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테레사 카푸토 지음, 이봄 옮김 / 연금술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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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이 책은 ?

 

영매 테레사 카푸토의 이야기이다. 테레사가 영매가 되기까지, 그리고 영매 일을 하면서 보고 듣고 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re’s More to Life Than This.......>이니, ‘이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정도가 되겠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어 번역본은 제목을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라고 했을까?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저 세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에 안녕(good bye) 이라고 말하지 마라, 고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편견 없이 읽으려 했으나

 

기독교인인 관계로 이런 종류의 책을 접할 때, 우선은 편견없이 읽으려고 애를 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게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식스 센스><사랑과 영혼>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떠오르는 이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영매 역을 맡은 우피 골드버그가 떠올랐다.

그 것은 저자가 그 영화를 언급했기에 그렇다. (116)

또한 저자가 언급한 영화 <식스 센스>도 오버랩 된다.

죽은 사람을 보는 소년이 등장하는 영화에서처럼, 저자는 죽은 사람을 느끼는 것.

저자는 느낄 뿐인데도, 이미지는 마치 영화 속의 그 소년이 죽은 사람을 보는 것처럼, <사랑과 영혼>에서 죽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 같은 그러한 상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얻은 것들

 

그 중 하나는, 죽은 자들에게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변에도, 또한 전해들은 것 중에 자기가 뭔가 잘 못해서 그 사람을 죽게 했다면서 평생을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으로부터 반복해서 나오는 한가지 메시지는 당신이 그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당신이 두려움이나 자책감을 지지 않고 삶을 껴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68)

 

그러니, ‘내가 그 때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라는 자책은 쓸모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부분이다.

이런 말, 새겨들을 만하다.

삶에서 우성인자로 믿음과 두려움을 둘 다 가지고 있을 순 없다.” (112).

그 둘은 서로를 반박한다. 그 둘은 서로 대항하는 힘이다.”

 

그러니, 믿음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니, 믿음이 있다면 두려워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을 뒤집어 말한다면 두려워한다면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두려움을 버리고 믿음을 껴안아야 한다.”

 

이런 말은 기독교인에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에도 적용이 될 것이기에, 이 부분을 기독교적인 견지에서 읽어 보았다.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꾸는 것은 삶의 어떤 국면에서도 정말 따를만한 규칙이다.”(112)

두려움은 부정적 성향을 끌어들이고 키운다.” (113)

 

옥의 티 (혹은 혹의 티)

 

저자인 영매 테레사 카푸토는 자신에게 영매의 능력이 있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낳은 다음에 알게 되어 그제사 영매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 둘을 낳았는데, 첫째는 아들 래리 주니어(23)이고, 둘째는 딸, 이름은 빅토리아(24)이다.

 

그런데 약간 모순된 진술이 등장한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스물 세 살이었다.”(23)

딸 빅토리아를 임신 했을 때 ..... 스물 일곱 살에 빅토리아를 낳았고....”(24)

“199912월 나는 이유없이 죽을 것처럼 아팠다. ......나는 2주 동안 병원에 누워있었다. 아들 래리 주니어가 아홉 살이고 빅토리아가 다섯 살이었기에 힘들었다.”(24)

 

그리고 영매의 스승이 되는 팻 롱고를 만난 때가 스물여덟살 되는 해였다, (26- 28)

“5년 동안 팻의 수업을 들으며 ....“(38)

 

이 모든 것을 감안해서 계산해 본다면 아들, 딸을 모두 낳고, 아들이 아홉 살, 딸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저자는 아직 영매로서의 인식이나 그 일을 하지 않을 때이다.

 

그런데 이런 기록이 보인다.

