 영화평을 올렸다. 공개로 전환한 것은 책 서평을 쓰면서부터였다. 방문자 수가 늘어나고 댓글이 달렸다. 처음에는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그랬다가 전에 달린 댓글과 똑같은 글이 달리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는 이에게 물어보니 블로그 최적화 때문에 달리는 글이라고 했다. 블로그 최적화라. 우리말인데도 아리송했다. 김세희의 단편 「가만한 나날」을 읽으며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소설은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어조로 쓰였다. 차분한 분위기가 소설을 슬프게 만들었다.

첫 직장인 마케팅 회사에 들어간 '나'의 회사 생활을 그린 「가만한 나날」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신념과 환상이 차례로 깨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각종 회사에서 보내오는 홍보물을 토대로 직접 가본 것처럼 먹은 것처럼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는 게 '나'의 업무이다. 아. 내가 검색하고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며 봤던 정보가 마케팅 회사에서 올린 것이었다니. 블로그의 주인이 직접 가서 본 현장 기록이 아니었다니. 이제 살 만큼 살아서 세상사 모든 것에 통달하고 닳고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제야 내 블로그에 달리는 복붙의 댓글과 안부 글이 이해되었다.

포털에 상위 노출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 수와 방문 횟수, 댓글의 수 등 질적인 면이 충족되어야 한단다. 후기는 최대한 광고 글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블로그의 주인의 완벽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나'는 국문과의 전공을 살려 채털리 부인을 세상에 내놓는다. 밤늦게까지 남아 채털리 부인에게 성격을 입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알 수 없는 포털의 정책으로 채털리 부인의 블로그가 저품질에 걸리고 눈물을 머금고 블로그를 닫아 놓았다. 시간이 지나 쪽지함을 열어 그 쪽지함을 열어 보기 전까지 '나'는 그저 회사 생활에 충실하고 사회적인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고 믿었다.

김세희의 첫 소설집 『가만한 나날』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회사와 가정, 관계를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신입이고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프로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는 인물이 있고 결혼식도 못 올리고 동거 먼저 하면서 엄마에게 그 사실이 밝혀질까 봐 두려워하는 화자가 있다. 자신은 이제 심리 치료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며 찾아온 옛날 상사를 보며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데 끝내 입을 다무는 주인공까지. 소설을 읽어 나갈수록 이건 소설 속 이야기잖아, 괜찮아, 숨 쉬어를 속삭여야 했다.

회사나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다. 날 좀 내버려 둬, 말하고 싶은데 그 판에 끼지 못하면 낙오되고 부적응자로 낙인찍힐까 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색한데 농담을 하고 애써 한 농담으로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지는 시간. 힘들게 졸업하고 더 힘들게 취업해서 펼쳐진 세계란 불편하고 두려운 시간을 내내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김세희는 과장하지도 발랄을 가장하지도 않으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을 이야기한다. 이 차분한 이야기꾼의 등장으로 현실을 사는 나는 짐짓 여유를 부려본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가만한 시간들로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이니까 웃고 떠드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밤이면 내 머리를 때리고 조용한 거리에서 악을 쓰고 싶었다.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가만한 나날』은 꿈이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꿈을 가져서 아픈 청춘의 이야기를 낮은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들이 꾸는 꿈이란 방 두 개에 누가 쓰던 살림이 아닌 새것으로 몇 가지를 사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밤에 한 사람이 깨어 있어도 다른 이는 잘 수 있는 공간을 꿈꾸는 것. 누구라도 그들의 꿈에 상처를 주거나 깨뜨릴 수 없음을 김세희는 가만가만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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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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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자다가 번쩍하고 눈을 뜨는 순간이 있다. 어두운 방에 누워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예전만큼 이제 꿈에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쁠 것도 없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정해진 시간에 씻고 버스를 타러 가야 하고 일을 하고 돌아와 정리를 하다가 책도 읽어야 한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틈이 생기기도 한다. 버스에 앉아 늙은 여자들의 수다를 듣다가 천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꽃나무를 보다가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이 시간 함께 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자다 깨어나 왜 여기에 엄마는 없지,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의구심이 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한끝에 죽으면 끝이라는 막막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내 곁을 지켜주겠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망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끝이다, 끝. 기억과 추억만을 나눠주고 간 것이다, 엄마는. 글을 모르던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잘하지 못한 성적표를 가져가도 크게 기뻐해 주었다. 술 먹는 남편에게서 겨우 얻은 돈을 모아서 책을 사주기도 했다. 공부하라고 할부로 백과사전을 들여주기도 했다. 어버이날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했다. 그때는 엄마가 집을 나가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할 말을 줄여 엄마, 보고 싶어라고 쓰고 집으로 부쳤다. 며칠 지나 내가 쓴 편지를 받아서 마루에 앉아 읽었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줄 생각이었다. 


