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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내기
곽재식 지음 / 아작 / 2019년 7월
평점 :
곽재식의 소설집 『지상 최대의 내기』를 읽으며 아, 재미있다, 계속 읽고 싶다를 연발했다. 읽고 싶은 책을 오랜만에 읽어서일까. 심심한 유머가 섞인 소설은 시간을 잊게 했다. 매달 한 편씩 소설을 쓰는 곽재식에게 소설집의 제목을 살짝 비틀어 '지상 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 싶다. 『지상 최대의 내기』에 실린 열한 편의 이야기는 요약서 결론 쓰기, 사랑에 빠진 남자, 로봇 사기의 어려움, 소행성 충돌 가능성의 재고, SF 소설을 읽는 직업,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내려온 황제 폐하의 우는 아이 달래기, 노인 인구의 절감을 위한 대책 없는 제안서, 인류의 미래를 로봇에게 내맡기기, 공포 프로그램의 도시 괴담, 출산 인구 급증을 위해 멧돼지의 몸 빌리기, 지구 종말 안내 서비스의 재미난 소재를 다룬다.
어떤가. 읽고 싶지 않은가. 황당하고 무계한 사건도 곽재식의 손에 들어가면 이해가 가면서 납득이 된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정신을 잃고 소설을 읽고 있는 당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전자책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읽었다. 한 편 한 편이 우습고 진지하다.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난 이야기를 꼽으라면…. 전부라고 말하겠다. 어떤 이야기는 신나고 즐겁다가도 슬프다. 애처롭고 짠해서 등장인물을 끌어안아주고 싶다. SF 소설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나에게 있어서.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행성이 어떻고 달과 화성, 인공지능과 로봇, 대체 기술, 공간 이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거부감이 들었다. 곽재식은 이러한 소재를 무리 없이 끌어와 이곳의 이야기를 한다. 고아 소년이 <수사반장>이라는 무료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로봇을 사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로봇 살 돈 모으기」는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의 일을 그린다. 소행성 충돌 시점과 제거 방법을 놓고 촌각을 다투어야 할 시기에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로 김 박사를 괴롭히는 「체육대회 묵시록」도 가까운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다.
SF 소설만을 읽는 직장이 있다! 그 직장의 존속을 위해 산업 스파이를 등장시키고 경쟁 업체와 짜고 경쟁을 하는 「다람쥐전자 SF팀의 대리와 팀장」은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실제 있는 일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현실은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고 곽재식은 오늘도 그러한 일을 모아 한 달에 한 편씩(소설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야 말 정도로) 소설로 쓴다. 무서운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의 마지막 3음절은 기어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야 만다. 무섭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로 바로 직진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곽재식의 소설이 그렇다. 풋풋한 연애 이야기도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도 거대한 농담 같은 이야기도 능수능란하게 쓴다. 올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줄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지상 최대의 내기』를 고르겠다. 인류의 미래를 지능화된 컴퓨터에게 맡기는 멍청한 인간이 나오는 소설이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행복한 결말이 있고 보듬어 주고 싶은 외계인과 지구인이 나오는 소설 『지상 최대의 내기』를 선물한다.
그나저나 한 달에 한 편이라니. 굉장하네요. 소설 끝에 보면 소설을 쓴 시간과 공간이 나오던데 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곳이 흥미로웠습니다. 그곳에서 소설을 완성하는 걸까요. 시작하는 걸까요. 아니면 소설을 구상하는 걸까요. 어찌 됐든 이 소설집의 제목은 『지상 최대의 내기』가 되었습니다. 시간 여행에 관한 소설을 쓰신다면 기꺼이 재미있게 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도넛 가게로 가서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과 제목이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듣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