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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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사카에 다녀왔다. 진짜? 아니, 책으로. 마스다 미리의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을 읽음으로써 방구석 여행지 한 군데가 추가되었다. 검색해보니 도쿄와 더불어 일본의 2대 교통 중심지란다.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고향 오사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그리운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다. 그림과 에세이가 반반씩 섞여 있다. 책이 오자마자 바로 읽어버렸다. 스물여섯에 꿈을 품고 마스다 미리는 고향인 오사카를 떠나 도쿄로 갔다. 사투리 대신 표준어를 쓰면서 도쿄 생활에 적응해 갔다.

낯선 곳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기억과 향기, 사람들의 정겨운 말투였으리라. 특별하게 다를 것이 없어도 고향은 고향. 엄마가 즐겨보는 희극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다코야키 기계가 집에 한 대씩 있는 오사카만의 정취를 불러낸다. 말투와 생활 습관의 차이를 아기자기하게 책에 담아냈다.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는 도쿄에서 산 시간이 많은 사람의 눈으로 고향의 풍경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가위바위보를 부르는 명칭과 편 가를 때 부르는 노래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느낀 문화 충격까지, 소소한 발견의 기쁨이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에 들어 있다.

편안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쓰인 글은 오사카 사람들의 푸근함이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도 전해지는 것이다. 상점의 주인들은 환대로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에게도 다정한 말이 일상이 되는 곳. 이상하고 다르다는 시선이 아닌 고향 오사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마스다 미리는 기쁘게 내어 놓는다. 수도로 올라가면 받게 되는 낯선 시선 중에 하나는 말이다. 억양과 쓰는 어휘가 조금씩 다른 것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주눅이 들어 어색한 표준어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사투리부터 고친다. 사투리는 병이 아닌데 고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고향의 말을 기억에서 잃어간다.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은 오사카에 살았던 시절에 쓴 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요즘은 이런 말을 안 쓰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오사카 말의 높낮이를 음계로 표현해 보기도 한다. 음식의 맛이 그저 그래도 점원이 붙임성 있게 굴면 일단 합격이라는 오사카만의 기준도 정답기만 하다. 방송을 보다 살고 있는 지역의 말이 들리면 반갑다. 다른 지역의 말도 나오면 귀를 쫑긋한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사투리로 말하면 현장감이 더해져 실감 나는 것이다.

말투에 대한 기억 하나. 대학 졸업하고 처음 일하던 곳의 사람은 내가 말할 때마다 인상을 썼다.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는 이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떠들어 댔다. 별 걸 다 트집을 잡네 하고 생각하면 괜찮아지는 것이었다. 엄마, 여탕, 오사카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마스다 미리의 바람은 전부 이루어졌다.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국내에 전부 번역되어 있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엄마라는 여자』, 『여탕 이야기』,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인 전부 이응인 제목의 이야기. 쓰고 싶은 걸 쓴다는 건 행복한 내일로 가는 버스 같은 것이라고 도톤보리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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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아서 가야 한다
정명섭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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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명섭의 『살아서 가야 한다』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두 개, 죽거나 혹은 살아나가거나. 죽을 수 없다면 살아야 할 것이지만 이 또한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살아서 가야 한다』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두 남자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그린다. 소설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비장미는 그들이 여기가 아닌 그곳으로 가고 싶은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조선은 왜란 때 군사를 보내준 명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당시 북방의 정세는 누르하치가 거느린 여진족이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명의 기운은 쇠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용이하게 태세를 바꿀 수 없었다. 조정의 무리들이 사대부의 나라로서 명에 충성할 것을 강조했고 도덕성과 명분의 결여는 왕의 입지를 위태롭게 했다. 결국 왕은 출병 요구를 내렸고 조선은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노비종모법에 따라 황천도 역시 태어나자마자 노비 신분이 되었다. 모시는 주인의 아들이 병사가 되어야 했지만 밭 열 마지기를 준다는 말에 아버지 황음치는 황천도를 대신 전장에 보내기로 했다.

