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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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려고 앉아 있는 지금, 약간 행복하다. 이렇게 쓰기까지 일말의 노력이 필요했다. 자세하게 이야기할 건 아니고 간단하게 말해보겠다. 자격증 공부를 이틀 하다가 멈췄다. 변명 같은 건 안 하겠다. 공부를 멈춘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이유는 없다. 그냥 멈췄다. 밥 먹고 책상에 앉으려고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진짜. 엄살이 심한 나이지만 머리 아프다고는 해본 적이 없다. 비염, 축농증, 배 아픔, 귀울림 이런 걸 가지고 엄살을 떨었긴 했지만.


웬일인지 머리가 아프고 난리다. 공부하기 싫다는 마음의 신호를 몸이 받아들인 걸 수도. 그런 상태로 문제집을 펴봤자 장비빨로 내세운 형광펜으로 색칠 공부나 할 것이기에. 과감하게 드러누워 웨이브에 접속. 서핑하다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 목록'이라는 페이지를 발견, 북마크 해 놓은 걸 보고 한 편씩 뽀개기로 했다. 그리하여 어제 낮부터 《붉은 달 푸른 해》를 보기 시작해 오늘 아침까지 전편을 끝냈다. 우와, 16부작. 이제는 한 회를 쪼개서 32부작. 대장정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


양심상 일어나서 구인 사이트 훑어보다가 라이언 인형 옆에 놓아둔 이북 리더기의 전원을 눌렀다. 몇 달째 읽고 있는 아고타 크리스토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오늘은 끝내보려고.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그때는 대부분을 모른 상태로 살았고 지금은 약간만 모르는 상태로 살기 때문이 아닐는지. 제3부로 구성된 소설은 충격과 충격을 넘어선 슬픔과 감동을 준다.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어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는 소설이다. 한 번 읽게 되면 시차를 두고서 다시 읽게 되는 소설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내가 이걸 전부 이해했나 의심하고 내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외국 문학을 애호하지 않는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단 한 명의 작가는 아고타 크리스토프다. 『어제』를 미치도록 좋아해서 소설의 어느 한 구절을 공책이 바뀔 때마다 앞 장에 적어 두었다.


『어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읽을 때마다 전율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외국으로 망명한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모국어인 헝가리 어가 아닌 배워서 익힌 프랑스어로 쓴 소설이다. 왜 이걸 강조하는지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 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복문이 거의 없다. 단문으로 밀어붙인 소설이다. 문장은 힘이 넘치고 세련되었다. 좋은 소설의 강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 파괴적인 이야기, 충격을 주는 결말.


어머니에 의해 할머니 집에 맡겨진 쌍둥이 형제의 성장 소설처럼 보이는 1부를 지나 한 형제가 떠나고 홀로 남은 형제의 성년기를 다룬 2부, 3부에서 밝혀지는 형제의 진실을 목도하면서 이야기는 나라는 알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마주 보게 만든다. 2부까지 읽으면 자아의 분열이라는 뻔한 주제로 소설을 압축하며 읽는 나를 안심시켜가며 읽을 수 있다. 방심하면 안 된다. 3부에서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나 자신을 작가가 비웃기라도 하듯.


아침까지 본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인간이 가진 죄책감을 다룬다. 유년을 함께 보낸 형제자매에게 가지는 죄책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방관하며 회피했던 고통의 순간을 기억 속에서 지운 채 어른이 된 아이의 비극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주인공 루카스, 클라우스 형제 역시 고통을 나눠 가지려 했지만 서로를 위해 이별을 한다. 완벽한 이별을 꿈꿨지만 실패한 두 형제의 이야기. 그들은 둘일까, 하나일까.


소설을 읽어갈수록 그들이 애초에 둘이었는지 하나였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나를 이루는 거짓말은 몇 개인가 하는 것. 소설에서는 세 가지라고 밝힌다. 아버지, 나이, 이름. 정리하겠다. 약간의 행복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공부를 멈춰 놓겠다는 결심을 한 것.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를 이제 한 편 끝냈다는 것.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한 번 더 완독하고 리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


