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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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연작 소설 『산 자들』이 나오자마자 바로 사서 읽었다. 열 편의 소설 안에는 전에 읽었던 소설이 몇 편 들어 있기도 했다. 「알바생 자르기」는 세어보니 세 번 읽었다. 그제서야 혜미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산 자들』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자르기. 2부는 싸우기. 3부는 버티기. 가만히 읽어보면 서글픈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시대에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산 자들』을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산 자들』에는 알바생, 대기발령자, 해고자, 자영업자, 철거민, 취업 준비생, 노동자, 음악가, 학생들이 나온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소설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 위기가 몰아닥치고 신차의 인기가 떨어지자 중국이 회사를 인수하는 작업을 했다. 노조는 중국인들이 기업을 경영할 능력이 없고 기술을 빼돌릴 것이라고 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듣지 않았다. 이상한 산수의 방식이 도입되고 해고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해고자 명단에 오른 자들은 '죽은 자'가 되었고 오르지 않은 이들은 '산 자'가 되어 싸움을 시작한다.

모두 같이 살 수는 없습니까를 묻는 지루한 싸움이. 『산 자들』을 읽으며 재건축과 재개발을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 그래도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되니 다행으로 여긴다. 소설아, 고맙다. 그리고 힘내라).

동네를 새로 지을 때 땅을 깊이 파내면 재개발이다. 재개발을 할 때에는 세 들어 살던 사람에게도 이사비를 줘야 한다. 동네를 새로 지을 때 땅을 깊이 파내지 않으면 재건축이다. 재건축을 할 때에는 세 들어 살던 사람에게 이사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 아니, 주지 말아야 한다. 주지 않아도 될 돈을 멋대로 주는 것은 주인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므로.
(장강명, 『산 자들』, 「사람 사는 집」中에서)

선녀는 이게 말이 돼요?라고 수차례 물으며 철거민조합에 가입해 시위에 참여한다. 선녀의 그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웃기죠, 그런데 법이 그래요."라고 간단히 대꾸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차이점을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는 곳에서 쫓겨나는데 어떤 이들은 투기와 투자라는 바람을 몰고 와서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는다. 동네에는 빵집이 많다. 신호등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프랜차이즈 빵집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장사가 될까. 「현수동 빵집 삼국지」를 읽으며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버티기의 안에 있는 「모두, 친절하다」가 가장 인상에 남는 소설이었다. 그 안에는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를 물어온다. 어느 하루를 가볍게 그리면서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생각 하면 기분 이상하죠. 마트에서 어떤 물건이 더 싼지 살피고 할인 쿠폰을 모으고 포인트 챙기고 백화점 세일 기간을 노리고 휘발유 가격을 확인하고, 그런 노력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져요. 그래서 돈 얼마나 아낄 수 있다고…… 집 사고파는 타이밍 한 번 잘 맞으면 다 끝나는 건데.
(장강명, 『산 자들』, 「모두, 친절하다」中에서)

운 없었던 날을 이야기하라는 질문에 어느 하루를 이야기면서 시작하는 「모두, 친절하다」는 늦게까지 고객 응대에 시달리는 대리점 직원, 택배 기사, 이사 업체 인부, 전화 상담원, 인력 파견 회사 직원이 등장한다. 아파트 이름이 바뀌는 것으로 전세금이 올라가는 것을 걱정하고 카드의 종류가 너무 많아 계산을 바로 하지 못하는 배달 기사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그럼에도 모두, 친절하다. 운이 없는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위치에서 땀을 흘린다. 마지막에 형이 보내온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일단 그래도 타인에게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지는 말아야 한다.

『산 자들』은 서술자가 거리 두기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풍경을 그린다.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문체는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을 한다. 사실성을 두기 위해 소설에는 우리가 알만한 인물의 실명이 그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특정 업체는 이니셜로 대체되지만 소설을 읽어 가면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마주쳐서 반가울 지경이다. 집요한 취재의 산물이리라. 어떤 소설을 읽고 나면 쓸 말이 없기도 하는데 『산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급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알리기도 하는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가 『산 자들』의 마지막 소설이다.

