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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사계 가을.겨울 ㅣ 밀리언셀러 클럽 2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하나인 가을의 이야기 「스탠 바이 미」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원래 리뷰 쓸 때 책 속의 문장을 많이 가져와서 쓰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은 예외다. (인생은 늘 예외와 의외의 일로 이루어지니까.) 스티븐 킹을 공포 소설 작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나라도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만능 재주꾼이라는 걸 알려야겠다. 옮겨 온 문장의 기준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취향이다. (맘에 들거나 말거나.)
인생은 게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진행자가 시키는 대로 '행운의 수레바퀴'를 돌리면 수레바퀴가 예쁘게 회전한다. 그러나 진행자가 페달을 밝으면 곧 빵점이 나오고 누구나 패배자가 된다. 인생은 무료입장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강우기(降雨機)가 켜지면서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번 테시오처럼 멍청한 녀석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장난이다.
그리고 그 어둠(또는 빛의 부재) 속에서 레이 브라워의 시체를 떠올리며 내가 느낀 것은 그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날 것 같다는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의(그것의) 평화를 어지럽히기 전에 쫓아버리려고 녹색 귀신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지구상에서 우리가 있는 곳을 뒤덮고 있는 이 어둠 속에서 그는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력한 상태일까 하는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연민이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말로 표현하면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건일지라도 남들까지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다.
소설가가 작품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의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소설에는 모든 동사가 '……했다'로 끝나는 거죠. 수백만 권이 팔리는 인기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목적에 쓸모가 있는 예술 형식은 종교와 소설, 그렇게 두 가지뿐이죠.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도 나는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는 사랑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랑의 상처는 어떤 말로도, 어떤 말들의 조합으로도 아물게 할 수 없다. 우습게도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상처가 아물면 말도 함께 죽어 버린다. 내 말은 믿어도 된다. 나는 한평생 말로 먹고산 사람이므로 그것이 사실임을 잘 안다.
(스티븐 킹, 「스탠 바이 미」中에서)
어떤가.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면 당장 「스탠 바이 미」를 읽기를 권한다. 읽어나갈수록 서늘해지다가 뜨겁고 다시 뭉클해질 것이다. 「스탠 바이 미」는 여름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에 죽은 아이를 보러 가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하는 네 명의 소년의 모험담이다. 이틀의 시간을 겪고 나서 소년들은 차츰 변해간다. 영원할 것 같은 우정도 흐지부지 해지고 지금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인생이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걸어갈 뿐이다.
현명한 어른은 주변에 없고 소년들이 헤쳐나가야 할 환경은 척박하기만 했다. 가정 폭력과 소외에 시달리는 네 명의 아이들은 죽어 누워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간다. 작가가 되어 그때를 회상하는 '나'의 서술로 이루어진 「스탠 바이 미」의 부제는 '자각의 가을'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무언가를 하나씩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보호받지 못했으면서도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으로 나이를 먹어간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성장 소설 「스탠 바이 미」는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시작한다.
「의지의 겨울, 호흡법」은 기묘한 클럽에서 듣게 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회사 사장의 제의로 가게 된 비밀스러운 모임에서 '나'는 이상 야릇한 이야기를 듣는다.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노인의 술회는 크리스마스를 한층 묘하게 만든다. 혼자 아이를 낳겠다는 여인과 친밀해진 의사는 그녀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그가 개발한 호흡법을 가르쳐 주면서 말이다. 여인은 의지가 빛나고 단호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한 크리스마스 전날 사고를 당한다. 머리가 잘린 시점에서도 끝까지 호흡법을 이어가며 아이를 낳는다.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의 삶이란 왜 이토록 비극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안타깝게 만든다. 우리는 뽑기 기계에서 꽝이라고 불리는 상품으로 태어난 것일까.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꽝이라고 불리어도 꿋꿋이 인생을 살아나가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나라는 존재는 확실히 꽝이 맞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끊임없이 읽는다.
아직 「스탠 바이 미」의 인물인 크리스와 「의지의 겨울, 호흡법」의 미스 스탠스필드처럼은 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오싹함과 기괴함을 뺀 스티븐 킹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소설에서 나의 인생이 꽝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살아보고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리라 다짐한다. 스티븐 킹의 조언대로 그때까지 좋은 책 많이 읽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제일 중요한 일을 쉽게 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