약간의 고통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 약간의 고통이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겨울과 봄 내내 알았기에. 약간의 행복을 위해 약간의 기쁨을 위해 집착, 욕심을 제거해 나가기로 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린다. 아버지, 나이, 이름은 거짓말이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건 단 하나의 행복이다. 지금의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최선의 행복. 살아 있음의 증거로서.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잊지 않고 읽어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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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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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다. 서점 주인 빅토르는 루카스에게 자신은 단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떠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하며 서점에 찾아와 종이와 펜을 사가던 루카스에게 조금 비싼 값으로 서점을 팔고 떠난다. 과연 그는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슬프고도 쓸쓸한 소설이다. 3부 조금 남았는데 빨리 읽어버리고 싶지 않아 잠깐 덮어 두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소설가가 돼 있을 줄 알았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시인 정도는 될 줄 알았다. 그렇다. 노력은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 생각한 바보였다. 연중행사처럼 신춘문예에 투고 하기를 몇 해. 그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지 몇 해. 나 같은 게 무슨 작가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몇 해. 어영부영 지내고 있다. 그래도 책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읽고 보는 주의. 왜 못 쓸까. 생각해 보니 쓰기는 누워서 할 수 없다는 다소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엔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누워 있기다. 어제도 오늘도 내가 한 생산적인 일이란 누워서 책 읽기였다. 밥 먹고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순간 머리가 아팠다. 온갖 병약함을 가지고 있는 내가 유일하게 없는 병증이 두통이었다. 누가 머리 아프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증세니까.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망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이어 머리까지 아프다. 공부하기 싫어 별 핑계를 다 댄다, 증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흡입하듯 읽었다. 이상한 외계어 같은 글자만 보다가 말랑말랑 위로 위로 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글을 읽으니 세상 살 것 같다. 책의 내용도 나 같은 애들을 위한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책 한 권 쓰고 싶은 욕망쯤은 다들 있잖아요. 그죠?


제목도 각 잡고 책을 쓰자고 한다. 책 한 번. 말이 쉽죠. 책 한 번 써보자는 말. 매일 일기 쓰는 것도 버거워 미루고 미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쓰는 나다. 그런 나인데 욕심은 많아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은 내고 싶고. 야 너도 책 쓰기 할 수 있다는 책을 읽으며 의욕을 끓어 모은다.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으며 한글을 열어서 제목을 쓰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나를 상상했다. 상상만 했다.


에세이, 소설, 논픽션 쓰기에 대한 요령이 실려 있다. 도움이 됐던 부분은 에세이 쓰기다. '솔직한 글을 쓰려면 뛰어넘어야 할 세 가지'에는 '욕먹는 데 대한 두려움, 자신을 뽐내고 싶은 마음, 교훈과 감동에 대한 집착'이다.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할 정도로 나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빠져 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나만 세상을 신경 쓰고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써야지 했지만 리뷰만 쓰고 있다. 이러다 리뷰만 쓰다가 죽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언젠간 책을 쓰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읽는 게 즐거우니까. 빅토르나 루카스처럼 꼭 써야 할 순간이 오면 쓰겠다. 그때까지 읽기 훈련과 쓰기 근육을 만들어 놓겠다. 쓰기의 대가들이 내놓는 영업 기술을 읽으며 너넨 그렇게 쓴단 말이지, 나는 참고만 할게, 하면서.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소개한 책들을 읽으며 머리 아픔을 이겨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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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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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폭망하고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이란 누워 자는 거였다. 왜 이렇게 잠이 오냐. 하면서 잤다. 간간이 드라마 보고 틈틈이 책도 읽었다. (『시지프스』 뽀갰다. 죽으면 미래로 가는 거였다니. 미래란 망한 한국이었다.) 희망 도서 왔다고 도서관 가서 책 빌렸다. 눈앞에 나의 희망 도서가 있었는데 아직 등록 안 했다고 다음에 와서 빌리라는 말 듣고 황당. 언제 또 오냐. 그러지 말고 빌려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빌려온 책 『나의 생활 건강』을 읽었다.


시인 열 명이 모여 몸, 건강이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요즘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얼마 전에는 백은선 에세이. (읽으면 글쓰기 의욕이 샘솟는 책이다.) 어머, 나 요즘에 시 안 읽나 봐. 시인 열 명의 이름을 보는데 처음 본 이름이 많다. 미안하지만 열 명의 시인의 시집이 한 권도 없다. 한동안 문학에 소홀히 한 나를 용서해 다오. 대체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지.


코로나19가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며 살아가나. 시인들은 그간의 일상의 루틴을 『나의 생활 건강』에 공개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오랜만에 간 집에서 고구마 들다가 허리 삐긋해 할머니와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다섯 개의 직업을 가지고 굴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와. 다섯 개 라니. 난 하나도 없는데.