희망. 위로를 염두에 둔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고? 아닐 것이다.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전부 날 수는 없다. 혹독한 어른의 세계로 나가기 전의 아이들이야말로 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인 소설이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의 문을 닫는 마지막에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를 두었다. 원래 법이 그렇다는 말 대신에 같이 살 수 있도록 방책을 알려주는 길이야말로 우리를 산 자들로 만들 수 있다. 자르고 싸워도 버팁시다, 우리 죽지 않고. 『산 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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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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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새벽에 우리나라를 관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별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지금은 자정이 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덜컹이고 있습니다. 사방이 빗소리로 가득한 이 밤더위를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추리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오싹해지는 사건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믿고 따라오십시오. 추리의 세계는 넓고 광활하여 손을 꼭 잡지 않으면 서로를 잃어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자, 지금 출발합니다.

혹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여 필명을 에도가와 란포라고 붙인 소설가는 다른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도 하였습니다. 추리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 소설을 모은 『도플갱어의 섬』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500 개가 넘습니다. 단순히 인간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층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지요.

저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도플갱어의 섬』을 통해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네 편의 이야기는 흥미로움 이상이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악에서 출발하는 구조를 펼쳐 보입니다. 돈 많은 노파를 죽여 이득을 취하려는 젊은이의 이야기 「심리시험」은 인간이 어디까지 악의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말의 죄의식을 비추지 않는 그는 아케치 고고로라는 명탐정을 만나 사건의 전모를 발각 당하고 맙니다.

두 번째 소설 「지붕 속 산책자」 역시 단순히 범죄 욕망을 느껴 사건을 꾸미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주인공은 타인이 저지른 범죄에 흥미를 느낍니다. 어느덧 자신 역시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입니다. 옮겨간 하숙집에서 기묘한 가옥 구조를 발견한 그는 원한 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도플갱어의 섬」은 우연히 들은 대학교 친구의 죽음을 이용하는 악독한 인간의 말로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냅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야기 「검은 도마뱀」은 독자와 한 판 추리 대결을 벌이는 듯한 구성입니다.

트릭에 트릭. 반전에 반전. 북상하고 있는 태풍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우리를 추리 대결로 몰고 갑니다. 손을 잘 잡고 있지요? 끝까지 놓쳐서는 안됩니다. 아케치 고고로와 미도리카와의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 「검은 도마뱀」 이야기야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뇌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네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심리 분석을 따로 맡기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형성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지능적이면서 자신이 벌이는 짓에 당위성을 합리적으로 부여합니다.

욕망에 있어서 담대하고 솔직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가져야 하며 방해물은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립니다. 몇 십 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재 벌어지는 흉악 범죄의 인물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독자를 사건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는 문체는 에도가와 란포가 이야기의 안내자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에게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돈을 얻고 싶다거나 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인물에게 공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과응보라는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아케치 고고로라는 탐정을 기용해 사건 해결의 명쾌함을 주면서 끝납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열린 결말이라는 독자를 다소 혼동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최후를 그리기보다는 사건 해결에서 오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곳곳에 놓아둔 트릭을 회수하면서 이야기의 끝으로 빠져나오면 됩니다.

