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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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식의 소설이 좋다. 바로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주인공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하는. 쉽게 말하자면 성장 소설.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향수와 그리움을 애잔함을 불러온다. 죽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소설. 스티븐 킹의 『조이랜드』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 추리가 가미된 소설이 되겠다. 둘 다 젊은 시절과 그때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이랜드』 쪽이 흥미와 긴장이 더 섞여 있다. 둘 다 좋은 소설이다.

스물한 살의 청년 데빈 존스는 여름 방학 동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가 일하는 식당에 누군가 두고 간 잡지 뒷면의 구인란에서 그곳을 발견한다. 바로 '조이랜드'였다. '천국과 가까운 일터'라고 적혀 있어 순간적으로 전화를 걸었고 일주일 뒤에 입사 지원서를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고 합격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로지 골드라는 점을 봐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직관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단번에 데빈의 상태를 짚어낸다. 그즈음 데빈은 웬디라는 첫사랑에 실패 중이었다.

그녀는 데빈에 앞날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뻔한 소리 끝에 두 명의 어린애를 만날 거라고 예언한다. 여자애는 빨간 모자를 쓰고 인형을 가지고 있고 남자애는 개를 데리고 다니고 있다고. 데빈은 반은 믿고 반은 흘려듣는다. 같이 일하게 된 레인이라는 남자가 알려주는 대로 해변 근처에 있는 곳에 방을 잡는다. 여관의 주인 숍로 부인은 데빈이 일하게 될 조이랜드에 있는 공포의 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들려준다. 데이트 중인 두 남녀였는데 둘이 들어갔다가 한 명만 나오게 된 사건.

남자는 여자의 목을 그어 던져 버리고 사건 현장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할리우드 걸들이 찍은 사진에는 그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공포의 집에는 죽은 여자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데빈은 당장 공포의 집에서 일하지는 않았으므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에게는 공포의 집에서 보인다는 여자의 유령 보다 해피 하운드라고 조이랜드의 상징 개 분장을 위해 털옷을 입는 것이 더한 공포였다. 털옷을 입고 춤을 추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그해 여름 최고의 공포인 것이다.

그러다 데빈은 같이 일하는 동료인 에린, 톰과 공포의 집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톰의 눈에 여자의 유령이 보였고 데빈은 휴학을 하고 조이랜드에 남아 일을 할 결심을 한다. 그해 여름과 가을의 사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유령, 살인 사건, 예언과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즐거움이 최고라는 조이랜드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의 연결고리를 우리의 주인공 데빈은 찾을 수 있을까. 그가 만날 것이라는 아이들은 그의 인생을 어느 선로로 옮겨 놓을까. 스티븐 킹은 추리와 호러를 살짝 가미한 성장 소설로서 『조이랜드』를 완성한다.

사건의 진범을 찾는 재미와 더불어 한 인간의 성장 이야기는 소설이란 왜 이 세계에 꼭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조이랜드 안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에 만난 사람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우정의 온기까지 데빈은 살아남아 지켜낸다. 스티븐 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게 우리를 놀라게 할 유령이나 귀신 (같은 맥락인가?) 이 아닌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믿음 말이다. 『조이랜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는 없으므로 어느 방향으로도 우리는 쉽게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같은 뻔한 결말이 아닌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언젠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세계에 필요한 단순한 진리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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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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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어판장으로 갔다. 팔고 남은 잡어를 가지고 오는 게 일이었다. 생선을 들고 선주 집으로 갔다.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같은 돈을 몇 번이나 세어서 줬다. 고기가 안 잡힌다는 둥 하나 마나한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어찌어찌 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돈을 받아 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집에 와서 성질을 낼게 분명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부엌 바닥에 앉아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건 주인집에게 주었다. 옷도 사서 입고 통닭집에 전화를 걸어 닭도 시켜 먹었다. 그 돈으로.

일이 없는 계절인 겨울에는 고대구리 배를 탔다(고대구리는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서 고기를 잡는 방식인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어린 물고기까지 싹 쓸어오는 조업 형태이므로). 한 번 풍랑을 맞아 배가 뒤집힌 적도 있었다. 지나가는 어선에 의해 구출되었고 인근 섬에서 몸을 추스르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다. 한창훈의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의 서문은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바다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저 남해의 섬에 사는 소설가는 어찌 알았을꼬.