'읽기, 쓰기, 마시기'를 하며 충실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무해한 일들. 따로 여행을 가기도 힘든 요즘. 읽고 쓰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 아닐까 한다. 하루 확진자 수가 오백 명을 넘나들고 어제는 칠백 명까지 갔더랬지. 그런 요즘 나는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고 누워 드라마 보고(지금 보고 있는 건 『나빌레라』와 『머니게임』. 이 좋은 걸 나만 몰랐단 거지. 나만 빼고 다들 재밌게 보고 있었단 말이지.) 배달 음식 시켜 먹는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이 일요일인 건가 그런 생각 안 해도 돼서 겁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시 시험 보려고 공부하고 있는데. 진짜 하기 싫은 마음을 접어 두고 책을 읽는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 즐거운 법. 책을 읽는데 황홀하기까지 하다. 넘나 즐거운 책 읽기. 공부 스케줄 쓰려고 산 플래너에 이번 주 읽을 책의 목록을 적는다. 드라마 뽀개면서 책도 다 뽀갤거야. 이번에는 전부 읽고 반납할 거야. 그런 생각이었지만 책 빌려온 지 3일 만에 겨우 읽은 책이 『나의 생활 건강』이다. 죽지 말고 아프지 말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면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가자.


방, 산책, 새벽, 빵, 드라마, 영화, 책.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들. 무슨 알고리즘인지 모르지만 취준생 브이로그 보고 있는데 어쩌 다들 그리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지. 반성 반성. 나의 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한심한심하겠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당분간 고민은 접어 두고 누워 있을 테다. 아침에 눈 뜨면 책 읽으면서.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한다고 하던데. 어쩌냐. 취뽀 하면 회 배달 시켜서 먹으려고 했는데. 미리 먹어야 되나. 이 상태로 가다간 취뽀는 힘들 것 같은데. 다들 연락 준다면서 왜 안 주는 건데요. 왜.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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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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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쓰는 리뷰다. 이거 실화임? 이틀에 한 번은 리뷰를 쓰던 나였는데. 게을러진 건가, 인간. 그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책 읽고 리뷰 쓰는 거 말고 다른 일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공부. 믿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도 하지 않던 공부를 뒤늦게 필받아서 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기출문제 4회분을 꼬박 풀었다. (아, 얼마 전에 본 컴활 2급은 합격 했습니다요. 자랑을 했나, 안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


4회분을 풀고 느낀 건. 나란 인간은 멍청하고 한심해서 어디 갖다 버리든지 해야겠다는. 틀린 걸 또 틀리고 자빠졌다는. 채점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이구. 어림잡아 여섯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간식도 먹긴 먹었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문제를 풀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무슨 공부를 하느냐. 궁금하실 수도 있는데. 과연 궁금해하시려나. 합격하면 자랑하겠습니다요.


나름 열공 모드로 지내느라 본업보다 열심히 했던 책 읽기와 리뷰를 쓰지 못했다는 사연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렇다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건 아니다. 전자책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었고. (아직 다 못 읽은 건 함정. 예전에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아껴 읽고 있다고 자위해본다.) 선물로 받은 백은선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서 드디어 오늘 완독했다. 예! 소리 질러!


주간 문학동네에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로 연재한 산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리뷰 쓰기 전 자주 사이트 방문해서 읽으며 글쓰기 뽕을 맞았던 산문들이다. 희한하게도 백은선의 산문을 읽고 나면 무엇이든 쓸 수 있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생겨서 마구 자판을 두들겼다. 그건 너무나도 솔직하게 너무나도 솔직해서 읽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에 이르는 글이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솔직함을 보는 일이란 나의 거짓을 들켜버리는 일이었다. 산문을 읽으면서 나의 위선과 위악이 차례로 떠올랐고 조금만 더 솔직해질 수 없을까를 반성했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백은선의 시집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한 번씩 올라오는 시인의 산문을 기대하며 지냈다. 공부한다고 문구류 사러 간 서점이었는데. 그렇다. 나에게 서점이란 책 보다 문구를 구경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문구를 챙긴 다음 예의상 매대 쪽을 보았고.


아이스크림은 좋아하진 않지만 색감은 좋아하는 민트 빛을 띤 백은선의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발견했다. 한동안 공부한다고 책을 멀리했는데. 그걸 나무라는 냥 책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다 하고 잠이 들기 전 한 챕터씩 읽었다.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물성이 있는 종이책으로 보는 게 더 슬프고 아프고 그랬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읽어보면 알겠다. 책에도 나오는데 돈 주고 사서 보는 걸로. 시인이 산문을 쓴 이유는 대단, 거창한 게 없었다.


전 남편이 진 카드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8년부터 만나 여러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는데 이혼할 때는 사억 육천 중에 오천을 주었다고. 전 남편은 매매로 집을 얻었고 아이와 함께 사는 백은선은 영끌해서 대출받아 전세. 아빠 집에 갔다 온 아이는 그 집이 좋았다고 고백하듯 말한다. 화장실이 두 개라고. 책에 다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이 책은 시인 백은선의 삶보다 사람 백은선의 삶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으려고 메모했고 최근에 나온 『도움 받는 기분』은 사서 읽을 거다.


