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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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 뉴스 보기 겁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로 나의 하루가 무너지려나 하는 마음 때문에. 하루를 살아갈 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나누었다. 어떤 세계에서는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사실은 왜곡된다. 진실을 밝혀 달라는 호소는 묻히고 폭력은 광기로 물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간을 살고 있다. 새롭게 알아야 할 것이 늘어난다. 사실이라고 알려오는 현상에 다른 의도는 없는지도 알아채야 한다.

효율을 따지자면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는 사실 비효율과 지식의 지연이라는 용어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어느 저자의 말은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랫동안 문학을 읽고 문학을 사랑하는 나도 그러한 마음인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저자의 생각까지는 용인할 수 없었다. 김필균의 『문학하는 마음』의 서문에 나오는 '그놈의 문학병'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해온 김필균은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다. 문학판에서 알음알음 알아온 문학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문학하는 마음』에서는 그도 나도 앓아온 문학병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림 작가, 소설가, 시인, 평론가, 웹 소설 작가, 편집자, 극작가, 청소년 작가, 에세이스트, 서평가, 문학 기자인 열한 명의 문학하는 마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뷰 기사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평생 만나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말의 윤색을 거쳐 나온 기사이지만 그 안에는 그가 살아온 시절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하는 마음』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김필균은 문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 즉 먹고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궁금해한다. 모두 그렇지 않을까. 고등학교에서 문창과를 간다고 하면 말리고 그래서 교직 이수를 할 수 있는 과로 가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대학원에 다니는 행동을 주변인이 말리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이유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하는 마음』에서 문학하는 이들이 말하는 조언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시를 쓰기 위해 투잡을 하라는 것. 책이 팔리고 인세가 들어오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다는 것. 그도 안 되면 강연을 다니면서 수입을 마련한다는 것. 문학을 하기 위해 문학이 아닌 일을 한다. 어떻게든 문학 주변부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어서 문학 비슷한 일을 한다. 모두 문학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리라. 신형철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김필균은 평론이 늦은 신형철에 험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책을 내려는 작가가 신형철의 글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이렇게 말한단다. 책이 상당히 늦어질 수 있다.

신형철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자신이 쓰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론을 쓸 때의 일차적인 기준은…이것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건데요, 내가 이 텍스트와 더불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 작품을 위해서 뭘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쓰는 거죠. 나를 위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게 결국엔 그 작품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요."
(김필균, 『문학하는 마음』中에서)

평론은 다른 사람이 쓴 저작을 해석하고 숨은 의미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쓰는 글인 줄 알았는데. 신형철이 말하는 평론의 의미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에 대한 변명이 되는 말 같아서 좋아졌다. 김필균이 앓고 있다는 '문학병'을 나 역시 수십 년 앓고 있다. 자신만의 글을 써보려 했다는 김필균은 세상만사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편집자로 길로 들어선다. 책을 읽는다. 쓸 말이 떠오르면 서평의 형식을 가장한 나의 이야기를 실컷 한다. 그것이 내가 문학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문학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써야 한다는 윤이수의 말대로 뭐라도 하얀 화면에 글자를 채워본다. 『문학하는 마음』에 담긴 열한 개의 문학하는 마음이 있어 세계의 부조리가 주는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닌 그것을 하루를 사는 힘으로 바꿔 본다. 우리의 하루는 살아가는 것으로 힘이 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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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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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문구한다.
보라, 저 많은 펜과 연필과 형광펜을. 저것도 많이 줄인 거다. 눈이 아프지 않은 형광펜이 있다고 해서 똑같은 색을 두 개씩 세 개씩 샀었다. 가볍게 살기를 접한 뒤로 아는 사람에게 나눠 줘서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쿨럭.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많다. 티도 안 난다. 하나를 줄이면 다시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들어온다. 팔로미노 연필이 좋다고 해서 한 다스를 사고. 책을 사면 하루키 연필을 준다고 해서 책을 사고. 그러다 서랍 하나가 필기도구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지구에서 우리뿐.
김규림의 『아무튼, 문구』를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튼, 뭐 좋다는 소리겠지. 강렬한 제목이다. 『아무튼, 문구』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을 찾다가 '문구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아무튼, 문구』의 저자 김규림은 '문구인'이 되었다. 문구를 사랑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문방구에 가서 한 주를 마감하는 문구인의 삶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쓰던 공책을 어른이 되어 찾아낸다. 소비 생활을 좋아한다니. 작은 문구의 힘을 믿는다고 한다. 정말 힘이 난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책 읽기란 신비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문방구를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작은 공책 하나라도 사서 나오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지구에서 나 혼자가 아닌 우리라서 다행이다.