사실 나는 바다를 좋아한 적이 없다. 교실 창가에서 보이는 바다. 바람이 불어오면 짠내도 함께 밀려왔다. 칠판을 보는 것보다 창문 너머의 바다에 눈을 주고 있던 적이 더 많았다. 작은 배들이 통통통 지나가고 밤이면 약한 불빛이 번져 왔다. 실은 바다가 주는 돈으로 먹고살았는데. 그런 바다에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순간 그때를 잊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일상의 배경일 뿐이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어나가며 이제 막 잡은 생선의 싱싱함보다 먹기 좋게 손질한 횟감보다 눈이 가는 건 흑백의 바다였다(전자책으로 읽어서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섬에서 태어나고 다시 섬으로 돌아간 소설가 한창훈이 쓴 21세기 신자산어보이다. 천주교 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은 그곳에서 수산생물 일지 『자산어보』를 쓴다. 200년 전의 기록은 21세기를 만나 다시 태어난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는 거문도, 백도, 여수 근처에서 잡히는 해산물 29종의 채취 방법, 조리법, 특성을 다룬다. 한 종이 더 있긴 한데 그건 해산물은 아니고. 한 번 읽어보시라. 신비한 구석이 많은 종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를 벗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을 담는다.

섬에서 섬으로 시집온 어느 여인의 이야기. 복국 끓이는 법을 배워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것마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애환. 갓김치를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몰래 갓김치를 넣은 할머니. 어렸을 때부터 바다낚시를 한 소설가의 회상. 미식의 세계를 탐하기 보다 바다와 해산물과 바람이 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에 아슴푸레했던 그곳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 손을 잡고 갈 때 느꼈던 긴장과 흥분. 돈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엄마의 옆모습. 생선을 담은 봉지의 묵직함.

바닷가 근처에서 내륙으로 사는 곳을 옮겨오느라 바다 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은지 오래였다. 누군가 올려놓은 여행지의 푸른 바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스노클링을 한다며 장비 일체를 사기도 하던데. 낚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라 그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횟집에 전화 주문이 밀려든다던데. 나와는 별 관계도 연결 고리도 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쩌랴.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기어이 기억 속 바다를 불러왔다.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그리운 추억을 데리고 왔다.

엄마가 해준 밥상 위에는 늘 생선이 올라왔다. 생선은 혼자서 해 먹기 어려운 반찬임을 알았던 것이다. 나 혼자 먹자고 생선을 사서 손질하고 기름과 전투를 벌일 일은 없는 것이다. 조기, 갈치, 병어, 임연수가 종종 올라왔다. 서대 찜도.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의 표현대로 숟가락으로 생선 살을 퍼서 먹었다. 행복했지만 행복한지 모를 시간의 일이다. 강원도에서 시집온 엄마는 여기 사람들이 고등어를 생선 취급도 안 하는 걸 놀라워했다. 그 귀한 걸 다 버리더라.

냉장고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미역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떤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하나씩 돌리길래 받아왔다. 제품의 특징을 읽다가 우스운 문장을 발견했다. '조리 시 약 20배 불어날 수 있습니다.' 그걸 읽고도 양 조절을 못해서 솥으로 끓여야 할 정도의 양으로 불려놨다.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누가 보면 대식구가 사는 줄 알겠다. 큰일까지는 아니고 몇 날 며칠 먹으면 된다. 바다를 떠나왔지만 바다는 이렇듯 가까이에 있었다. 기억 속 바다의 내음을 맡으며 피를 맑게 해준다는 미역국으로 한 시절의 그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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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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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남자아이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도시는 충격에 빠졌다. 랠프 앤더슨 형사는 범인을 검거하기에 앞서 목격자 진술을 받는다.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사건이 일어난 날 누군가를 봤다고 한다. 바로 도시에서 야구 코치를 하는 테리 메이틀랜드다. 야구 경기가 열리는 와중에 경찰은 그를 1500명의 관중이 보는 앞에서 체포한다. 이유는? 테리가 분명한 범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리키는 가해자는 도시에서 신망과 존경을 받는 테리였다.

