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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
임승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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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엔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게 그것 말고도 생각할 게 많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것. 이것저것 빼고 더하고 해도 늘 0이 되고야 마는 절댓값이 찍히는 통장을 보고 있으면 한숨 내지는 두 숨, 세 숨 그러다 심호흡.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나는 하루를 온전히 그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 우울해지다가도 이러면 안 돼 다시 명랑해져야지 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척하고야 만다.
황정은의 단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는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이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것이 소설도 그렇고 현실에도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자주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고 황당한 일에 휘말려 결국에는 죽음으로 간다. 죽으면 끝이야라는 체념과 죽으면 죽은 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한다.
임승훈은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에서 죽음의 상징을 '새'로 보여준다. 소설가의 이름과도 같은 주인공 승훈은 자신이 이서진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만나는 이들에게 이서진을 닮았다고 한 번씩 말할 정도이다. 당신 누구를 닮았는데 하면 네 맞습니다, 저는 이서진을 닮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서진을 닮은 탐정 승훈에게 한 사내가 찾아온다. 새로 변신한 아내를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다. 아내는 아내인데 그 아내가 새로 변신해서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이상한 의뢰를 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일이기에 승훈은 새를 찾는 일에 착수한다.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답게 의뢰 비용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내의 집에 방문해 사진과 아내로 추정되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그러니까 새를 목격한 이웃의 집을 사내는 알려준다. 승훈은 골목과 골목 사이를 돌아 새를 목격한 이들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사내와 아내와 새에 관한 진실의 조각을 모은다.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는 쓸쓸한 소설이다.
사건을 따라가다 만나는 진실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야 만다. 사내의 폭행에 시달리는 아내는 죽어 버렸다. 그녀는 죽어서도 이곳에 남고 싶어 했다. 파랑새가 되어 생전에 자신에게 친밀하게 대했던 이들에게 나타난다. 결국 죽어서까지 아내를 놓지 못한 남편에게 잡힌다. 임승훈은 무엇이든 찾아내는 게 직업인 탐정을 등장시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임무를 부여한다. 찾아냈다고 하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진실이었다. 슬픔이었다.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이서진을 닮은 탐정 승훈은 진실을 알아갈수록 진실은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찾아다니는 진실이란 한낱 종잇조각에 적어 놓은 메모에 불과한 것이었다. 낱말과 낱말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건은 벌어졌고 누군가는 죽었다. 살아 있는 자는 죽음의 의미를 캐고 단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 아픈 의문 따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임승훈은 승훈을 빌어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에서 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겨진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삶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용서, 만남, 기쁨의 순간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하면서. 좁은 빌라에 갇혀 살다시피 한 사내의 아내는 '그녀'가 되어 떠나간다. 자주 돈에 대해만 생각하다가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죽을 수 없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하다가도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임을 상기한다.
죽음이 있어서 겸손해지고 가끔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죽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며 지구에서의 삶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임을 우주로 돌아간 이들에게 쏘아 보낸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곧 알게 될거면서.
그런가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나중에 갈게요.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를 읽고나니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어요.
그러든지, 알아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