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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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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뜻을 알고나니 저 뜻이 다가온다

 

이 책의 개요

 

이 책의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은 지금까지 접근하기 어려웠던 두꺼운 세계 경전들을 지혜의 근원으로써 가볍게 맛볼 수 있도록 풀어냈다. 특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이 시대에 꼭 읽어 봐야 할 7가지 경전들을 중심으로 감동적인 경구와 그곳에 함의된 의미를 맛깔스럽게 정리하고자 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과거 현인들이 지녔던 소중한 삶의 지혜를 상기시키고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 방향과 공부법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만든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 취지 하에 저자가 7첩 반상에 차려 올린 음식들과 골라낸 요리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도마복음 - 나그네가 되십시오

중용- 간절함으로 스스로를 이루다

숫타니파타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도덕경 - 머물지 말고 흘러라

금강경 -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가바드 기타 - 나는 누구인가?

동경대전 - 사람이 곧 하늘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 특히 나같은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 그 중 몇 개는 전혀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경전이다. 심지어 그런 것을 경전이라는 범주로 집어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이다. 그러니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반 우려반으로 생각하면서 읽었음직 하다. 내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그런데 오강남 교수의 추천사와 저자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약간씩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서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뮐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이 책은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경전 하면, 오로지 하나 내 경전만 있는 줄 안다. 이를테면 기독교인은 성경, 불교 신자는 금강경 식이다. 이 쪽 사람이 저것을, 저쪽 사람이 이 것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독선은 무관심과 편견, 무지를 낳는다. 너희 것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조차 알 수 없다. 더구나 종교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자들에게 의해 의도되고 탈색된 경의 껍질만 만지작거려서는 그 참뜻을 알기가 요원하다. 눈 감은 신앙으로는 경전에 숨은 속 뜻을 알아채릴 수 없으며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

 

 

그러니 내가 가진 경전을 알기 위하여 다른 경전을 읽어야하는 당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그 당위성은 올바른 진리의 방향으로 나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막스 뮐러의 말 -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 을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만났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는 이미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는 나는 마치 나 혼자 이 책에서 막스 뮐러의 숨결을 느낀 양, 의기양양해 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일곱 가지 경전을 대하는 자세

 

그래서, (막스 뮐러의 말을 가슴에 품었으므로), 이 책을 심도있게 읽을 수 있었다.

먼저 경전을 읽을 때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경전을 대하는 기본 태도는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경전을 읽는다는 것,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 경을 거울삼아 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옷깃을 여미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8)

 

그렇게 경전을 읽을 때에 얻어지는 결과를 오강남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가벼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경()을 경() 삼아 경()하게 되는 것

경전을 거울 삼아 삶을 가볍게 한다,는 말이다.

 

이 뜻을 알고 나니 저 뜻을 알게 되는 사례들

 

그러한 사례들을 몇가지만 추려본다.

 

. 도마복음과 누가복음

 

그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도마복음, 3)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누가복음 17:20)

 

그 두 개의 구절이 지향하는 바가 같다. 그래서 이쪽 말을 이해하면 저쪽 말도 저절로 이해가 된다.

 

. 중용과 성경 - 중용의 지침과 성경의 황금률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충서이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 도리’()이자 사랑’()이다. 이런 중용의 실천 지침이 성경에서 말하는 황금률과는 사못 대조적이란 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중용의 입장은 일견 소극적이지만 갈등의 소지가 없다. 반면 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는 성경의 입장은 굉장히 적극적이지만 자칫하면 이기심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항상 좋은 것이 될 수는 없으며, 되돌려 받고자 행한다면 그 의도가 선하다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68-69)

 

. 우파니샤드와 도덕경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이런 말이 있다.

<젊은이여, 2 가지 지식을 알아야한다. 높은 지식과 낮은 지식이 그것이다. 종교의식,천문학, 언어를 통한 학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예술 창작행위, 이런 것들은 모두 '낮은 지식'이다. 그리고 깨어있음(自覺)을 향한 모든 노력, 이것이 '높은 지식'이다.>(124)

 

도덕경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無爲)에 이르십시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123)

 

학문의 길, 하루하루 쌓아가는 길은 낮은 지식이다. 반면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이니, 그게 바로 깨달음의 증표요 따라서 그게 높은 지식’인 것이다.

