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 책상생활자의 최신유행 아포칼립스
심너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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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의 본격 작품을 읽기 전 에세이로 먼저 시작한 작가가 있다. 시인 중에는 문보영. 소설가 중에는 심너울이 있겠다. 심지어 나는 문보영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있는데도 시인의 에세이만 읽어대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지금까지의 독서 목록을 보자면 에세이가 압도적이다. 리디 셀렉트에서 빌린 책도 에세이가 압도적을 넘어서 전부다.


심너울의 에세이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빌렸다.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틈틈이 부지런한 척 리뷰를 쓰고 있는데 팔 할이 헛소리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나 소설로 쓰기에는 재주와 노력이 부족하다. 책을 읽고 떠오르는 기억과 지금의 감정과 기분을 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내가 산 책을 기반으로 추천 도서를 띄워준다. 어느 날 심너울의 작품이 올라왔다. 제목이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였다. 그래 그렇군. 제목이 그렇게 됐군. 나의 장바구니는 터질 것 같고 월급에는 한계라는 게 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작품을 사는 건 소심한 나에게는 무리이고. 얼마간의 이용료만 내면 무제한으로 책을 빌릴 수 있는 리디 셀렉트 덕분에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를 따져보자면 누군가들의 속내를 일상을 과거의 상처를 그에 따른 극복의 서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야의 특성상 사실적이라고는 하지만 프로끼리는 안다. 잘 포장한 진실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건대 작가들을 만날 일은 없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울은 멀다. 너무. 나는 번화가를 읍내라고 부르는데 읍까지 올 작가가 과연 있을까.


만날 일 없는 작가들이 그러나 궁금하기는 하다.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에세이.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에서 심너울은 과거뿐인 과거와 현재뿐인 현재를 보여준다. 미래는 모르겠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우울증과 범불안장애, 에이디에이치디를 앓고 있는 심너울은 웃기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더라. 작품은 좀 팔리냐는 소리를 해대는 삼촌이 밉지만 그 삼촌이 아이패드를 사줬다. 삼촌 쵝오.


택시에서 아이패드를 잃어버린 심너울. 우여곡절 끝에 아이패드를 찾는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한국일보에 썼나 보다. 욕을 많이 들었단다. 왜 일기를 신문에 쓰냐고. 아직도 나는 IOS와 Window의 차이를 몰라 브이로그에 나오는 맥북이 사고 싶다. 블로그와 한글만 겨우 쓰는 주제에. 그 차이를 심리학과 나온 심너울이 잘 설명해 준다.


반은 알아먹고 반은 못 알아먹은 건 함정. 나 같은 컴맹은 작년에 큰맘 먹고산 그램이나 평생 써야겠다는 것만 알아먹었다. 그가 추천해 준 넷플릭스 시리즈 《힐다》를 봐야겠다. 2022년 4월 18일 현재, 《힐다》의 시즌 3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헛소리를 쓰다 보면 뭐라도 될까. 뭐라도가 뭐냐면 욕심 약간 부리자면 시나 소설이 되어서 작가가 될 수 있냐는 소리다.


헛소리를 계속하면 쓰레기가 되는 건 십중팔구. 헛소리를 계속 쓰면…. 책 이야기에 책 이야기는 없는 리뷰를 쓰다 보면…. 욕심부리지 말자.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잠 잘 자는 나로 살아가자. 심너울은 본명이란다. 리디 셀렉트에 검색하니 심너울의 책이 꽤 있다. 다음 달의 월급이 아껴지겠네요. 감사. 심너울의 헛소리는 책이 되었고 그걸 읽으며 나는 또 헛소리를 쓰고 있고. 인생. 별거 없다는 게 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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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 - 혼자가 좋은 나를 사랑하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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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라고 쓸 수 있는 근거는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만 하며 살 순 없을까. 말 그대로 일만. 데비 텅의 카툰 에세이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의 주인공 데비는 전형적인 내항인이다. 옷 입는 스타일부터 머리 모양까지 어쩜 그렇게 나랑 닮았는지. 책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나 지금 사찰 당하고 있는 건가.