마트에서 열한 살 아이, 그러니까 프랭크 피터슨을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그걸 주민이 목격했다. 피가 묻은 얼굴로 병원이 어딘지를 물었고 그는 그렇게 사건 현장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랠프와 빌은 그가 유력 용의자임이 확실함을 인지하고 공개 체포를 한다. 테리는 그렇게 딸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체포되었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진다. 변호사 골드를 부르고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입증한다. 랠프는 이 사건의 기이함을 느낀다. 테리의 알리바이가 확실해진 것이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할리 코벤의 강연장에 있었던 것이다.

동료 교사들이 증언을 했고 영상으로도 찍혔다. 사건 현장에는 그의 지문과 DNA가 검출되었다. 목격자와 증거만을 놓고 본다면 테리는 두 명이어야 했다. 동시간에 두 명의 테리가 존재하고 한 명은 강연을 듣고 한 명은 프랭크를 잔인하게 죽인 것이 된다.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테리가 기소인부절차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가던 중 프랭크의 형 올리가 쏜 총에 맞은 것이다. 골드의 수사 보조원 알렉은 빌 호지스를 떠올린다(오! 우리의 빌 호지스! 『미스터 메르세데스』 시리즈의 주인공. 그런데 그는 이미…).

빌 호지스를 대신하여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는 홀리가 알렉의 부름에 응답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추론 능력과 직관으로 이 사건이 이상할 대로 이상하다는 것을 파악한다. 놀라운 추리력으로 이 사건에 다른 존재 즉 '이방인'(아웃사이더)이 존재함을 간파한다. 무더운 여름, 열기와 습기에 지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앞에서 설명한 사건이 일어나는 스티븐 킹의 신작 소설 『아웃사이더』를 추천한다. 추리와 스릴러, 호러의 제왕 다운 킹의 귀환을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웃사이더』는 평범한 이야기를 거부하는 스티븐 킹이 선보이는 호러와 추리가 결합한 소설이다. 인과 관계를 따지려고 들지만 않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으면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랠프 형사가 말하는 캔털루프 멜론을 이해하면 소설은 완벽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 안에 잠재 되어 있는 공포의 얼굴을 기어이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멀쩡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막상 읽어보면 기묘한 소설 『아웃사이더』는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 중에서 설명할 수 있는 건 대체 얼마나 될까. 우주는 넓고 이 세상은 이상한 일로 가득하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는지. 사건을 해결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개연성, 필연, 인과 관계, 논리가 아닌 이상한 현상을 믿고 받아들일 준비가. 홀리는 랠프에게 하루만 자신이 한 말을 믿어 달라고 한다. 그 믿음에 대한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믿으면 안 된다. 『아웃사이더』는 경고한다. 겉만 보고는 속을 알 수 없는 캔털루프 멜론 같은 우리가 가진 심연의 나약함을 조심하라고 말이다. 시간 잡아 먹는 소설 『아웃사이더』를 당신의 여름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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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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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정유정, 『진이, 지니』中에서)

정유정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 있는 문장에 있다. 거대한 서사를 뒷받침하는 각각의 문장은 독자를 한시도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7년의 밤』을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전부 읽어버렸다. 다음 이야기. 다음 이야기. 사건은 사건을 부르고 인물이 처한 상황은 참담해서 차마 다음을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기 전에 읽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저녁에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으로 시간이 옮겨 왔다.

『진이, 지니』 역시 그러했다.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내용인가. 좀 뻔한 것 아닌가 하는 순간에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호라. 이래야 정유정이지. 정유정의 소설을 좋아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기묘한 여백이 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특이하고 독특하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아이. 아이를 치고 은폐하는 남자. 가족 학대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자. 이제는 보노보.