『도플갱어의 섬』에 실린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 존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동물을 나누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미처 인간이 되지 못한 동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어떤가요. 당신은 당신을 믿을 수 있나요. 당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광기의 폭풍을 잠재울 무언가가 있나요. 허구 속 사건과 사건 사이를 헤매다 보면 분명 당신을 인간답게 만들어줄 힌트 하나씩은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곳은 에도가와 란포라는 세계입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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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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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연작 소설 『유랑가족』은 짠하고 짠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다섯 편의 소설은 '유랑'이라는 주제로 묶인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고단한 삶을 그린다. 공선옥은 소설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친다.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작위적이지 않으며 서사를 중심으로 소설을 꾸려 나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지나온 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자주 한숨을 쉬었다. 『유랑가족』은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현실에서 그때를 이야기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좋지도 않은 그때를 귀 기울여 들어줄 이를 쉽게 찾기도 힘들뿐더러 이제는 잊고 싶기 때문이다. 『유랑가족』은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그때가 힘들었을 이에게는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한이 찾아간 그곳에는 집을 나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고 두고 온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애달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는 것은 지독한 가난으로 마음이 헐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고달파서. 나의 마음조차 다스릴 수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난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손에 뭐라도 쥐고 가야 체면이 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고 온 것 때문에 매일매일이 눈물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로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진다. 한 편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궁금했던 사람의 사연을 들려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명화의 사연을 다룬 「가리봉 연가」를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설이라서 이렇게까지 비극의 결말로 밀고 나간 것인가. 소설이니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선옥의 소설은 이야기의 힘이 크다. 생생한 입말과 다양한 세대를 대표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소설을 장악한다. 개발에 밀리고 마을에 댐이 생겨 사는 곳을 떠나야 하는 막막함이 『유랑가족』에 담겨 있다. 가난은 사람을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소설 속 그들은 누구를 탓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를 챙긴다. 아픈 이가 있으면 죽지 않게 보초를 서 가며 안위를 걱정하고 없는 돈에도 아이에게 닭튀김을 시켜 준다. 떠돌이 가족이지만 떠돌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실에 기반한 연작 소설이라 공감이 간다. 읽다가 더 못 읽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영주의 이야기를 그린 「남쪽 나라 푸른 바다」가 그러했다. 친척을 찾으러 가서 만난 암담한 풍경. 영주의 행복한 내일을 빌었건만 사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직도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쓰는가, 의문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좋아진 척을 할 뿐이다. 과거는 단절된 것이 아닌 채 현재와 연결된다. 『유랑가족』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지금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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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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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대표작 『인생』을 이제야 읽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처음 읽었고 이후에는 산문집을 주로 읽었다. 책은 작년에 미리 사두었다. 자고로 책은 사두고 잊어버리는 맛이 있다. 성공에 필요한 건 운이라고 밝힌 위화는 어느 날 시골 슈퍼에 갔다가 자신의 책 『인생』이 꽂혀 있는 걸 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인생』 덕분에 위화의 인생은 다르게 펼쳐진다. 『인생』은 위화가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책을 읽고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끝난다. 소설 안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부분을 걸러 내었다. 관객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 같기도 하다.

촌에서 민요를 수집하는 '나'는 소를 데리고 밭을 가는 노인 '푸구이'를 만난다. 그가 소를 부르는 여러 이름에 호기심을 느껴 대화를 시작한다. 『인생』은 대지주의 아들 푸구이의 인생 전체를 들려준다. 푸구이 자신이 직접 말해주는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눈물과 한숨,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까지 우리를 다양한 감정의 바다로 데리고 간다. 도박에 빠져 집안의 가산을 날린 푸구이는 직접 농사를 짓고 일을 하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체념과 좌절, 절망에 빠질 만도 한데 그의 곁에는 착한 사람들이 있어 묵묵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서문에서 위화가 밝혔듯이 『인생』은 개인과 운명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중국의 현대사를 끄집어 내지 않아도 인간 푸구이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아닌 한 인간의 일대기를 이해하는 데는 우리가 가진 공감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푸구이의 역경, 고난, 고독을 들어주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집과 땅을 잃은 푸구이는 겨우 땅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의원을 데리고 갔다가 엉겁결에 전쟁에 휩쓸린다. 그곳에서도 푸구이는 살아남는다.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임을 깨닫는다. 가난 때문에 그의 딸 펑샤를 남의 집에 보내고 눈물을 흘리고 아들이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는 보통의 아빠로 살아간다. 딸이 울면서 집에 남기를 원하자 그는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들 유칭이 현장 부인의 수혈을 위해 어이없이 죽었을 때에는 내가 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한 인간의 삶에 드리운 비극에는 그처럼 어이없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항시 현재의 삶에는 과거에 했던 일의 후회가 따른다. 푸구이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의 후회.

