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까지 가는 여자 2층까지 가는 남자
스콧 할츠만.테레사 포이 디제로니모 지음, 정영은 옮김 / 프리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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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 여자 2층 남자

 

먼저 유머 한편 읽어보자

 

이 책에는 의미심장한 유머 한 편이 기다리고 있다.

166쪽에 있다. 길어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부분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아내를 파는 가게가 있다. 6층 건물이다.

남자들이 한 층씩 올라가면서 아내감을 고를 수 있는 가게다.

1층에는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이 있다. 그리고 2층에는 미모도 뛰어나고 섹스도 잘하는 여자들이 있다. 그럼 3층부터 6층까지는 어떤 여자들이 있을까?

 

답은?

그건 알 바 아니다. 왜냐하면 3층 이상 올라간 남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남편을 파는 가게를 들러 볼까?

어떤 모습이며, 어떤 일이 생겼을까?

내용을 여기 다 옮길 수 없으니, 직접 읽어볼 일이다.

 

남녀간의 차이가 문제를 만든다.

 

이런 유머가 의미하는 바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쯤 되겠다. 그리고 이 유머에 숨어있는 의미가 바로 이 책의 제목 <6층까지 가는 여자 2층까지 가는 남자>이다.

물론 이 유머가 의미하는 직접적인 것은 성에 대한 남녀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을 필두로 하여 남녀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그 차이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결과를 만들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이런 책을 읽는 것도 필요하게 되었다.

 

실제적인 해결책들

 

이 책, 그래서 매우 실제적이다.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내 남자 사용설명서] 이다. 마치 가전 제품에 때라오는 매뉴얼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가전제품 매뉴얼, 누가 차분히 읽어보기나 하는가? 그냥 대충 넘기고 쓰다보면 익숙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충 읽어보고 넘어간다. 그러니 가전제품의 기능중 알뜰하고 살뜰한 기능은 전혀 쓸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가전제품 매뉴얼은 그렇게 할지라도 이 책만은 차분하게 차근차근 읽어볼 일이다.

 

먼저 이 책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은 행복은 스스로 아는 자를 돕는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부부가 같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망라해 놓았다.

남자의 7가지 특성, 남자의 핵심적인 본성. 내 남자 제대로 파악하기.

 

이쯤되면 남자인 내가 찔릴만 하다. 내 모습도 분명 저 중에 하나일텐데, 하는 심정으로 당황도 해가면서 읽었다.

 

남자는 노력한 것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맞다. 맞아!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렇게 아내에게 인정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 뭐가 있을까?

그래서 개선의 3 단계에서는 아내들이 남편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 첫째가 이해하라이다.

 

책중 예로 들은 케이스에서 칼라가 한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남편이 말한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예요.”(74)

 

샬롯 브론테가 말했다는데

 

이 책은 원래 여성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행복한 아내의 비결> 쯤 되니까, 여성을 위한 책이 분명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아내가 행복하면 남편 역시 행복한 법, 그러니 남성인 독자가 읽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살 수 있을까를 알기 위해서는 남편인 남성이 읽어야 되지 않을까?

 

타인에게 사랑받는 기쁨, 그리고 내 존재가 타인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고 샬롯 브론테가 말했다니,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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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기다리며 천안함을 고발한다 2 - 심리분석으로 파헤친 천안함의 진실과 거짓
한민국 지음 / 밥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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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분석으로 살펴본 천안함사건

 

저자의 시도는 독특하다.

천안함 사건을 심리 분석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물리적 증거 차원 이의 제기

 

지금까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에 대한 이견 제시는 주로 물리적 증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국방부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몇몇의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상철과 이종인의 주장이다.

국방부의 주장에 대하여 신상철은 좌초후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고, 이종인은 좌초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주장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내가 보기에 국방부 입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적절한 증거의 선택과 잘못된 해석으로 혼란에 빠진 느낌이다. 신상철과 이종인, 그리고 많은 네티즌의 국방부 발표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성공하였으나 천안함이 어떠한 원인 및 과정을 통해서 침몰하였는지에 대한 합리적 설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173-174)

 

그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와 같이 국방부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물리적 증거중심의 접근은 제한점이 뚜렷하다. 국방부가 제시하는 수많은 물리적 증거들에 사로잡혀서 헤매거나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천안함 사건이 단순히 물리적 증거중심으로 접근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175)