그래 내가 원숭이, 침팬지는 들어봤다. 보노보라니. 『진이, 지니』의 시작 전에 보노보를 간략하게 소개해 놓아 어느 정도 정보는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읽는 중간에 찾아본 보노보의 생김새라니. 어린 보노보는 귀여웠고 성인 보노보는 인간이 짓는 표정과 유사해서 근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노보는 밀렵과 내전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절멸 동물이다. 인간의 DNA 구조와 99%로 거의 비슷한 동물이다. 연대와 평화를 중시한다는 소개는 놀라웠다. 『진이, 지니』를 읽으면 더 놀라운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한국과학대학교 영장류 연구센터'에서 책임 사육사로 근무하는 진이에게 그날 하루와 오늘 하루는 인생을 다른 궤도에 올려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밀렵으로 잡혀 있던 보노보를 모른 척하고 돌아선 그날 이후 진이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 근처 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갇혀 있던 보노보가 탈출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오늘은 진이가 연구센터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스승은 주저 없이 진이를 데리고 사건 현장으로 데리고 간다.

어린 보노보는 별장 우리에서 탈출해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진이는 직접 나무로 올라가 회유를 시도한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러자 보노보가 반응을 한다. 추위에 떠는 보노보를 데리고 스승이 운전하는 차에 오른다. 고라니 두 마리를 치고 차는 빗길에 미끄러진다. 사고의 순간 진이는 지니라고 이름을 붙인 보노보의 눈을 응시한다. 삶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문인 민주는 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민주와 진이/지니의 만남은 삶과 죽음의 정의를 바꿔 놓기에 이른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진이는 사랑도 절망도 한숨도 남기지 않는 선택을 한다. 정유정 다운 결말이다. 삶의 끝에는 달콤하게 속삭이는 행복이나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삶에 경배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아쉬움을 보이지 않기를. 『진이, 지니』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저지르는 온갖 악행을.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진이, 지니』의 서사를 따라가는 시간은 황홀했다. 인간다움을 죽음에 대한 결의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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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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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소설에 담긴 이야기와 인물들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 이들이 들려주는 낮은 이야기. 무더운 여름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마음이 축축 처질 때 그의 짠한 소설에서 힘을 내야 한다는 위로를 받아든다. 소설 『영란』은 주인공 '나'의 진짜 이름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진짜 이름이든 가짜 이름이든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할까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 나들이 중 잠깐 산을 올랐을 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여름철 익사 사고로 신문에 난 그 사고로 '나'의 삶은 무너져 버린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남편 역시 얼마 후에 사고로 죽어 버렸다.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나는 이후의 삶에서 비켜날 수 없는 시간에 처한다. 막걸리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죽음은 대체 왜 급작스럽고 난데없는가.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만난 남자는 광화문 추모 분향소로 나오라고 한다.

정섭은 자기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딸과 부인이 독일로 떠났고 자신의 잘못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는 일이 삶의 숙제로 남았다. 어느 날 전화가 온다. "한상준이 돈을 안 주고 죽어버렸잖아요." 과격하게 누군가의 죽음을 전하는 말. 그는 전화 속 상대를 추모 분향소에서 만난다. 만나고 놀란다. 삶의 다른 쪽을 바라보는 눈. 말이 되어 나왔지만 말이 되지 않은 말을 하는 여자를 쓰레기 집에 두고 갈 수가 없다. 그날 즉흥적으로 목포로 가는 기차에 두 사람이 오르고 삶은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갔다.

『영란』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허둥대는 사람들. 그들은 목포라는 항구 도시에 살고 그리로 모인다. 서로를 징하게 짠해하고 모르는 이라도 상에 앉혀 밥을 먹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억울한 죽음도 원치 않는 이별도 바다로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고 또 돌아오는 삶이 있는 곳에서 '나'는 비로소 이름 하나를 얻는다.

남편과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묵었던 곳이 '영란여관'이었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나'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살자. 살아보자. '나'에게 영란이라는 이름을 주고 살뜰히 보살펴 주는 그들과 평생을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목포는 항구다고 했지만 『영란』 속 목포는 이별이다. 아니 목포는 만남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그곳이 목포가 아니어도 좋다. 사람과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 이별과 만남, 이야기가 있다. 삶은 애도의 연속임을 잊지 않는다.

소설은 삶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그럼에도 사랑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의 다음 만남을 예고하며 끝을 맺는다. 부디 그들이 서로를 애틋해하며 살아가기를. 상처를 잊기보다 살아가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겨두길. 유행가의 한 소절 같기도 신파극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소설이 가슴을 울린다. 그러니 살아보자는 말을 소리 내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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