여러 이름을 가진 늙은 소만이 푸구이의 현재에 남아 있다. 『인생』은 우리의 삶이란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는 것의 반복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닭들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는 자라서 양이 되고, 양은 또 소가 된단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부자가 되는 거지.' 푸구이는 그의 손자 쿠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장을 지켜보고 그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추억과 회한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주는 것. 소설 『인생』의 결말은 마음이 아픈 것이었다.

왜 동화의 결말이 해피 엔딩으로만 끝나는 것인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어린이들이 삶에 희망과 긍정을 가질 수 있는 배려인 것이다. 어차피 자라면서 알게 될 것이니까. 삶에는 마냥 좋은 행복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영화 『인생』의 마지막은 새로운 푸구이 세대를 지켜볼 수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소설 『인생』은……. 『인생』을 읽으며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해 보았다. 역경을 헤쳐왔다고는 말 못 하겠다. 어려움이 있었다면 피하지 않으려 했었다는 정도이다. 숲속의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해가 지는 풍경을 좋아하는 인생이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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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장강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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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지상 최대의 내기』를 읽은 김에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펼쳤다. 무슨 연관이 있냐 하면 SF 소설이라는 관련. SF 소설의 분위기가 어떤지 감을 조금 잡았기 때문에 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히어로가 나오는 판타스틱 한 이야기를 읽을 용기가 생겼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방식을 좋아한다. 한 작가가 맘에 들면 전작을 구해서 읽거나 추천 책을 읽는다는 방식. 결정적으로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읽은 이유는 곽재식의 단편이 들어 있어서. 훗.

첫 번째 소설인 장강명의 「알골」은 잘 쓰인 소설이다. 깜짝이야.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다가 적절한 순간에 짜잔 하고 드러내는 방식의 구성이다. 찾아보니 장강명은 SF 소설도 쓰는 그 세계에서 나름대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최근에 SF 소설집도 출간했다. 곧 읽어 보겠다. 표제작이기도 한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는 어느 날 능력을 가진 이들이 위험에 닥친 사람들의 콜을 받고 행동 개시를 하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앱의 별점 평가에 신경 쓰는 히어로들이라니 발상이 재미있다.

공간 이동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저격수와 감적수의 관계」의 세계관도 흥미롭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 나오는 몇 편의 소설은 비슷한 주제로 전에 출간한 『이웃집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곧 이 책도 읽어 보겠다. 구병모는 SF도 잘 쓰는구나를 느끼게 해준 「웨이큰」. 말이 필요 없는 소설이다. 곽재식의 「영웅도전」은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위정자들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다. 듀나의 「캘리번」은 적사병이 출몰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술만 먹으면 힘이 세지는 여자친구를 둔 남자의 이야기 「주폭천사괄라전」은 읽는 재미가 있다.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dcdc는. 김보영의 「로그스 갤러리, 종로」는 나중에 영화화될 것 같다.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특히 서리와 번개의 대결 장면에서는 통쾌함까지 느껴진다. 요드에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여덟 편의 소설은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으로 쓰였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위급 상황에 시민을 도와주는 설정과 능력을 가진 그들이 힘을 잘못 발휘하는 상황 설정은 소설로써 답을 하기 위함이다.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힘이 세지거나 암기를 잘하거나 미래를 예지하거나 순간 이동을 하는 것? 자동차에 깔린 아이를 위해 시민들이 힘을 모아 차를 들어 올려 아이를 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구해줘요, 슈퍼맨. 아이가 외치자 세탁소에 맡겨 놓은 히어로 유니폼을 급하게 찾아 입고 날아온 것일까.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 내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생수 무더기를 우리 집 앞에 놓아주는 히어로.

그들은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서 세계를 지켜내고 버티고 있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에서 혹은 뜨거운 공깃밥 그릇을 척척 상 위에 올려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싶은 능력이란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보낼 수 있는 마음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바람을 느끼고 구름의 느린 이동을 보는 것.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빛 보다 빠른 오토바이를 타고 밤을 가르며 우리의 주린 배를 달래주러 오는 순간 이동 능력자 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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