 

더하여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를 읽었다. 읽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책을 읽는다고 이해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리히 프롬은 언제나 나에게 못다한 숙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 읽다가 그 숙제 풀게 되었다. 86쪽 이하에 저자가 에리히 프롬을 풀어놓았다.

 

<삶의 근원적인 의미에 목마른 이들에게, 에리히 프롬은 삶을 소유냐 존재냐라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우리의 학습, 기억, 대화 , 독서, 지식, 그리고 신앙이 어떤 형태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가령 앎이란 미망을 깨뜨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깊이알고자(존재양식) 하는 대신 더 많이알고자(소유양식)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다. 내면화하고 변화를 이끄는 학습 대신 저장하고 쌓아두기 위해 학습해 온 것은 아닌지도 따진다. >(86-87)

 

바로 이거다. 이것 하나로 에리히 프롬은 나에게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깨달음이 되었다. ‘소유냐 존재냐를 다른 방향에서 살피려 할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그러니 내가 그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바가 있다는 말이겠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니, 그 실질적 의미가 이해가 된 것이다.

 

결론으로

 

이 책을 다 읽고난 나의 술회는 저자의 저술 의도가 적중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전들을 한꺼번에 살펴보면서 그 내용들이 때로는 한 뜻으로 꿰이기도 하고, 결국은 이 뜻을 알고 나니 저 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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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2 -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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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 앵두나무는 지금도 있을까?

 

이 책은 역사 저널 그날 두 번째 책이다. 다룬 시기는 조선 시대 문종으로부터 연산군까지인데, 특기할만한 것은 끝에 특별기획으로 조선 왕릉의 비밀이라는 장을 첨부해 놓았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의 기록이다.

 

이 책은 1권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책의 제목 그대로, ‘그날을 조명해 보는 책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날이 가지는 의미를 천착해서 우리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과 만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를 교과서적인 접근 방법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우리가 만일 그 당시 그날을 살았더라면 충분히 경험했을만한 경지로 독자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두 가지 갈래로 찾아 읽었다.

하나는, 지금껏 읽어왔던 역사서에서 언급되지 않아 미쳐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두 번째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의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의미를 깨달아 안 것들, 그렇게 두 갈래로 알게 되었다.

 

역사를 바꾼 한 글자

 

노년에 한명회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靑春社稷  (청춘사직)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白首江湖  (백수강호)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이게 압구정에서 지은 시이다.

 

한명회가 자기의 위상을 과시하는 건데, 김시습이 이걸 보고 재치있게 패러디를 했다.

 

 

靑春社稷 (청춘사직)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白首江湖 (백수강호)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중간에 한 글자만 바꿔서 한명회를 비꼰 것이다. (115)

 

그런데, 글자 하나를 바꿔 뜻을 다르게 바꾼 경우가 비단 김시습만의 일이 아니다. 글자 한자를 바꿔치기 당해 결국은 목숨을 빼앗기게 만든 시가 있다. 바로 남이장군의 북정가이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앴네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

 

나중에 유자광이 남이를 역모로 고변할 때에, 세 번 째 행의 미평국(未平國)’미득국(未得國)’으로 바꾼다. 평을 득으로 바꿔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이런 시를 읊으면서 야심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141)

 

그러니 이 한 글자를 고치지 않았다면 남이 장군이 역사에서 제 역할을 더 했을 것이니, 아쉽다. 그 한 글자를 고치지 않았다면?

 

앵두나무는 지금도 있을까?

 

이 책은 <그날> 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자들이 등장, 역사의 그날에 대해 제각기 자기들의 견해를 밝히고 그 내용을 정리해 놓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기록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록이다.

 

<실록에 세종이 앵두를 좋아하셔서 문종이 세자궁 옆에 앵두나무를 심어가지고 앵두가 익으면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는 기록이 있어요.