악필이에요, 펜이 많으면 뭐 하나.
문구인 김규림도 좋아하는 문구가 있으면 두 개씩 산단다. 두 개 혹은 세 개, 여러 개. 몇 개는 보관용이고 몇 개는 쓰려고. 나도 그랬다. 표지가 예쁜 공책이 있으면 여러 개를 샀다.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졌다. 문구인 김규림은 원하는 판형으로 공책을 천 권 정도 만들었단다. 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제작까지. 존경의 박수. 짝짝짝. 비어 있는 종이에 무언가를 쓰려는 상상만으로 소비의 행위는 가치가 있다. 문구점에서 많은 돈을 써 봐야 만 원의 행복 정도이다. 과소비를 했다는 느낌보다 작고 귀여운 애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분에 설레기까지 한다. 신상 펜으로 시를 옮겨 적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써 놓고 보니 내 글씨는 왜 이런담. 손글씨 잘 쓰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내 글씨는 정말 안습이다.

애플 펜슬도 문구라니.
『아무튼, 문구』의 문구인 김규림은 수첩과 공책, 펜, 마스킹 테이프, 연필, 스티커를 사랑하는 감성에 신문물 아이패드를 사서 애플 펜슬로 그림을 그리는 놀라운 포용력을 보여준다. 아이패드 사서 쓰는 게 포용력 운운하는 일이라니 웬 오버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지속했던 생활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애플 펜슬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문구라고 주장해서 꽤나 열린 사람이구나, 같은 문구인으로서 꼭 안아주고 싶다.

취미랄 게 딱히.
없다. 그저 책 읽고 책 읽는. 대형 서점에 가면 한편에 있는 문구가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카카오 프렌즈에서 밀고 있는 귀염둥이 캐릭터 라이언을 좋아하는 취미. 라이언이 있으면 산다. 스티커는 두 장씩. 캐릭터 제품이라 가격이 조금 나가기도 하는데 귀여움을 담당하며 나를 웃게 해주니까. 문구인 김규림도 문방구가 취미라고 취향이라고 밝힌다. 『아무튼, 문구』의 세계에서는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우리의 시간을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읽고 쓰고 그린다. 공책이 있어서 펜이 있어서 쓰고 그리다 보니 『아무튼, 문구』까지 내게 되었단다. 일기장을 샀으니 일기를 써서 책을 내기도 하고. 문구는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준다. 연필로 우주라고 적었더니 우주를 날고 있었다. 어디서 사기 치지 말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한 번 해보시라. 이상하게 좋은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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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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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분노와 고독을 누가 알까. 나라는 사람의 과거를 누가 알고 싶어 할까.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는 할까. 모든 의문과 가정을 말하자면 긴 시간,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묻고 질문하고 다시 묻는 행위를 거듭해야 한다. 아침에는 우울했다가 조금 누워 있으면 힘이 나서 움직인다. 많이 움직인 것 같은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침울해진다. 할 말이 없을 땐 시간 참 빨리 가네요,라고 말해보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맞는 말이어서 다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럴 때면 좋아하는 것과 일을 떠올린다. 노란색, 순살 치킨, 밤에 듣는 음악, 새로 산 필기도구 그리고 소설. 소설을 읽어야지.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싶을 땐 소설을 읽는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불안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김금희를 읽으면 괜찮아진다. 김금희가 써 내는 소설. 그래서 김금희 같은 소설을.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사라질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 안녕한 하루 대신 안녕할 내일을 갖고 싶을 때.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실린 소설을 읽으며 세계가 내게 건네는 쓸쓸함을 받아들인다.