마야 안젤루의 『엄마, 나 그리고 엄마』의 첫 부분에 마야는 부모의 이혼 때문에 친할머니 집에 맡겨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젊은 부부는 사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한다. 아이들은 강제로 부모와 떨어진 채 그들만의 세상으로 던져진다. 마야와 오빠는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부모와의 이별은 결핍과 불안을 가져다준다. 원초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남을 이해하는 것도 나 자신을 돌보는 법도 알지 못한 채 자란다. 마야는 자신을 할머니에게 보낸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나중에 엄마가 말하지만 마야는 결별의 상처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너에 대해서는 어떤 걸 알게 됐어?"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자세만 있으면 된다는 거요."
"아냐. 넌 너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능력과 의지 말이야. 사랑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흑인이면서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온 마야와 그녀의 엄마 비비언 여사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쓴 에세이이다. 국적과 사는 시대도 다르지만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서의 두 여인의 삶은 놀랍게도 이곳의 나들과 닮아 있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되면서 겪는 혼란은 어른이 되면서 간신히 치유된다. 비비언 여사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비록 어린아이들을 한동안 떨어뜨려 놓긴 했지만 이후에 그녀는 엄마라는 놀라운 힘으로 아이들을 밝은 세계로 끌고 간다. 마야 역시 그런 엄마의 힘에 감응 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 


마야가 철도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을 때 비비언 여사는 쟁취하라고 말한다. 일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면서 마야가 직접 그 일을 얻기를 바란다. 용기와 격려를 잃지 않는다. 철도 회사에 취직됐을 때 비비언 여사는 새벽 네 시에 출근해야 하는 딸을 위해 손수 운전해 주었다. 사랑하고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엄마는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곁에서 응원해 주고 지지해주는 희망의 존재이다. 세상에 지지 않을 용기를 주고 네 편이라고 말해주는 내 곁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인 것이다. 마야와 비비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편견과 차별이 그녀들이 가는 길에 뿌려져 있었다. 


마야가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을 때 비비언은 화를 내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마야와 아기의 앞날을 이야기했다. 아들 가이를 낳은 마야가 스스로 독립해 나가서 살기를 원할 때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남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언제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자칫하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삶의 회한을 극적인 이야기 구성으로 읽는 재미를 준다. 인생의 어떤 날들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음을 잊지 않기 위해 쓴 책이다. 


무수한 삶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야는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간다. 너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해준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 관계자들에게 무시당할 때 한달음에 달려와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엄마.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애인에게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야를 구해낸 엄마.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생계에 대한 불안을 느낄 때 마야에게 휴식을 주는 엄마. 그 모든 고통과 불안의 시간 속을 헤맬 때 마야에게 엄마는 빛으로 찾아왔다. 그럼에도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마야가 불안을 이겨내면서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자각을 하는 부분이었다. 


마야에게 성악을 가르쳐준 선생님 덕분이었다. 한 사람의 삶은 혼자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주변의 다정한 타인들에 의해 꾸려진다. 네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적어보라고 했을 때 마야는 망설였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마야에게 글을 써 보라고 했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다'를 쓰는 순간 마야는 작가로서의 자아를 가진다.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쓴 편지를 전해주지 못했다.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같이 살 수 없는 생활을 견뎌야 했다.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삶은 자꾸 우리의 시간 축을 어긋나게 했다. 우리의 시간은 모아지지 않은 채 각자의 시간대로 흘러갔다. 


엄마가 떠난 겨울은 슬픔만이 가득했다. 입관을 하는 오전의 햇살이 찬란해서 울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릴까.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그 새벽에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죽음은 끝이지만 삶은 늘 시작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보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의 소중함을 기억하겠다. 엄마는 나였고 나는 엄마였음을 살아가는 동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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