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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본산고(日本散考)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식민지 시대 11년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진짜 콜론(식민자)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다나카 씨는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그 시대의 독립정신에 대해서는 감탄과 외경의 염(念)까지 느꼈다고 했는데, 일본 특유의 그런 감상은 상당히 메스껍다.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反日)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박경리의 『일본산고』의 저 부분이 요즘을 대변하는 시대의 말이다. 왜 우리가 독립운동은 하지 못해도 불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박경리는 철저하게 가르쳐 준다. 강단 있는 언어로 일본을 뼈 때리는 『일본산고』에는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맞아 맞아하며 읽어야 할 문장이 너무나 많다. 나는 멍청이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나는 이제 멍청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멍청이었음을 알고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해. 소외와 불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다. 조금씩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했으며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도 읽고 있다. 박경리의 『일본산고』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이 되기까지 제국주의 역사에서 살아간 작가의 일본론이다. 박경리는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견해를 읽으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지금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일본 역사의 허상으로 시작한다. 신국(神國)이라 칭하면서 가지는 일본이라는 정체성의 오류를 밝혀낸다. 신(神)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은근슬쩍 전쟁과 식민의 잘못을 가리려는 가해자의 만행까지도. 소설가답게 일본 문학이 가지는 탐미주의와 죽음의 대한 선망 역시 엽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섬나라라는 지형학적 위치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라 해도 그들은 잘못을 감추고 피해 사실만 드러내는 왜곡과 반성을 모르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날아든 한 편의 예언서인 『일본산고』는 한국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일러준다. 다나카가 쓴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고 쓴 편지를 읽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그 편지에 적힌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편지를 받고 박경리는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구구절절 옳은 소리로 일관하는 답장을 날린다. 이쯤 되면 그가 살아 있어서 쓰려고 했던 '일본론'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반일하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신했을 것 같은데. 무척이나 아쉽다. 안타깝다.
다나카 씨는 일본에 유학 온 각국 학생들의 예비 코스인 일어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부터 풀어놨다. 한국인이 싫다는 내용의 중국인 학생 작문에 관한 것인데 그 입김이 대단히 나약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아무개가 너를 싫어하더라" 투가 그랬다. 이것은 고자질이다.
'내가 싫다 하기는 좀 거북하고 아무개가 싫다더라 해야지.'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면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나도 싫은데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 누가 너 싫다더라 하는 식의 이간질로 역사 왜곡과 반성 없는 일본의 야비한 속성을 박경리는 간파한다. 지식인이라고 한 자의 역사 인식이 저 정도인데 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제국주의의 화려한 시절만 학습한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더할 것인가. 일본을 이웃으로 둔 불운함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앞장선 활동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은 사과할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박경리는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으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반일과 친일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책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차이로 규정한다. 역사에 빚을 지지 않은 세대. 역사에 객관을 유지한 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세대. 우리. 박경리는 일본 문학지의 편집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을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그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용서라는 거룩한 마음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여기는 마음. 용서라는 것은 사과를 하고 반성해야지 따라오는 수순 아니던가. 『일본산고』는 지켜볼 것이다. 이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