 

심리분석으로 살펴본 천안함 사건

 

그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증거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황당한 증언이나 거짓말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안함의 함장과 지휘관 및 천안함 관계자들에 대한 심리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76)

 

그런 결론하에 저자는 관계자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분석의 내용을 생존본능과 범죄동기, 합리화, 그리고 집단사고와 집단합리화의 측면으로 구분하여, 천안함 관계자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합리화에 대한 것만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은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인간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잘못이나 범죄행위에 대해서 합리화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합리화를 통하여 얻는 것은 무엇일까? 잘못된 행동이나 범죄행동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의 경우에는 함장과 관계자들이 사건을 북한의 어뢰공격이라고 하는 것이 함미에 갇쳐 사망한 장병들을 위한 것이고, 생존한 장병들을 위한 것이며, 심지어 사망한 장병들의 유가족을 위한 것이라, 합리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합리화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은 자기들의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천안함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론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동안 잊혀왔던 천안함에 대해,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 결론이다. 더하여 비단 천안함 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상식에 대한 경종도 울리는 책이다, 우리들은 합리적인 사람인가? 그래서 어떤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런 생각없이 그냥 듣는대로, 아무런 비판적인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그런 물음을 저자는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실 많은 범죄행동들도 넓은 의미에서 본성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189)

 

( 이 책은 1, 2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서평은 두권 모두를 읽고 종합적으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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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기다리며 천안함을 고발한다 1 - 심리분석으로 파헤친 천안함의 진실과 거짓
한민국 지음 / 밥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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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분석으로 살펴본 천안함사건

 

저자의 시도는 독특하다.

천안함 사건을 심리 분석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물리적 증거 차원 이의 제기

 

지금까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에 대한 이견 제시는 주로 물리적 증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국방부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몇몇의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상철과 이종인의 주장이다.

국방부의 주장에 대하여 신상철은 좌초후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고, 이종인은 좌초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주장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내가 보기에 국방부 입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적절한 증거의 선택과 잘못된 해석으로 혼란에 빠진 느낌이다. 신상철과 이종인, 그리고 많은 네티즌의 국방부 발표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성공하였으나 천안함이 어떠한 원인 및 과정을 통해서 침몰하였는지에 대한 합리적 설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173-174)

 

그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와 같이 국방부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물리적 증거중심의 접근은 제한점이 뚜렷하다. 국방부가 제시하는 수많은 물리적 증거들에 사로잡혀서 헤매거나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천안함 사건이 단순히 물리적 증거중심으로 접근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175)

 

심리분석으로 살펴본 천안함 사건

 

그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증거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황당한 증언이나 거짓말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안함의 함장과 지휘관 및 천안함 관계자들에 대한 심리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76)

 

그런 결론하에 저자는 관계자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분석의 내용을 생존본능과 범죄동기, 합리화, 그리고 집단사고와 집단합리화의 측면으로 구분하여, 천안함 관계자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합리화에 대한 것만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은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인간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잘못이나 범죄행위에 대해서 합리화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합리화를 통하여 얻는 것은 무엇일까? 잘못된 행동이나 범죄행동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의 경우에는 함장과 관계자들이 사건을 북한의 어뢰공격이라고 하는 것이 함미에 갇쳐 사망한 장병들을 위한 것이고, 생존한 장병들을 위한 것이며, 심지어 사망한 장병들의 유가족을 위한 것이라, 합리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합리화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은 자기들의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천안함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론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동안 잊혀왔던 천안함에 대해,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 결론이다. 더하여 비단 천안함 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상식에 대한 경종도 울리는 책이다, 우리들은 합리적인 사람인가? 그래서 어떤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런 생각없이 그냥 듣는대로, 아무런 비판적인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그런 물음을 저자는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실 많은 범죄행동들도 넓은 의미에서 본성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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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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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이모저모 느껴보기

 

사람이 사물들을 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감각으로 느껴보기일 것이다. 감각으로 사물을 인식해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의 사물과 같이 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감각을 통하여 새겨보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느끼다에 대하여

 

그런데 여기 이 책의 분류가 어색하다.

분류를 네 가지로 했는데, ‘느끼다’, ‘보다’, ‘듣다’, 그리고 만지다로 해 놓았다.