<내가 할머니를 커다란 파리라고 설정한 이래로 특히 중요한 시기마다 할머니는 나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이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내가 딸 빅토리아를 출산한 뒤 일어났다. 새벽 1시였다. 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간호사가 내 방으로 머리를 내밀며 뭘 좀 먹을 것건지 물었다....... (간호사가 가져온) 샐러드 위에 뚱뚱한 파리가 앉아있었다. 그것은 역겨웠지만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손녀가 태어나는 동안, 그리고 내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자신이 나와 함께 있다는 걸 내가 알기를 원한 것이다.“(124- 125)

 

딸 빅토리아를 출산한 시기에는 아직 영매로서의 인식을 하지 않았을 때이고, 특히 영혼이 신호를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인데, 저자는 그렇게 거꾸로 시간을 거술러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모순된 이야기, 잘못된 발언이 아닌가?

 

다양한 것들을 한 자리에

 

저자는 가톨릭 신자라 한다.

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종교를 따른다.”(11)

 

그래서 성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심지어 그 성인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영혼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나는 차분히 앉아서 마음을 편안히 갖고 유실물의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오에게 그 물건을 놓아둔 곳으로 나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다.”(155)

 

모르겠다. 가톨릭에서 성인을 그렇게 이용하라고 가르치는지?

저자는 가톨릭인이라면서 전생을 인정한다.

 

다른 사항들을 모두 고려해 본다면, 저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채널링 영혼과 교감하는 일- 에 유익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하는 것은 이 책은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이 어떤 진리나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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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나서영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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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인데. 약간 생소하다.

그 내용이 소설치고는 무척 생소하다.

소설이라고 분명 되어 있는데, 주인공 이름이 저자의 이름이고, 소설 안에서 주인공 역시 소설가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으로 나오니, 이게 소설인가. 아니면 자전적 이야기인가, 하는 헷갈리게 된다.

그래도 책에 밝히길, ‘나서영 장편소설이라고 해 놓았으니, 소설은 소설이겠지!

 

이야기, 이야기, 넘쳐나는 이야기

 

 

이 책에서 주인공은 소설을 쓴다. 소설을 쓰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게 이 책의 주요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 바로 쉼표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소설은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내용을 장()으로 구분한다. 아니 작자가 글을 쓰는데 편리하도록 그렇게 장으로 구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이 장을 따라 가면서 쉬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이 책은 전혀 장의 구분이 없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 소설을 읽다가 당황한 것이 그것이다. 대체 쉼표가 없으니, 어디에서 이야기가 쉬고 이어지는지를 가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쉼표는 딱 한 번, 289 쪽에서 쉰다.)

 

한계를 느낀 책이다.

 

나도 책을 읽어온 사람이다. 그래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고, 또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책을 읽는다고 하긴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것이 책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고도 대체 이해가 되지 않으니, 별 일이다내가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해서 나의 독서에 한계를 느끼게 해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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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인지 말해
신중선 지음 / 문이당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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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인지 말해

 

이 책은?

 

작가 신중선의 소설로서, 작가도 작품도 처음 접한다.

책표지에는 이런 말이 제목에 덧붙여 있었다.

 

<열일곱 해 전,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의 쓰레기통에서 갓 낳은 아기가 발견되었다.

도심 광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기는 백화점 쇼핑백에 들어있었다.

그 백화점은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도 채 안 되는 장소에 있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그 아이의 성장,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그 여행을 보여준다.

 

주인공에 대하여

 

주인공이 되는 소년, 몽상가 소년은 정이 가는 인물이다.

왜 정이 갈까? 불쌍해서? 그것은 아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정이 가지는 않는다. 그럼 그 소년의 어떤 점에 정이 가는 것일까?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그 여정에 정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부모를 찾아다닐 때에, 같이 다녔다.

여기에서 물론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페이의 조카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소설의 전개가 그리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책장이 넘겨지면 질수록 상황은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 이미 상황은 결판이 났음에도 - 몽상가 소년이 페이를 찾아가 자기가 아들이 아닌가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오직 안타까울뿐이었다, 

 

공자 말씀하시되,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먼저 하겠느냐 묻자,

공자는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고,

또한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도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의 중요함을 피력하였다.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 그 말과 이 소설은 관련이 있다,

물론 공자 말씀과는 약간 거리가 있겠지만, 몽상가 소년은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를 애타게 찾아다닌다.

