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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쓰면 죽는 병 ㅣ 위픽
이두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평점 :




지금 나의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는 1,201,450원치 80권의 책이 담겨 있다. 다른 쇼핑앱에는 말해 뭐해. 오늘의집은 말할 것도 없지. 거기는 단위가 다르다. 오랜 쓴 핸드폰은 평소에는 느린데 결제창에만 가면 빠바박 초고속 제트기의 속도로 시원하게 결제를 해준다. 평소에 좀 잘해라. 영상 보는데 끊어지는 거 진짜 화난다. 삼십 초짜리 영상 보는데 왜 1분 넘게 멈춰 있느냔 말이다. 화면 중앙에 나오는 나오는 돌아가는 동그라미 현기증 난다아아앙.
올리브영 세일 기간이니까 크림이랑 세안제 쟁여 놔야 하고. 꼭 돈 없을 때 치약이랑 생리대 떨어지더라. 체험단 가격으로 준다길래 3,701원으로 생리대 한 팩 샀다. 무슨 알고리즘인지 모르겠는데(생리대 사서 그런가.)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고 그 대신 아기 기저귀를 사서 쓰면 값도 싸고 냄새도 안 나고 생리통도 줄어든다는 짧은 영상을 보는데 왜 또 핸드폰 버벅거리는데에에. (오늘 산 거랑 지금 있는 거 다 쓰면 추천 템으로 갈아 타야징. 생리대 가격 좀 내려달라. 싸지도 않으면서 질은 왜 안 좋은데?)
돈을 버는데도 돈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소소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유튜브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지만 돈을 쓰지 않고는 더러운 마음이 정화되지 않으므로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샀다. 제목만 들어도 굉장하다는 감탄사가 나오는 책을. 이두온의 『돈 안 쓰면 죽는 병』이다. 제목 듣고 심장이 마구 쿵쾅대면서 눈치 없이 나댔다.
단편 소설 분량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위픽 시리즈 중의 한 권인 『돈 안 쓰면 죽는 병』의 줄거리를 원하시는지. 줄거리 요약은 서점 사이트에 가면 전문 인력들이 잘 정리해 놓았으니 한 번 읽어보시든가 말든가.(왜 이렇게 말투가 싸가지가 없냐면. 돈 안 쓰면 죽는 병은 아닌데 며칠 돈을 쓰지 못해서 비뚤어져서 그런 거임. 이해 안 해도 됨.)
남들 다 하는 당근 거래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심심찮게 들려오는 당근 거래 후기들을 알고 있는지라 『돈 안 쓰면 죽는 병』의 도입은 흥미롭다. 플람마라고 하는(나 왜 『돈 안 쓰면 죽는 병』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있는 건지. 언행불일치. 한입두말.) 돈을 쓰지 않으면 머리에 혹이 자라 터져 버리는 병에 걸린 주인공이 두둥 등장한다. 필요한 곳이 아닌 쓸데없는 데에 돈을 써야 병의 진행이 느려진다는 사실만 알아냈을 뿐 백신도 없는 돈 안 쓰면 죽는 병에 걸린 주인공이라니. 죽음을 직업으로 삼는 미키만큼이나 불쌍.
이두온의 소설은 에둘러 설명하거나 분위기만 풍기면서 서사를 늘어뜨리지 않는다. 속전속결로 이야기를 냅다 진행시켜! 버린다. 플람마에 걸린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은 어떤 시련을 겪으려나. 돈 못 써서 우울핑 되어 가고 있는 나의 도파민을 『돈 안 쓰면 죽는 병』이 분출 시켜 주었다. 진짜 이러다 투잡이라도 뛰어야 할 판. 주말에 누워 있지 말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하면 되지 않을까. 맨날 울면서 찡찡대고 있는 장바구니 비워줘야 하고 새로 나온 춘식이 텀블러 사서 물도 마셔줘야 하니까.
치약, 샴푸, 생리대는 필수 생활용품이라 이걸 사면 병은 더 악화된다. 대신 요아정, 춘식이 조명, 봄 신상 셔츠 질러줘야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2025년 최신 맞춤식 자본주의에 입각한다면 나의 쓸모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쓰는 것에 있단다. 돈을 쓰려면 돈을 벌게 해주라. 이 헬조선아. 이 엉망진창인 현대 사회야.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거 귀찮아서 못 하니까 어떻게든 지구에서 살고 싶으니까 물가 좀 내려주라. 이상 월 초라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절약핑의 하소연이었씀다.
잠깐 소설의 제목을 뒤집어 볼까. 『돈 안 쓰면 죽는 병』을 『돈 쓰면 사는 병』으로. 아 그러면 제목이 주는 충격이 덜하겠구나. 돈 안 쓰면 죽는 병은 돈 쓰면 사는 병인데도.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