그러니 뒤의 세 가지 감각과 앞의 느끼다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느끼다라는 말은 무엇일까? 무슨 의미일까?

국어 사전에 의하면 느끼다의 뜻은 세 가지이다 .

감각 기관을 통하여 어떤 자극을 깨닫다.

마음속으로 어떤 감정 따위를 체험하고 맛보다.

어떤 사실, 책임, 필요성 따위를 체험하여 깨닫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네 가지 분류는 약간 어색한 것이다.

감각을 통하여 어떤 자극을 깨닫는 것이 느낌이니, 맨 앞에 나오는 느끼다라는 인식은 실상 뒤에 등장하는 보다’, ‘듣다’, ‘만지다를 통하여 깨닫는 것이니, 중첩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맨 처음의 느끼다라는 주제 하에 쓰여진 글들은 다른 감각들보다 더 종합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글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버지의 숟가락은 어떻게 느낄까?

만져서? 눈으로 봐서? 아닐 것이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간직하게 된 필자 김소연은 그 사물을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

 

자주 쳐다본다.”

반짝 반짝 윤을 내보다가 생각했다.” , 만지고,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생각해 본다. 즉 여기에 나오는 감각 외에 생각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쳐다보다가, 만지다가, 아빠의 지난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을 총체적으로 느낀다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숟가락>이란 글에서는 느끼다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느끼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느낌을 표현해 보시오라는 과제를 받고 글을 쓴 것 같다 

 

수저에 얽힌 두 사연

 

이 책에는 같은 사물에 대해 두 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물은 모두 아버지와 얽힌 추억이 담긴 것이다. 하나는 은수저, 다른 하나는 숟가락.

 

하나는 녹여서 팔과 손가락에 끼우고, 목에 걸었던 아버지의 은수저(47)에 얽힌 사연.

다른 하나는 살아계시는 아버지의 구멍난 숟가락.

딸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 새기는 모양이다.

 

알 듯 말듯한 표현들

 

<엄마는 아직도 내 파란색 칫솔을 쓰고 있다. 칫솔을 쥔 엄마는 손에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다. 엄마가 문지를수록 비 오는 날 신고 갔던 운동화의 밑창이 점점 하얘진다. 내가 벗어놓았던, 젖은 운동화다.>(53)

 

엄마가 실수로 자기 칫솔을 사용해서, 찝찝했다는 것을 말한 다음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짤막한 글에 운동화는 전혀 등장할 게재가 아닌데, 마무리하는 마당에 느닷없이 등장한 운동화. 무슨 말일까? 칫솔과 어머니와 운동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궁금한 노릇이다.

 

추리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는 있다. 어머니가 여전히 그 칫솔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그것을 이를 닦는데 쓴다는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 운동화를 닦는데 쓴다는 말 같은데, 그 문장의 비약이 글의 이해를 더디게 한다. 표현은 멋있을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설명이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 요즘에는 그렇게 글을 쓰나 보다!

 

눈부신 표현들

 

그런 것 다 제쳐두자, 사물을 표현해 내는 글들이 눈에 부시다. 이런 표현 어떤지?

 

<얇디얇은 천 하나가 들어 올리는 무게라는 게 담는 사람 의지에 달렸다는 듯 무한대라는 게 제 아무리 명품 로고를 새긴 쇼핑백이라 한들 한낱 종이백 따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39)

 

보자기를 표현한 김민정의 글이다.

 

<그 옛날 아빠가 그려준 약도 속 상호들을 입과 발로 더듬어가며 동네 바깥으로 걸어나갔듯이 낯선 지도에 그려진 무수히 많은 지명과 지번과 모퉁이 들을 몸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여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150)

 

그 옛날 아버지가 그려보여준 약도를 떠올리는 김선재의 글이다.

, 이 부분만 인용해서 그런지,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 앞을 읽어보면, 느낌이 팍팍 오는데, 아쉽다. 그러니 이 책 읽어보기를 ...

 

사족

 

인쇄가 글 읽기를 방해한다. 흰 바탕에 노란 색 활자가 군데군데 보인다. 아마 특별한 내용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의도이겠지만, 이 책에서 시도하는 보다라는 감각의 활동을 방해하는지라, 노란색이 보일라치면 아예 읽기를 포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거 무슨 글자인지? 하는 트라우마까지 생길 정도였다.