 

이름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작품에는 유독 이름에 대한 단상이 많이 등장하며, 소년을 제외한 페이와 탐정 B는 진짜 이름을 버리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 대신 스스로 만든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상황과 대비되는 설정이다. 스스로를 몽상가물고기라 이름 짓고 살아가는 소년은 간절하게 제 이름을 찾고 싶어 한다. 진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소년에게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6)

 

어린왕자의 재림인가?

 

물론 이 소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인물도 있다, 바로 탐정 B의 존재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가 누수되는 수도의 물방울 소리를 듣고, 모스 부호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외계에서부터 온 소리를 듣는다. 우주개가 보내는 신호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의 작업이 몽상가소년의 정체를 밝히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탐정 B와 몽상가 소년의 만남은 살아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소설은 <어린왕자>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어린왕자>의 결말을 아는지?

안다면 이 소설의 결말도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러니 탐정 B의 존재는 이 소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노린 바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어떻게 물방울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면, 어디 그게 소설 읽는 자세인가?

이 소설은 그것을 뛰어 넘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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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박영준.송수영 옮김 / 이아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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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

 

이 책은?

 

<고민하는 힘>에서 저자 강상중은 노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는 요즘 시대를 말할 수 없다 (157) 말한다. 일본은 초고령 사회시대를 맞이하여 노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인데 그 중에 하나 노인 간호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논의 중 하나로, 저자인 히라카와 가쓰미가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87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6개월을 간병하면서 파악한 아버지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진솔하게 적어 놓았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저자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던가?

일단, 저자에게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저자에게 존경의 대상은 학교나 책 속에서만 존재했다. 인물을 평가하는데 학력이라던가. 사회적 지위라던가 하는 지표로 존경여부를 결정하던 저자에게 아버지는 당연히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10)

 

그런 아버지가 병에 걸려,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저자는 아버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이제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어떤 심정으로 늙음과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를 닮은 사람을 발견해 나가는 기록이다. ‘나를 닮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내가 언젠가는 조우해 (아버지와) 똑같이 좌절하거나 곤혹스러워하면서, 극복하거나 좌절할 미래의 모습”(12)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사건 아버지가 가스대 위에 플라스틱 용기를 올려놓아, 하마터면 불을 낼 뻔한 일 은 우리 두 사람이 노화라는 것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52)

 

절절한 사연들, 가슴아픈 일들

 

저자가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느꼈던 마음들, 읽으면서 가슴이 울컥해지는 대목이 많았다.

 

<결국 하룻밤 사경을 헤매고 아버지는 자신의 발로 사바세계로 다시 돌아오셨다. 그러나 돌아온 아버지는 어제까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80)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실지 알 수 없으나 거기엔 희망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늙고 병든 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4)

 

<이즈음 아버지는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신체의 모든 에너지는 온전히 생명을 연장하는데만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122)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의식이 분명할 때가 가장 괴로운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189)

 

<섬망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어떤 현실을 보고 있고, 어떤 공간을 호흡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214)

 

<아버지도 늘 그렇듯 그곳에 잠들어 계셨다.

평소와 다른 것은 아버지의 얼굴에 천이 덮인 것뿐이었다.> (236)

 

이 책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늙어가는 모습은 내가 늙어가는 모습이기도 한 셈이다.”(12)이라는 말이 바로 그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것은 저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니, 이런 과정이 바로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 아닌가?

 

<전후 일본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 온,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시대에 뒤떨어져 점차 삶의 의욕을 잃고 종국에 ....> (35)

 

그런 모습이 결국은 저자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저자의 미래이기도 하고, 또한 나의 모습이니,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저자의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이 피부에 와 닿게 되는 것이다.