데비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어떡하든 혼자 있는 기회를 찾으려 한다. 친구들과 하는 스터디를 최대한 피하려 하고 어쩌다 가도 말을 아낀다. 약속이 취소되면 좋아한다. 남자친구 제이슨은 그런 데비를 존중한다. 데비가 공원에서 책을 읽으면 말을 시키기 보다 커피를 사다 준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둘은 결혼을 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데비는 취업을 한다. 출근하기 전날 온갖 걱정을 하는 데비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내가 보기엔. 누군가 봤을 땐 답답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데비의 고민과 걱정은 늘 내가 하던 것이었다.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데비가 사회화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었다. 주중에 바닥났던 사회화 배터리를 주말에 충전한다.


소파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데비. 혼자 있는 게 최고로 좋은 데비. 제이슨이 약속 모임에 가는 걸 반기는 데비. 혼자의 시간에서 데비는 주중에 쓸 사회화 배터리를 열심히 충전한다. 회사에서 데비는 일만 하고 싶어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나누는 이야기, 업무 중간중간에 나누는 이야기, 밥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 온갖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데비는 버거워 한다.


최근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염미정은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라고 읊조린다. 일만 하고 싶은데 밥만 먹고 싶은데 웃어야 하고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야 하고 분위기 띄워 볼까 농담했다가 분위기 싸해져 다시 우울해진다. 예전에는 그랬다. 명백히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를 썼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을 읽기를 바란다. 지금 힘들다면. 관계 때문에.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다면. 데비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자.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다. 싫은 건 안 되는 거다. 내가 문제라는 인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쉽게 문제는 풀린다.


사회화 배터리 충전을 하기 위해 주말에 내가 하는 일. 전날 자기 전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 놓는다. 유튜브를 보다가 책을 읽는다.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틀어 놓은 채.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수사물 보다가 잔다. 간식 먹고 책상에 앉아 텐바이텐에 들어가 소품 구경한다. 읽을 거라는 다짐으로 전자책 리더기에 책을 여러 권 다운 받아 놓는다. 충전 백퍼센트. 아껴서 사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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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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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도 아닌데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좋고 기쁘고 마구 들떴다. 귀여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오는 동안. 이런 게 소확행이지. 사는 거 별거 있나. 맛있는 거 먹으면서 웃고 떠드는 일. 농담을 하면 기꺼이 웃어주는 일. 편의점에 가서 신상 과자를 고르는 일. 가구 배치를 바꾸고 뿌듯해하는 일. 두툼한 단풍잎 닮은 손을 잡고 동네 핵인싸 강아지를 찾으러 다는 일.


마스다 미리의 신작 만화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를 읽는 일까지. 사실 알고 보면 웃을 일이 천지다. 한숨 쉬지 않는 하루. 그거면 된다. 단순한 그림체에 글이 많지 않은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으면서 보내는 하루까지 더해지면 괜찮다. 괜찮지 않을 일도. 다 읽고 나면 괜찮지 않을 일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결혼하지 않은 마흔 살의 딸 히토미와 정년퇴직하고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 시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즐기는 아내 노리에.


세 식구의 사랑스러운 일상에는 걱정이 없다. 히토미가 결혼하지 않은 일까지도 웃음으로 넘긴다. 잔소리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계속 같이 살고 싶어 한다. 일을 놓지 않는 히토미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시로 씨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 문화를 익히는 의욕을 불태운다. 제목처럼 시로 씨 가족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행복을 느낀다.


눈을 떠도 어두울 때가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 절망에 빠졌다. 좋은 걸 보고도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정한 친구와의 이야기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카페에서.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준다. 뻔하지만 그건 사랑하고 다정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있다고 말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면서 달콤한 디저트를 나눠 먹으면서 수다를 떤다. 어째 세상이 망할 것 같다. 그날 이후 트라우마 와서 뉴스를 못 보고 있다. 안 보는 게 아닌.