붉은 스탠드 밑에서 읽는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그래도 문학, 어서 이 길로 돌아와야지, 재촉했다. 문학 없이 살 수 있겠어. 책의 문장을 읽다가 다른 생각에 빠지는 너를 만나야 하지 않겠어. 물었다. 그럴 때마다 울고 싶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맺어야겠지. 잘 끝내고 돌아올게 하고 답했다. 나 역시 내가 싫으면서도 좋다. 이상하기까지 한 내가 말이다.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수많은 밤에 책을 읽었다. 좋은 사람이 되길 글렀어 하면서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식을 떤다.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싫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가지만. 책의 문장은 그런 나를 위로한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 쓰는 걸 잊어버렸을까 봐 어제는 오랜만에 한글을 열어서(한글을 열어 글을 쓴다는 건 나 지금부터 제대로 된 글을 쓸 거야 같은 행위라서 피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다행히 한글을 안 까 먹었더라. 손이 기억하는 한글 자모의 위치.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밤에 쓴 거라서 안 열어보았다. 「내가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이라는 글의 마지막 문장, '그때까지는 살아야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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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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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아침형 인간이 된 지 석 달.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인다. 집을 나서면 횡단보도 앞에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어른이 있다. 일명 녹색 어머니회. 어머니회라고 하지만 남자 어른도 있다. 깃발과 경광봉을 든 두 어른은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에스코트하듯 아이를 학교 쪽으로 인도한다. 조그만 몸에 큰 가방을 멘 아이들은 마스크를 꼭꼭 쓰고 있다. 올해는 초등학교 1, 2학년은 매일 등교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줄이야.


단지 공부만 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낀 2020년이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놀기도 한다. 체육시간에는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모여 뛰어다닌다. 운동회와 소풍날에는 모여 앉아 김밥을 나눠 먹는다. 이런 일을 작년에는 하지 못했다.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다. 아동 센터도 문을 열지 않아 아이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학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은 학원에 갔지만 그마저도 코로나가 심해지면 휴원을 해야 했다.


내내 안타깝고 서글픈 한 해였다. 2021년은 좀 다를까. 요즘 내가 아침에 보는 풍경은 어른이 아이를 지켜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어른과 함께 길을 걸어도 아이들은 손을 들고 걸었다. 배운 걸 실천하는 똑똑함. 엘리베이터에서 학교나 유치원에 가는 어린이를 만나곤 하는데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서 오늘 나도 한 가지를 실천했다. 그전에도 인사를 받으면 고개를 숙이거나 안녕하세요라고 하기는 했다.


어린이에게도 본격적으로 존댓말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과 실천. '어린이가 있다'라는 진실을 『어린이라는 세계』는 깨우쳐 주었다.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다가 독서 교실을 열어 어린이와 수업을 하는 김소영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부끄럽고 뭉클했다. 어린이라는 시간을 거쳐왔지만 그때의 기억을 다 잊은 듯 항상 어른이었던 것처럼 지내왔던 것이다. 왜 저렇게 뛰어다닐까.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지. 나 역시도 어린이였을 때는 시끄럽고 떼를 쓰며 지냈는데, 홀랑 다 까먹고.


몸집이 작은 어린이가 보는 세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어린이라는 세계』는 이야기한다. 책상 위에 있는 걸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싶어 위험한데도 손을 댄다. 제대로 된 자기표현을 할 줄 몰라 크게 말하는 것이다. 김소영이 독서 교실에서 만난 어린이의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뭉클해지는데 그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어른들의 그것에 비해서 솔직하고 다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행을 가면 맛있는 걸 사와 독서 교실의 선생님에게 주고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걸 선물하는 어린이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어린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김소영의 관점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쓰레기로 뒤덮인 집에서 한 어린이는 아빠와 아이들이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홀로 방치된 채 말이다. 자신의 상황과는 너무 다른 환상 속 세계를 보며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짐작하기조차 미안해졌다. 아이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는 게 아닌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환상을 파는 게 아닌.


아이들은 환상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안정적인 세계로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넌 몰라도 돼. 넌 어리니까 모를 거야 하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 모두 알만큼 알았고 알았지만 모른 척하며 살았던 걸 잊지는 않았겠지. 어린이가 질주하는 차로부터 보호받으며 학교에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어른으로서 '어린이라는 세계'에 안착하고 싶다. 그거면 된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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