김금희의 문장은 위태롭게 이어지는 듯하다가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간결함을 버리고 복잡함을 선택한 그의 문장에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운 처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지구 끝까지 이어질 것 같은 문장을 읽으며 허구의 세계에 고독하게 갇힌 인물과 이곳의 나를 동일시해본다. 같구나. 우리의 처지는 왜 이렇게 비슷할까.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가져온 시대는 멀지 않아서 가깝고 가까워서 먼 것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의 기이한 행태를 마음 아파하고 냉정한 고용주와 친해지고 싶어 사랑을 파는 주인공.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의 비루함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배경색을 너무 잘 알아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 없는 머뭇거림.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 택시비를 받은 은수가 택시는 타지 않고 그 돈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타는 장면.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챙겨 놓은 과일을 몰래 가지고 나가야 하는 「쇼퍼, 미스터리, 픽션」의 '나'가 느껴야 하는 불안.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 유독 마음이 쓰인 장면들은 그런 것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님에도 돈이 전부인 것처럼 구는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안간힘. 「레이디」는 그 시절 누구나 느꼈을 친구와의 우정을 넘은 애정의 주변을 더듬는다. 우린 전부 어렸고 미숙했고 나약한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김금희의 소설은 괜한 문학적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추상보다는 구체의 단어로 문장을 쓰면서 낯선 이야기가 아닌 누구라도 한 번은 살았을 시절을 쓴다.

아홉 편의 소설에 담긴 마음에 대해 생각하느라 하루치의 우울을 잠시 숨겨 둘 수 있었다.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고독하다. 소심해서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는 겨우 억울한 마음을 눌러가며 사는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반말로 이야기하는 저자.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도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습작생. 택시비가 얼마인지를 끝끝내 따져 묻는 선배, 그러고서는 주지 않는. 대리 기사에게 팁 대신 목사님이나 할 것 같은 거룩한 말씀을 남기는 시집 식구.

김금희는 쩨쩨하고 뒤끝이 작렬인 누가 봐도 관종인 것 같은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대체로 착하고 소심하고 약간은 깐깐하다. 품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세상에게 선의의 복수를 할 줄도 아는. 영리한 것 같은데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은 빠져 있다. 유머가 세상을 구원하면서 나도 구원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나의 마음이 이토록 우울해서 내일이라는 미래 시제가 쓰이지 않을 것 같은데도 김금희를 읽으면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조금 더 힘을 내자. 힘이라는 게 낸다고 해서 나는 건 아니지만 힘을 내자고 말하면 혹시 없던 힘도 생길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해보라고 말하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돈보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은 소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돈이 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묻는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미래라는 시간의 가능성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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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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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던 여름도 슬그머니 물러날 기세를 보이고 어느덧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산책도 수월해지고 있다. 풀벌레 우는소리에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가 묻히고 먼 곳의 불빛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걷는 중에 우리 집 보이나 안 보이나를 물으며. 다가오는 불빛에 마음이 편안하다. 배불리 저녁을 먹은 밤에 걷는 길의 배경이 이제는 가을이어서 안심이 된다.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읽다가 남겨 두었던 책을 펼친다.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 담긴 풍경에 나의 시간을 밀어 넣어본다. 소설가가 담아내는 일상과 내면의 모습이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절을 그리는 섬세한 문장과 유년의 기억을 환기하는 진솔한 마음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부사를 최대한 쓰지 않길 바라면서 부사를 있는 힘껏 끌어모아 쓰는 소설가. 진지하게 과거를 회상해서 내가 아는 그 김애란이 맞나, 의심이 들 때쯤 튀어나오는 유머까지. 『잊기 좋은 이름』에는 상상으로 쓰인 글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진실하게 바라본 관찰의 기록이 있다.