출세와 문벌에 눈이 먼 아버지 강철견의 뜻에 반할 수 없어 강은태 역시 후금을 치러 조명연합군에 합류하게 된다. 전쟁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두 남자가 만난다. 전장에서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은 모래 먼지보다 못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법도와 예를 따져가며 화살과 총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승리한 자들의 입맛에 맞게 기술한 역사대로라면 광해는 폭군이고 서인의 반정으로 폐위된 왕이었다. 사관의 역사가 아닌 객관의 관점대로라면 광해는 능란한 외교술을 가진 왕이었다. 강홍립에게 밀지를 보내 적당한 때에 후금에게 어쩔 수 없이 명의 요구로 출정해 왔노라 중립의 뜻을 밝히라고 했다.

『살아서 가야 한다』는 역사에 허구를 첨가한다. 부차 전투라고 알려진 그곳 땅으로 양반 강은태와 노비 황천도를 급파한다. 평소라면 한 공간에 마주하지도 못한 양반과 노비는 포로이자 친구가 되어 북방의 땅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마주하는 것이다. 후금에 투항해 명분과 실리를 챙긴 조선은 군사들을 전부 데려가지 않았다. 낯선 땅에 그들은 남겨졌다. 조선인 포로는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의 주인은 혹독한 노동을 시킨다. 포로의 삶으로 이십 년을 살면서 황천도와 강은태는 신분을 초월하는 우정을 만들어 간다. 임금이 바뀌고 조선에서 돈을 주고 포로를 데리고 가는 속환사가 오면서 그들 앞에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펼쳐진다.

소설은 실제 역사와 가공의 사건이 만나면서 독자를 이야기 세계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이야기는 한 인간의 운명이란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듯 꼬일 대로 꼬여서 긴장을 놓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사건이 끝났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소설은 갈등의 서사라는 것을 명징하게 『살아서 가야 한다』는 보여준다. 강은태와 황천도의 앞날은 예측 불가로 저 유명한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소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상태로 놓인다. 소설가를 꿈꾸는 자라면 『살아서 가야 한다』를 꼭 읽었으면 좋겠다. 소설의 결말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살아서 돌아왔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역설을 그리며 인간애란 결국 자기애에 불과한 것임을 소설은 긴박한 구성과 이야기로 우리의 가슴속을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역사라는 거대한 사실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소설가의 집념이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오늘을 살았으니 내일도 살아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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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 시인선 52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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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
-김혜순

음악이 없으면 걷지도 않아
레이스가 없으면 슬립을 입지 않아

때리면 피가 나는 드럼이 있어
맞으면서도 춤추는 데를 떠나지 않아

무너진 바다에 무너진 배 무너진 밤
무너진 배는 떠나지 않아

교황 아버지 앞에선 촛불을 들고 춤을 춰야 해
물 속에 비친 촛불은 흐르는 피를 닦지 않아

출렁출렁 고통밖에 없는 고통이 흐릿한 뼈를 일으키는 밤
이 생의 모든 내 얼굴이 나를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

물 속엔 메아리가 없어서 울지도 않아
내가 여기 없어도 나는 떠나지 않아

아직
않아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못한 애도가 있다. 밤에는 비에 오고 아침이면 해가 뜨는 곳. 간밤에 쏟아진 뇌우가 편지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말과 글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멀리 안부의 인사가 쏟아지고 작별은 아직.


날개 환상통
-김혜순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러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그 사람이 있었지, 잠시 머물다 갔지 하는 환상통. 목소리와 체취를 알 수 없는 시간으로 살고 있다. 새가 되기 어려울까 내가 되기 어려울까. 푸른 지붕 위에 모여 앉은 불만의 감정이 날아오른다.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그는 설계해 놓고 날아갔다. 새도 나도 내일은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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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하나레이 에디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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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상한 일들 투성이다. 이상한 일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도쿄 기담집』을 읽고 나면 이상하고 낯선 일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일상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연이란 결코 우연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일의 성격임을 드러내는 이야기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었을 그러나 말하지 못한 현상을 다룬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원하는 두 곡을 쳐준다든지 원하는 앨범을 손에 넣었을 때 제목과 시간이 일치한다는 일. 너무 사소한 우연이어서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아 숨겨 둔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하나레이 해변」의 주인공 사치코는 상어에게 다리가 물어 뜯긴 채 익사한 아들을 매년 추모하러 해변으로 달려간다. 뒤늦게 발견한 피아노의 재능을 버리지 않은 채 살면서 아들의 기일에 맞춰 비행기를 타고 광포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이와 그들이 들려주는 낯설고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한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는 특별하지만 별것 아닌 사연을 들려준다. 26층에 사는 남자가 어느 날 신경증에 걸린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사라진다. 남자는 24층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을 먹겠다고 준비를 해달라고 한다. 그 뒤로 사라져 버렸다. 24층과 26층 사이에서 말이다.