그전까진 행복하게 살련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나오면 바로 사고. 일 끝나고 단골 카페에 가서 음료 마시고. 귀여운 캐릭터를 모으고. 며칠 전에 월급을 받았다. 작고 소중한 내 월급. 잠깐 스쳐 가신 귀한 분. 겨우 깨달았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걸. 누군가 나를 우습게 여기게 놔둬서도 안 된다는걸. 불안하고 슬픈 마음이 든다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맥락도 없는 말을 하다 보면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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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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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동네 맛집에 가서 지리산 흑돼지를 구워 먹었다. 다행히 오후 늦게 가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너를 위해 가게를 빌렸다. 지리산 흑돼지는 1인분에 16,000원. 그냥 생삼겹살은 12,000원. 뭐가 좀 다르겠지. 지리산 흑돼지라잖아. 일단 2인분 시켜서 먹어보자. 맛은? 숯불에 구워서인지 비싸서인지. 겁나 맛있었다. 먹고 2인분 또 추가.


사장님은 고교 야구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고기에 집중하는 사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다. 발라드를 트롯으로 재해석해 부르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게 바깥에서 들리는 건 줄 알았다. 가장 웃겼던 건 김범수의 하루였다. 사랑이 날 또 아프게 해요. 슬픈 발라드는 구성진 자락으로 바뀌었다. 웃으면서 고기를 구웠다. 역시 비싼 게 맛있구나. 지리산이라 다르고만. 후식 누룽지까지 들고 마셨다.


윤성희의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에 실린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뭐든 다 괜찮고 괜찮을 것이니 비싸도 지리산 흑돼지를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지리산 흑돼지. 메뉴판에서 지리산 흑돼지를 발견한다면 꼭 먹어보시길. 열한 편의 소설이 실린 소설집인데 꼭 장편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인과 관계도 없이 닥치는 사고 앞에서. 내 탓인 걸까 자책하게 만드는 사고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체념하는 사고 앞에서.


『날마다 만우절』 속 인물들은 세상 사는 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것 가지고 힘들어 하누, 이런 말을 속삭이면서 통통한 손을 잡아준다.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거 골라봐 말한다. 퇴직을 하던 날에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사업에 몇 번 실패하고 집에 들어앉은 남편이 미울 때는 밖에 나와 킥보드를 훔쳐 타기도 한다. 암에 걸린 걸 알았을 때는 택시를 타고 내리면서 욕을 한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기치 않은 사고 일어날 수 있다. 사고가 커서 다치거나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윤성희는 소설 곳곳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표현만 바꿔서 들려준다.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그이랑 결혼 못 하고 죽은 남편이 돌아가면서 가족들 꿈에 나타나는 이상한 하루. 그래도 산다. 닭백숙을 해 먹고 동네 유치원에서 하는 아이들의 시 낭송을 듣는다. 동시를 지으며 마무리하는 하루. 윤성희의 원더랜드는 희미한 빛 속에 있다.


빛의 세기는 약하지만 은은하게 오래간다. 윤성희의 가족들은 대체로 철이 없고 무능하고 한심하다. 욕심도 가득하다. 젊은 날에는 대책 없는 일을 벌였다가 쫄딱 망한다. 원망하지 않는 힘. 그러거나 말거나 살아야지 하는 무한한 긍정으로 내일을 기대한다. 작가의 말에서 윤성희는 책을 읽은 후 '모두들,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다. 매일의 끝은 나의 한심함과 마주한다. 잘못 한지도 모르게 잘못을 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거고 다시 태어나는 일도 없을 텐데.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고 비싼 거 먹으면서 걱정하지 말고. 집에 돌아와 전구색 불을 켜고 요즘 꽂힌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 놓고 『날마다 만우절』을 읽어보자. 어떤 말들은 대책 없이 자주 쓰여서 들으나 마나 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대책 없는 그 말들을 자주 해줘야 한다. 괜찮아. 힘내. 네 잘못이 아니야. 일단 시켜. 사고 싶으면 사야지. 같은.