창덕궁에 아직 그 앵두나무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있으면 천연기념물이 됐겠죠. 문종이 심은 앵두나무는 아마 죽었겠죠. 어쨌든 그 후로 궁궐에 앵두나무 심는 풍속이 생겨서 지금도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앵두나무가 있어요.> (16)

 

출연자 중 한명이 궁궐에 앵두나무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비록 문종이 세자 시절에 rtla은 나무는 아니지만, 그후로 앵우나무를 꾸준히 심어 지금도 궁궐에 앵두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과연 창덕궁이나 경복궁에 앵두나무가 있을까?

허실삼아 앵두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궁에 가서 직접 눈으로 살펴본 것은 아니고, 박상진 저 <궁궐의 우리나무>를 통해서이다.

 

<궁궐의 우리나무>는 우리 역사 속에서 나무를 찾아낸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인데, 개발이라는 곡절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가 가장 많이 있는 곳, <궁궐>을 배경으로 나무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거기에 앵두나무가 있을까?

56쪽 이하에 앵두나무가 등장한다. “세종대왕께서 즐겨 잡숫던 앵두나무라는 제목하에 나타난다. 물론 <그날>에 기록된 문종의 앵두나무 진상기도 들어있다.

따라서 <그날>의 출연자들이 하는 말들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 이것으로 증명이 된다 하겠다.

 

정난(靖難), 확실히 알게 되다.

 

계유정난 (癸酉靖難) - 어려울

, 자가 문제다. 난이 의미하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발음조차 헷갈리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다. 그렇게 발음부터 의미까지 혼돈을 하여 오던 중,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계유정난이 계유년에 벌어진 정치 변란, 즉 세조의 구데타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명칭인줄 알았어요. 근데 알고 봤더니 계유정난의 정자가 편안히 할 정()자더라고요. ‘난을 편안케 했다이런 뜻이래요. 이게 어떻게 정난일 수 있는지 대단히 의아해요.

철저하게 승리자 쪽에서 붙인 용어죠. 1453년이 계유년이니까 계유(癸酉). 아까 말씀하신대로 정은 편안히 할 정, 잘 다스릴 정자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난 자도 조심해야 하는데 이게 어려울 난() 자예요. 우리가 곤란’, ‘가난할 때 어려울 난 자를 쓰는데, 계유정난의 난을 어지러울 난()자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어지러울 난자를 써서 왜적이 일으킨 어지러운 난리라는 뜻이니까요. 만약에 시험에서 계유정란이라고 쓰면 틀린 답이 되는 거예요. 정난이라고 써야 해요.

어려운 상황을 잘 다스렸다. 편안히 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승리자의 관점, , 수양의 입장을 반영한 용어라는 말씀이군요.>(43)

 

그러니 은 철저하게 다르다.

은 어려울 , 은 어지러울 ,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따라서 발음도 다르다. 靖難정란이 아니라, ‘정난’. 倭亂왜난이 아니라, ‘왜란’.

 

한 문장으로 인물평을 한다면?

 

문종 :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느낌, 우리에게 알려진 모습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인물.

작은 효도도 있고 큰 효도도 있는데, 너무 작은 원칙에 집착했던 임금(38)

 

인수대비 :12년 청상과부로, 26년간 왕의 어머니로, 10년은 손자의 눈치를 보며 화병으로 죽은 여인.(188)

 

연산군 : 분기탱천(憤氣撐天)을 생각나게 하는 임금

연산군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분기탱천해 있었고, 세상사람들은 또 그런 연산군에게 분기탱천한 것 같다.(217)

 

역사를 반추하기 위하여 되새겨 볼 말들!

 

권력은 소금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 (89)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101)

 

그러니, 역사를 알아야 하는 국민으로서 단순한 역사의 기록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러한 경구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렇게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교차시켜가며 성찰하는 지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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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식 2019-01-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 달 전에 생각했던 ‘창덕궁 앵두나무‘를 보러
오늘은 다녀올까 합니다.
2018년10월6일(토)에 창덕궁 후원을 산책하다가
‘누리장나무‘를 보게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훌륭한 책 소개 감사합니다!
 