어린 시절과 그의 부모의 사랑을 회상한 글을 시작으로 문단에서 만난 문인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본 글을 읽으며 웃음이 났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그중에서 가장 의외로 웃겼던 소설가는 윤성희였다. 편혜영의 시상식 자리에서 축사를 맡았는데 윤성희 자신은 외모를 김애란은 감동을 맡으라고 했던 부분 때문이었다. 윤성희 소설에서도 그런 이상하게 웃기는 부분들이 감지되었는데 소설가 자신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과의 일화 뒤에는 그가 읽었던 소설의 풍경이 나온다. 소설을 쓰는 그가 문학의 쓸모와 의무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의 기억. 책을 읽을 때 연필로 밑줄을 긋고 급전이 필요해 책에 그은 밑줄을 지우는 소설가. 꾸미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우울과 쓸쓸함이 더욱 애틋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화제가 되어 괴물 신인으로 떠오른 김애란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과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연대까지.

『잊기 좋은 이름』을 읽으며 가을의 바람, 문학을 향한 열정,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비슷한 문학적 취향을 가졌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현상이 부분적으로 일치했다. 전부를 알 수는 없으나 부분을 알 수 있다는 것. 독서라는 이 외롭고 고독한 행위에서 취할 수 있는 건 우리라는 확인이었다. 같은 꿈을 가지고 다른 시간을 살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 실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무한의 밤의 시간에 써 놓은 글을 읽으며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편지를 보내보는 것.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 기울어진 배 안에서 학생이 남긴 의문이 잊히질 않는다고 썼다. 무수히 많은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지만 정작 불러야 할 이름에는 침묵하며 살고 있다. 진지한 척 어른인 척 굴었지만 사실 우리는 미성숙한 자라지 않은 오스카인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문학은 살아가는데 별 의미도 없고 쓸모도 효용도 없는 자리만 차지한 채 먼지만 먹는 낡은 곰인형 같지만 그럼에도. 귀여운 구석이 있어 지나가다 쓸어 보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라 생각해보는 것.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어갈 우리들이 있기에 슬픔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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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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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소설 『캉탕』 속 캉탕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은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 도시로 지도에도 잘 나와 있지 않은 곳이라고 책에 나온다. 이명에 시달리는 한중수를 위해 그의 친구 J는 자신의 외삼촌이 있는 캉탕으로 갈 것을 주문한다. 걷고 보고 쓰라는 말과 함께. 한국에서의 보장된 내일을 일시 정지한 채 한중수는 캉탕으로 간다. 일주일의 축제를 빼면 조용한 항구 도시인 그곳으로.

캉탕에는 『모비딕』을 동경해 선원이 된 J의 외삼촌이 살고 있다. 그는 항해 끝에 내린 그곳에서 나야라는 여자를 만나 정착한다. 술집과 여관을 겸하는 식당을 열고서. 한국의 음식 생선 조림과 보쌈을 메뉴로 내놓고서. 한중수는 그가 자신이 들었던 그가 맞는지 의심한다. J의 이야기 속 그는 활달하고 기운 넘치는 사람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포기한듯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그의 아내 나야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것을 제외하면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린 채로.

소설은 한중수가 캉탕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핍-이라고 불리는 J의 외삼촌-과 선교사인 타나엘, 피쿼드의 일등 항해사를 중심으로 한중수가 써 내려가는 일기인지 기도인지 모를 글로 이루어진다. 한중수가 겪는 서사와 한중수가 바라보는 서사가 있다. 그의 귀에 들리는 난폭한 세이렌의 노래로 형상화된 이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캉탕』의 목표이다. 과거를 생략하고 현재로 도착한 이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을 그린다.

걷고 보고 쓰라는 주문은 소설에서는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한중수는 캉탕에서 오로지 걷고 보고 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걷다가 본 것들을 쓴다. 쓰는 행위는 단순히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여 지는 것에 말할 수 있는 것도 쓰는 행위가 된다. 『캉탕』의 인물들은 말할 수 없어 고통스러운 자들이다. 그들은 과거를 묻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과거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현재까지 따라온 과거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죽거나 아프거나.

생의 절벽에 가닿은 자들이 '캉탕'의 바다로 모였다.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아닌 그저 고통 없이 이 삶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곳의 기도는 캉탕의 세계로 닿을 수 있을까. 쓴다는 것은 산다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쓰지 못한다면 말할 수 있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세계는 걷고 보고 쓰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한중수가 잊고자 했던 과거는 우리가 지우고 싶어 했던 얼룩이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갈 것. 미래는 그렇기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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