이쯤 되면 이상한 일을 다룬 소설집 『도쿄 기담집』이 특별해진다. 당신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 오는 순간을 맞는 것이다. 형태를 정할 수 없는 문을 찾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면서 돈도 받지 않고 사라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들이 사라진 지점을 매일 찾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세 명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가 쓰는 소설에 등장하는 콩팥 모양의 돌을 가진 의사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시시때때로 이름을 잊어버려 난감한 상황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 「시나가와 원숭이」를 끝으로 기이한 소설의 여정은 끝이 난다. 질투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의 비밀은 어둡고 외면하고 싶은 성질의 것이었다.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의 설정은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결말로 나아갈수록 어색함은 사라진다. 어느 날 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 빼곤 완벽하다. 이름만이 사라진 것이다. 알고 보면 이름과 함께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어두움도 가져가는 원숭이. 산에서 만난다면 이름은 놔두고 외면하려 한 비밀만 가져가길 바란다.

죽은 이를 본다든지 가만히 놔둔 물건이 움직인다든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사라지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서 놀랍지 않다. 단지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다들 그러려니 넘어간다. 우연으로 넘기고 다가올 필연에 기대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이 이상한 사건을 불러온다. 평범한 하루를 살다가 이름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과거를 바라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해변에서 죽은 아들이 외다리로 서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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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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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레이코의 말인 '기억의 잔존'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왜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한 텔레비전 광고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는 장면을 시작으로 닥친 하루키 열풍에 나도 동참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었는데 국내에 들어오면서 다시 지은 제목이 더 좋았다. 시대에 맞물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지난 것일까. 새롭게 옷을 입고 원래의 제목을 달고 나온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은 지금은 그때보다 색채가 진해졌다. 그래봐야 물을 조금만 섞은 상태로 그린 그림일 뿐이다. 의미를 알 수도 의도를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그림 속 배경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알면서 현명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예전이란 연필로 대충 그린 그림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색을 칠해야 알지 어렴풋이 아는 정도인 것이다.

하루키의 출세작-이라고 쓰지만 출세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노르웨이의 숲』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요약하라면 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열일곱 살에 삶의 굴절을 한 번 겪은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란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와타나베와 나오코 그리고 미도리가 겪어내는 청춘의 시절을 따라가는 것으로 독자의 역할은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속에 꽉 차 오르는 생의 슬픔과 견딜 수 없는 의문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나간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 나는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죽음은 멀었고 익명이었고 대부분 타인으로 이루어졌다. 인간관계가 풍성한 시점도 아니어서 죽음은 뉴스에 나오는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그때보다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지금은 적어도 죽음의 빛깔이 어떤지 남아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생의 그림을 그려야 할지는 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 미도리가 겪어낸 죽음 앞에서 그들이 애도하는 모습을 보며 별일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란 희망과 용기, 긍정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감의 열일곱에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 기즈키를 잃었다. 기즈키는 와타나베와 당구를 치고 헤어진 그날 자살을 했다.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한 죽음이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대체 그가 왜라는 질문만을 하며 살아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우연히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조우했고 서로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시내를 걸어 다녔다.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는 비행기 안에서 들려오는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18년 전의 그날들을 떠올린다. 부디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나오코의 말과 함께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던 시간들의 벌이라도 되는 듯 와타나베는 한순간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간다. 기즈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리하지 못한 채 대학이라는 공간으로 둘은 내동댕이쳐졌다. 와타나베는 견디는 쪽을 택했고 나오코는 버티다 도망가는 것으로 죽음과 무관해지려고 했다.

시간은 착실히 흐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방황과 좌절, 불안의 고통을 살았던 시간은 지나간다. 부끄러울 정도로 한심한 자신을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말이다. 매일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자신을 견뎌 주는 것. 죽음을 겪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닌 지켜보고 견딘다. 『노르웨이의 숲』은 죽음이 남긴 상실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한 사람의 처절한 기록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세계에서 버티기로 선택한 그의 시대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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