오늘의 거짓말 하나.


서울에 산다는 외삼촌한테 전화가 왔다. 휴일에는 벨 소리를 무음으로 해놨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 문자 메시지도 왔는데 내 이름을 틀리게 적었다.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자는 말은 왜 쓴 걸까. 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는 무소식이 희소식. 엄마는 죽을 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죽은 걸 알면 득달같이 내려와서 다 뺏어 갈 거라고. 막상 가져갈 것도 없는데 그런 걱정을 했다. 나는 청개구리니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처도 몰랐고.


거짓말 같은 하루. 산다는 건 낄낄거리며 거짓말을 들려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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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요즘 사는 맛 1
김겨울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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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 달은 그랬다. 그게 그러니까 카드 내역을 보려면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야 했다. 소비의 달이었다. 은행 앱으로 든 적금을 깨서 신나게 써 제꼈다. 하나 살 걸 두 개 사고 평소 같으면 안 사야지 했던 것도 샀다. 뭔가에 씐 듯. 소위 말하는 지름신이 강림하사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 했다. 뭘 해 먹으려는 마음도 없어서 배달의민족에 의지했다.


『요즘 사는 맛』을 쓴 저자 중 한 명인 배우 박정민처럼 카드 내역서에 자주, 빈번하게 우아한 형제 님들이 등장했다. 다들 아시나. 배달의민족 앱에서 결제를 하면 사용처는 우아한 형제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대체 우아한 형제가 누구길래 자꾸 돈을 가져가나 하겠다. 그렇다. 우아한 형제는 지금의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형제님들이다. 그 분들은 게으르고 배고픈 형제, 자매님을 위해 집 앞까지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준다.


거기까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돈 백은 우습게 사라진다. 어떤 유튜버는 배달 음식비로만 백만 원을 넘게 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주문하는 동안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이것도 못 먹지는 않잖아. 이 정도는 쓰면서 살 수 있잖아. 흥분된 마음으로 포장을 뜯고 먹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밥해 먹을걸. 펑펑 쓴 3월 지나 4월,의 첫 소비는. 두구 두구. 바로. 우아한 형제님이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사이드 메뉴까지 욕심 부리며 시켰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작가들이 배달의민족 레터에 음식을 주제로 산문을 썼나 보다. 시켜 먹기 바빴지 배민이 그런 걸 하는 줄도 몰랐는데 책이 나오고서야 알았다. 『요즘 사는 맛』은 무얼 먹고 사는지 왜 먹는지 먹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작가들의 귀여운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사는 모습만큼이나 먹는 모습도 다양하다.


남들이 어떤 걸 먹으며 사는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무얼 먹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을 때 읽으면 딱 좋은 책이다. 입이 터져 버린 배우 박정민의 이야기. 토마토에 진심인 김겨울. 혹독한 직장 생활을 견디게 해준 음식의 추억을 꺼내는 김혼비. 헐렁헐렁한 비건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요조. 한 음식만 패는 최민석. 읽으면서 깜짝 놀라서 다시 정독하게 만든 훌륭한 글솜씨를 가진 핫펠트.


요즘 나는 괜찮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원래도 아무거나 잘 먹는데 더 아무거나 잘 먹게 되었다. 매일유업에서 나오는 두유를 사서 냉장고에 일렬로 정리해 두었고(마치 편의점 같은 진열로) 친구 찬스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종종 먹고 있다. 샐러드 가게에 가서 감탄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걸 보고선.


다들 요즘 사는 맛은 어떤지. 세상은 점점 이상하고 기괴해져 가는데 괜찮은지. 그러니까 시간이 난다면 마트든 편의점이든 가서 달달한 걸 하나 사서 입에 넣으며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쓴맛 나는 하루였대도 하루의 끝은 달았으면 그랬으면 한다. 정 힘들 땐 배달비 생각하지 말고 제일 먹고 싶은 거 시켜서 먹어. 결제는 한 달 후 월급 받을 네가 할 테니까. 미래의 너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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