 

이 책, 밑줄 긋고 싶은 말

 

<체념이란 장래에 관여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될 대로 되라 할 수 밖에 없고, 될 대로 되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체념에는 비애가 잠재되어 있지만 공허한 희망을 품으며 절망하는 것보다 낫다.> (225-226)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으나 어떻게든 된다. 어떻게든 된다.”(248)

N 스프링의 사모님이 저자의 어머니 불단에 바친 편지.

 

다시, 이 책은?

 

<지금 당장은 이것이 아버지의 일이지만, 누구나 겪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이며, 나아가서는 ’, ‘우리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인간은 실존적 각성을 촉구받는다.”고 했던가.>

 

그것처럼, 이 책은  바로 우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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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에게서 배우는 권력의 리더십
스테파니 존스.조나단 고슬링 지음, 박수성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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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교사로서의 나폴레옹

 

리더십의 단골 손님은 위인이다. 위인에다가 뭔가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을 선호하고, 게다가 말로가 좋은 사람이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리더십 이론가들은 죽은 자든, 살아있는 자든 불러내어, 리더십 이론에 합류시킨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은 그래서 언제나 환영받는 인물이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좋은 예이다.

 

그러나 한때를 풍미했던 사람 중에 히틀러를 리더십 이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보았는지?

히틑러는 기피대상 1호다. 그럼 징기스칸은? 글쎄, 징기스칸은 위인전에는 등장할지 모르나, 리더십 대열에는 등장한 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다 리더십으로 분석하기에는 하자가 있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혹시 나폴레옹 하니까. 프랑스의 한 때 황제였던 인물이고, 위인전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에다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니, 리더십 이론에 등장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의 행적중 이런 것을 한번 살펴보자.

하나만 보자. 그는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여 죄없는 병사 50만 명을 아사, 동사로 몰아넣었다.

그거야 국가의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자. 그렇다면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략과 공포정를 시행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나라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정부(情婦)는 권력이다. 나는 그것을 얻고 떠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데 너무 많은 힘을 들였으며, 내 권력을 탐내는 자는 누구라도 엄하게 응징했다. >

- 저명한 기자 뢰데레(Roederer)에게, 1804114(14)

 

그런데도 그의 리더십을 운위할 수 있을까?

설령 그의 말로가 실제와는 다르게 영화롭게 끝났다 할지라도, 그의 생전 행적으로서는 리더십을 운위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폴레옹에게서배우는 리더십이다.

그런 잔인하고 폭군이었던, 그래서 인류 역사 아니, 이 것은 인류 역사가 아니라, 프랑스 역사일지도? - 의 한 폭을 검게 물들였던 그에게서 배울만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제목을 다시 봐야 한다. ‘권력의 리더십이다.

그로부터는 보통 말하는 선한 의미의 영향력을 말하는 리더십을 배울 것이 없고, 다만 권력의 리더십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목이 무척 솔직한 것이다.

 

왜 나폴레옹인가?

 

나폴레옹의 그런 면을 제외하고, 딱 하나 그로부터 배워야 할 이유가 있다.

<나폴레옹의 리더십 방법은 실제 전쟁터는 물론 국내정치, 국제 무대, 그리고 직장에서 권력을 얻고 사용하는 예시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덜 격동적인 현대에도 나폴레옹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은 오늘 날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나폴레옹의 시대만큼이나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9)

 

그러니 그의 리더십은 순전히 권력 총칼로 만들어진 권력-에서 나오는 리더십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 시대와 유사하니까, 그의 리더십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반면 교사로서의 나폴레옹

 

그러나, 그렇게 이 책을 대하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론이다. 아니 이론이 아니라, 지침서다. 현실로 살아가는 데는 이론을 따지고 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으니, 현실에 충실하자!

 

그래서?

이 책에서 <나폴레오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을 배워서, 나폴레옹처럼 그렇게 권력을 사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그릇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을 알아서, 미리 사전에 막자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애초에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막아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그릇된 리더십을 구분하는 지침서로 읽어보면 어떨까?

아마 지하에서 자기의 행적을 후회하고 있을 나폴레옹도, 나의 이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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