쑥스러운 고백 박완서 산문집 1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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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새로운 희열, 맛보다

 

박완서의 산문집, 그 첫 번째 권 <쑥스러운 고백>을 읽었다.

저자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맛깔스럽다. 언제나 신선하다. 내가 저자의 모든 글을 읽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 읽을 때에 '전혀 새로운 희열'(18)을 느꼈다. 맛보았다.

 

주옥같은 경종, 글은 그런 울림이 있어야

 

이 책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글을 고르라고 한다면 41쪽 이하의 난 단박 잘 살테야이다.

그중에서도, 44쪽의 글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에 호화 혼수품을 보고 난 다음에 보여준 저자의 반응이다.

 

저자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하여 상황을 잠깐 들여다 보자.

 

<그 댁은 신부댁이었고 손님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것은 바로 신부의 혼수였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것들을 한마디로 혼수라 부를 수 있을는지 나는 ’하고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나이까지 혼인 구경도 여러 번 하고 부잣집 혼수도 더러 눈여겨 뵜지만 이건 그 정도의 안목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42)

 

여기까지 소개된 글을 읽으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은 분들을 위해 몇가지 더 소개한다.

 

<침구의 수효와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옷은 다른 것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댁에 예물로 가져갈 침구와 옷과 패물이 또 어마어마했다. ,,,,실크 한 벌....비취 브로치,,,,,,,,산호 노리개...시아버지 양복도 몇벌 ,,그랜드 피아노를 싣기 위해 특별히 고용한 인부들이 포장을 공들여 하는 광경도 보았다.>(43)

 

이런 광경을 보고 기가 찬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경종을 우리 사회를 향하여 울린다.

여북해야 나는 같이 구경을 하던 사람 중에서 나하고 그래도 제일 친한 사람에게 나중에 넌지시 물어봤다.”

 

뭐라 물어봤을까?

이 댁 신부가 결혼식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아마 어딘가 병신임에 틀림없겠는데 어디가 병신인가고. 그랬더니 천만에 사대육신이 멀쩡한 미인이라지 않나. 그러면 몸에 무슨 병이 있든지 하다못해 골이 남보다 비었든지 그렇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천만에, 건강하고 출신학교도 명문으로만 뽑았다고 했다.”

 

, 이쯤 했으면 저자는 납득이 될만도 하다. 저자가 의구심을 가졌던 모든 것들이 아니라지 않는가? 그러면 순순히 인정을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어야 되는데, 저자는 달랐다. 이어지는 말을 마저 들어보자.

 

<그래도 나는 오늘까지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신부가 골은 좀 빈 신부려니 하고 믿고 있다. 뭔가 지독한 열등감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량공세로 나올 수가 있겠는가.>(44)

 

나도 저자의 그런 천연덕스러운 결론에 동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딘가 골이라도 좀 비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 여자가 고른 독처럼, 글이 잘 생겼다.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24)

 

무엇을 설명하는 문장일까?

그 대상은 뜻밖에도 항아리, 독이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가을이던가 시장엘 가는데 앞집 부인이 옹기점에서 항아리를 고르다가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어느 것이 잘생겼나 좀 봐달라는 거였다.>

 

그런 앞집 부인의 청에 저자는 이런 마음이었다 한다.

<이목구비가 달린 것도 아닌, 기껏 배만 불룩하면 고만인 항아리가 잘 생겼으면 얼마나 잘 생겼고 못생겼으면 얼마나 못생겼겠는가. 나는 별로 달갑잖아 하면서 마지못해 항아리를 몇 개 기웃거려 봤다.> (23)

 

그런데 그런 저자의 자세, 태도와는 다르게 그 부인은 열성이었다. 어떻게? 저자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심각한 얼굴로 첩첩이 쌓인 독과 항아리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고개를 갸우뚱, 눈을 가느스름히 떴다 크게 떴다, 가까이에서 봤다가 멀리 물러나서 봤다가, 손으로 어루만져봤다가 좀처럼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23-24)