 

22, 34, !!!! 쪽수 표시한 글자도 노란색이다. 쪽수조차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이것조차 그래서 표기할 수 없다. 편집자님, 한번 잘 살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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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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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책의 가치는?

 

이 책의 가치는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이 요즈음 불거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정문순은 이 책에서 <통념의 내면화, 자기위안의 글쓰기>라는 글을 통하여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를 이미 제기한 바가 있다.

그러니 요즘 언론을 통하여 이슈가 된 신경숙의 <딸기밭><전설>은 이미 한번 짚었던 것인데, 다만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보통의 독자 - 이런 평론을 평소에는 접하지 않는 - 들은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그런 소설들을 좋다고 읽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표절은 어떤 행위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이 해 놓은 음식 중 일부를 덜어 제 요리 접시의 한 부분을 채워 넣어 창작의 수고로움을 더는 소설가의 행동은 제 손으로 문학적 성취를 포기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265)

 

저자가 소설가 조경란이 주이란의 <>를 표절하여 같은 제목으로 발표한 것을 분석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니 표절한 작가는 이미 문학적 행동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는데, 그런 것을 모르는 독자들은 그저 열심히 읽어주어 (또는 그 책을 구입하여) 진정한 문학의 발전에 저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가치는 여성작가에 대한 평가에 있다.

 

“1990년대도 이미 지나간 시점에서 여성 작가들에 대한 평가는 때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경숙을 위시한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독자적인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보다 남성의 보조자로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퇴행적인 인식에서 과연 자유스러웠는지 뜯어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118)

 

그런 문제의식 하에 저자는 이런 진단을 내린다.

<자기만족적 글쓰기가 환영받는 것은 여성문학을 오도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이런 현상이 신경숙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1990년대 여성작가들의 비극이다.>(124)

 

<고상한 것을 좋아하나 삶의 근원을 건드리는 문제는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장삿속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은 거들떠보지 않는 그들의 이중성을 웬만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의 작품이 통속 소설에 본격 문학의 외피를 둘렀을 뿐이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는 건 그것과 관련이 있다. >(125)

 

 

세 번째 가치는 요즈음 한국 문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들어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소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다.

 

김훈의 <칼의 노래>, 어떤가?

아마 책을 읽는 사람치고 읽지 않은 사람 없을 정도로 많이 읽힌 작품이다.

그 작품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이런 시각도 있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작가의 관심은 한 인간의 내면일 뿐 그가 호흡했던 당대의 현실은 아니다.>(312)

<사회의 총체성을 그리지 않는 작가에게 지나간 역사는 가벼운 현대의 일상과 다를 것이 없다.> (312)

<역사적 맥락은 거두절미하고 충무공만 불러내 작가의 내면을 투사하여 재구성한 작품에서 개인은 사회적 소산이라는 자질을 잃어버리고 낱낱의 파편으로 격하된다.>(315)

 

소설에 관한 상식도 갖추는 기회가 되었다.

 

예컨대 메타소설이라는 용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신경숙의 작품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의식과 글쓰기에 대한 애환이 다루어지는 메타소설의 형식을 띤 것이 적지 않다.>(119)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찾아본 메타소설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메타소설은 기존의 소설 양식에 '()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20세기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 소설 속에 소설 제작의 과정 자체를 노출시키는 것인데, 메타소설은 이처럼 소설 창작의 실제를 통하여 소설의 이론을 탐구하는 자의식적 경향의 소설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는 소설의 낡은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거짓말, 그리고 진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또는 그런 말이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거짓말은 무엇일까?

 

다른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여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행위, 그리고 그런 표절 의혹에 대하여 거짓말로 응수하는 행위, 결국 거짓말은 가지에 가지를 치게 된다. 거기에 덧붙여 표절한 작가를 옹호하는 작가들의 거짓말까지 보태지면, 결국 문단은 온통 거짓말로 채워지게 된다.

 

그런 거짓으로 채워진 문단에서 독자들은 어떤 해악을 입는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들은 삶의 진실을 알기 위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269)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라면, 그 사명을 팽개친 채, 끼리 끼리 뭉쳐서 거짓을 호도하려고 애쓰는 모습, 그러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진실 - 문단의 거짓을 드러내어 거짓이냐 진실이냐의 진실 -을 밝혀내어, 그들이 삶의 진실을 문학으로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저자의 주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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