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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ㅣ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평점 :
사실 나는 똑똑한 독자는 아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똑똑한 척을 하고 싶은 독자일 뿐이다. 취미이자 특기가 책 읽기인 비활동인이다. 운동은 숨쉬기가 전부요. 모임, 회식이라는 단어에 치를 떤다.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가식적인 얼굴로 웃고 떠든다. 재사회화가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럴 때도 다 나가 주세요를 외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다.
공부 머리는 없는데 책 읽는 머리는 있다. 한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깊은 상념에 빠지는 일. 그것만은 최고로 잘한다. 책을 읽다가 미처 내가 표현하지 못한 문장이 나오면 탄식하고 잊고 싶은 기억을 환기하는 일화가 나오면 슬퍼진다. 혼자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시끄럽고 분주한 생각이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읽은 책의 목록을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편협함을 자랑한다.
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장 이은혜의 『읽는 직업』은 순전히 제목이 근사해서 읽었다. 세상에. 읽는 게 직업이라니. 맙소사. 완전 나를 위한 일이잖아. 책을 읽으면서 문학으로만 국한된 나의 책 읽기를 반성했다. 본인이 편집한 책을 예시로 편집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을 펼쳐 놓았다. 그 책들 중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글항아리는 인문, 과학, 철학, 한문학 등의 책을 주로 출판한다. 내가 손 대지 않은 분야의 책들이다.
반성은 반성대로 하고.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한 사람의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니 고등학교 때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 일을 하고 싶더랬다. 대학교에 가서 그 꿈은 구체화되었는데 쉽게 좌절되기도 했다.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 학벌이 괜찮아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신념 같은 것으로. 포기. 『읽는 직업』에서 알게 된 편집자의 세계는 다채로웠다.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좋고 기획력이 뛰어나면 더 좋다. 저자와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한 인간성은 필수. 이은혜는 좋은 편집자란 독서력을 통해서 길러진다고 말한다. 자신은 책을 읽으며 알고 싶은 주제를 파고들어 책을 기획한다고 밝힌다. 저자-편집자-독자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성찰한 기록인 『읽는 직업』은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지 탐구한다.
나 같은 한 쪽 방향으로만 책을 읽는 독자도 괜찮다고 끌어안아준다. 그러면서 유명 작가의 대표작 정도는 읽으면 좋다고 이야기한다. 읽으면 쓴다. 읽으면 저자-편집자-독자의 위치가 바뀐다. 책을 읽은 독자는 어느덧 저자가 되어 자신이 쓴 글을 편집자에게 넘긴다. 책을 통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는 권력관계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 사람이 아닌 책을 통해 아는 것은 부끄럽거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순간을 모면하게 해준다. 편집자란 어떤 일을 하나요? 궁금증을 『읽는 직업』을 통해 알게 되어 내가 읽지 않은 분야에 대해 부끄러움 대신 엄선해서 들려준 글항아리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센스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만나서 편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읽는 직업』을 읽음으로써 자세하고 내밀한 편집의 세계, 즉 읽는 직업의 다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책만을 읽으며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만 심취하면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물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좋아져 쉽게 웃고 울게 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면모를 획득할 수 있다. 편집자의 꿈을 가진 이들이 『읽는 직업』을 읽으면 좋겠다.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책을 사랑하며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읽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