 

이윽고 독을 고르고 난후 그 부인의 지른 환호성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24)

 

 

 

그런 부인의 자세에 저자는 드디어 설득이 된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이제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저자는 독을 고르는 법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닌 것이, 그 다음에 귀부인들의 미술 작품 고르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귀부인들이 값비싼 그림을 보고 사들일 때 과연 B 부인이 옹기전의 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을 고르기 위하여 치른 것만큼이나 진지하게 보고 찾는 과정을 거쳤을는지, 또 그 부인이 오래 보고 찾은 끝에 드디어 소망하던 아름다운 독과 만났을 때만큼의 순수한 기쁨이나마 맛보았을는지.> (25)

 

그런 저자의 말이 지금 이 시점에, 과정을 생략하고, 무조건 단박을 외치는 이 세상 풍조에 얼마나 귀한지, 이 책을 통하여 새삼 느껴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모든 글들이, 모든 문장들이 그 부인이 말한 것처럼,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라는 감탄, 절로 나온다.

 

노자의 숨결, 글에 담겨있다. 

 

무릇 글을 쓰다보면, 철학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 특히 저자의 생을 돌아볼 때에 그런 철학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모두 알고 있는 터, 그래서 작가의 글을 읽다가 문득 노자의 숨결을 느꼈다.

 

흔히 말하는 인덕이라는 것도 사람의 허한 부분, 즉 이웃을 들어앉히고 포용할 수 있게 비워놓은 자리가 있음을 일컬음이 아닐까요? 꽉 찼다는 것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음을 의미하고 절망을 의미합니다.”(82)

 

노자의 도덕경 제11장에서 수레바퀴와 그릇, 그리고 방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빔의 철학을 설파하기 위해서이다.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없는 곳의 빔, 그릇의 안쪽의 빔, 그리고 벽을 뚫어 만든 방문의 빔이 있음으로 해서 수레와 그릇과 방의 쓰임새가 생긴다. 그러니 노자의 견해에 의하면 수레바퀴나 방이나 그릇 모두, 그 안이 비어있기 때문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릇이 이미 채워졌으면 이제 다른 음식을 담을 수 없지 않은가?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그러므로 유형이 있는 것들이 이롭게 쓰이는 것은 그 공허한 빈 공간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자기'로 꽉 차있으면 그 누가 그 안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인덕, 그게 바로 자기를 비워 남을 품는 그릇이다. 저자는 그런 이치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그렇지 못하니 절망이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이런 글, 우리가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이 책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씌여진 글이 없으니, 이 시대에 그런 외침, 울림,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까지 묶어 가르칠 수 있는 선생 한 분이 계시지 않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책 읽으면서 그 마음 더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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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명저(名著)와 명저, 그 사이에서

 

공자, 말씀하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朝聞道 夕死可矣)"

 

공자처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나를 깨우쳐주는 것 - 즉 도()- 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공자의 그 말을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지는 자그마한 바람이 아닐까?

 

평소에 책을 대할 때마다 그런 바람을 지니고 읽었다. 어떤 책은 그러한 나의 바람을 채워주는 것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서는 그런 바람을 잔인하게 배반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소원을 생각지도 않았다가,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가, 무릎을 치면서 공자의 그 말을 외치게 된 책이 있다.

바로 고영성이 지은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이다.

 

저자는 비즈니스에 관련된 책 10권을 읽어가면서, 그 저서에서 정수를 뽑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공자가 말한 그 도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언급한 총 10 권의 책 중에서 내가 읽었던 책은 다음의 세권이었다.

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그러니 나머지 7권의 책은 나에게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어찌보면 내 관심 밖의 책들이었고 그런 책 속에서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이 있으리요, 하는 회의로 읽기를 기피하던 분야의 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내 상황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비즈니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6)다고 말한 것에 딱 부합하는 일이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포착이 되었다.

