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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다. 어떤 순간에는 좋았다가도 이내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호들갑을 떠는 나와 금세 시무룩해지는 나. 어느 게 진짜 나의 모습일까. 항상심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매일을 전투적으로 살아간다. 감정은 요동치는데도 그걸 무시하며 지내는 것이다. '나'를 숨기는 일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마음이 경고를 하는 때가 찾아온다. 이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며 신호를 준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초조해지고 불안감이 수시로 드는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은 뒤늦게 찾아왔다. 그때는 절차와 형식의 반복을 거치느라 지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야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감지했다. 길을 걷다 나이 든 사람을 볼 때. 냉장고 안에서 엄마가 준 참깨, 미숫가루를 털어먹을 때. 그리움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마음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그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립다 못해 우울하다고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를.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中에서)
『당신이 옳다』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쉬운 언어와 다양한 사례로 풀어나간다. 개인이란 보편적인 것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울증(기분부전장애)이라는 것 역시도 특수한 질병의 범주가 아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임을 역설한다. 어떤 사람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서 해석하면 안 된다고 그는 다정한 치유자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일은 가볍게 여겨질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안의 이유를 더듬어 나가 보았다.
이유를 찾는 일은 쉬웠다. 이유를 찾지 않으려고 했던 내가 이유였다. 우울과 불안을 느꼈던 것은 한 사람의 말 때문이었다. 얼른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러 웃음을 가장하고 명랑한 척 굴었던 것이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죽음 이후의 시간은 불현듯 찾아오는 그리움과의 싸움이었다. 『당신이 옳다』는 '적정 심리학' 이론을 내놓는다. '적정 심리학'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보다는 상황에 맞는 적정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대변되는 마음의 고통은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늘 함께 한다. 학교와 직장, 가정에서 닥치는 '나'를 향한 위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 『당신이 옳다』는 당신의 마음이 힘들 때 혹은 누군가 당신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우울증에 대한 진단 사례와 치료 방식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당신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가둬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나'는 왜 불안해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이 옳다』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공감'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은 어땠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정혜신은 말한다. '나'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당신'에 대한 공감이 가능해진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를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잔소리는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자신은 기분이 나빴음을. 그것도 대단히. 『당신이 옳다』에서는 타인이 고민을 이야기 해올 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상황이 발생했고 상처를 받은 이가 생겼다.
그가 당신에게 구조 요청을 한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을 때 상황에 대한 '공감'보다는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 나도 모른 채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으로 숨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당신이 옳다』는 우리를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넘어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럴 때 네 마음은 어땠니라고 물어오는 책이다. 고통받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치유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소외의 언어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이제 당신을 들려주세요라며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만든다.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만이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자'가 될 때 다정한 치유자가 되어 어려운 한 시절을 통과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