 

무조건 긍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 ‘적절한 비관성

 

긍정의 힘이라 인구에 회자되는 그 캐치 프레이즈, 마치 그 것이 만사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그 짜증스러운 범람, 그래서 긍정의 줄에 서지 못하면 시대에 낙오되는 듯한 공세. 이제 염증을 느낄만도 한데 아직도 사람들은 그저 긍정을 외친다. 그야말로 무한긍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긍정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다르다.

다니엘 핑크의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세일즈 할 때에 가장 두려운 것은 거절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거절을 당하면 심리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거절을 계속 당하게 되면 뇌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거절을 당했을 때의 손상을 회복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 그런 자질이 바로 회복력이다.

 

그런 회복력 요소의 하나로 긍정성을 꼽는데, 긍정성은 바로 전염이 되기 때문이다. 긍정성은 전염되기 때문에 세일즈에서 구매자는 덜 적대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며 결국은 양측에게 득이 될 수 있는 합의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항상 듣던 말이다. 그래서 세일즈맨으로 하여금 거절당하더라도, 빠른 시간에 회복하여 다시 한번 세일즈에 임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무한도전의 노홍철처럼 무한긍정은 오히려 행복도를 낮춘다고 한다. 사회과학자 마르시알 로사다의 집단행동 연구에 의하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31 일 때 행복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로사다 교수는 이를 적절한 비관성이라 한다.>(210)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어느 때나 항상 긍정적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다. 한쪽으로 그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따라가는 것이다. 긍정이 좋다니까, 무조건 긍정이다. 무한긍정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이어간다.

<부정적인 감정은 지난 행동을 뒤돌아보고 현재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인다. 무한긍정에 빠지기 보다 적절한 비관성을 겸비한 긍정성으로 세일즈에 임할 때, 실제 실적도 높아질뿐만 아니라 거절의 거친 파도를 즐기며 서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210)

 

그러한 적절함을 찾아낸 저자가 고맙다. 모두다 예스라고 할 때에 누군가는 거기에 대하여 한번쯤 살펴보자고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러한 적절한 비관성이 세일즈를 포함한 비즈니스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또한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살아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 말, 공자가 말한 득도의 대상이니, 내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굴절적응(exaptation)

 

읽는 중에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해서 옮긴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엘리자베스 브르바에 의하면, 굴절적응(exaptation)이란 하나의 유기체가 특정용도에 적합한 한가지 특성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그 특성이 전혀 다른 기능으로 이용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전적인 사례가 새의 깃털이다. 처음에는 추운날씨에서 몸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하늘을 나는 용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정말 멋진 비유로 굴절적응을 설명했다.

어두운 방을 밝히기 위해 성냥을 켰는데, 문을 열자 방안에 통나무 장작이 쌓여있고 벽난로가 있다면 성냥은 전혀 다른 용도를 갖게 된다. 하나의 맥락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다른 맥락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굴절적응의 본질이다.”>(152)

 

이러한 굴절적응의 예가 비단 조류의 날개만이 아니다. 눈을 돌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세계 문명속에 얼마나 많은 사례들이 있는지! 그래서 아서 쾨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적 사고의 역사에서 모든 결정적인 사건들은 서로 다른 분야들과의 정신적 교차 수정의 관점에서 묘사할 수 있다.”(153)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례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는 패스트스킨 수영복과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WWW을 들 수 있으니, 굴절적응은 비단 진화론의 이론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이론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명저와 명저, 그 사이에서

 

저자는 명저(名著)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설레였던 책>,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놓기 싫었던 책>

 

그런 명저를 10권이나 내 앞에 제시한 저자의 책은 나에게 명저로 다가온다. 왜냐면 저자가 보여준 책의 정수가 비단 비즈니스에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면에 적용되는 것이고, 따라서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뿌뜻하고 설레는 내용들이 가득한 책, 게다가 적용까지 가능한 책이니 명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더하여 이 책에서 소개된 10권의 책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소개된 것이 없다. 내가 읽은 것은 비록 세권에 불과하지만,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 소개된 나머지 책들도 나와 인연을 맺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 하게 만든 이 책은 분명 명저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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